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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10

< 미래를 보는 투자자 409 >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처럼, 아무리 돈이 많아도 몸이 아프면 소용없다.

그래서 부자들은 최선을 다해 건강을 챙기고, 개인 트레이너를 따로 고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애인이 운동 마니아니까.

엘리는 스트레칭으로 충분히 몸을 푼 다음 러닝머신 위를 세차게 달렸다. 금세 갈색머리카락부터 시작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옆에서 같이 뛰던 나는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속도를 낮췄지만, 엘리는 최고속도로 20분을 더 뛰었다.

한참 후, 러닝머신에서 내려온 엘리는 타월로 땀을 닦았다.

긴 머리카락은 포니테일로 묶었고, 복장은 검은색 레깅스에 흰색 브라탑. 매끈한 복근과 늘씬한 허리라인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여기가 호텔 헬스장이었다면, 남녀 할 거 없이 사람들이 다 쳐다봤을 것이다. 집에 헬스장을 만들어놔서 다행이다.

“운동복 모델 해도 되겠는데요.”

“안 그래도 나이키와 아디다스에서 제의가 들어왔어요.”

베스터는 전에 찍어놓은 광고영상 중 새로운 광고를 내보내며 엘리의 인기는 또다시 수직상승했다.(그리고 로열 피쉬앤칩스 광고영상 조회수 역시 크게 늘었다)

래쉬가드를 비롯한 베스터 상품들은 여름시즌을 맞이해 불티나게 팔렸고, 그 덕분에 지금도 모델 제의가 꾸준하게 들어왔다.

“아깝네요. 남들은 연예인 하고 싶어서 안달인데.”

엘리는 물을 마시며 웃음을 지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할지 몰라요. 나이키 모델은 한번 해보고 싶기도 한데…… 아! 이번에 나이키에서 서울 나이트 레이스 개최한데요.”

“밤에 도심 달리는 거죠? 재밌어요?”

“그럼요.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뛰면 재밌잖아요.”

나이트 레이스란 말 그대로 밤에 달리기. 마라톤처럼 순위를 정하는 건 아니고, 그냥 사람들이 모여 같이 달리고 완주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부터 시작된 도심 달리기 열풍은 한국으로도 번졌다. 굳이 멀리 갈 것 없이 생활공간에서 다 함께 운동을 하자는 좋은 취지다.

물론 그 이면에는 스포츠브랜드들의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다.

도시에서 달리기를 하면, 후줄근한 옷을 입고 뛸 수 있겠는가? 당연히 좋은(기왕이면 유명 브랜드) 운동복을 사입어야 한다.

등산 가면 아웃도어 브랜드의 향연이 펼쳐지는 것과 비슷하다.

“자, 이제 충분히 쉬었으니까, 스쿼트해요.”

“……네.”

* * *

출근해서 일하는데, 택규가 태블릿으로 영상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슬쩍 보니 여자들이 라이브방송을 하는 것 같아.

“얘들 누구야?”

“퓨어걸즈라고 걸그룹이야.”

“푸어걸즈?”

택규는 발끈했다.

“퓨어걸즈! 발음 조심해. 너 일부러 그랬지?”

“아니야. 처음 듣는데 푸어걸즈인지, 퓨어걸즈인지 어떻게 알아?”

“상식적으로 세상에 어느 걸그룹 이름을 푸어걸즈라고 짓겠냐? 설마 누더기 걸치고 나와서 숟가락으로 깡통 두드리며 각설이타령이라도 하겠어?”

“……미안.”

디테일한 설명을 들으니 납득이 된다. 어쩐지 걸그룹 이름 치고는 좀 이상하다고 했다.

택규는 사과를 받아들였다.

“물론 얘들이 가난한 건 사실이야. 보고 있으면 가끔 안쓰럽기도 하고. 여기 숙소도 반지하 투룸이래.”

“근데 너 3차원 걸그룹에도 관심이 있었어?”

택규는 의외로 걸그룹 마니아다.

대상이 전부 2D라서 그렇지. 믿기지 않겠지만, 세상에는 2D 아이돌이라는 게 존재한다.

기술의 발전은 버츄얼 가수 또는 보컬로이드라는 가상 아이돌을 만들어냈다. 이 가상 아이돌은 정기적으로 앨범을 발매하고, 각종 캐릭터 상품을 발매하며, 심지어는 스크린과 홀로그램을 활용해 팬미팅과 공연까지 한다!

공연장에 모인 수천 명의 팬들은 가상 아이돌의 춤과 노래에 열광한다.

이게 뭔 소리인가 싶겠지만 진짜다.

“훗, 이제까지 마음에 드는 애가 없었을 뿐이지. 내가 눈이 좀 높잖아.”

“…….”

하긴, 현실의 인물이 2D 느낌 내기는 쉽지 않겠지.

택규는 영상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퓨어걸즈에 대해 궁금해?”

“별로.”

“설명해 줄 테니까 잘 들어봐.”

“안 궁금하다니까.”

“퓨어걸즈의 시작은…….”

택규는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설명을 시작했다.

