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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07

EP.406 16. 기사 이반 (14)

이스미 구릉지는 제국의 동쪽 끝에 있는 지역으로 국경 지대에 해당했다. 그러나 이곳은 보통의 국경 지대가 받는 군사적 혜택이나 경제적 수혜는 전혀 누리지 못했다. 어차피 이웃 나라와는 거대한 내해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고 해군과 해상 무역이 중요했기에 제대로 된 도로 하나 나 있지 않은 산골짜기는 군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별로 가치가 없었다.

이런 가난한 시골은 기사의 장원이라고 해도 큰 저택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기사의 집도 마구간과 말을 타고 훈련할 수 있는 넓은 뜰을 갖추고 있을 뿐, 다른 농민의 거주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완전무장 한 채로 말을 타고 달리던 기사 이바넨코 벤데르는 말발굽 자국과 훈련용 허수아비의 파편들이 널브러진 뜰 위에 멈춰 섰다. 난로 앞에 꾸벅꾸벅 졸고 있던 그의 아들이 말의 투레질 소리에 놀라 번쩍 고개를 들었다. 기사는 자신이 말에서 내리는 것을 돕기 위해 달려오려는 아들을 제지하고는 갑옷을 입은 그대로 훌쩍 말 위에서 뛰어내려 보였다.

10여 년 전에 한 번 허리를 다칠 뻔한 뒤로는 잘 하지 않던 동작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그는 젊은 날의 그처럼 별 무리 없이 땅에 착지할 수 있었다. 그와 반평생을 함께 해온 늙은 말이 툴툴대며 바라보는 모습이 요즘 따라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고 그를 힐책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그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줄여나가던 훈련 양을 다시 늘리고 있었다. 지난여름에 겪었던 일의 영향이 컸다. 그것은 그에게 적어도 기사라고 칭하려면 엉덩이에 살만 찌우며 늙어가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무엇보다 그날 이후로 그에게는 새로운 제자가 생겼다. 그녀를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수련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흐악, 학, 학…….”

그가 마구간에 말을 넣어두고 나왔을 때, 마침 그의 제자도 뜰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아침저녁으로 집 뒤에 있는 동산을 돌고 내려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기사로서 훈련을 받기에 앞서 우선 체력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고작 한 바퀴로 그렇게 숨을 헐떡이다니. 아직 멀었구나.”

“헉, 헉, 스, 스승님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 저는 주, 죽을 지경이라고요.”

“어허, 그 정도로 엄살은. 나는 네 나이 때, 스승님이 타고 가는 말을 앞지르기도 했단다.”

“……거짓말.”

“진짜란다. 딱 한 번 그랬었지. 물론 말이 노환으로 훈련 중에 쓰러져 죽는 일은 그날 이후로 다시는 없었단다.”

이바넨코의 농담에 소녀는 숨이 차는 와중에도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갑옷 벗는 것을 도와주던 아들도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때, 부엌에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셋 다 아침 훈련 끝냈으면 씻고 오세요. 땀과 흙투성이로 식탁에 앉았다간 바닥에서 먹을 줄 알아요!”

아들과 소녀는 큰 소리로 알겠다고 답하고 우물가로 달려갔다. 이바넨코는 부인의 목소리에 활력이 있다고 느꼈다. 아들들을 하나둘 장가보내면서 생기를 잃어가던 그녀가 최근 들어 그 기운을 회복했다. 이바넨코는 그것이 새로 생긴 식구 덕분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소녀를 제자로 받아들인 것은 반년 전의 일이었다. 저주 역병 사태를 수습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괴물서커스단과 수녀 일행이 떠나고 나서 그는 참극이 일어난 마을 안을 홀로 수색했다. 혹시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이 없을까 해서였다.

그가 소녀를 발견한 것은 어느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에서였다. 여자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간 그는 엄마의 시체를 끌어안고 훌쩍이고 있는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이바넨코는 그녀를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인 신부에게 데려갔다. 그의 신성력 덕분에 몸을 회복한 그녀는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어젯밤의 일을 털어놓았다. 엄마가 괴물로 변해서 아빠를 잡아먹고 자신을 죽이기 위해 쫓아왔었다고 말이다. 다행히 다른 괴물이 나타나 엄마를 죽여버리는 바람에 그녀는 살 수 있었지만, 시체들이 가득한 폐허 속에서 엄마의 망가진 시체와 마주한 채 밤새 숨을 죽이고 엎드려 있었어야 했다.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기에 그녀에게는 마땅히 몸을 의탁할 만한 지인도 친척도 없었다. 신부는 그녀를 교회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 소개해 준다고 했지만, 이바넨코는 그보다 자신이 그녀를 데려가길 원했다. 이 지옥 속에서 함께 살아난 인연에 뭔가 의미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그녀는 그날의 악몽 때문에 집 밖에 나가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밤에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바넨코의 부인이 지극정성으로 돌봐준 덕분에 얼마 가지 않아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뭔가 결심한 것인지 그에게 제자로 삼아달라고 부탁했다.

