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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13

EP.412 16. 기사 이반 (20)

니카는 자신이 남장하고 있었던 이유를 집안 문제로 포장했다. 시골 장원의 후계자로 태어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사가 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남자로 키워졌다고 말이다.

“옛날이었다면 데릴사위라도 데려왔을 텐데, 요즘은 워낙 힘들면서 보상도 적은 기사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말이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딸을 남자애로 키우다니. 그냥 때려치우고 작위 반납하면 안 되나?”

“하하, 저희 집안이 같은 땅을 100년 넘게 다스리고 있어요. 아버지가 워낙 완고하신 분이셔서 그건 절대 용납이 안 되나 봐요.”

니카의 이야기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지어낸 게 아니었다. 장원을 기반으로 한 토속 무력집단의 쇠락은 현재 제국의 지방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었다. 얼마 전에 그녀의 목숨을 노렸던 사냥꾼들 역시 그러한 부류 중 하나였다.

“그럼 너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정식으로 기사가 될 거야?”

“글쎄요.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정규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제 신체 능력으로는 아직 힘들어요. 특히 체격 문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더라고요.”

니카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것은 단순히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의 경험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비실비실한 자신의 몸을 바꾸기 위해 지금까지 무던한 노력을 해왔었다. 좋다는 약은 다 사 먹고, 기사 후보생들이 실제로 받는 훈련을 똑같이 소화했으며, 주기적으로 신성력을 이용한 체형 교정 마사지도 받았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의 체격은 또래들과 비교해 뒤떨어졌다. 심지어 사춘기에 들어서자 여자처럼 어깨가 좁아지고 골반이 발달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사람들 앞에 나설 때 턱에 수염을 붙이고 어깨와 가슴에 충전재가 들어간 보정 속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었다. 이 나라는 아직 지도자에게 남자다운 위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저 자신을 감추지 않고 모두 드러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어떤 해방감 같은 것이 느껴져요.”

그녀의 고백을 들은 레이나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니카의 심정에 백분 공감할 수 있었다. 상대는 기사, 자신은 곡예사라는 차이가 있을 뿐, 부모가 바라는 모습으로 자라기 위해 가짜 자신을 강요받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이번 여행이 끝나면 어떻게 할 거야? 기사는 그만두고 신부 수업이라도 받을 거야?”

엘라가 말한 신부라는 단어가 주는 민망함에 니카는 얼굴을 붉혔다. 과연 황태자로 돌아간 자신이 여자의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건 불가능했다. 자신의 안에 여자의 마음이 있다는 것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살기 위해서는 황태자로서의 자신을 버려야 했다. 그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제 어깨에 내걸린 기대가 만만치 않아서요. 여자로서의 삶은 아쉽지만 포기해야죠. 그래도 괜찮아요. 잠시지만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할래요.”

“좋아.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해. 언니들이 다 해줄 테니까.”

니카의 사연을 알게 된 엘라와 레이나는 며칠이나마 그녀를 제대로 여자애로 만들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그녀를 데리고 시장에 있는 모든 옷가게를 들락거리며 그녀에게 어울릴 만한 옷들을 찾으러 다녔다.

“이 옷 어때?”

“어휴, 그건 너무 수수하잖아. 자, 그것보다 이거 입어 봐.”

그들은 경쟁적으로 니카의 옷을 벗기고 입혀댔다. 그녀는 그들이 자신의 몸을 마구 주무르고 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낄 새도 없이 옷을 갈아입는 일을 반복했다.

두 사람은 그녀가 하나의 옷을 입을 때마다 그녀를 앞에 두고 그 옷의 맵시에 대해 품평하곤 했다. 둘은 자신이 가져온 옷이 상대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 둘 사이의 그러한 신경전은 어느새 평소 서로에 복장에 대해 가졌던 불만을 토로하는 자리로 발전했다.

“엘라, 네가 들고 오는 것들은 노출이 너무 심해. 니카는 무대에 서는 게 아니란 말이야. 이참에 솔직히 말하는 건데, 네가 평소에 입고 다니는 치마도 너무 짧아.”

레이나가 엘라의 다리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그녀의 미니스커트는 고작 한 뼘 길이밖에 되지 않았다. 그 아래 드러난 그녀의 다리는 대부분 검은색 스타킹이 가리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살짝 드러난 허벅지의 맨살이 더 강조되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가리려면 다 가리지. 좀 더 긴 건 없어?”

“에이, 그러면 다리 찢는 동작할 때 방해되잖아.”

엘라는 180도 위로 다리를 들여 보였다. 니카는 그녀의 팬티가 보일까 싶어 숨을 헉 들이켰지만, 다행히 그녀는 안에 검은색 핫팬츠를 입고 있었기에 속옷이 보이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민망한 자세라는 것은 변함없었기에 레이나는 그녀를 제지하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마야가 먼저 나섰다.

