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41

41화 금패 용병의 정체 (1)

41화 금패 용병의 정체 (1)

엘리샤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금발 소년이 감마(Gamma)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감마는 민첩하게 회피했고, 블레이드를 뻗어 반격에 나섰다.

그 순간, 금발 소년의 몸에서 검은 파장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그그그그그······!

엘리샤는 저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파장 안에 강력한 마법의 힘이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영창도, 술식도 없이 마법을 발현했다고······?’

엘리샤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파장 안에서 아주 작은 낯익음을 포착했다. 어디서지? 나는 어디에서 저 힘을 경험했었지?

금발 소년이 발현한 파장은 감마를 거세게 밀치며 지면에 내리눌렀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압력을 견디지 못한 지면이 개미지옥처럼 움푹 파이며 시커먼 구멍을 드러냈다.

쿠르르르르르······!

그것은 마치 어두운 소용돌이처럼 보였다. 소용돌이의 흐름에 두 다리를 붙잡힌 감마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감마는 크게 당황한 듯했다. 구멍으로 빨려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영력을 발산했다.

엘리샤의 눈이 번뜩였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감마를 쓰러뜨리려면 지금이다.

엘리샤는 몸을 일으켜 마력을 끌어모았다. 그러다가 울컥, 입에서 피를 토했다. 마력 회로가 엉망이 됐다. 암영을 상대하며, 짧은 시간에 지나치게 많은 마력을 운용한 탓이다.

‘······빌어먹을 라이칸 녀석은 어떻게 된 거야!’

라이칸은 아이들을 안전하게 데려오기로 했었다. 그런데 아이들만 왔다. 실은 괜한 화풀이일 뿐이다. 엘리샤는 라이칸이 무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저 멀리 어둠 속 어딘가에서 암영의 목을 따고 있겠지.

엘리샤는 불안감이 들었다. 물론 라이칸은 강하다. 그를 이길 살수는 암영에서도 그리 흔치 않다. 그런데 왜 아직 오지 못하는 것일까. 설마 또 다른 쿼드라도 나타난 걸까?

어쩌면 라이칸은 이미······.

“······젠장할. 내가 무슨 생각을.”

엘리샤는 품에서 작고 투명한 유리병을 꺼냈다. 그 안에는 푸르스름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엘리샤는 단번에 그것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끄웨에엑······!”

심장을 죄는 듯한 격통에 엘리샤는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이 엿 같은 약물은 엉망이 된 마력 회로를 일시적으로 회복시켜 준다. 물론 한동안 후유증은 감수해야겠지.

마치 박살 난 뼈를 되 맞추듯, 비틀린 마력 회로가 복구되기 시작했다. 조금만 버텨라 금발. 내가 다시 마법을 발현할 수 있을 때까지. 만약 네가 죽기라도 하면 나는 단장에게 호되게 혼이 난단 말이다.

***

나는 검은 소용돌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미스트의 발밑에서 시작된 그 소용돌이는 무서운 속도로 확장하며 미스트를 둘러쌌다. 나는 이런 것을 본 적이 있다. 카론 늪지에서, 혼돈의 조각을 손에 넣었을 때.

‘이게 왜 여기에······!’

아니. 생각은 나중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소용돌이가 미스트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미스트와 달리 나는 소용돌이로부터 안전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 발아래의 지면부터 그 뒤쪽은 소용돌이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덕분에 세실도 위험에서 벗어났다.

쿠르르르르······!

소용돌이는 집요하게 미스트의 다리를 붙잡고, 끌어당겼다. 게다가 소용돌이가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그녀의 두 다리만이 아닌, 몸 전체인 듯했다. 그 증거로 미스트는 무릎과 허리를 구부린 채, 양팔이 부러진 사람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다.

양 갈래로 묶여 있던 미스트의 머리카락이 풀어지며 어지럽게 흩날렸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영력을 발산해 소용돌이의 흡력을 견디고 있었다.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너······!”

미스트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미스트가 빠드득 이를 갈았다. 나는 단단히 쥔 검 손잡이에서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미스트를 베어야 한다. 바로 지금!

