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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4화 생존자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

13년 만에 등장한 세 번째 흑색 게이트에서 넘어온 생존자를 두고 헌터 협회와 정부는 곤혹스러운 입장이었다.

생존자는 극히 희귀한 게이트 너머의 이세계인이다.

그들은 저마다 제각각의 문화와 환경 속에서 살아왔으며 걔중에는 지구인들에게 고압적이거나 적대적인 존재들도 있었다.

얼음벽에 봉인된 전쟁영웅도 있었고, 영겁을 사는 흡혈귀도 존재했다.

드래곤의 후손이나 지하굴을 파고 요새를 방어하던 난쟁이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가 쉬운 상대가 아니었고 저마다 옹고집스러운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가 멸망했음을 인정하고 생존자로서 대접받는 것에 만족하는 경향이 있었다.

생존자들에 대한 각국 정부의 방침은 동일하다.

어떻게든 끌어들인다. 정부 소속이 무리라면 국내에라도 정착하게 만든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인 만큼, 전투력이 뛰어난 이들도 많았고 다들 특출난 무언가가 있었다.

물론 생존자라고 해서 모두가 받아들여진 건 아니다. 생존자 중에는 도저히 현재의 인류문명이 받아들일 수 없는 가치관을 지닌 존재도 여럿 있었으니까.

그와중에 최신의 생존자. 레온은 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를 타입이었다.

“어쩌지? 궁중예법 같은 거 해야 하나?”

“어음… 사극은 좀 봤는데…….”

헌터협회 과장 김진수와 대리 한하리는 자신들을 구해준 은인이자 생존자를 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

라이온하트 왕국의 국왕이라 주장.

스스로가 신들의 대행자이며 반신이고 명예로운 기사라 칭한다.

말투와 행동거지로 보아 철저한 계급제 사회 인물. 수사관 셋이 연달아 심문을 시도했으나 위협적인 행동과 함께 방출.

설렁탕과 김치. 서민들의 음식이라며 취식을 거부.

짜장면. 잠깐 흥미를 보였지만, 추잡하게 국물이 튈 수밖에 없는 천한 음식이라 거절.

치킨을 권유해보았으나 이 역시 손으로 집어 먹는다는 점에서 아웃.

“……귀신같이 알아맞히는데.”

“그러게요.”

그는 지구의 음식들을 모양새만 보고도 서민들의 음식이라 거부했다. 덕분에 인근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공수해와야 했다.

“하리야… 네가 먼저 가봐.”

“제, 제가요? 저 사극 말투 잘 못하는데?!”

“그래도 너한테 호감이 좀 있는 것 같더라. 칭찬도 받았다며.”

“용기 있다고 말해준 것밖에는…!”

이 까다로운 생존자를 상대하기 위해 한하리 대리가 투입됐다. 그녀는 게이트에서 레온의 호의적인 시선을 받은 만큼 내쫓기지는 않지 않겠느냐는 모두의 결론이다.

“으으…….”

최고급 티본 스테이크를 우아하게 썰며 93년산 레드 와인을 마시는 레온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하리.

“폐, 폐하… 식사 중에 황공하기 아뢰옵소만?”

“그때의 검사인가. 앉거라.”

곧장 내쫓기지는 않았다. 하리는 조심스럽게 한숨을 내쉬며 금간 매직미러를 향해 주먹을 쥐었다.

분명 너머의 동료들이 제게 화이팅을 외치고 있으리라 믿으며.

“시, 식사는 마음에 드시옵니까?”

“나쁘지 않군. 요리사의 정성과 오랜 노력이 깃들어 있음이야.”

“마음에 드셨다니 황공하옵니다아아…… 천한 음식을 내드려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아아…….”

“오해가 있군.”

나이프를 놓으며 금발의 사내는 다독이듯 말했다.

“짐이 그대들에게 지적한 것은 그대들이 왕을 대하는 태도다.”

“그, 그게 어떤 말씀이시온지?”

“왕족이 타국의 대표를 만날 때는 그에 어울리는 격을 대접받아야 함이야. 이것은 그대 국가의 국격과도 연결되어 있지.”

“그, 그렇사옵니까?”

“평민의 음식은 짐도 얼마든지 먹는다. 전장에서 음식을 가릴 정도로 버릇없이 자라진 않았으니. 허나, 그대들이 국가의 의지를 대표해 짐 앞에 섰다면 그에 걸맞은 격을 보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음식 때문에 깽판 친 건 아니라는 소리였다.

