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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04

< 미래를 보는 투자자 403 >

한때 부모님연합은 엄마봉사부대, 구국군인협회 등의 단체들과 함께 정권의 홍위병으로 불리며 맹위를 떨쳤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시위를 벌였고, 정권에 비판적인 이들을 매섭게 응징했다.

그러나 그것도 다 옛말.

국정원과 전경련 등에서 돈을 받고 관제데모를 벌인 것이 드러나며, 지도부는 체포됐고, 회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정권이 바뀌고, 정신적 지주이자 마음의 등불이라 할 수 있는 박시형 대통령은 구속되며, 부모님연합은 사실상 와해됐다.

하지만 일부 세력들은 여전히 남아 외로운 투쟁을 이어나갔다.

벌써 한달 째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설치한 채 박시형 대통령 석방과 강진후 구속, 정권퇴진을 주장하며, 1천만 대국민 서명 운동을 벌였다.

서울시 측에서는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철거를 실시하고 철거비용을 청구하겠다는 계고장을 보냈지만, 부모님연합은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그들은 천막 앞에서 불법시위와 서명운동을 이어갔다.

“역대 가장 청렴한 박시형 대통령님을 석방하라!”

“허창민 대통령을 탄핵하라!”

“종북빨갱이 강진후를 구속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못 본 척 길을 가는데, 지나가던 한 청년이 한마디 했다.

“어떤 빨갱이가 미국대통령과 그렇게 친하게 지냅니까?”

강진후가 로날드 대통령과 절친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강진후 덕분에 한미관계는 역대 유례가 없을 정도로 끈끈했다.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전투모를 쓴 노인은 목청껏 소리쳤다.

“거거거 젊은 사람이 큰일 날 소리!”

주위 노인들은 재빨리 몰려들어 맞장구를 쳤다.

“로날드 대통령님도 미국인들도 다 그놈한테 속고 있는 거여!”

“그럼그럼. 그동안 빨갱이놈들한테 속은 게 어디 한두 번인가?”

“화전양면 전술 몰러? 군대도 안 다녀왔는감!”

자본주의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이 공산주의를 전파한다는 놀라운 논리였다.

말을 꺼낸 청년은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지만, 노인들의 얘기는 계속됐다.

“요즘은 세상이 다 거짓이여. 언론도 믿을 게 하나도 못 돼.”

“언론에 나오는 건 다 정권이 만들어낸 가짜뉴스고, 에이튜브 진실된 채널에서 말하는 것들만이 진짜여! 그런데 사람들이 뉴스랑 신문만 뭘 보니까 모르는 거지.”

“그 에이튜브 훈수의신인가 하는 채널 보니까 강진후 돈이 북한 핵개발 자금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든데.”

“아! 그거 장규진 채널에서도 언급하드만! 그 많은 돈을 다 적화통일을 위해 쓰고 있다는데, 대체 국정원은 뭐하는 거여?”

“아따 뭐긴 뭐여? 그놈들도 다 한통속이제!”

“서울에 핵미사일 날아오면 다 죽는 거여.”

“쯧쯧, 그때 다들 우리 말 안 들은 거 후회해봐여 아무 소용없어.”

그 핵개발 자금을 대주고 있다는 당사자가 핵미사일이 날아올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에 살고 있지만…… 이것 역시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 종북빨갱이는 돈도 잘 벌고, 미국과도 친하고, 세계 각국 정상들과도 만나고 다닌다.

이게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자신들만 빼고 전 세계가 속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때문에 이렇게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치고, 서울시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이 무더위 속에서 시위를 하며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과는 달리 강진후는 여전히 잘나갔다. 오죽하면 새 협회장이 정권은 무너뜨릴 수 있어도, 강진후는 힘들 것 같다며 한탄을 했겠는가?

부모님연합이 이렇게 몰락하게 된 이유는 99퍼센트는 강진후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 와서 소박한 바람이 하나 있다면 오직 강진후의 구속.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무릎 꿇고 싹싹 비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힘을 내서 허가도 받지 않은 불법시위를 하고 있는데, 광화문광장에 또 다른 시위대가 나타났다.

그들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청정지역 새만금을 돌려 달라’, ‘새만금 환경파괴 중단하라’, ‘토목공사 난개발이 웬말이냐?’, ‘강진후는 국민들에게 사과하라’는 피켓을 들었다.

며칠 사이 대한민국의 가장 큰 화두는 새만금.

강진후가 새만금 개발계획을 꺼내든 이후, 언론에 연일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 새만금 신도시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대체로 강진후가 나선 이상 성공할 거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런데 바로 이게 문제였다.

