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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10

EP.409 16. 기사 이반 (17)

“지부에 가면 페트로프 가문과 오늘 만난 검투사에 대해서도 좀 더 조사해 줘.”

페트로프? 그 이름을 한참 곱씹어 본 나타샤는 얼마 안 있어 탄식을 삼켰다.

그녀는 정보부 요원이자 황태자의 측근답게 제국 정계의 주요 귀족의 성을 모두 암기하고 있었다. 언제든지 묻기만 하면 그들의 거점과 대표 인물을 줄줄 말할 수 있도록 준비되었다.

그러나 페트로프라는 이름을 떠올리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페트로프가 현존하는 귀족 가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10여 년 전 내전에 참여했다가 멸문당한 곳이었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그 가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나타샤가 이상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그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그녀가 황태자의 측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주군의 개인사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투기장에서 만났던 검투사의 링네임이 페트로프 13호였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황급히 주군을 쳐다봤다.

“전하?”

“그러고 보니 황실 근위대에서 나간 투간 경과도 관련해서도 작년에 무슨 소동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것도 포함해서 제대로 조사해 줘.”

니카의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10여 년 전의 내전. 나타샤는 딱딱하게 굳은 니카의 표정을 살피며 그 내전에 숨겨진 이야기 하나를 떠올렸다.

니콜라이의 어머니인 두 번째 황비. 그녀는 10여 년 전, 친정에 다녀오는 길에 병으로 쓰러져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거친 날씨에 산길을 가로지르다가 그만 눈보라 속에 갇혀 며칠이나 노숙을 한 탓에 가뜩이나 병약했던 몸이 버티지 못한 것이다.

당시 그녀가 산을 탔던 것은 내전의 불씨가 근처까지 번졌기 때문이다. 해당 전쟁에서 황실은 중립을 지키고 있었고 황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귀족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황실 사람을 건드리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 믿고 전투가 벌어지는 곳을 지나가기에는 위험 부담이 컸다. 치안이 불안한 곳에는 어떤 위험분자가 돌아다닐지 몰랐고, 상대 진영에 누명을 씌우기 위해 그녀에게 불순한 짓거리를 하려는 음모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게 두려워 일정을 변경하는 것 또한 내키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의 정적들에게 제국의 황비라는 여자가 너무 겁이 많은 거 아니냐며 시비를 걸 빌미를 제공해줄 수 있었다.

그래서 황비가 선택한 것이 바로 무리를 반으로 나누는 것이었다. 마차와 호위 병력은 그대로 가던 길을 가게 하고, 그녀를 비롯한 소수의 인원만 재빨리 산을 넘어 전쟁이 벌어지는 지역을 회피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산길을 넘던 황비 일행은 산 중턱쯤 갔을 때, 한 무리의 기사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들은 이번 내전에 참가한 자들로 마치 황비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들의 앞길을 막아서며 나타났다.

그들은 황비를 자신들의 진영으로 모셔가고 싶어 했다. 명분상 적은 호위 병력으로 이동하는 황비를 보호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이러한 ‘억류’가 정치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모를 그녀가 아니었다.

“호위는 필요 없소.”

“그러지 말고 저희와 함께 가시지요. 요즘 이 산에는 패잔병 무리가 도적질하고 돌아다니는지라…….”

뒤에 선 몇몇 기사들이 히죽거렸다. 황비는 분함에 이를 꽉 악물었다. 그들의 걱정 어린 충언에는 자신들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자신들이 그 도적 무리로 변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황비에게 이번 계획을 조언한 측근의 계략이었다. 황비 몰래 그는 내전에서 한쪽 진영과 연이 닿아 있었고, 황비의 앞을 막아선 기사들과 같은 곳을 지지하고 있었다.

때마침 밀려온 눈보라도 그의 계획 중 하나였다. 그는 의도적으로 잘못된 기상 예보를 황비에게 전해 그녀가 이곳을 지나도록 유도했다. 새하얀 눈발이 쏟아지면서 그들의 시야를 순식간에 가렸다.

“전하, 날씨가 심상치 않습니다. 근처에 저희 진영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시지요.”

“아니. 괜찮소. 근처에서 눈보라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겠소.”

황비 일행은 지나오는 길에 봐두었던 폐 성곽에서 노숙했다. 무너진 성벽의 잔해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곳곳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음침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황비가 마무르는 방은 그나마 멀쩡한 편이었지만, 일국의 황비가 머무르기에는 너무 낡고 지저분했으며 무엇보다 추웠다.