“천박해.”

지금까지 가만히 그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던 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노골적인 적대감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엘라의 다리를 쏘아봤다.

그녀의 차림새는 늘 마야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마치 고양잇과의 맹수를 연상케 하는 잘 빠진 형태의 두 다리는 그녀가 평생 노력해도 갖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그녀의 질투심을 자극하는 것은 그녀가 원더스타인 앞에서 취하곤 하는 행동이었다.

기차에서도 항상 단장님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서 다리를 꼬고 있거나 보란 듯이 반대편 의자에 발을 걸치고 다리를 뻗어대곤 했다. 마야가 보기에 그녀의 그런 행동들은 다 단장님을 유혹하려는 수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엘라는 그녀의 목소리에 질시의 빛이 섞여 있는 것을 눈치채고 코웃음을 쳤다.

“흥! 내 다리가 예뻐서 드러내는 건데 그게 뭐! 너희들 질투하는 거 아냐? 레이나 너는 두껍고, 마야 너는 앙상하니까!”

“두, 두껍다고? 그, 그게 무슨…….”

“허벅지 살이 불룩 옆으로 튀어나오니까 넌 이런 거 못 입는 아냐? 그치? 응?”

“아니야! 나, 나도 그 정도는 소화해낼 수 있어. 하, 하지만 너무 선정적이니까……”

“선정적? 누가 누구에게 하는 소리래. 네 평소 복장도 노출만 없을 뿐이지 항상 몸매를 강조하고 있잖아. 지금 입은 스웨터도 봐. 그건 원래 좀 펑퍼짐하게 입는 옷인데 몸에 딱 달라붙어서는…….”

엘라는 굴곡진 S자 형태를 한 그녀의 몸을 보며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었다. 단순히 가슴 크기만 따진다면 서커스단 내에서 유라크네가 제일이었지만, 허리의 잘록함 대비 가슴의 풍만함을 비교하자면 그녀가 최고였다. 비록 맨살은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녀의 꽉 끼는 스웨터와 청바지는 충분히 그녀의 몸매를 완벽하게 표현해내고 있었다.

“맞아. 천박해.”

마야는 이번에도 끼어들어서 한마디 거들었다. 레이나의 가슴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는 적개심이 가득했다. 마야가 보기에는 그녀가 어떤 면에서 엘라보다 더 얄미웠다.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것을 숨기는 척하는 것이 사람을 더 기만하는 것 같았다. 자신은 드러내려고 해도 드러낼 게 없는데…….

“잠깐, 이게 진짜. 아까부터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 말끝마다 자꾸 천박하대?”

“확실히……. 옷에 대해서는 마야 네가 누굴 비난할 처지가 아니야. 목 늘어난 셔츠에 보푸라기가 일어난 치마, 맞지도 않는 외투를 적당히 걸치고 다니잖아.”

레이나의 지적에 마야는 근엄함을 한껏 담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외양이라는 건 어차피 다 환상…….”

“아이고, 그러세요. 아동복 입는 꼬마 아가씨?”

“……뭐라고? 내가 아까 말했잖아. 그건 아동복이 아니라…… 원래 단추를 잠그지 않고 입는 옷…….”

세 사람의 언성은 점점 높아졌다. 그 중간에 낀 니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런 그들을 입을 다물게 만든 것은 어떤 아이의 울음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의 뒤를 조용히 따라 다니던 루엘로가 울먹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 언니들…… 나…….”

세 사람은 아차 싶은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자신들을 주목하고 있었다. 옷가게에서 여자애들끼리 옷을 두고 다투는 상황이라 딱히 심각한 일도 아니라 수군대거나 킥킥거리는 것이 전부였지만, 어린 루엘로 입장에서는 충분히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미, 미안, 루리! 우리가 너무 흥분했어!”

“우리 그만 싸울게, 그러니까 그만 울어.”

“자, 뚝.”

그들 세 명이 동시에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루엘로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보였다.

“우흑, 그, 그런 게 아니야. 어, 언니들 이것 좀 봐.”

루엘로는 손에 들고 있던 양동이 형태의 종이 상자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쇼핑을 시작할 때, 그녀가 배고프다고 해서 사준 길거리 닭튀김이었다. 보통 사람의 10배 가까이 먹는 그녀의 식성을 고려해서 가장 양 많은 것으로 샀는데 어느새 다 먹어버린 모양이었다.

“미, 미안……. 아껴서 먹으려고 했는데 먹다 보니까……. 언니들한테 한 입 나눠주지도 못하고…….”

자신들 때문에 운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세 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그녀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애썼다.

“걱정하지 마! 오늘 단장에게 용돈은 넉넉하게 받았으니까!‘

”그럼. 먹을 건 또 사면 돼.“

”너희들 지갑 열어서 돈 모아 봐.“

그들은 아까 나누었던 용돈을 갹출해서 루엘로에게 다시 간식을 사주었다. 그녀는 각양각색의 과일로 만든 탕후루 20여 개를 양손에 쥐고 번갈아 가며 마구 먹어댔다.

