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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03

EP.402 16. 기사 이반 (10)

노예시장에 도착한 원더스타인은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을 받았다. 정말 오랜만에 TTT에 나왔던 장소 중 하나에 도착한 것이다. 예테린푸르크를 떠난 지 몇 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는 역에 내렸을 때부터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향수에 빠져들었다. 일반 노예들이 거래되는 장터, 고급 노예들이 오르는 경매장, 여자 노예들의 접대가 이루어지는 홍등가, 생체실험용 노예들이 오가는 암시장, 노예 검투사들이 싸우는 투기장 등 게임에서 가보았던 지역들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기차를 타고 도심을 가로지르며 얼핏 봤던 풍경들로 미루어 보아, 현재의 이곳은 그가 알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서 아는 캐릭터들을 만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곳 스테이지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대부분 노예였다. TT3의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6년 뒤였으니 그때 등장했던 노예들이 지금 시장바닥을 돌아다니고 있을 리 없었다.

물론 이 세계에 떨어지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왔다면 볼 수 있었던 인물이 한 명 있긴 했다. 그는 바로 TTT의 세 주인공 중 한 명인 ‘기사 이반’이었다.

TTT에는 시리즈마다 용사의 개인 서사를 담은 스테이지가 하나씩 등장했다. TT1의 은막의 서커스 스테이지에서는 개인사에 대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마법사 마야의 이야기가 풀렸고, TT2의 베가스 스테이지는 도적 키아라의 활동 무대였던 곳으로 그녀의 과거 인연들이 나와서 도움을 주거나 적대적으로 굴곤 했다. 그리고 TT3의 노예시장 스테이지는 기사 이반이 한때 노예 검투사로 있었던 곳이었다.

노예라는 말이 붙긴 했지만, 검투사들 역시 ‘계약’의 형태로 묶여 있었다. 20회 승리나, 50회 출장, 누적 관중 10만 명 동원 등의 조건을 달고 투기장에서 싸워서 조건을 충족하면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다.

이반은 채 10살도 되기 전에 투기장에 팔려 왔다. 그는 원래 귀족이었다. 그러나 그의 조부가 내전에 뛰어들었다가 패배하는 바람에 가문 전체가 몰락해 노예로 나온 것이었다.

그는 10대 전부를 투기장에서 보냈다. 마침내 조건을 채우고 그곳에서 나오게 된 것은 20살 때의 일이었다. 과거 그의 가문과 인연이 있었던 어느 귀족은 그의 실력을 높이 평가해 그를 기사로 받아들였고 그는 엄청난 실력을 발휘해 2년 만에 기사단의 에이스에 등극해 서커스 그랑프리의 경비 업무에까지 파견되었다.

물론 지금의 이곳에서는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아마 작년 여름쯤에 투기장을 나와서 기사단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 제국 북부의 들판을 쏘다니며 도적들을 분쇄하고 위험한 마귀를 잡아내는 등 한창 기사단 업무로 바쁘게 보내고 있을 터였다.

원더스타인은 아나이스, 바텔, 미노바, 나타샤와 함께 노예시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그들은 니카, 도스빌, 루엘로와 합류했다. 클라라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인인 아나이스, 협상가인 니카, 그리고 뒷골목 생리에 밝은 미노바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의 활약 덕분에 일이 무난하게 풀렸다. 미노바는 일행들의 차림새를 보고 괜히 알랑대거나 시비 거는 작자들을 눈빛 하나로 멈춰 서게 했고, 니카는 상대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듯한 화술로 그들에게서 클라라의 행방을 쉽게 수소문했다. 원더스타인이 옆에서 보기에 그들의 솜씨는 곡예사들의 재주에 못지않게 경이로웠다.

그중 가장 큰 활약을 펼친 사람은 아나이스였다. 그녀는 상황을 전해 듣고는 불과 30분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클라라를 빼낼 계획을 수립했다. 우선 그녀는 ‘상속녀’를 연기하기로 했다.

당시 제국의 귀족들은 외국의 부잣집 딸과 결혼하는 일이 많았다. 귀족들은 산업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본가로 변하길 원했다. 그러나 그들의 재산 대부분을 차지하는 토지는 현금화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궁리한 방법이 바로 외국의 부유층과 혼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상대방이 바라는 일이기도 했다. 산업 사회에 새로운 상류층으로 부상한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진짜 귀족들과 대등한 위치에 서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들은 딸들을 제국의 귀족과 혼인시킴으로써 그 욕구를 충족했다.