황비는 그런 얼음 굴 같은 곳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길을 재촉하기에는 바깥 날씨가 너무 위험했다. 수행원들이 눈사태 따위의 ‘사고’로 모두 죽고 뒤따라온 기사들이 홀로 남은 그녀를 ‘보호’해 가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버티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이곳은 외부에서의 공격을 막기에 좋았고, 실내였기에 증거가 쉽게 남아서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해도 눈밭과 달리 감히 시도하기 힘들 거라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그렇게 닷새를 버텼고, 그녀의 일행들이 이변을 알아차리고 달려오면서 그녀의 호위를 위해 주둔하고 있던 기사들은 물러났다.

“그럼 전하, 즐거운 여행 되시길.”

“그대들 덕분에 편하게 지냈소. 잘 가시오.”

황비는 이미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음에도 망루에 올라 허리를 꼿꼿이 편 채 그들이 떠나는 것을 배웅했다. 그들은 눈과 얼음이 잔뜩 낀 갑옷을 입은 채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멀리 사라지자마자 그녀는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차가운 석실에서 며칠을 보낸 그녀의 건강은 다시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손상되어 있었다. 황궁에 도착한 뒤, 황실 주치의와 사제들이 모두 달라붙었지만, 그녀는 끝내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했다.

“니콜라이…….”

어린 황자는 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정치에 대해 잘 몰랐다. 왜 어머니가 따뜻한 음식과 침대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그런 곳에서 버티는 것을 택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가혹한 양자택일을 강요했던 자들이 어머니를 이렇게 만든 것임은 알 수 있었다. 바로 페트로프 가문의 기사들이었다.

“전하.”

나타샤는 이제 니카의 심기가 왜 불편한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 낮에 페트로프 가문의 생존자에게 보인 원더스타인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이만 출발해줘.”

나타샤는 주군이 아직도 마음에 응어리를 가지고 있음을 느끼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냉철한 전략가이자 정치인인 척 굴어도 주군은 아직 15살에 불과했다. 어머니를 잃었던 경험을 떨쳐버리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근처에 우리 파벌 소속의 지부가 없으니 좀 멀리 갔다 와야 합니다. 닷새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나타샤는 간단한 짐만 챙겨 숙소를 나섰다. 그녀가 확실히 떠난 것을 확인한 니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굳은 표정을 풀고 배시시 웃으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좋았어. 작전 성공!”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침대 밑에 숨겨 든 트렁크를 꺼냈다. 그곳에는 그녀가 지금까지 몰래 모아둔 여자 옷들이 들어 있었다. 지나왔던 도시들에서 자신에게 잘 어울리겠다 싶어서 사두었던 것들이었다.

“아윽, 아파라……. 덕분에 진짜 말이 싸늘하게 나오고 말았네.”

니카는 가슴과 복부를 묶어주던 천을 풀었다. 가슴이 출렁 쏟아지면서 호흡이 편해졌다. 이제껏 잘 버텼던 것이 최근 며칠 동안은 복부에서 올라오는 통증 때문에 압박하기 너무 괴로웠었다.

니카는 복부의 통증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가슴가리개를 풀고 자유롭게 지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타샤를 며칠 떠나보낼 구실을 찾아야 했었다. 다른 단원들에게는 자신이 사실 여자였다고 밝히면 그만이지만, 그녀에게는 그럴 수 없었다.

다행히 마침 비자금에 대한 단서를 얻어 명령을 내릴 명분이 생겼다. 페트로프라는 이름도 분위기를 그럴듯하게 연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페트로프 가문은 내전이 끝나고 모두 죽거나 노예로 팔려 갔다. 그 정도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업보를 충분히 치른 셈이었다. 니카는 그들에 대한 원한을 푼 지 오래였다.

아니, 원한이 있다고 해도 그 책임을 지금의 페트로프 가문의 생존자에게 묻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오늘 본 그 바보 청년은 당시 10살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를 대하는 원더스타인의 태도가 조금 의심스럽긴 했다. 페트로프 가문의 검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가문의 생존자에 대해 가지는 강렬한 부채 의식으로 봤을 때, 그는 그 가문과 상당히 깊은 연관이 있는 게 분명했다.