퓨어걸즈는 4인조 걸그룹으로 데뷔를 한 건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데뷔 초기에는 공중파 음악프로그램에 몇 차례 출연했으나,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2집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3집 디지털 싱글앨범을 낸 지금에 와서는 케이블에 간신히 얼굴을 내미는 정도였다.

“이얼이가 원래 아이돌 메이커99에 나와서 큐큐 프로젝트 멤버로 활동했거든. 그게 해체된 뒤 퓨어걸즈 리더가 됐고.”

걸그룹이란 신선함이 생명이다. 처음에 뜨지 못한 걸그룹이 나중에 뜰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멤버 탈퇴와 교체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팀 리더인 이얼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팀을 이끌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이얼의 사진을 보니 볼이 통통하고, 쌍커풀 없는 큰 눈을 지녔다. 새하얀 피부와 양갈래 머리카락 덕분인지 그룹 이름답게 순수함이 느껴졌다.

택규가 왜 팬이 됐는지 알 것 같긴 하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같이 얘기를 듣던 상엽 선배가 말했다.

“흠, 퓨어걸즈라.”

“알아요?”

“들어본 것 같긴 해.”

K컴퍼니가 Edm엔터를 가지고 있는 만큼 한국 연예계에 빠삭하다. 뭐, 여자 연예인들을 많이 만나기도 하고.

“아이돌로 성공한다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야. 한달에 데뷔하는 아이돌 그룹이 얼마나 될 것 같아?”

면접 때나 쓰는 브레인티저(Brain Teaser) 질문 같다.

난 잠시 고민한 다음 신중하게 말했다.

“한 10팀?”

“10팀?”

“너무 많나요? 그럼 5팀?”

상엽 선배는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해? 적게 잡아도 50팀이고, 많을 때는 80팀도 넘어.”

그 말에 난 깜짝 놀랐다.

“50명이 아니라, 50팀이요?”

“응. 50팀. 사람으로 치면 수백 명이지. 물론 그중에는 처음 데뷔하는 애들뿐 아니라, 재데뷔, 재재데뷔하는 애들도 수두룩해.”

한달에 50팀이면, 1년에 600팀이다.

“그게 한국시장에서 소화가 돼요?”

“당연히 안 되지.”

한국시장 규모로 봤을 때 이 정도면 극도로 포화 상태다. 이건 가요계뿐 아니라 연예계 전체가 마찬가지.

“10팀 데뷔시킨다고 하면 그중 수익 내는 애들은 하나가 될까 말까야. 나머지는 본진 치기라도 하면 다행이고.”

마켓으로 치면 그야말로 치열한 레드오션.

그나마 기획사 입장에서는 여러 그룹을 만들면 리스크 분산이라도 가능하지만, 개인은 그 리스크를 온전히 짊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모두가 아이돌이 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로또라 할 수 있지. 안 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한번 터지면 완전 대박이니까.행동경제학에서도 말하잖아. 인간은 적정 확률의 적정 기대수익보다, 아예 확률이 낮고 금액이 큰 걸 오히려 높게 평가한다고.”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로또 1등 당첨금은 약 20억 원. 확률은 대략 800만분의1이다. 이걸 8만분의1의 확률로 2천만 원의 당첨금을 받거나, 8천분의1의 확률로 200만 원을 받는 걸로 바꿔도 기대수익은 동일하다.

하지만 세 복권 중 어느 걸 사겠냐고 물어본다면, 대부분은 800만분의1의 확률로 20억 원 당첨금을 택할 것이다.

“케이블 음악프로그램에 나오는 애들 보면 듣보잡 같지? 그런데 거기도 누군가한테는 꿈의 무대야. 아이돌 하는 애들 진짜 보통 이 악물고 하는 게 아니야. 사람들이 이름 알 정도면 진짜 엄청나게 성공했다고 봐도 좋아. 공중파 음악프로그램에 얼굴 한번 못 비추고 사라지는 애들도 수두룩하니까.”

택규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퓨어걸즈는 왜 못 뜰까요? 멤버들 다 이렇게 예쁘고 열심히 하는데.”

상엽 선배는 고개를 내저었다.

“언제나 그렇듯 노력과 성공이 반드시 비례하는 건 아니잖아. 외모, 실력, 노력에 메이저 기획사가 온갖 마케팅으로 밀어줘도 못 뜨는 애들이 있는 반면, 해체 직전의 걸그룹이 직캠 하나 때문에 역주행해 1위를 찍기도 하지. 물론 피나게 노력하지 않으면, 그 기회조차 잡기 힘들지만.”

* * *

거실에서 엘리와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택규가 재빨리 나와 TV를 켰다.

“오늘 우리 이얼이가 SBC 뮤직박스에 나온데. 이번 앨범 첫 공중파 방송이야.”

엘리가 물었다.

“이얼이누구예요?”

“퓨어걸즈 리더래요.”

“퓨어걸즈요?”

역시나 택규는 신나서 퓨어걸즈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늘어놓았다. 직접 검색해서 사진과 영상도 보여주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다른 사람도 좋아해줬으면 하는 것이 팬의 심리. 이런 걸 업계용어로는 포교(?)라고 하겠지?