“에헤헤, 너무 맛있어.”

양 볼을 두툼하게 부풀리고 행복하게 웃는 그녀를 보고 마야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어린애가 복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고 귀엽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아까 언니들이 싸우던 거 나는 괜찮았어. 아빠가 그러는 거 많이 봤거든.”

“아.”

그녀의 말에 나머지 세 사람은 탄성을 내뱉었다. 수탉 미노바. 그는 서커스 업계에서 소문난 싸움꾼이었다. 그가 다른 사람과 시비가 붙어서 다투는 모습을 자주 봤던 루엘로에게 언니 세 사람이 싸우는 것은 가벼운 말다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큰일이네. 우리 루리가 이렇게 먹는 걸 좋아하는데 서커스단에 돈이 없어서.”

“걱정하지 마. 조만간 큰돈이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엘라는 어제 나누었던 회의 내용을 떠올리며 자신감을 담아 말했다. 물론 아나이스가 단단히 주의시켰기에 그 자금의 출처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었다. 어차피 레이나도 마야도 루엘로도 그런 것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곧 형편이 펴진다는 사실을 반길 뿐이었다. 니카만이 잠시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가 말았다.

“단장님이 그러셨어. 내가 힘이 강해진 대신 많이 먹어야 한다고. 안 그러면 성장에 쓰일 에너지를 소모해버리고 말 거래.”

“왜 날 보면서 말하는 거야?”

마야는 루엘로가 그 말을 하면서 자신을 흘끔거린다는 것을 깨닫고 질문했다. 그녀는 잠시 엘라의 눈치를 봤다가 입을 열었다.

“웅, 그, 그건…… 그 얘기를 할 때 엘라 언니가 옆에 있었는데…… 열심히 안 먹으면 나중에 마야 언니처럼 될 거라고 해서…….”

“뭐?”

마야가 엘라를 돌아봤다. 그러나 방금까지 옆에 있던 그녀는 니카를 끌고 어느새 저 멀리 앞서나가고 있었다.

다섯 사람은 그렇게 웃고 떠들고 때로는 작은 말다툼을 주고받으며 왁자지껄 하루를 보냈다. 니카는 오늘 하루로 괴물서커스단에 들어온 가치는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일정을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로 돌아가는 길. 루엘로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였다. 네 명의 언니들은 그것을 보고 또 근처에 길거리 간식을 파는 곳이 없나 찾아보려는데 그녀의 머리카락이 일어나더니 그들의 팔목을 붙잡았다.

“아니, 배고파서 그런 거 아니야. 그냥 갑자기……. 갑자기 눈물이 나와서……. 나…… 1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거는 꿈도 못 꿨는데…….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죽는다고……. 약 먹고 아프고, 갇혀서 지내고…… 그랬는데, 흑. 그냥 지금이 너무 좋아. 아빠랑…… 단장님이랑…… 다른 아줌마, 아저씨, 오빠, 언니들하고 같이 있어서…… 흑. 이, 이렇게 행복한 날은 처음이야, 으앙!”

귤색 머리의 소녀는 그 자리에 서서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철이 들 때부터 은하수를 주기적으로 몸에 주사 맞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다가올 죽음을 기다렸던 그녀. 어린 나이답지 않게 의연한 태도에 지금까지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도 꾹 억눌러왔던 무언가가가 쌓여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녀의 울음은 감히 위로의 말을 던지기도 힘들 정도로 처절함을 담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마야는 울다가 지쳐서 제자리에 쓰러져 잠들려는 그녀를 염동력으로 받쳐주었다.

마야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의 눈에도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루엘로가 뿜어대는 무언가가 그들의 감정을 자극한 것이다.

마야는 언제나 그렇듯 무감정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녀는 겉보기와 달리 속으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왜 자신은 저들과 같이 울 수 없는 것일까? 왜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같은 마음의 풍경을 공유할 수 없는 것일까?

그녀가 품은 의문은 곧 그녀가 메모리 디스크를 해독할 수 없는 이유와 이어져 있었다. 단장님과 약속한 날까지 이제 6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과연 자신은 그것을 달성할 수 있을까? 아니, 평생 그게 가능하긴 할까? 엄마가 남긴 메시지를 읽는 일이.

그녀는 레이나가 루엘로를 등에 업고, 엘라와 니카가 짐들을 수습하는 광경을 지켜봤다. 자신도 저들과 같은 곳에 서고 싶었다. 루엘로의 눈물에 공감할 수 있는…….

그 바람이 그녀에게 어떤 작용을 일으켰을까? 그 순간, 그녀가 품은 마음의 도화지에 무언가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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