이는 사업적으로 괜찮은 발상이었던 게, 제국에서 뭔가 사업을 하려 할 때, 인맥이나 뇌물이 없으면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자식들의 혼인으로 생긴 연줄은 그들이 제국에서 사업하는 것을 더욱 원활하게 만들어 주었다.

상속녀란 이렇게 제국의 귀족 사회로 편입된 외국의 부잣집 딸을 의미했다. 보통 귀족 집안 아내들은 남편보다 한두 단계 떨어지는 집안 출신인 경우가 많아 남편에게 숙이고 집에서 내조하며 지내던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도시에서 여왕처럼 살다 온 상속녀들은 남편에게 조금도 굽히는 법이 없었으며 사회진출에도 적극적이었다.

보통 귀족 여인이라면 주변 시선이 무서워서라도 감히 발을 들이지 못했을 노예시장 안에 당당히 들어와 자신의 사업 계획을 늘어놓는 것은 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상속녀다운 행동이었다. 번슈타인이 클라라를 판 노예 상점은 거리에서 제일 큰 곳이었다. 그곳의 주인인 뚱뚱한 노파는 몇 마디 말로 아나이스의 역량을 가늠해보았고, 그녀는 여유롭게 그녀의 말을 맞받아침으로써 자신이 상인으로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과시했다.

그걸로 상대는 그녀가 ‘진짜배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아빠 어깨 너머로 몇 마디 훔쳐 들은 걸로 자기도 사업해보겠다고 설치는 여자가 아니라 진짜로 돈을 굴려본 경험이 풍부한 사업가라고 말이다.

이것은 아나이스가 누구보다 잘 소화해낼 수 있는 배역이었다. 그녀는 진지하게 제국 남부에 부유층을 대상으로 할 새로운 형태의 유흥업소를 세울 계획을 말하며 거기에 여자들을 공급할 파트너를 찾는 연기를 했다.

사업에 문외한인 원더스타인은 아나이스의 비전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최근 시장 상황과 구체적인 숫자로 사업의 타당성을 밝혔을 때, 가게 주인의 눈빛이 몽롱해져 가는 것으로 보아 업계 사람에게도 충분히 먹힐 만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상인들끼리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1시간 넘게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은 가게 주인은 이제 완전히 그녀의 사업 제안에 푹 빠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 노예시장에서 여자 노예라면 누구보다 오랫동안 다루어왔다며 제발 그녀의 사업 동료로 삼아달라고 애걸하다시피 매달렸다.

“좋아요. 아직 여기를 좀 더 둘러볼 생각이긴 하지만, 대모님만 한 분은 없을 것 같군요. 본국에서 자금만 넘어오면 바로 사람부터 확보할 생각이니 그때 대모님을 다시 찾아뵙겠어요.”

“아이고, 대모라뇨. 자작 부인님에게 그런 호칭을 듣기 부끄럽습니다.”

뚱뚱한 노파는 아나이스를 향해 연신 허리를 숙여 보였다. 둘은 가볍게 축하주를 교환했고, 잠시 후, 아나이스는 지나가는 투로 툭 한마디를 던졌다.

“그런데 혹시 여기 다 죽어가는 처녀는 없나요?”

“다 죽어가는……처녀요?”

노인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휘어졌다.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그녀는 뭔가 의심스러움을 느낀 듯했다. 그녀의 호흡이 변하는 것을 느낀 니카가 재빨리 끼어들어 설명했다.

“자작 부인께서는……‘비누’를 찾고 계십니다.”

그녀의 말에 아나이스는 아차 싶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아요. ‘비누’요. 아직 키예프 귀족들의 돌려 말하기에는 익숙해지지 않네요.”

‘비누’라는 말에 노인의 안색은 금방 펴졌다. 그것은 인신 매매업에서 쓰이는 은어 중 하나였다. 인간의 지방을 이용해 만든 비누로 몸을 씻으면 어떤 피부병이라도 낫고 피부가 아기의 것처럼 부드러워진다는 주술적 믿음에서 나온 말이었다.

즉, ‘비누’란 미용을 목적으로 거래되는 동남동녀들을 의미했다. 보통 그들을 안고 자거나 처녀 혈을 취하는 방법으로 회춘을 하는 데 쓰였다.

노예 상인은 아나이스의 안색과 몸 상태를 슬쩍 살폈다. 워낙 오랫동안 젊은 여자를 사고판 덕분에 그녀는 상대가 꽤 심각하게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마 중병을 상대 몸에 떠넘기는 그런 종류의 주술을 쓰려는 모양이군.’