하리로선 솔직히 그냥 드시면 안 되나 싶긴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국빈이 방문했을 때, 맥두날두의 빅맥 세트를 내놓지는 않지 않은가.

“그렇군요. 배움이 짧아 실례를 저질렀사옵니다아아아…….”

“그럼 됐다. 그나저나 한 아무개라 했나.”

“예, 예이… 소녀 한 하리라고 하옵니다.”

레온은 어설픈 사극 말투를 따라하는 하리를 보며 말을 편히 하라고 하지 않았다.

왕족이 평민에게 편히 대해질 수는 없는 법이니까.

“내 이 세상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

레온은 수사관들에게 역정을 내면서도 이 세계에 대한 정보를 착실하게 수집했다.

수사관들도 최대한 지구와 지구가 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려 했으니 레온은 어느 정도 정보를 파악한 셈이다.

“보아하니 이곳도 모종의 침략을 받고 있는 모양이더군. 게이트라고 했던가. 짐의 세계에도 그것들이 나타났었다.”

“그렇사옵니까?”

생존자들의 목격증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증언이었다.

게이트. 문. 차원의 균열.

여러 형태로 불리지만, 공통적인 특징.

“악마들. 그 사특한 것들이 이 지구에도 출몰한다지?”

“예에… 그렇사옵니다.”

하리의 임무는 하나였다.

최선은 그를 대한민국 정부에 속하는 헌터협회 소속으로 편입하는 것.

차선은 어떻게든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정착시키는 것이다.

생존자의 등장은 언제나 각국 정부의 주의를 끈다. 어떻게든 자국에 편입시키려 온갖 수를 써오는 것이다.

21세기 세계의 첩보전의 중심에는 생존자들을 스카웃하는 것이 핵심일 정도.

레온의 가치? 생존자라는 시점에서 말할 것도 없다.

전투력? 이미 여러 협회직원들에 의해 입증됐다.

문제가 된다면 고압적인 신분제 주장과 특이성인데, 막상 대화를 해보면 그렇게 말이 안 통하는 상대도 아니다. 무엇보다──

‘이 사람은 자신의 가치에 대해 확실하게 자신하고 있어.’

생판 모르는 다른 세계의 주민을 상대로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부터가 자신감의 증명이다.

생존자들 중에는 어수룩한 타입이나 국가를 상대로 어느 정도 굽히는 경향이 많았다.

단신으로는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을 이길 수 없다. 적으로 돌려서 좋을 게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레온이라는 남자는 그야말로 프라이드와 자존감의 정점이다.

그는 모르는 것은 당당하게 요구하며, 필요한 것은 당장 내오라 주장했다.

스스로를 고귀하다 여기는 신분제의 끝판왕 같은 존재니 누굴 대하든 당당할 수밖에.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폐하께서 윤허하신다면 앞으로의 자리는 저희 대한민국 정부가 맡아드리겠사옵니다.”

“그건 무슨 뜻이지?”

하리는 천천히 그에게 선택지를 내놓았다.

국가 소속의 헌터가 되는 길.

정착하여 다른 길을 찾는 길.

무엇이 됐든 협회는 생존자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도를 보였다. 특히 국가 소속의 헌터가 된다면 그 지원은 어마어마함을 강조하며.

아직 협회 상층부는 레온의 가치에 대해 모른다. 하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으면 기꺼이 레온을 한국에 유치하려 들 것이다.

“이곳은 악종들의 침략을 받고 있다. 명예 있는 기사라면 응당 싸워야 함이다. 귀하의 세계에 정착하는 이상 짐에게는 응당 전장으로 향할 의무가 있다.”

“그러시군요!”

하리의 얼굴이 밝아졌다. 생각보다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진 분 아닌가?

생존자들 중에는 악마들이나 게이트에 진입하는 걸 거부하는 이들도 많았다. 자신이 다른 세계의 싸움에 끼어들 의무가 없다면서 말이다.

정작 그러면서도 생존자 정착 지원금은 빠짐없이 챙겨간 얌생이들이라지.

적어도 이 사람은 그런 파렴치한은 아닌 모양이다.

“그럼 저희 헌터 협회 소속이 되시면──”

“아니, 왕은 다른 왕의 군문 아래로 들어갈 순 없는 법.”