미스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맞지 않았다. 미스트는 자신의 몸을 안개처럼 흐릿하게 만들어 내 검을 통과시켰다.

부웅.

마치 공기를 베는 듯한 감각. 나는 이 현상의 원인을 알고 있다. 지금처럼 공기 중에 수분이 가득한 상황에서만 발현할 수 있는 미스트의 블러디드, ‘그림자 안개’.

나는 포기하지 않고 재차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림자 안개’가 내 공격을 무효화시켰다. 타이밍을 바꿔 기습하듯 검을 뻗어 봤지만 허사였다.

여러 차례 공격과 회피가 반복됐다. 그러는 동안 내 머릿속은 이 소용돌이를 만들어 낸 메시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혼돈을 발현합니다.】

혼돈(混沌).

내가 발현한 이 힘은 혼돈이었다.

혼돈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른다. 소서러와 어떠한 연결점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그런데 그 특별한 힘을 내가 발현하고 있다고?

나는 시스템 창을 통해 메시지를 재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이 세계에 들어온 후 보았던 모든 메시지가 사라졌다.

【아스트레아의 천칭이 오른쪽으로 27도 기울어 있습니다.】

두 눈을 부릅떴다.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메시지.

육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나의 머릿속에, 마치 문신처럼 각인돼 있다.

【리메이크의 위력이 27퍼센트 감소합니다.】

뭐라고?

.

.

.

【아스트레아의 천칭이 오른쪽으로 11도 기울어집니다.】

.

.

.

【아스트레아의 천칭이 오른쪽으로 13도 기울어집니다.】

.

.

.

【아스트레아의 천칭이 오른쪽으로 10도 기울어집니다.】

.

.

.

【아스트레아의 천칭이 왼쪽으로 7도 기울어집니다.】

나는 메시지들의 의미를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세계에 들어온 후, 지금까지 등장했던 모든 ‘아스트레아의 천칭’ 메시지.

당시 메시지가 발현했을 때는 천칭이 어느 방향으로, 얼마큼 기울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였다.

【■■ 속의 ■■가 리메이커를 응시합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왜 잊고 있었을까.

내가 이 메시지를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다.

카론 늪지의 깊은 밑바닥에서도, 나는 이 메시지를 봤다.

【■■의 파편을 포식합니다.】

그동안 나는 혼돈의 조각을 늪의 소용돌이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포식’한 것이다.

【포식한 ■■의 파편을 혼돈으로 변환합니다.】

그날 포식했던 미지의 파편은 내 안에서 혼돈으로 변환됐다.

그리고 그 힘으로, 나는 미스트를 구속하고 있다.

치릿!

내리친 검 끝에서 마찰이 느껴졌다. 미스트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깊은 상처는 아니다. 살갗만을 베었을 뿐.

그러나 내게는 희망적인 반전이었다.

벨 수 있다.

지금의 미스트는 더 이상 나를 압도하는 존재가 아니다!

핏! 피핏!

미스트의 몸에서 물결처럼 피가 흘렀다. 나는 쿠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검에 집중했다. 이 순간, 내 손 안의 검은 내 몸의 연장(延長)처럼 움직였다. 마치 나와 검이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미스트의 왼팔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 직후, 카앙! 그녀의 블레이드가 내 검을 가로막았다. 어떻게 된 거지? 미스트가 갑자기 더 강해지기라도 한 건가?

아니다.

미스트가 강해진 것이 아니다.

혼돈이 약해지고 있다.

‘빌어먹을······!’

나는 사그라드는 혼돈을 되살려 보려 했다. 그러나 할 수 없었다. 마치 밧줄에 묶인 두 팔을 억지로 움직이려는 시도처럼, 내 의지는 혼돈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나는 혼돈을 제어할 수 없다. RP의 부족으로 리메이크 발현도 불가능하다.

【통찰을 발현할 수 없습니다.】

나는 미스트에게 통찰을 시전했다. 물론 저항할 확률이 극도로 높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의 미스트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기에, 일말의 가능성을 기대했다.

하지만 떠오른 메시지는 ‘저항’이 아닌 ‘발현 불가’.

【혼돈 상태에서는 무한회귀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혼돈을 발현하면 시스템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고?

