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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15

EP.414 16. 기사 이반 (22)

“지금 막 색칠하려던 참이었어요.”

마야는 원더스타인이 자신의 동요를 알아채기 전에 재빨리 색 정보를 불러들여 그림 위에 물감을 덧입혔다. 장미 풍차 카바레에서 한 수련 덕분에 그녀는 물감을 미세한 입자의 형태로 뿌려서 유화를 컬러 사진에 가깝게 뽑아낼 수 있었다.

선화에 색이 더해지자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색 정보를 읽었을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것은 은백색 머리카락을 가진 무표정한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마야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곳에 있는 것은 그녀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누구……?”

그림 속 인물에 대해 질문을 하려던 마야는 원더스타인의 표정을 보고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림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애틋함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커스단의 여인 중 누구도 받지 못했던 종류의 눈빛이었다. 한참 동안 그림을 바라보던 원더스타인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확실히 놀랍군요. 정말 실제와 똑같이 생겼습니다. 물론 제가 떠올린 사람이랑은 다른 사람이지만요.”

“그렇다면…… 제 마법이 실패한 건가요?”

그녀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 속마음을 정확히 읽어낸 것 같네요. 다르다는 건 마야 양이 마법을 사용하던 순간, 제가 짜냈던 이미지와 다르다는 말이었어요. 아무래도…… 이 마도구 앞에서는 자신을 속일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마법은 잘 완성된 것 같군요.”

마야는 그의 말투에서 대화를 서둘러 수습하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아마도 이다음에 자연스럽게 따라 나올 질문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타인의 일에 무관심한 마야였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간접적으로 내비치는 신호를 무시하고 바로 궁금한 것을 캐물었다.

“누구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이분요? 그냥…… 예전에 알던 사람입니다.”

그녀는 얼버무리는 그를 향해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추궁했다.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서요.”

“흠, 그걸 부정하면 당신의 마법이 실패한 것이 되고 말겠군요? 알겠습니다. 하하, 이것 참. 말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제가 예전에 차였던 사람입니다.”

“차였다고요?”

평소와 다르게 놀란 목소리로 되묻는 마야의 반응에 그는 민망한 듯 볼을 긁적였다.

“차였다고는 하지만 고백한 것은 아니었어요. 돌봐주고 돌봄을 받는 관계였죠. 어느 날 저는 그분에게 경칭을 생략하고 누나라고 불렀습니다. 그러한 접근이 그분을 불편하게 만든 모양인지 얼마 후에 그분은 저를 두고 떠나버렸어요.”

“그걸로 끝인가요?”

마야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며 그를 노려봤다. 마치 연인에게 과거를 추궁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 분위기에 이끌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연인에게 과거를 변명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정말이에요. 그 이후에 다시 만난 적은 없어요.”

“하지만 제 마법이 단장님의 속마음을 정확히 짚었다면서요. 그러면 여전히 그분을 좋아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집요하다. 그는 다른 질문을 받을 걸 후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군요.”

마야는 불만과 안도감이 반반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단장님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걱정했던 것과 달리 현재의 누군가는 아니었다.

그녀는 그 점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근처의 누군가를 그가 사랑하고 있었다면, 자신에게 돌아올 기회가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거절당한 과거를 마음에 두고 있는 정도라면 충분히 극복 가능했다.

보통 상대가 실연의 아픔을 품고 있을 때, 마음의 빈틈을 파고들기 좋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능숙하게 활용하기에는 그녀의 사회성이 너무 모자랐다. 그녀가 고심 끝에 한 행동은 그저 손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것뿐이었다.

“힘내세요.”

무감정한 표정. 무뚝뚝한 말투.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녀에게 사람을 위로할 의지가 전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원작의 그녀를 알고 있는 그가 보기에 이 정도만 해도 그녀의 사회성이 크게 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야에 이어 이반도 망가뜨리고 말았다는 죄책감에 울적해 있던 그에게 그녀의 이런 변화는 작은 힘이 되었다. 자신의 선택이 꼭 나쁜 변화를 일으킨 것만은 아니었다.

