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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08

EP.407 16. 기사 이반 (15)

원작에 따르면 이반이 자유를 찾아 떠나고 나서 몇 개월 후에 흑투사 베르카도 투기장을 나왔다고 했다.

-나도 형님처럼 기사가 되고 싶다고 소원을 빌었지. 그런데 정말로 새해 당일에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 아니겠소? 아무르 후작님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 아, 여기서 새해란 아무르 지방 기준으로 말한 거요.

즉, 그는 원래 역사대로라면 한 달 전에 이곳을 빠져나갔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가 후작의 제의를 거절했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이반의 링네임을 빼앗아 투기장의 스타로 살 수 있다고 해봤자 노예 검투사 신세였다. 정규 기사의 처우에 비할 바 못 됐다.

이번엔 어떤 나비 효과가 작용했을까? 설마 그가 이반이 걱정되어서 투기장을 나가지 못한 것은 아닐 것이다. 방금 봤듯이 그는 이반을 얼간이 취급하며 일꾼들에게 조롱당하도록 방치하고 있었다.

베르카가 갔던 아무르 지방은 원더스타인 일행이 한 달 전에 들렀던 곳이었다. 그들은 그곳의 주도인 칼디르에서 2주 넘게 머물렀었다. 그곳에서 벌어진 어떤 일이 베르카의 운명에 영향을 끼쳤을까?

당장 떠오르는 것은 베티가 거대한 지네로 변해 도시를 부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신년 행사 마지막 날의 일이었다. 베르카는 분명 신년 당일에 투기장을 나왔다고 했으니, 그것은 상관없었다. 그보다 최소 1주일 전에 일어난 일이 영향을 끼친 게 분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원더스타인은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나비 효과의 정의를 생각해 보면 명확한 인과가 보이는 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곳에 놀러 간 작은 사건이 마왕 강림이라는 대형 사고로 확대되었던 것을 고려해 보면 검투사 한 명의 미래가 바뀌는 것쯤이야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니카가 이 사정에 대해 알았다면 왜 일이 그렇게 됐는지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르 후작은 겉으로는 정치에 관심 없는 무골호인인 척하면서 뒤로는 제국의 내분을 조장하고 몰래 군사까지 육성하고 있었다. 황제의 암살을 시도한 것도 그러한 음모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얼마 전에 황태자 진영이 까발리고 들어오면서 아무르 후작은 외부에서 암약하던 첩자들의 활동을 잠시 중지시킬 수밖에 없었다. 투기장에서 유망주들을 섭외하던 인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베르카는 원래 역사와 달리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그는 올해 투기장 시즌에 이반의 링네임을 걸고 싸워보지 않겠냐는 소유주의 제안을 받게 되었고 경기장에 오른 것이다.

아무르 후작과 황태자 진영의 갈등은 금방 합의를 봤지만, 그 사이 베르카는 흑투사의 이름을 버리고 페트로프 13호로 새롭게 무대에 섰다. 아무르 후작은 비밀스럽게 군사력을 모으고 있었기에 너무 이름이 알려진 인물은 원치 않았다. 그래서 원래라면 섭외 1순위에 포함되어 있던 베르카가 자연스럽게 제외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그가 통상적인 관례에 따라 2주 정도의 기간을 두고 은퇴식을 치렀으면 중간에 후작의 제의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제의가 들어오자마자 앞뒤 가리지 않고 바로 자신의 링네임을 내던져 버렸다.

반년 전, 베르카는 이반만 없어지면 자신이 단연 이 투기장의 스타가 될 거라고 될 거라고 확신했었다. 그러나 그가 부상으로 무대에서 내려온 지 몇 달이 흘렀는데도 그의 인기는 그대로였다.

훈련장에서 목검으로 싸울 때 보면 두 사람의 실력은 비슷했다. 힘도 기술도 거의 대등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둘을 향한 대중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이는 두 사람의 경기 스타일 차이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었다.

이반은 항상 상대가 제 컨디션으로 물이 오를 때까지 내버려 두곤 했다. 이는 상대의 기술과 몸놀림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완벽하게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관중들이 보기에는 누구 하나 일방적으로 털리는 일 없이 화려한 기술들을 펼치는 것을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방어적인 자세를 고수하던 이반이 분석을 마치고 압도적인 공략법으로 상대를 분쇄해내면 기승전결이 딱딱 맞는 시원한 서사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베르카는 실력은 이반과 비슷하다고 해도 승리를 향한 과도한 집착이 경기를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시작부터 트래시 토크를 일삼는 것은 예사고 집요하게 상대의 급소만을 노려 상대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철저하게 승리를 추구하는 전략이었지만 관객들이 보기에는 잔인하기만 하고 경기 내용은 시시할 뿐이었다. 노예 소유주들도 그와 맞붙으면 자기 선수들이 망가질 확률이 높다고 인기 있는 상대는 그에게 제공하려 하지 않았다.