“그런데 공중파는 힘들 거라고 하지 않았어?”

“누구 덕분에 잘 풀린 모양이야.”

“진후는 걸그룹 안 좋아해요?”

“글쎄요. 딱히 좋아하는 그룹은 없어요.”

“왜요? 한국 걸그룹은 예쁘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잖아요.”

“뭐, 그렇긴 하죠.”

걸그룹뿐 아니라, 한국 아이돌들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 괜히 한류가 유행하는 게 아니지.

“너 걸그룹 좋아하잖아. 왜 좋아한다고 말을 못해?”

“응? 무슨 말이야?”

택규는 엘리에게 고자질 하듯 말했다.

“얘 군대에 있을 때 써티원 팬이었어요.”

“아…… 써티원.”

이제 생각났다. 참고로 써티원 멤버 중에 리나라는 애가 유리랑 좀 닮았던 것 같기도 하고.

“헤에, 진후는 걸그룹 좋아했군요.”

“뭐, 그게 제가 좋아했다기보다는 선임이 광팬이었어요.”

“선임이요?”

“전에 봤잖아요. 김재학 병장이라고.”

난 엘리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걸그룹에 전혀 관심 없던 남자들이라도 군대에 가면 걸그룹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그 취향은 대체로 선임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만약 그 선임이 어떤 걸그룹의열렬한 팬이라면, 귀에서 피가 날 때까지 같은 노래를 돌려듣게 된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삽질을 하며 ‘넌 정말 찌릿찌릿~ 내 맘이 찌릿찌릿’ 같은 부끄러운 가사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뭐, 꼭 내가 그랬다는 건 아니고…….

엘리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도 써티원 좋아해요?”

“아니요. 저 전역할 때쯤 해체됐어요. 유나랑 리나는 연기자로 전향했고, 제시는 중국 건너갔고, 주희는 요즘 에이튜브 시작했어요.”

“관심 없는 것 치고는 되게 잘 아네요.”

“……이상하게 인터넷 들어갈 때마다 기사가 떠있더라구요.”

그래도 내 군생활을 같이 했던 걸그룹인 만큼 다들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이얼이 이제 나오나 보다.”

TV 화면에 나온 엠씨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하윤 씨. 이번에 소개해드릴 그룹 누군지 아시나요?”

“그럼요, 세훈 씨. 방송 전부터 실검 1위를 찍은 바로 그 걸그룹이잖아요. 아주 유명한 분이 이 그룹의 엄청난 팬이라면서요?”

“맞아요. 너무 좋아하셔서 기획사에 직접 투자도 하셨다고 하네요. 이 자리에 한번 모셔볼까요?”

퓨어걸즈 멤버 네 명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순수하고 상큼한 퓨어걸즈입니다!”

남자 엠씨가 물었다

“혹시 그분한테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리더인 이얼은 마이크를 붙잡은 채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강진후 대표님! 믿어주신 만큼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강진후 대표님도 팬으로 사로잡은 사랑스런 소녀들. 그럼 들어볼까요? 퓨어걸즈의 캐치미 플리즈!”

“푸웁!”

순간, 난 마시던 커피를 뿜었다.

엘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진후는 정말 걸그룹을 좋아하나 보네요.”

난 깜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에요.”

“뭐가 아닌데요? 괜찮아요. 솔직하게 말해요. 설마 제가 걸그룹 좋아한다고 화내기라도 하겠어요?”

“…….”

그런데 왜 목소리가 화난 것 같을까? 기분 탓인가?

“아, 아니. 전 진짜 결백해요!”

엘리는 커피를 마시며 차분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걸그룹 좋아하는 게 잘못도 아닌데요.”

“뭐, 그건 그렇죠.”

“하지만 그 사실을 숨기고 몰래 투자한 건 잘못이죠.”

“……결백합니다.”

대체 왜 이런 오해가 생긴 거야?

설마 저쪽 기획사에서 내 이름을 팔아서 어그로를 끈 건가?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뜨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못 하겠는가?

하지만 상식이라는 게 있다면 결코 하지 않을 짓이다. 대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게 아니라면…….

난 오택규를 보았다.

어째서인지 택규는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뭐야! 돈은 내가 투자했는데 왜 강진후한테 감사하는데?”

“역시 니가 원흉이었구나!”

“얼마 전 이자 들어왔기에 우리 이얼이 잘 되라고 지원해줬을 뿐이야.”

“그게 얼만데?”

“30억.”

이 정도면 중소엔터쯤은 통째로 사겠는데.

세상에 좋아하는 걸그룹에 30억 원 쏟아 붓는 놈이 어디 있어?”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니 덕질에 왜 날 팔아?”

“뭔 소리야? 분명 Edm엔터 통해서 내 이름 약자인 OTK가 투자하는 거라고 전하라고 했는데!”

“…….”

그쪽에서 착각할 만하겠는데.

“아! 시작했네. 이거 끝나고 얘기하자.”

< 미래를 보는 투자자 409 > 끝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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