아들이 셋이나 있지만 셋 다 영 기사가 되려는 소질도 의욕도 없는 놈들이라 속앓이를 하고 있던 그였다. 기사들끼리 만났을 때, 옆에 제자를 대동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시골 장원에까지 들어와서 별 이름도 없는 기사에게 검을 배우려는 사람도 없는 형편이었다. 시골 기사는 궂은일도 많고 대농장들에 밀려 장원의 수입도 겨우 입에 풀칠하는 수준인데 근처에는 놀거리도 없는 터라 그 노력으로 도시에서 막노동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의 논리였다.

사실상 시골 청년 자경단원 수준으로 위상이 떨어진 장원 기사라는 직업은 30년 안에 사라질지도 몰랐다. 그래서 반쯤 후인을 두는 것은 포기하고 있던 그에게 갑자기 제자가 생기게 되었다. 제법 소질도 있었고, 의지력도 대단했다.

그의 가정이 최근 화목한 것도 그녀 덕분이었다. 이바넨코는 오랫동안 아쉬웠던 문제를 해결했고, 부인은 아들 셋만 키우다가 새로 딸이 생긴 것 같은 기분에 들떠 있었으며, 집에서 빈둥대는 꼴을 보면 장가는 갈 수 있을까 싶었던 막내아들도 집에 여자애가 들어와서인지 어딘가 몸가짐이 남달라졌다. 그녀는 그의 집에 있어서 축복이었다.

그렇게 세신을 마치고 식사를 막 하려던 참에 누군가가 이바넨코의 집을 방문했다. 그는 영주 밑에서 일하는 서기 중 한 명이었다. 정기적으로 기사들의 장원에서 작물 현황을 조사해가기 위해 들른 것이었다.

그는 식사 시간에 찾아오면 반가운 손님 중 한 명이었다. 어차피 작물 현황이야 둘째 아들이 글과 셈을 배운 덕분에 작성해둔 게 있어서 그대로 들고 가면 그만이었다. 대신 그는 서기에게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서기도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았기에 최근 근처에서 들은 이런저런 소식들을 식사하는 동안 풀어 놓았다. 그중에는 유명인의 부고도 있었다.

“투간 경은 결국 죽었나.”

“네. 제가 조문을 전하러 갔는데, 직접 찾아온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더군요. 워낙 평소에 실력 믿고 여기저기 아무 곳에서나 행패를 부리고 다니지 않았습니까? 고작 노예 검투사에게 그렇게 처참하게 당하고 돌아왔을 때도 다들 고소해했죠. 그때 얻은 상처로 다시는 망치도 들지도 못하고 끙끙 앓다가 그저께 떠난 모양입니다. 정작 본인이 머리를 부숴줬다는 그 검투사는 얼마 전에 멀쩡히 복귀한 것 같은데 말이죠.”

이바넨코는 반년 전에 화제가 되었던 사건에 대해 떠올렸다. 10여 년 전의 원한 때문에 치졸한 짓을 벌인다고 외팔이 남작은 사교계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었다.

그는 공개 모집으로 자신을 대신해 싸워줄 기사를 모집했지만, 이바넨코가 모시는 영주는 휘하의 기사를 그런 곳에 내돌리기 싫었기에 보내지 않았었다. 다른 영주들도 괜한 시비에 휘말릴 일은 참가하지 않으려 했다.

외팔이 남작은 애가 탔는지 보수를 3배로 올렸고, 마침 황실근위대 분대장을 하다 황태자의 내부 개혁으로 횡령이 걸려서 쫓겨난 투간 경이 그 일을 맡게 된 것이다. 소문으로는 상대에게 약을 쓰고 저주가 걸린 무기까지 동원했는데도 양패구상에 가까운 결과가 나왔다고 했으니, 그의 실력에 대한 평가가 곤두박질칠 만했다.

“아, 그리고 저주 역병 말입니다. 그 원흉이 밝혀졌다고 하더군요.”

서기가 꺼낸 다음 화제에 이바넨코는 몸을 움찔했다. 다행히 지금은 식사가 끝나고 차가 나오던 참이었고 그의 제자는 막내아들과 함께 말 타는 연습을 하러 나갔기에 이 자리에 없었다.

서기는 한 달 전에 발표되었던 내용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검은 마도사, 저주 역병, 데볼루트를 다루는 마도사, 괴물 서커스. 아는 단어가 하나하나 나올수록 이바넨코의 마음속에도 떠오르는 하나의 이미지도 점점 선명해졌다. 그것은 바로 검은 정장을 입은 금발 남자의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이바넨코 경이라면 궁금하실 것 같아서요. 혹시 그때도 뭔가 본 것 없습니까? 방금 말한 단서 같은 것들요.”

이바넨코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반년 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었다. 그 검은 마도사를 추적한다는 자들에게서. 그의 대답은 반년 전과 같았다.