이러니 이반이 투기장에서 가장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베르카는 소유주로부터 이반과 비슷한 스타일로 개조할 것을 몇 번이나 요청받았었다. 그러나 그는 이반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 때문에 그것을 한사코 거부했었다.

‘상대의 기술을 분석하기 위해 내버려 둔다고? 그딴 걸 왜 하는데? 누가 너에게 상대를 최대한 다치게 하지 않고 기술적으로 제압해 달라고 요구라도 했냐? 투기장은 그냥 기회가 있을 때 상대를 병신으로 만들면 이기는 거라고.’

그는 본인의 아집이 본인의 성공을 가로막는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반이 폐인이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반년 동안 성과는 미미했고 끝내는 링네임을 이으라는 제안을 덥석 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한 결정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또 한 번 뒤트는 꼴이 되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크흐흐, 그 녀석의 팬이었나 보지?”

베르카는 이반을 부축하는 원더스타인을 보며 이죽거렸다. 그는 일부러 이곳의 일꾼들을 이반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들로 채워 넣었다. 소유주도 이번 일에 대해 뒷소문이 나오는 것은 싫었기 때문에 그의 요청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단, 아까 이반을 제지했던 늙은 검투사만은 예외였다. 그는 이반과 베르카 두 사람이 투기장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곳에서 일했었고 두 사람이 어릴 때부터 잘 돌봐주었었기에 베르카도 그가 이곳에 있겠다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어으으, 주, 주인님, 복면 안 벗을게요……. 때, 때리지 마세요…….”

원더스타인은 베르카의 입에서 웃음 소리가 흘러나올 때마다 이반이 머리를 감싸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그가 이반을 어떻게 취급해 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팬이라…….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네. 저는 페트로프 13호의 팬입니다.”

원더스타인은 원작에 나왔던 당당한 기사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눈앞에 겁쟁이처럼 덜덜 떨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의 뒤에 염전으로 끌려가면서 구해달라고 빌던 옛 친구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가 힘이 없어서 도와주지 못했던, 그가 무지해서 그냥 죽으러 보내버려야 했던 그 친구의 모습이…….

“흥! 하여간 검술도 제대로 모르는 것들이! 다들 입만 열면 페트로프, 페트로프! 내가 실력으로는 절대 저놈에게 뒤지지 않았어. 알아?”

베르카의 외침에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와 눈이 마주친 베르카는 몸을 움찔 떨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너무나도 싸늘하게. 그의 입과 달리 그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베르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렇게 입과 눈빛이 따로 놀 수 있다니. 자신이 누군가에게 기세로 밀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물며 이런 기생오라비 같은 놈에게……. 그만큼 그의 미소는 섬뜩했다.

“검술을 모른다고요? 제가요? 하하, 페드로프 가문의 가전 검술. 그것은 이 남자가 당신에게 가르쳐 준 것 아닙니까? 3형과 7형은 당신이 이 남자보다 조금 더 뛰어났죠. 나머지는 모두 이 남자가 우월했고요. 당신의 잘 사용하는 마무리 기술은 2형의 2식을 통해 상대와의 간격을 좁혀 3형의 5식을 역방향으로 전개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그건 상대가 4형의 1식을 준비하고 있으면 역으로 당할 수 있다는 게 약점이죠. 이 사람에게 몇 번 그렇게 간파당했을 겁니다.”

“어, 어떻게……그, 그런 것까지……?”

“방금 말했듯이 그냥……페드로프 가전 검술을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알 뿐입니다.”

원더스타인은 TTT에 나왔던 기사의 검술을 모두 눈앞에 그대로 떠올려 볼 수 있었다. 게임상에서는 그냥 버튼 연타만 하면 알아서 연속기가 나갔지만, 도움말 창에는 하나하나가 가전 검술에 나오는 몇 번째 형과 식이라고 설명이 붙어 있었다.

