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405

< 미래를 보는 투자자 404 >

인간은 학습능력이 있다.

저번 청문회에서 당한 게 있는 만큼 자유국민당은 이번 경제청문회를 철저하게 준비했다. 먼저 정부의 경제실정을 최대한 부각시킨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성공을 거뒀다.

이제 남은 상대는 강진후.

자유국민당은 추경예산이 새만금에 집중된다는 점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다른 지역의 박탈감을 자극하며, 반대여론을 최대한 끌어올릴 계획이었다.

그에 맞춰 시나리오를 짜고 대응책을 준비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지금 많은 국민들이 청정지역 새만금의 환경파괴를 우려…….”

포항 남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자유국민당 이철승 의원의 질의가 끝나기도 전에 강진후는 고개를 숙였다.

“포항지역 노동자분들께 감사합니다.”

뜬금없는 소리에 이철승 의원은 호통을 쳤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강진후는 웃으며 청산유수로 말했다.

“포항은 포스코가 있는 철강과 기계산업의 도시입니다. 새만금 개발에 있어서 포항철강산업단지에 철강자재를 우선적으로 발주할 예정입니다. 개발이 시작되면 포항의 공장들은 24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가게 될 테니, 야근과 잔업으로 고생하실 노동자분들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린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이철승 의원은 바로 준비해온 자료를 덮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대구 달성 갑 조재훈 자유국민당 의원.

“대구 테크노폴리스는 대한민국 로봇산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담하고 있습니다. 로봇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나갈 가장 중요한 산업인 만큼 새만금과 대구를 연계해 로봇벨트를 만들고, 향후 대구를 로봇산업의 메카로 만들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흐음, 기대하겠습니다.”

울진군 남용석 자유국민당 의원.

“울진에는 한국 최대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습니다. 새만금에 설립될 TWR 연구소는 원자력본부와 협력해 원전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관련설비 투자를 더욱 늘리겠습니다.”

“아, 예. TWR 중요하죠.”

울산 중 자유국민당 이한출 의원.

“울산은 조선업과 자동차가 두루 발달되어 있는 한국 제조업의 중심지입니다. 은성차그룹에서 울산 자동차공장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부품업체들을 키우겠습니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통영 김성규 자유국민당 의원.

“통영은 반도와 섬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관광자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접근성이 떨어져 내국인에 비해 외국인 관광객이 적습니다. 이에 새만금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관광객을 통영을 포함한 경남지역의 관광산업과 연계시킬 방법을 계획 중인데, 의원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으음, 매우 훌륭한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진후는 마치 지역민원을 해결해주는 식으로 의원들을 회유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질의하는 의원들은 공격적인 눈빛 대신 산타의 선물을 기대하는 아이 같은 눈빛을 보였다.

말이란 누가 하느냐에 따라 진실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실현 가능성 없는 헛소리라고 치부했겠지만, 강진후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말 한마디로 움직일 수 있는 돈이 수백조 원이다.

인구유출과 산업공동화 현상을 우려하는 의원들에게 강진후는 약속하듯 말했다.

“새만금에 들어서는 공장은 첨단산업으로 기존에 다른 지역에 있는 제조업공장을 빼앗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새만금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 지역과의 협력입니다. 신산업을 육성함으로써 기존 제조업과 동반성장을 도모하고,관광과 서비스 분야에서의 연계성을 강화하겠습니다. 또한 새만금에 외국계 금융회사들을 유치해 지역 중소기업들이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고, 기금을 조성해 각 지역 제조업과 관광서비스업의 성장을 지원하겠습니다.”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대구시, 부산시, 울산시 등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은 다들 질의를 하다 말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내가 별로 신경 안 써서 그렇지, 국회의원이 가진 권력은 상당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징성. 300명의 국회의원은 5천만 국민을 대변한다. 따라서 국회의원 한 명이 국민 17만 명을 대변하는 셈이다. 뭐, 그렇다고 국회의원 마음과 국민의 마음이 같다는 것은 아니지만.

인천 영종도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연성수 의원. 그는 과거 인천시장을 지냈고, 시장시절부터 인천에 각종 개발계획을 주도해온 전력이 있다.

연성수 의원은 다짜고짜 말했다.

“새만금을 개발할 게 아니라, 에잇시티를 먼저 개발해야 합니다. 즉시 300조 원을 투자해 영종도에 매립지를 만들어야 돼요.인천시 발전을 위해 OTK컴퍼니가 여기에 투자할 생각은 없습니까?”