“난 잘 모르겠네.”

“그렇습니까?”

서기는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몇 가지 더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바넨코는 그를 배웅해주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까 그가 말한 내용을 다시 곰곰이 되새겨 봤다.

자신이 정말 침묵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지금이라도 어딘가에 고발하는 게 좋을까? 상대는 세계를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자였다. 단순히 개인의 은원으로 논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멀리서 여자아이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의 제자가 낸 것이었다.

화들짝 놀라 달려간 그는 곧 진흙탕을 뒹굴며 깔깔거리고 있는 소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망아지 한 마리가 그녀의 볼을 핥으며 마구 애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어제 장에 나가서 사와 그녀 몰래 헛간에 숨겨둔 녀석이었다.

그녀의 옆에서 이바넨코의 노마가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어린 말이 갇혀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녀석이 헛간으로 그녀를 데려가 이곳에 망아지가 있다고 가르쳐 준 모양이었다.

“스승님! 아기 말이에요!”

“망아지란다. 흠, 원래 네 10번째 생일 선물로 사 온 건데 들켜버렸구나.”

“이, 이 녀석이 제 거라고요?”

“그래. 체력이 제법 붙었으니 본격적으로 기사 수업을 시작해야지.”

“아하하, 좋아요! 제가 이름 붙여도 돼요?”

그녀의 비명을 듣고 놀라서 달려온 부인이 상황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그의 아들은 제자 옆에 붙어서 자신이 말을 돌보면서 얻은 자투리 지식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이바넨코는 눈앞의 풍경을 보고 이만 고민을 떨쳐버렸다. 검은 마도사라. 놈을 잡으면 세계 평화가 지켜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정의 평화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세간의 악의적인 소문보다 자신이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한 것을 믿었다. 그는 그 청년이 절대 나쁜 사람 같지 않았다.

***

원더스타인은 원작에 나왔던 이반의 과거 기억을 모두 되새겨 봤다. 이반은 이 투기장이라는 한정된 장소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영향받을 변수가 몇 가지 없었다. 그 덕에 그는 자신의 어떤 선택이 그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나름대로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신…… 그 머저리를 알고 있나?”

이반에게 공격이 막혀 뒤로 물러났던 가짜 페트로프 13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복면을 벗은 이반의 얼굴을 살피는 원더스타인의 태도를 보고 투간의 망치에 당한 부상이 흉측해서 놀란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원더스타인은 가짜 페트로프 13호를 돌아봤다. 사정을 알고 나니 그는 상대가 단순한 가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당신은 베르카군요. 흑투사 베르카.”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가짜 페트로프 13호는 잠시 멈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같은 무명의 검투사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짐작했을 뿐입니다. 이반, 아니, 페트로프 13호와 비슷한 체형에, 비슷한 검술을, 비슷한 수준까지 구사하는 검투사는 당신밖에 없죠.”

흑투사 베르카는 TT3에 나왔던 보스 캐릭터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그가 등장했던 장소는 이곳이 아니었다. 그는 TT3의 후반부인 제도 스테이지에서 등장했다. 황태자 니콜라이의 처형 이후 내전이 벌어진 그곳에서 그는 아무르 독립군의 유격대장으로 나왔다.

-으핫핫, 이반 형님 아니시오?

처음 그가 등장할 때만 해도 플레이어들은 그를 아군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투기장에서 함께 구르고 자랐던 의형제나 다름없는 사이라기에 자연스럽게 그를 같은 편으로 인식했다. 이반과 똑 닮은 검술을 구사하는 것도 반가움에 한몫했다.

그러나 스테이지 후반부로 가면 그가 용사들에게 협력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제국의 핵심 귀족들을 몰살하려는 목적에서 그런 것임이 드러났다. 목적의 달성을 눈앞에 둔 그는 이제 쓸모없어진 용사 일행을 처리하려 했다. 그러나 독에 중독되었던 줄 알았던 이반이 사실 그가 건넨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 금방 드러났다. 그는 처음부터 베르카를 믿지 않았던 것이다.

-7년 전에 당한 수법에 또 당할 수는 없지.

이반의 메모리 디스크를 보고 온 플레이어라면 무슨 말인지 깨닫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흐음……알고 있었구려? 언제부터?

-7년 전부터. 투기장 사무장이 몰래 알려줬거든.

-크크, 그런데도 내게 복수하지 않은 건가? 또 그놈의 성인군자 흉내! 너는 항상 그게 눈꼴시었어! 세상에서 떨려나온 같은 검투사 처지에 혼자 고귀한 척은 다 하고!

-과거는 상관없다. 난 그 원한을 풀러 온 게 아니야. 지금 네가 하는 일을 막으려는 거다, 흑투사.

-크흐흐, 좋아. 그러자고. 이건 젊은 날 내지 못했던 그 승부다, 페트로프 13호!

그렇게 황궁 입구에서 두 사람이 대결을 벌이게 되는 것이 바로 제도 스테이지의 종반부였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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