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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16

EP.415 16. 기사 이반 (23)

시그마의 최면을 푸는 작업은 순식간에 끝났다. 마야가 제공하는 초당 30장의 그림에 맞춰 원더스타인은 신경세포를 조작했고 실험을 시작한 지 3분도 되지 않아 그녀의 기억을 모두 원상태로 복구할 수 있었다.

제정신을 차린 시그마는 유라크네가 데려가 목욕을 시켰다. 최면 상태의 그녀는 몸에 물을 묻히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씻은 적이 없었고 심지어 옷도 원래 입고 있던 낡은 거적때기만 고집했었기에 행색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씻고 옷을 갖춰 입은 그녀의 모습은 평범한 여자아이나 다름없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을 돌봐준 단원들에게 연신 허리를 숙여댔다. 그녀는 자신이 개처럼 굴 때의 일들을 모두 기억하는지 단원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을 어려워했다. 특히 자신을 치료해준 두 사람에게는 제대로 된 감사 인사 한마디 못 할 정도였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그런 행동을 기억을 읽힌 민망함 때문이라 추측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군요.”

그의 말을 들은 시그마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잠시 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저기 단장님? 저……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뭐죠?”

“그러니까…… 저 혹시…… 제가 앞으로 이곳에서…….”

그녀가 뭔가를 말하려는 그때, 밖에 나갔던 아나이스와 그녀의 집사인 바텔이 돌아왔다. 두 사람은 원더스타인에게서 시그마의 고향과 인적 사항을 듣고는 관련 자료를 조사하러 관청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주소지를 확인해 봤어요. 과연 관련 실종 신고가 몇 개월 전에 접수된 게 있더군요. 그래서 간 김에 부모 쪽에 전보도 보내고 왔어요.”

“벌써 그렇게까지…….”

시그마는 전보를 보냈다는 말에 당황하는 듯했다. 아나이스는 원더스타인 앞에 서서 그의 얼굴을 넋 놓고 바라보며 쭈뼛거리는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역시 자신의 예상이 옳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시그마 양의 부모님의 걱정을 얼른 덜어드리고 싶었어요. 시그마 양도 고향에 빨리 돌아가고 싶죠?”

아나이스의 질문에 시그마는 고개를 붕붕 저어댔다.

“아, 아니에요! 아, 그, 그러니까…… 고향에 돌아가기 싫다는 게 아니라……. 단장님께 너무 도움만 받은 것이 죄송해서……. 일단 고향에 돌아갈 차비를 벌 때까지만이라도 이곳에서 일을…….”

“그럴 것 같아서 고향으로 갈 기차표까지 구해왔어요. 아, 걱정하지 마세요. 시그마 양에게 돈을 받을 생각은 없으니까요.”

이쯤 되면 시그마도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분한 표정을 지으며 아나이스를 노려봤다.

“저…… 혼자서 돌아가기에는 너무 무서워요……. 그러니까 서커스단이 고향 근방을 지날 때까지만이라도 같이 있으면…….”

“염려 마세요. 가는 길에 당신을 지켜줄 경호원도 고용했으니까요. 용병 길드에서 검증된 사람을 구했죠.”

아나이스는 밖에 나간 김에 그녀를 고향으로 보낼 준비를 완벽히 마치고 돌아왔다. 일단 시그마 본인과 대화를 나눠보고 판단을 내리려 했던 원더스타인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빠른 일 처리였다.

그는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서두르는지 몰랐다. 그러나 다른 여자 단원들은 시그마와 아나이스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를 보고 뭔가를 눈치채고 한 마디씩 얹어대기 시작했다.

“대단하세요, 자작님!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건 좋은 거예요.”

“그래. 은혜를 갚겠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 그런 걸 빌미로 어린애를 부려 먹을 정도로 우린 가난하진 않아.”

“맞아. 부모님 걱정하셔. 어서 돌아가.”

“아니에요! 저는…….”