너무 뜬금없어서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거 아직 진행 중이었어요?”

“물론입니다! 에잇시티야말로 인천과 영종도의 미래입니다!”

두바이가 신도시를 건설할 무렵, 언론들은 이를 ‘사막의 기적’이라며 찬양하는 기사를 써댔고, 당시 정치권에서는 우리도 두바이 같은 토목공사를 하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감명 받은 지자체들은 너도나도 신도시를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이때 온갖 신도시 계획이 쏟아졌다.

글로벌시티, 스카이시티, 투모로우시티, 디자인시티, 로봇시티, 창조경제시티 등등.

그중에서도 백미는 바로 에잇시티 개발계획. 전국의 모든 신도시 개발계획을 다 합쳐봐야 이것 하나에 미치지 못한다.

영종도 남쪽에 용유도와 무의도 부근을 매립해 숫자 8 모양의 약 80제곱킬로미터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크고 아름다운 계획이다.

굳이 8 모양을 택한 이유는 중국자본 유치를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니까.

아무튼 계획대로만 진행됐다면, 단군 이래 최대의 건설사업으로 기록에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아직까지도 안 됐을까?

그야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에잇시티 개발 예상 사업비는 317조 원!

이는 당시 국가 1년 예산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이 돈이면 전국의 모든 신도시를 개발하고도 남고, 초고층빌딩 수십 개를 지을 수도 있다.

“에잇시티를 우선 개발해야 합니다. 어째서 새만금 신도시는 하는데, 에잇시티는 안 합니까?”

“……정말 몰라서 묻나요?”

인천은 영종도, 송도, 청라 등개발해야 할 지역이 넘쳐난다. 기존에 있는 땅도 예산이 부족해 개발을 못하는 판에, 수백조 원을쏟아 부어 바다를 매립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대체 어떤 미친놈이 이런 계획을 세운 거야?

택규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심시티도 그렇게는 안 한다고 욕을 퍼부었을 것이다.

본인도 현실성 없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서 이러는 건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나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인가?

“영종도의 숙원사업인 에잇시티 개발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시기 바랍니다.”

연성수 의원은 에잇시티 개발을 몇 차례 더 강조한 다음 마이크를 넘겼다. 이번에는 백창주 의원의 차례.

“우리 시도 테마파크 사업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MOU도 체결하고 해서 테마파크와 주거단지가 어우러진 세계최고의 테마파크시티를 만들 계획이었는데, 아직 첫 삽도 못 뜨고 있습니다!”

테마파크를 유치하고 그 옆에 아파트를 지어서 분양하겠다는 훌륭한 계획이다. 참고로 저 MOU 맺은 게 10년 전인데, 아직까지도 한다 만다 말만 많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대로 진행하시면 됩니다. 제가 못하게 막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새만금에 디즈니랜드랑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다 유치한다면서요? 그럼 누가 우리 시 테마파크로 오겠습니까? 규모랑 인지도 모두 상대가 안 되잖아요.”

“시장경제체제에서 경쟁은 당연합니다. 의원님 지역구를 위해 테마파크를 안 만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제 말은 디즈니랜드를 우리 시로 넘겨달라는 겁니다. 새만금에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들어온다면서요. 새만금에 유니버설 스튜디오, 우리 시에 디즈니랜드. 이렇게 하나씩 있으면 국민들 보기에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난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디즈니랜드가 거기로 가려고 할까요?”

백창주 의원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야 강진후 대표께서 잘 설득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

내가 왜 그래야 돼?

새만금을 개발한다고 해서 광역시나 지방시도가 피해볼 일은 거의 없다. 애초에 산업이 겹치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서울과 수도권은 얘기가 다르다. 새만금 개발이 진행되면, 대기업 입장에서 굳이 높은 토지비용, 각종 규제, 그리고 주민반대를 무릅쓰고 수도권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진다.

실제로 새만금 개발계획을 발표한 이후 기업들은 수도권 투자계획을 보류했고, 3기 신도시 계획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래서인지 수도권에 지역구가 있는 의원들은 뭐라도 하나 받아내겠다는 심산으로 이것저것 요구했다.

역시 한번 퍼주기 시작하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보이는 모양이다. 대체 나한테 뭐 이렇게 바라는 게 많아?