집을 가진 사람들 중 누구도 자기 집값이 떨어지기를 원치 않는다. 때문에 서울과 수도권의 집주인들은 큰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분노한 것은 수도권에 집을 수십 채 가진 다주택자들과 개발예정지의 땅을 사들인 투기꾼들.

강진후가 개발계획을 밝힌 후 수도권 주택거래는 완전히 정지됐다. 일부 집주인들이 가격을 조금 낮춰서 내놓았지만, 거래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주택은 다른 투자 상품에 비해 하방경직성이 크다. 지금은 매도자와 매수자가 눈치게임을 하는 중이라 당장 가격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개발이 현실화되면 폭락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나마 집값은 버티기라도 하지, 신도시 개발이 무산될 것으로 알려지며 치솟던 개발예정지 땅값은 반토막 났다. 그럼에도 사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 재산을 날릴 위기에 처한 이들은 OTK컴퍼니 앞에서 시위했지만, 강진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결국 이렇게 광화문광장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투기한 돈 물어내라고 할 수는 없으니, 일단 환경문제를 갖다 붙였다. 정작 새만금은 더 이상 파괴할 환경조차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적의 적은 친구고, 목적지가 달라도 방향이 같으면 길동무가 될 수 있다. 외로운 투쟁을 벌이던 부모님연합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두 세력은 손에 손잡고 함께 시위를 벌였다.

“강진후를 구속하라!”

“새만금 개발 중단하라!”

부모님연합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 * *

새만금 개발을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맞붙었고, 거센 시위도 벌어졌다.

광화문광장에 태극기가 나부끼는 사이 난 택규와 임진용 회장에게서 받아온 국회의원 관련 자료들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인물별로 이전에 했던 발언과 기사, 그리고 취향과 약점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난 팔짱을 낀 채 고민했다.

“청문회 컨셉를 어떻게 잡으면 좋으려나?”

“그냥 너답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나다운 게 뭔데?”

택규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싸가지 없는 거?”

“뭐, 이 자식아?”

“저번처럼만 해. 헌정역사에 남을 짤을 건져보자. 그걸로 이모티콘 사업하게.”

“…….”

남의 사진으로 이모티콘 사업 하지 마.

이래저래 바쁘게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새 그날이 밝았다.

난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준비를 서둘렀다. 엘리는 넥타이를 매주고, 내 머리를 만져준 다음 가볍게 입을 맞췄다.

“오늘도 멋있는데요. 여자들이 보고 반하겠어요.”

난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요.”

택규는 두 손으로 내 어깨를 세차게 두드렸다.

“부담 갖지 마.”

“전혀 부담 안 가져.”

“그저 새만금의 미래가 너에게 달려 있다는 것만 명심해.”

“…….”

아, 갑자기 없던 부담이 생겨나려 한다.

* * *

경제청문회가 시작됐다.

누군가 청문회가 무엇이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뉴스에서는 길어야 10분 정도, 소리치고 반박하는 장면들만 골라서 내보내니 대단히 스피디하고 박진감 넘쳐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다리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질의자와 응답자가 바뀌는 시간도 있고, 중간중간 휴식도 해야 하고, 때가 되면 밥도 먹어야 한다. 난 뒤쪽에 가만히 앉은 채 청문회 상황을 지켜보았다.

내 차례는 가장 마지막. 원래 주인공은 가장 늦게 등장하는 법 아니겠나?

나보다 먼저 의원들 앞에 앉은 이응관 청와대 정책실장은 그야말로 신나게 깨지고 있었다.

자유국민당 의원들은 철저하게 준비를 해왔다. 질의를 할 때마다 각종 자료와 통계를 꺼내 보이며 정부의 경제실정을 추궁했다.

첨단산업이 잘나가고,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었다지만,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부동산과 가계부채.

현 정부 집권 이후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역대급 상승률을 기록했다. 아무리 전 정권과 투기꾼들 핑계를 대봐야 이건 정책실패로밖에 볼 수 없다.

“경제지표는 나쁘지 않습니다. 반도체와 배터리를 중심으로 수출도 호조를 보이고 있고, 캘리포니아 복구사업으로 철강과 자재 수출도 계속 증가세에 있습니다.”

그러자 정민욱 의원은 호통을 치듯 말했다.

“지금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최악입니다. 고용률은 떨어지고 실업률은 증가하고 있어요. 정부는 계속 기다리면 좋아질 거라고 말하는데, 마치 리플리 증후군에 걸린 사람이 하는 말 같습니다.”

