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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05

EP.404 16. 기사 이반 (12)

페트로프 13호는 경기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검투사답게 개인 훈련장에 하인들까지 두고 있었다. 그의 숙소에 들어선 원더스타인은 훈련장을 청소 중인 하인들의 모습을 보고 잠시 발을 멈췄다.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사지가 하나씩 없었다. 그는 더는 경기장에 오르지 못하는 검투사들이 투기장에서 일꾼으로 일한다는 원작의 설정을 떠올렸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데리고 나오겠습니다.”

일행을 안내해 온 투기장 직원이 훈련장 구석에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원더스타인은 클라라가 나올 때까지 하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그들은 원작에서 나왔던 것처럼 모두 고깔 형태의 복면을 쓰고 있었다.

그는 그들이 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경기를 즐기러 온 손님들의 환상을 지켜주기 위함이었다.

노예주들은 검투사들의 링네임에 걸맞은 설정을 그들에게 붙여 주곤 했다. 북방의 야만 민족 출신이라든가, 어릴 때 곰에게 물려가 야생에서 자랐다든가, 비밀 생체실험의 생존자라든가. 당장 이반이 분했던 페트로프 13호만 해도 멸문한 기사 가문의 후예로 9살 때 병사 20명을 베었다는 소문이 따라다녔다.

그러한 설정들 대부분은 검투사의 외모나 기술에 어울리게 꾸며낸 이야기들이었다. 선수들은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그 설정에 맞춰 연기해야 했다. 그들끼리의 얽히고설킨 서사가 곧 경기장의 역사요 흥행의 기반이었다. 업계의 상황이 그러니 아무리 은퇴했다고 해도 그들은 손님들 앞에서 초라한 행색으로 잡일이나 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물론 이반의 경우는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원더스타인은 알고 있었다. 그는 검투사로서 마지막 경기에서 그것을 증명함과 동시에 자유를 획득했었다. 그리고 그 경기는 분명 작년 8월에 치러졌어야 했다.

원더스타인은 병동 방향을 돌아봤다. 시합을 끝낸 이반은 그곳에서 간단한 처치를 받고 온다고 했다.

그는 작년에 있었던 그 운명의 시합에서 져 버린 것일까? 아니면 아예 시합이 성사되지 않은 것일까? 자신이 이 세계에 넘어와서 했던 선택들 중 하나가 나비 효과가 되어 그의 미래를 바꿔버린 것일까?

그와 직접 만나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묻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우, 우리 챔피언…… 마, 만나러 오셨어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일하고 있는데 구석에 혼자 멍하니 앉아 흙장난을 치고 있던 자였다. 그 역시 전직 선수인지 키가 크고 몸이 잘 발달해 있었다. 그는 복면을 쓴 채 그들을 향해 어기적거리며 다가왔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아나이스의 시종 역할을 맡은 니카가 나서서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복면의 남자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춰 서더니 뒤통수를 긁적였다.

“저, 저요? 어, 그, 그러니까 저, 저는……머, 머저리인데요?”

그의 말에 일꾼들 사이에서 피식거리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멀리서 빗자루질하던 구부정한 일꾼 한 명이 그것을 보고는 달려 나와 그를 붙들었다.

“이 녀석아, 무슨 짓이야! 그냥 좀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죄, 죄송합니다, 손님. 이 녀석은 좀 모자라서 허드렛일이나 하는 친구입니다. 요, 용서해주십시오.”

“그, 그래서 머, 머저리예요! 다, 다들 그렇게 불러요! 머저리!”

그의 해맑은 목소리에 몇몇 일꾼들은 이제 대놓고 웃어댔다. 아무래도 그는 평소에 이곳에서 바보 취급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끄럽다, 이 녀석아! 자, 따라와!”

“우아아악! 아파! 아파!”

원더스타인은 어린애처럼 우는 소리를 내는 복면의 남자를 바라봤다. 그에게서 익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그가 처한 상황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보육원 시절, 그에게도 그와 같은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아으으, 시, 싫어……. 나, 여, 여기 있을 거야……. 도와줘, 얘, 얘들아…….