난 거절 대신 ‘긍정적 검토’ 또는 ‘상의해보겠습니다’라는 말로 적당히 넘겼다.

의원들의 공세가 눈에 띄게 약해지자, 안 되겠다 싶었는지 질의 순서를 바꿔서 자유국민당 지도부가 직접 나섰다.

이제까지가 연습게임이었다면, 지금부터는 본게임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나선 의원은 여환수 자유국민당 최고의원. 나이는 70대로 자유국민당 내에서도 원로 중에 원로로 손꼽힌다.

그는 준비해온 자료를 꺼내들었다.

“새만금개발청과 OTK컴퍼니가 함께 새만금개발공사를 만들기로 했는데, 이는 명백한 정경유착이고, 대기업 특혜입니다.”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신도시 개발에 나서는 게 뭐가 문제입니까?”

“말만 공기업이지 지분 대부분을 OTK컴퍼니가 가져가는 것 아닙니까?”

“OTK컴퍼니 지분은 49퍼센트로 제한되고, 지분의 과반은 새만금개발청이 가집니다.”

여환수 의원은 눈을 치켜뜨며 강하게 추궁했다.

“그럼 뭐합니까? 말로만 공영개발이지, 실제 개발주도권은 OTK컴퍼니가 가져가는 거잖아요.”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하며 개발해나갈 예정입니다.”

“자꾸 말 돌리지 마세요! 개발주도권이 OTK컴퍼니에 있는 거 맞잖아요! 맞습니까, 아닙니까? 맞아요, 아니에요?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세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거짓말 하지…… 응? 지금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예’라고 했습니다. 새만금 개발은 OTK컴퍼니가 주도하는 게 맞습니다.”

“아, 아니, 뭐라구요?”

내가 인정할 줄 몰랐는지, 여환수 의원은 심하게 당황했다.

난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새만금 개발은 지금까지 정부가 계속 추진해왔지만, 현재 매립지 조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정도로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하지만 OTK컴퍼니가 추진한다면, 3년 안에 1단계 개발을 끝마칠 수 있습니다.”

여환수 의원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뭐, 좋습니다. 그럼 3년 안에 계획대로 추진되지 않으면 지분 다시 내놓고 OTK컴퍼니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까?”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내 말에 그는 마치 좋은 꼬투리 잡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럼 하지도 못할 일을 하겠다고 한 겁니까? 이건 국민들을 속이고, 기만하는 짓입니다! 당장 국민들한테 사과하세요!”

아주 신났다.

그 모습이 꼴사나워서 난 바로 받아쳤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3년 안에 1단계 개발을 끝마치면, 의원님께서는 의원직 내려놓으시고 정계은퇴하신다고 이 자리에서 국민들께 약속하십시오.”

내 말에 여환수 의원은 ‘잘못 들었나’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저번에 지역구에 있는 주상복합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한 재난상황에서도 기업인들과 내기골프 치다가 걸려 사과까지 하셨으니 잘 아실 겁니다. 내기를 하려면 쌍방이 걸어야지, 왜 저만 겁니까? 저도 자리 걸 테니, 의원님께서도 자리 거세요. 자신 있으면 한번 해보시고, 쫄리면…… 아니, 자신 없으면 그만두시던가요.”

그 말에 여환수 의원은 뚜껑이 열렸는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뭐? 쫄리면 뭐라고? 좋아! 내기 해! 하자고! 의원직 걸어! 감히 국회의원을 뭘로 보고!”

정말 내기를 좋아하나보다.

몇몇 의원들은 옆에서 말렸고, 몇몇 의원들은 같이 소리쳤다. 청문회 진행을 맡은 마상태 의원은 탁자를 두드리며 외쳤다.

“지금 청문회장에서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강진후 대표는 당장 고개 숙여 사과하세요! 국민들이 뽑은 국회의원에게 이러는 건 국민들을 모욕하는 짓입니다!”

난 태연하게 말했다.

“저한테 이러시는 것도 노동자들을 모욕하는 짓입니다.”

마상태 의원은 호통을 쳤다.

“뭐요? 이게 노동자들과 무슨 관련이 있어요!?”

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이상하게 국회의원들은 자기가 모욕 받았다고 생각하면 국민들을 들먹거리기에 저도 따라서 한번 해봤습니다. 국민이 있기에 국회의원이 있듯, 노동자가 있기에 기업인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 미래를 보는 투자자 404 > 끝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