베르카와 보스전을 치르면 이반이 중간중간 ‘약점은 그대로구나’, ‘이런저런 버릇도 여전하군’, ‘네 장기인 그건 어디 간 거지?’, ‘너는 이런저런 경우에는 이러곤 했지’ 따위의 말을 하며 공략의 힌트를 줬다. 이반이 던지는 단서를 도움말 창의 설명을 통해 분석해서 상대의 약점이나 버릇을 끌어내는 것이 베르카 공략의 정석이었다. 그렇기에 원더스타인은 자연스럽게 그와 이반의 대련을 본 것처럼 말할 수 있었다.

“무슨……너 정체가 뭐야! 단순히 여자 노예를 데려가려고 온 거 아니었나?”

베르카는 검을 쥐고 벌떡 일어나면서 투기장 직원을 노려봤고, 그는 노예 상점 직원을 돌아봤으며, 직원은 원더스타인을 잠시 바라봤다가 아나이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일단 이 일행의 주인은 그녀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단장님, 어쩌시려고 이러는 거예요? 작전은 잊었어요? 클라라 양을 데리고 나가는 게 우선이에요.

아나이스는 당황해서 음향실을 통해 소리쳤다.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바라보며 이반의 손목을 들어 보였다.

-이 남자도 데려가고 싶습니다.

-노예잖아요. 우린 지금 돈이 없다는 거 잊으셨어요?

-제가 능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원더스타인은 당장 소품실을 통해 돈을 찍어낼 것처럼 굴었다. 아나이스는 이를 악물며 그를 노려봤다.

그의 마법 중에 물건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효율이 매우 떨어진다고 그는 지금까지 늘 말해 왔었다. 특히, 돈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중 최악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물건을 구하는 데 소품실의 기능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기껏 사람이 밤을 새워가면서 자금을 아낄 수 있게 해줬는데 지금 와서 그 제약을 깨겠다고? 그것도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으로?

그는 심지어 한 달 동안 모은 자원을 다 부어서라도 그를 구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이 그녀를 더 화나게 했다. 그녀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녀는 상인이었다.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면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물건을 감정에 휩쓸려 낭비하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그의 마법에 드는 자원은 귀해서 아껴 써야 한다고 늘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얌전히 설득해서는 원더스타인이 따라올 것 같지 않았다. 그녀가 몇 번이나 무리라고 말했는데 그는 여전히 이반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 그를 구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어쩔 수 없지. 그녀는 짧게 심호흡하고는 원더스타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베르카에게 이반의 몸값이 얼마인지 물으려는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는 그의 뺨을 향해 따귀를 있는 힘껏 날렸다. 찰싹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고개가 돌아갔다.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비천한 신분 주제에 어디 함부로 나서서! 제가 옆에 데리고 다닌다고 당신이 진짜 제 남편이라도 된 줄 알았나요?”

“어…….”

어쩔 줄 몰라 하며 멍청하게 웃는 그를 향해 아나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차오르려는 것을 꾹 참았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단장님, 잘 생각하세요. 정말 한 달 동안 모은 자원을 돈으로 바꿔도 되겠어요? 저번 지네 괴물 같은 사태를 대비해 열심히 모아야겠다고 말한 거 잊으셨나요?

-그렇긴 하지만…….

-저 남자는 돈으로 사 오면 돼요. 단장님이 말씀하신 비자금을 찾자고요. 그다음 데려오면 되잖아요. 원래 목적을 잊지 마세요. 클라라 양의 꼴을 보라고요.

-아…….

원더스타인은 집사 바텔에게 부축받으면서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클라라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녀의 셔츠는 피에 반쯤 젖어 있었다.

그는 확실히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반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만 그를 치료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사실 일의 우선순위만 따진다면 클라라가 더 급한데도 말이다. 아나이스의 따귀 덕분에 정신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알았으면 어서 여기서 나가죠. 남자들 텁텁한 땀 냄새 때문에 죽을 것 같아요.”

아나이스는 손에 든 부채를 저으며 원더스타인에게서 등을 휙 돌려 숙소 밖으로 나갔다. 다들 그녀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원더스타인에게 말을 걸지 않고 그녀를 따라나섰다. 미노바만이 멍하니 서 있는 그의 등을 툭 쳐서 발걸음을 재촉했을 뿐이었다. 원더스타인도 여기서는 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숙소를 나가기 직전에 뒤에서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고 그곳을 돌아봤다. 베르카가 이반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손님들 앞에서 망신을 줬다며 윽박지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주먹을 불끈 쥐고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앞으로 할 일이 많았다. 서둘러야 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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