“고맙습니다.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어쨌거나 실험은 성공적이군요. 그러면 이제 아나이스 님께 말해서 이반, 아니, 그 검투사분을 이곳으로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긴 작업이 될 거예요. 몇 달은 걸릴 겁니다.”

원더스타인은 도화지 위의 그림을 한 번 더 바라봤다. 그가 실연을 겪은 것은 이미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마야는 너무나 생생하게 그녀의 모습을 그려내는 바람에 당시의 기억이 모두 떠오르고 말았다. 그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내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림은 지워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어요.”

마야는 염동력으로 스케치북을 붙잡고 아래위로 흔들었다. 그러자 도화지 위의 선과 색이 모두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그림이 지워지기 전에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을 똑똑히 눈에 담아뒀다.

전체적인 인상은 전혀 달랐지만 어쩐지 눈매나 입술에서 원더스타인을 연상시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머리카락이 그와 비슷한 색의 금발인 것도 한몫하는 것 같았다.

‘단장님은 저런 취향이었구나. 조금 스타일을 바꿔볼까.’

그녀는 오늘 그에 대해 더 알게 된 것이 만족스러웠다. 이 정보들을 이용하면 앞으로 원더스타인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들뜬 기분은 몇 초 가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아까 건강 체크를 하면서 봤는데요. 허리에서 느껴지는 신성력이 거의 소멸한 것 같더군요. 이제 며칠 정도 있으면 마야 양의 척추를 제대로 검사할 수 있을 겁니다. 마야 양도 제가 꼭 원래 대로 돌려놓겠습니다. 믿어주세요.”

원더스타인은 혹시나 자신이 다른 사람의 치료에 정신이 팔려 그녀의 치료를 까먹은 건 아닌가 그녀가 오해를 품을까 봐 위와 같은 말로 그녀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의도와 달리 전혀 그녀를 안심시켜 주지 못했다. 그의 말을 들은 그녀의 몸은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원래 그녀의 계획은 신성력이 줄어드는 타이밍에 맞춰서 몸도 다 나은 척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장님께 몸을 주물럭거려지는 것이 너무 기분 좋았던 나머지 그녀는 일부러 치료를 질질 끌면서 받아버렸고 그 탓에 몸이 나은 척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역시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구나.’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눈에 띌 정도로 긴장하는 것을 보고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그는 그녀의 심리를 정확히 읽어냈다. 그 이유는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어, 어쩌지?’

아무리 호인인 원더스타인이라도 꾀병으로 그를 몇 개월 동안 기만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그가 방을 나가고 나서 그녀는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월리는 그런 주인을 보며 앞발로 이마를 치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

인간의 기억은 보통 2가지 방법으로 보존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나는 육체적인 저장소인 뇌를 통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저장소인 영혼을 통해서였다. 마법 아카데미에서는 이 2가지의 차이점을 설명할 때 몇 가지 비유를 들곤 했다.

현대인인 원더스타인이 그것을 이해한 방식은 바로 로컬 스토리지와 네트워크 스토리지의 차이였다. 뇌가 현실에서 직접 사용하는 컴퓨터의 저장 장치라면 영혼은 영적인 네트워크에 접속해 자신과 관련된 정보들에 접근하고 불러들일 수 있는 일종의 ‘암호화된 계정’과 같은 것이었다.

원더스타인 자신이 처한 처지를 위의 예로 분석해 보자면, 원더스타인이라는 컴퓨터에 허수아비의 영혼이 로그인되어 네트워크에서 기억을 내려받아 뇌에 덮어씌운 상태라 할 수 있었다. 엘라가 기억상실에 걸렸을 때, 나름대로 관련 서적을 찾아보고 마야에게 강의도 듣고 내린 결론이 그것이었다.