-살려줘! 나 살려줘! 깡통! 마녀! 허수아비!

노인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그의 모습을 보니 며칠 전에 꿨던 꿈이 떠올랐다. 물론 추억 속의 친구와 복면의 남자는 외형에서부터 목소리까지 닮은 구석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우 익숙했다.

어째서일까? 내가 저 목소리를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걸까?

뭔가 실마리가 떠오를락 말락 하는데, 마침 투기장 직원이 돌아왔다. 그의 뒤로 담요를 덮은 채 몸을 떨고 있는 클라라가 따라 나왔다.

“클라…….”

“쉿.”

루엘로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달려가려 했으나 도스빌이 재빨리 그녀를 제지했다.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았다. 노예 상점에서 그들을 안내해온 직원도 아직 옆에 붙어 있었다. 이곳을 벗어나기 전까지 그들은 어디까지나 노예를 사러 온 상속녀와 그녀의 수행원들이어야 했다.

“클라라 양.”

“아.”

원더스타인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서서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는 그녀의 귀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속삭였다. 반쯤 넋을 놓고 있던 그녀는 그를 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주, 주인님……?”

“네. 맞습니다. 당신을 데리러 왔습니다.”

현재 클라라의 머릿속은 엉망이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충격에 육체까지 붕괴하고 있어서 기억들이 뒤죽박죽이었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가 자신을 폐기하겠다고 말했던 것과 자신을 노예상에게 팔아넘겼던 장면이 떠올랐다.

“시. 싫어…….”

“클라라 양, 진정하세요. 지금은…….”

“오, 오지 마세요! 어차피 저 버릴 거잖아요……. 쓰, 쓸모없어서……. 버, 버릴 거잖아요…….”

그녀는 마구 악을 쓰며 원더스타인을 몸을 밀쳐냈다. 그는 그녀의 그런 행동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맸다.

아나이스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녀가 몸 상태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노예로 굴러떨어지는 경험을 한 탓에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니카는 분위기가 이대로 흘러가게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태껏 자신들은 노예를 물건처럼 취급하는 귀족 흉내를 냈었다. 그런데 여기서 고작 노예 하나를 다루지 못해 우왕좌왕한다면 그 정체를 의심받고 말 것이다. 실제로 원더스타인의 행동을 보고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니카는 난처한 미소를 짓는 원더스타인과 그에게 저항하는 클라라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곧 표정을 굳히며 앞으로 나섰다. 고민부터 결심까지 걸린 시간은 1초도 되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 노예 주제에!”

그녀는 클라라의 목에 걸린 올가미를 확 끌어당겼다. 그러자 그녀가 왁 하는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행동에 놀랐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당연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노예 상점 직원은 그것이 결코 연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봤다. 아나이스 일행에 대해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의심이 쏙 들어갔다.

저 남자. 역시나 다 가식이었군. 하여간 친절한 척하는 귀족들이 더 악질이란 말이야.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사람을 짓밟지.

니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아나이스를 비롯한 나머지 일행들도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아직 작전 중임을 깨닫고 재빨리 표정을 고쳤다. 어린 루엘로만이 그 광경을 차마 지켜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고는 숙소 밖으로 달려 나갔다.

“정말 앞뒤 분간 못 하는 년이군. 살날이 며칠 안 남았다고 해서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지?

니카는 일행들이 완전히 태세를 정비하도록 클라라의 목줄을 한 번 더 끌어당기며 모진 말을 뱉어냈다. 그녀는 한 번 결심한 일에 대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정치가로서의 경험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녀는 언젠가 제국 전체를 통치할 몸이었다. 고작 사람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해서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머리로만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그녀는 클라라를 다그치면서 원더스타인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가 단원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경멸받는 것은 아닌지 그녀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렇게 그들은 클라라를 간신히 고분고분하게 만들었고 이곳에서 나가려 했다. 그러나 숙소의 입구에는 어느새 거대한 그림자가 꽉 들어차 있었다.