리플리 증후군이란, 자신이 한 거짓말을 스스로도 실제라고 믿는 것.

사실 정부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경제는 심리가 좌우한다. 만약 정부가 앞으로 경제가 더 안 좋아질 거라고 말한다면,국민들은 즉시 소비를 줄일 테고, 그럼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다. 때문에 아무리 경제가 좋지 않아도 좋아질 거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다.

이응관 정책실장은 변명하듯 말했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여러 의원님들께서 지적하신 대로 경제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며, 취약계층에 대해 좀 더 세밀한 지원을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유국민당 의원들이 호통을 치며 책임을 추궁하는 반면, 새정치당 의원들은 마치 형사법정에 선 피고인을 변호하는 변호인이라도 된 것처럼 최대한 실드를 쳐주었다.

가재는 게 편이고, 여당은 청와대 편이지.

야당의원들이 질책과 비난, 이에 대한 변명과 반박, 여당의원들의 격려와 따뜻한 말, 여야의원들끼리 삿대질과 고성 등등.

다들 어떻게든 뉴스에 나올 분량을 뽑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그러는 사이 점심시간이 됐다. 차례 기다리다가 반나절이 지난 것이다.

“…….”

이럴 거면 오후에 부르던지, 바쁜 사람 앉혀놓고 대체 뭐하는 짓이야?

점심을 먹고 난 뒤,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는 또 신나게 얻어 터졌다. 보고 있기가 안쓰러울 정도다.

두 사람 모두 영혼까지 털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고,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난 가운데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앞에 앉은 의원들은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눈빛만 봐도 다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 것 같다.

먼저 나선 사람은 자유국민당 김찬욱 의원이다.

“새만금 구역을 분할해 시로 만들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미 확정된 행정구역을 무시하고, 새만금 지역만 따로 분리시키려는 의도가 뭡니까?”

“그 편이 개발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김찬욱 의원은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지자체의 땅을 강탈하는 거고, 지역 주민들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기업의 편의에 따라 행정구역을 쪼개고 합친다는 게 있을 수나 있는 일입니까?”

난 차분하게 반박했다.

“있을 수 없을 건 또 뭡니까? 세종시만 해도 연기군, 공주시, 청원군의 땅을 떼어내서 시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아, 아무튼 이건 주민투표를 실시해 주민들의 의견을 물어야 하는 일입니다!”

주민투표를 한다고 해도 이길 자신은 충분히 있다. 지자체 입장ㅇ에서도 아예 개발이 안 되는 것보다는 땅을 떼어주더라도 빨리 개발을 진행시키는 편이 나을 테니까.

문제는 시간이다.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언제 주민투표를 하고 있겠는가?

난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의원님의 지역구이신 창원시는 주민투표 없이 마산과 진해를 통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원님의 말씀대로라면 창원시는 마산과 진해의 땅을 강탈하고, 마산과 진해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겁니까?”

내 말에 김찬욱 의원은 당황했다.

“무, 무슨 말입니까? 그게 이거랑 같습니까?”

“그럼 뭐가 다른가요?”

김찬욱 의원은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통합 창원시가 출범한 뒤, 창원시는 더욱 발전하고 있습니다! 인구도 꾸준히 늘고 있고, 재작년에는 행복하고 살기 좋은 도시1위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대체 저런 설문은 어디서 하는 거야? 설마 창원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설문 했나?

“의원님 말씀대로 통합 창원시가 된 뒤 더욱 발전했듯, 새만금시도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그걸 왜 시로 만들어서 진행합니까? 할 거면 그냥 하세요!”

난 자리에 앉은 의원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새정치당 의원이라고 다 찬성하는 것도 아니고, 자유국민당 의원이라고 다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의원들마다 각자의 셈법에 따라 열심히 머릿속으로 주판을 튕기고 있을 것이다. 그 셈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역구 유권자의 표심.

굳이 모두를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 상대 진영의 장수를 회유하면, 아군을 늘리고 적의 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창원시는 제조업이 매우 발달된 도시입니다. 새만금은 창원과 마찬가지로 남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새만금을 첨단산업 도시로 개발하는 데 있어서 창원의 뛰어난 제조업공장들의 역할은 필수입니다. 다시 말해 창원은 남해안지역 개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 할 수 있습니다. OTK컴퍼니는 이후 새만금과 창원을 연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같이 발전시켜나갈 계획입니다.”

그러자 핏대를 올리던 김찬욱 의원은 갑자기 순한 양처럼 목소리를 낮췄다.

“아…… 그래요? 계획이 다 있었군요.”

< 미래를 보는 투자자 403 > 끝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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