그 자신에 대해선 여전히 몇 가지 의문점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확실한 것은 영혼이 온존하다면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영적 차원에서 정보를 불러들여 기억을 복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정보를 기록할 뇌가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원래 뇌는 바이오맨서의 능력으로도 다루기 힘든 영역이었다. 진단 기능으로 대상의 뇌를 들여다봐도 어떤 기억과 자극에 반응하는지 그 여부만 확인할 수 있을 뿐, 기억 자체를 읽어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마야의 마도구가 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가 진단 기능으로 뇌세포를 마이크로 단위로 읽어내면서 그에 대응해 그녀가 기억의 단면들을 한 장 한 장 그려낸다면, 그의 기억을 원상태로 복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그게 가능할지 부작용은 없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그다음 날 바로 이론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에 착수했다.

두 사람의 실험 대상이 되어준 것은 바로 시그마였다. 그녀는 원더스타인의 도움 덕에 몸에 있던 개의 유전자를 모두 제거하긴 했으나 최면의 영향 때문인지 여전히 개처럼 행동했으며 가족이나 고향에 대한 것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내 몸에 손대지 마!”

마야가 마법을 발동하자마자 그녀는 사납게 그녀를 밀치고는 두 사람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네 발로 경계를 취하는 자세를 취했다. 정신을 헤집는 듯한 감각이 그녀가 콤프라치코스에게 강제로 인격을 개조당할 때를 떠올리게 한 것이다.

“저기, 시그마 양? 마야 양은 당신에게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닌…….”

“크아앙! 하얀 머리 싫어! 저리 가! 단장님, 나 괴롭히지 마요! 내보내 줘요!”

시그마는 원더스타인의 품속에 달려들어 그의 볼을 혀로 마구 핥아댔다. 그 모습을 본 마야는 눈을 감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눈을 떴다.

“단장님, 잠시 나가 계세요.”

“저기, 마야 양?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13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저한테 쟤를 달랠 방법이 있어요.”

그녀의 단호한 태도로 보아 목소리에 실린 감정은 둘째치고 거짓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믿어 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너무 험하게 다루지는 말아 주세요.”

“단장님! 단장님!”

시그마는 그에게 계속 매달리려고 했지만, 마야가 염동력으로 제지했다. 그녀는 허공에 팔다리를 휘젓는 상태로 떠올랐다.

“이거 놔! 하얀 머리! 너 싫어!”

마야는 원더스타인이 방을 완전히 나간 것을 확인한 후에 마력을 움직였다. 그녀가 만든 것은 바로 그녀가 마음으로 빚어낼 수 있는 환상 중 두 번째였다. 금발의 미남자가 허공에 나타났다.

“어, 다, 단장님?”

환상이었기에 소리는 없었다. 마야는 그를 움직여 다짜고짜 시그마를 끌어안게 했다. 그리고 차마 그녀가 똑바로 볼 수 없는 행동을 그녀에게 하도록 명령했다.

“다, 단장님, 이, 이러면……. 흐앗, 기, 기다려…… 흐읍!”

잠시 후, 마야는 시그마가 완전히 얌전해진 것을 확인했다. 자신은 몇 번을 시도했지만 가짜라는 것을 알아서 그런지 별 느낌이 없었는데 시그마처럼 동물 수준의 판단력을 가진 이에게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환상을 지우고 원더스타인을 다시 방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는 침대 위에 몽롱한 눈으로 개처럼 혀를 쭉 내민 채 바닥에 엎드려 침을 흘려대고 있는 시그마를 발견하고 놀란 눈으로 마야를 돌아봤다.

“정말 얌전해졌군요. 어떻게 한 거죠?”

그의 질문에 마야는 얼굴이 붉어지려는 것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정신적으로 안정을 주는 환상들을 보여 줬어요.”

마야의 말에 원더스타인은 그런 종류의 영상을 전문적으로 다루었던 유튜버들을 떠올렸다. 계곡과 폭포, 모닥불,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 같은 것들이었다. 자신을 나가게 한 것은 아마 시그마가 영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의존해서 그랬기 때문일 것이다.

“좋습니다. 그러면 치료를 시작해보죠.”

“네, 네…….”

몽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시그마를 보고 원더스타인은 나중에 자신도 한 번 마야에게 보여달라고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얼마나 효과가 좋길래 이러지?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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