오랫동안 수수께끼의 존재였던 그에 대해 실마리를 잡은 것은 반가웠다. 그렇게 심각하게 굴었으니 나타샤가 뭔가 하나라도 건져올 확률이 높았다. 자신은 그때까지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후후, 어차피 여자로 지낼 날도 며칠 안 남았는데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입고 싶은 대로 입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녀볼까? 어차피 딱 며칠 만이니까.”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그동안 입어보고 싶었던 옷들을 골라냈다. 그리고 그녀는 트렁크의 옆 칸을 열어 보았다. 그곳에는 여성형 속옷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까지 여자 옷을 입는다고 해도 속옷은 항상 남자 걸로 입었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 속옷을 입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며칠 정도는 본격적으로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여자로 살아보는 것은 귀중한 경험일 것이다. 원래라면 절대 몰랐을 제국 인구의 절반의 삶을 체험해 보는 것이니까. 그녀는 히죽 웃으며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래. 딱 남은 며칠 만이니까.

***

회의를 마친 원더스타인은 오늘의 마지막 일정으로 넘어갔다. 그것은 바로 아나이스의 방에서 치르는 행사였다.

“낮에는 잘도 지껄이더군요. 주제를 모른다고요? 후후, 당신이야말로 착각한 건 아니겠죠? 상속녀는 무슨. 한낱 노예 주제에.”

“네, 네에, 흐앗, 주, 주인님…….”

아나이스는 눈가리개를 하고 사지를 결박당한 채 그의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 그가 목줄을 꽉 잡아당기자 그녀는 그대로 땅에 고개를 처박았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가 휘며 엉덩이를 위로 쭉 뺀 자세가 됐다.

그는 손가락들을 촉수처럼 흐느적거리게 만든 뒤 그녀의 엉덩이골 사이로 미끄러지듯 밀어 넣었다. 꾸물거리는 손가락들은 그녀의 벌어진 두 틈의 가장자리를 한 바퀴 훑었다.

“히잇!”

“왜 그러시죠? 계속 잘난 척해보시죠. ABC 트라이 뭐가 어쨌다고요?”

“훗, 읏, 그, 그런 거 몰라요……. 저, 저는 머리에 야한 생각만……힛! 가, 가득한……아, 암캐예요……흣, 흐앗!”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흐르고 아나이스는 입가의 침을 훔치며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 오늘도……여기까지…….”

그것은 그와 그녀 사이에 정해진 암구호였다. 원더스타인은 재빨리 무너져 내리는 그녀의 몸을 받아주었다. 그녀의 몸을 안는 그의 태도는 불과 몇 초 전과 달리 자상하고 부드러웠다.

그녀는 낮에 그에게 고압적으로 굴었다 싶으면 밤에 꼭 이런 것을 요구하곤 했다. 오늘은 그에게 뺨을 날리고 회의에서도 면박까지 주었기에 이렇게 나올 것을 그는 예상했다.

“고마워요. 항상 제 어리광에 맞춰 주셔서…….”

“아니요. 저야말로 고맙습니다.”

“뭐 가요? 저 같은 미인이랑 몸 섞을 수 있다는 거요?”

그녀는 그의 가슴에 몸을 밀착한 채 그의 턱 아래를 간질이며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는 짧게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까 말려주셔서요.”

원더스타인은 낮에 자신이 저지르려 했던 실수를 떠올렸다. 한 달 동안 모은 데볼루트를 현금으로 바꾸어서 이반을 사려 했었다. 그것은 전략적으로 비효율적인 데다가 협상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도 이쪽이 안달 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멍청한 행동이었다. 아마 상대는 돈 무더기를 보고 더 튕기거나 배짱을 부렸을 확률이 높았다. 이반을 되찾아오기 더 힘들어졌을 것이다.

그녀는 그때 일을 떠올리고는 심술 난 듯 볼을 한 번 부풀렸다가 한숨을 터트렸다.

“단장님답지 않게 너무 감정적으로 구셨어요. 저는 그저 상인으로서 그런 낭비는 참을 수 없었을 뿐이에요.”

“그런가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은퇴한 검투사라면 쉽게 빼내 올 방법이 몇 가지는 있어요. 오늘 클라라를 되찾아 온 거 보셨잖아요? 저만 믿으세요. 잘 풀릴 거예요.”

“그렇게 하죠.”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 그리고 잠시 멈췄던 일을 다시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허리를 타고 내려오는 그의 손을 손바닥으로 쳐냈다.

“내일부터 바빠요. 오늘은 여기까지.”

원더스타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침대에서 일어서는 그녀를 바라봤다. 정말 일에 있어서는 칼 같은 여인이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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