“뭐야, 이것들은!”

붉은색 투구에 가시가 솟은 흉갑. 등에는 비끄러맨 장검. 그는 이 숙소의 주인인 페트로프 13호였다. 투기장 직원은 그를 보자마자 재빨리 앞으로 나서서 사정을 설명했다. 곧이어 그의 투구 속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러니까 내가 산 여자를 다시 데려가겠다고?”

페트로프 13호는 직원의 만류를 뿌리치고 성큼성큼 원더스타인을 향해 다가왔다. 엄밀히 말해 그녀를 사가겠다고 한 것은 아나이스였지만, 현재 무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그였기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가까이서 페트로프 13호의 모습을 마주한 원더스타인은 허탈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를 만날 생각에 기대감에 차 있었는데, 지금 보니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가 아니었다. 걸음걸이나 체형은 그와 비슷했지만, 그 외에 나머지는 원작의 기사 이반과 전혀 달랐다.

‘오늘은 무슨 날인가. 가짜들이 우르르 쏟아지는군. 설마 가짜 클라라도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 일단 이 검투사 놈은 확실히 가짜야. 목소리가 전혀 다르잖아. 음색도, 고저도, 말투도…… 아니, 잠깐만……. 목소리라고?’

원더스타인의 생각이 어떤 결론에 다다르려는 순간, 페트로프 13호가 움직였다. 그는 자신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한심하다는 미소를 짓는 그의 행동을 도발이라 여긴 것이다.

“이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 남의 것에 손을 대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주지!”

그의 등에서 검이 뽑혀 나왔다. 그는 그것을 원더스타인을 향해 휘둘렀다.

“꺄악!”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원더스타인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눈을 깜빡이며 불과 몇 cm를 남겨두고 눈앞에 멈춰선 그의 칼을 바라봤다.

원래 그는 스킬북의 격투 기술들을 사용해 그를 제압하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나선 사람이 있었다.

“비, 비무장 상대에게 거, 검을 쓰면 안 돼요…….”

그는 바로 아까 ‘머저리’라고 불렸던 복면을 쓴 일꾼이었다. 그는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원더스타인의 앞을 막아서더니 페트로프 13호가 휘두른 검을 양손으로 받아낸 것이다.

“이이익! 너……너……! 왜 끼어드는 거냐!”

페트로프 13호가 있는 힘을 다해 검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머저리의 손바닥 사이에 딱 달라붙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훈련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입을 쩍 벌리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방금 그가 보인 몸놀림은 아까의 어수룩함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깔끔한 동작이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검날을 딱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그의 괴력은 더욱 놀라웠다.

그곳에 있는 사람 중 놀라지 않는 사람은 딱 둘이었다. 한 명은 검을 휘두른 장본인이었다. 그의 표정에는 놀람보다 당혹스러움이나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여전히 태연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한 사람. 원더스타인은 뭔가에 홀린 듯 눈앞에 있는 머저리의 복면을 잡아당겼다. 그는 이 칼날 잡기 기술을 수백 번은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복면 안에서 나오는 목소리 역시 몇 년을 매일 들어온 것처럼 익숙했다.

“버, 벗으면 안 돼요! 주, 주인님에게 혼나요!”

머저리는 원더스타인이 자신의 복면을 벗겼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것을 되찾기 위해 허둥지둥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붙잡혀 있던 검이 휙 하고 빠져나왔고, 그 과정에서 머저리는 손바닥이 베였는지 피가 흘러나오는 손을 붙잡고 제자리에 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파! 피 나잖아! 무서워!”

원더스타인의 손에서 복면이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멍하니 눈앞에서 어린애처럼 울어대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가는 것은 그의 옆통수였다.

그곳은 어떤 흉악한 무기로 내려찍은 것인지 움푹 파여 있었고, 구덩이 위로 넓게 번져 있는 검은 피멍을 두꺼운 철사로 빽빽이 꿰매져 있는 상처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분명 그가 알고 있는 그가 맞았다. TTT의 세 주인공 중 한 명인 기사 이반이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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