어? 이게 무슨 소리지?

하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 정부 소속이 되지 않는다는 경우도 얼마든지 생각했다. 하리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협회에 들어가는 건 그에게 이득이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다른 헌터 길드에 들어가는 것도 거부하겠다는 것 아닌가?

“짐은 이 세계에서 짐의 새로운 기사단을 설립할 것이다.”

레온의 포부가 담긴 선언에 하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는데.”

레온의 이야기를 종합하며 김진수 과장은 정수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하리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나쁘진 않은 거 아니에요? 그래도 싸울 의지는 충분하던데요.”

“그렇긴 하지. 딱히 타국으로 가려는 모양새도 아니고.”

레온 정도로 조건 좋은 생존자는 생존자 전체를 통틀어도 희귀하다.

충분한 무력이 있으며 게이트에 진입할 의지가 있고, 현 세계에도 적대적이지 않다.

신분제 사회의 인간이라는 게 좀 흠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사리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대통령을 만나야겠다고 할 땐 식겁했다.”

“으… 허가 안 해줬죠?”

“만나서 칼질하면 어쩌려고. 저 사람 검을 마음대로 아공간에 집어넣고 소환하고 그러던데.”

“아공간 주머니도 없는데, 대체 무슨 원리일까요?”

혹시라도 홱까닥 돈 생존자가 대통령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면… 그야말로 국가적 재난이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어쩌긴… 최대한 지원해야지.”

협회의 회의 끝에 내린 결론이다.

그의 호감을 사고 그가 이 땅에 정착하도록 최대한 지원한다.

그를 위해선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해볼 만 했다.

“우리나라는 정부의 힘이 너무 약하니 말이지…….”

“이게 다 돈과 권력만 밝히는 대형길드 놈들 때문이에요.”

뿌리 내린 채 고착된 한국의 고질병은 지금도 국가를 병들게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우리 흑색 들어가기 전에 최근에 주홍색 하나 뜨지 않았냐? 호남 평야 쪽에.”

“네, 불새 길드에서 따갔어요.”

“잘 돼야 할 텐데… 그쪽에 일 터지면 진짜 큰일이라고.”

대격변 이후로 곳곳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면서 세계는 황폐화되었다.

던전 브레이크의 문제는 단순히 몬스터들이 쏟아지는 것만이 아니다. 게이트의 균열이 열리면서 몬스터들과 함께 ‘마소’가 함께 새어나온 것이다.

마소는 공간을 침식하고 땅을 저주하는 치명적인 독이다. 마소가 침식한 땅은 최소 1년 이상 정화작업을 거쳐서야 작물을 심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곡창지대의 던전 브레이크는 그해 농사를 결정지을 만큼 치명적이란 소리다.

“불새 길드는 그래도 S급 헌터 이용완 씨가 있는 곳이잖아요. 주홍색 게이트라도 그렇게 어려운 난이도는 아니에요.”

“……그렇지.”

김진수 과장은 한하리 대리에게 자신이 접한 국정원의 첩보를 전해야 할지 고민했다.

최근에 불새 길드가 정부에 면제 혜택을 요구했다가 거부당한 이후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삐빅!

“어?”

그때, 김진수 과장과 한하리 대리의 폰에 똑같은 타이밍의 진동이 발생했다. 삐익! 삐익! 하는 불길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호남평야 게이트 던전 브레이크 발생. 활동 가능한 모든 직원은 긴급대기 발령.]

그 메시지를 확인한 두 사람은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

“”불새 길드 이 개새끼들!!””

* * * *

매직 미러 뒤에 있다고 해서 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지만, 레온은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의 축복받은 육체는 이미 인간의 육신을 벗어났다. 그는 살아있는 성자. 다시 말해 반신이란 소리다.

‘곤경에 처한 모양이야.’

던전 브레이크가 문제가 아니었다. 하필이면 던전 브레이크가 곡창지대에서 터진 게 문제였지.

듣자하니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땅이 오염되고 작물이 자라지 않는다는 모양인데…….

‘역시 없나보군.’

그를 통해 레온은 이 지구에 ‘그것’이 부재함을 확신했다.

‘흉작’이니 ‘흉년’이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부터가 너무나 확실한 증거다.

‘데메라시여. 평안하십니까?’

그는 제 심장 속에 숨겨진 ‘신전’에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

그녀는 기꺼이 만신전의 대행자에게 응답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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