마도사 중에는 그런 능력을 지닌 자들이 있었다. 물론 그런 방법으로도 병을 완전히 낮게 하는 것은 힘들었다. 잠시 눈속임으로 증상을 몇 년 피해 갈 뿐이었다. 거기다 그러한 주술의 보호를 받는 동안에는 교회도 함부로 찾아갈 수 없었다. 성역에 들어섰다가 기껏 막아놓은 병의 증세가 터져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신과의 거래는 항상 부작용과 대가가 뒤따르기 마련이었다. 노파는 그 반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 죽어가는 사람을 찾는다고 여겼다. 멀쩡한 사람에게 그랬다간 떠안아야 할 대가가 몇 배는 커질 테니까.

그녀가 찾는 그런 종류의 노예는 보통 암시장 쪽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저주 역병에 걸린 사람이나 실혼인 같은 것들이 거래되곤 했다. 아마 평소였다면 노인은 그녀에게 그곳으로 가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침 오늘 그녀에겐 막 들어온 하자품이 있었다. 안 그래도 이 상속녀 앞에서 자신이 대단한 수완가임을 자랑했었다. 그걸 과시할 좋은 기회였다. 그녀는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말하고는 바깥에 있는 직원을 불러 클라라를 데려오도록 명령했다.

“저, 사장님……. 그 애는 이미 투기장 쪽에 보냈는데요?”

“뭐라고?”

“사장님이 아까 서둘러 치워버리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점심도 거르고 바로 투기장으로 뛰어갔다 왔죠.”

평소에는 그렇게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도 않는 것들이.

가게 주인은 이를 갈았다. 클라라가 벌써 팔려나간 것은 예상 밖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 있게 내놓겠다고 해놓고 다시 안 되겠다고 하는 것은 그녀에 대한 아나이스의 동업자로서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었다. 어떻게 만나게 된 대목인데…….

그녀는 응접실로 돌아가 상황을 설명하고는 최선을 다해서 이런 일은 사업 과정에서 언제나 일어나곤 하는 사소한 해프닝이라고 포장했다. 그녀는 아나이스가 투기장에 가면 아무런 문제 없이 클라라를 데리고 나올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다 취해 주었다.

“어머. 이렇게까지! 철두철미하시군요, 대모님은.”

“후핫핫, 사업의 기본이죠, 자작 부인.”

노파는 안내인으로 직원 하나까지 그녀에게 붙여 주었다.

“이런 배려까지! 제가 이 클라라는 아이의 값은 더 쳐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아뇨. 아뇨. 어차피 몇 번 굴리다가 버릴 아이였습니다. 이건 제가 오늘 부인 같은 천재적인 사업가와 얘기를 나눈 수업료 대신으로 하겠습니다. 부디 제 성의를 그냥 받아주십시오.”

아나이스는 활짝 웃으며 그러겠다고 말했고, 옆에 있던 바텔이 클라라에 대한 노예 증서를 챙겼다. 도스빌이 해당 문서에 아무 문제가 없음을 인증해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필요한 일을 모두 끝마치고 시장을 나와 투기장으로 향했다. 그동안 옆에서 가만히 있던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수완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만약 순진하게 그녀를 되찾기 위해 상점을 방문했다면 이렇게 쉽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탐욕스러운 노파는 아마 며칠 동안 뜸을 들이고 그의 간을 보며 종국에는 클라라를 산 수십 배의 가격을 받고 팔려 했을 것이다.

그가 숨겨진 황실 비자금에 대해 털어놓았을 때, 그녀는 굳이 그것을 찾지 않아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는데, 설마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 사실 돈을 가져오기 위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동안 클라라가 정말 험한 꼴을 당할 수 있었는데 그걸 막은 것이 컸다.

“감사합니다. 아주 대단하더군요. 과연 대상회의 회장다운 솜씨였습니다.”

“후훗, 이 정도로 뭘요. 아주 기본적인 상거래 기술인데요. 혼자 갔다면 저도 이렇게 성과를 못 냈을 거예요. 바텔, 나타샤 양, 니카 군, 도스빌 남작, 미노바 씨 등이 분위기를 잡아줘서 그럴듯해 보였죠. 거기다 단장님도요.”

“저요? 제가 뭘 했다고……. 저는 그저 아나이스 님이 시키는 대로 옆에서 그냥 웃으면서 맞장구만 쳤을 뿐인데…….”

그의 말에 아나이스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미소만 지었다. 그녀는 차마 그에게 돈 많은 상속녀 옆에서 바보같이 헤실대며 맞장구나 칠 줄 아는 불륜용 애인 연기를 시켰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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