불길함이 엄습했다. 나는 먼지의 기척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감지되지 않았다.

‘먼지야!’

미스트에게 검을 뻗으며, 나는 통찰의 과정 없이 동기화를 발현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혼돈 상태에서는 무한회귀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나의 무수한 검격이 블레이드에 가로막히는 사이, 소용돌이의 힘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미스트가 나를 보며 악마 같은 웃음을 지었다.

미스트의 등 뒤로 푸른 빙결의 마법이 날아들었다. 전투 불능에 빠진 줄로만 알았던 여자 마법사였다. 그런데 그녀의 공격 마법은 어이없게도 미스트에게 도달하기 전에 혼돈에 삼켜지며 사라졌다.

“뭐라고오오!”

마법사가 절규했다.

그때, 나의 곁을 스치며 난입한 그림자가 미스트에게 검을 뻗었다. 내게는 너무도 익숙한 검로. 비검(飛劍)!

“카인!”

카인의 비검은 미스트의 블레이드에 막혔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을 치뜬 카인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보다 커다란 포식자에게 도전하는 맹수처럼 보였다.

나는 카인이 왜 저렇게 격렬한 감정을 보이는지 알고 있다. 카인은 이전에도 미스트를 만난 적이 있으니까. 그의 인생이자 전부였던 하센베르크 가문이 피의 불길 속으로 사라졌던 날.

나는 카인과 합세해 검을 휘둘렀다. 미스트의 몸에 다시금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지금의 미스트는 나와 카인, 두 사람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지 못했다.

“아악!”

우리를 향해 달려오던 여자 마법사가 혼돈의 파장에 부딪히며 튕겨 나갔다.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내가 발현한 혼돈은 미스트를 묶어둔 것뿐만 아니라, 타인의 접근을 막고 있다. 그런데 카인은 어떻게 이곳으로 진입해 검을 휘두르고 있는 거지?

‘설마 벌써 소서러의 힘을······!’

【혼돈이 고갈되었습니다.】

쿠륵······! 짧은 소음을 내며 소용돌이가 사그라졌다. 공기를 장악하던 어두운 파장도 사라졌고, 끝이 보이지 않던 시커먼 구멍도 모습을 감췄다. 남은 것은 개미지옥처럼 파인 지면뿐.

그 안에서 튀어나온 미스트가 카인에게 블레이드를 뻗었다.

“대장!”

카인의 옆으로 마르셀이 끼어들었다. 촤르륵!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는 빙결의 장막이 펼쳐졌다. 그러나 미스트의 블레이드는 그것을 산산조각으로 부쉈다.

카아앙!

카인과 마르셀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러나 나의 주의는 그곳에 있지 않았다.

미스트가 속박에서 해방됐다. 나를 보며 키득키득 웃던 그녀의 표정이 한순간에 변했다. 우는 아이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피!”

미스트는 자신의 피를 보면 흥분한다.

겉보기에는 다 자란 성인이지만, 미스트의 내면은 어린아이에서 성장하지 못했다.

아이처럼 순수하기에 더욱 잔혹한.

미스트는 암영의 모든 살수 중에서 가장 잔인하게 타깃을 죽이는 인물이다.

“피해! 금발!”

강력한 공격 마법이 미스트를 습격했다. 그러나 미스트는 그 특유의 민첩성을 활용해 회피했고, 엄청난 속도로 마법사에게 접근했다.

마법사의 얼굴에 당황의 표정이 스쳤다. 피를 본 미스트는 직전보다 흉포해졌다. 게다가 마법사가 살수와 근접전을 벌이는 것은 무기를 든 상대에게 맨손으로 덤비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급해진 마법사가 방어 마법을 펼쳤다. 그 순간, 멀리서 번쩍이는 빛이 쇄도했다. 마치 번개가 땅을 훑으며 돌진해 오는 것 같았다. 그 빛이 미스트를 강타했다.

파카앙!

미스트의 몸이 십여 미터 뒤로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미스트를 공격한 빛의 정체는 커다란 검을 쥔 사내였다.

그가 나를 돌아봤다.

“어이. 금발 꼬마.”

그러고는 씩 입가를 올렸다.

“금패 용병님 등장이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