시그마는 그들의 말에 반박하려 했다. 자신은 급히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도시의 식당에 여급 자리를 알아보러 나왔다가 사기꾼들에게 속아 이곳으로 팔려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가면서 등을 떠밀자 도저히 뭐라고 대꾸하기 힘든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그마를 역까지 태워줄 마차가 도착했다고 집사 바텔이 알려왔다.

아나이스가 돌아온 지 불과 몇 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빨라도 너무 빠른 속도였다. 사실 아나이스는 관청에 가기 전에 마차부터 먼저 수배해 놓았다고 그들에게 밝혔다.

“하하, 과연 그렇군요. 그래서 이렇게 빠르게……. 좋습니다! 너무 서두르는 것 같긴 하지만……. 자, 그럼 나가 볼까요?”

시그마는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미는 원더스타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녀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이제 확실히 자신의 의지를 보여줘야 할 때였다.

“단장님! 저를 서커스단에…….”

그러나 그녀가 용기를 내어 꺼낸 말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누군가의 외침에 파묻히고 말았다.

“동작 보세요! 며칠 쉬었다고 이 모양입니까? 저는 여러분께 실망했습니다!”

건물 밖으로 나온 그들을 맞이한 것은 한창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괴물 단원들이었다. 그것은 원래 일정에 없던 것으로 훈련 교관인 레이나가 방금 막 소집한 것이었다.

“갑자기 특별훈련이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그것보다 레이나 누나의 태도가 무서워요.”

“핫핫, 갑자기 옛날의 엘라 양이 떠오르는데요.”

단원들은 갑작스레 끌려 나와 훈련을 받는 상황에 투덜거리면서도 제몫은 다 해냈다. 우몬은 사람 머리통만 한 차돌을 수도로 깨부쉈고, 트라이머리는 뾰족한 바늘 밭 위에서 연속으로 공중제비를 돌았으며, 스벤은 날카롭게 세운 비수들을 손으로 날을 던지고 받는 것을 반복했다.

시그마는 그 살벌한 광경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옆에서 그녀의 표정을 살피던 엘라가 짐짓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서커스 그라프리에 도전 중이야. 저 정도도 못 하면 서커스단에 있을 자격이 없지.”

“어, 그, 그러니까 저, 저는…….”

시그마는 입을 뻐금거리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이래서야 도저히 서커스단에 받아들여 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하고 마차에 올라타야 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시그마 양.”

“……네.”

원더스타인은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그녀를 보고 내심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억을 읽은 것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미움을 살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는 그런 티를 낼 수 없는 몸이었다. 그는 늘 그렇듯 환한 미소로 그녀를 배웅했고, 그런 그의 태도에 그녀는 완전히 낙담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마야 양도, 아나이스 님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생면부지의 소녀를 위해 다들 아침부터 발 벗고 나서줬다. 떠나는 시그마를 향해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는 그들을 보고 원더스타인은 가슴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꼈다.

시그마가 숙소를 떠나고 나자 레이나는 바로 훈련의 정지를 선언했다. 단원들은 볼멘 목소리로 그녀를 향해 아우성을 쳤다.

“뭐야, 이랬다저랬다!”

“외출하려고 씻었는데 흙투성이가 됐잖아요!”

“아침부터 무리하니 뼈마디가 쑤시는군요! 노인학대입니다!”

“비, 비상 점검이었어요…….”

레이나는 방금까지 고수하던 철혈의 교관 같던 태도는 어디 가고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단원들의 항의에 쩔쩔맸다. 확실히 이번 일은 단원들의 주장이 타당했다. 곡예사가 군인도 아닌데 무슨 비상 점검이 필요할까. 원더스타인도 그 점이 의문이었기에 그녀가 설명하는 것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가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아나이스와 엘라가 나서서 단원들을 진압했다. 엘라는 그게 불만이면 자신이 다시 훈련을 맡아도 되냐는 식으로 그들을 윽박질렀고, 아나이스는 후원자로서 그동안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다며 소정의 격려금을 지급했다.

그렇게 시그마 건이 무사히 마무리되자 유라크네, 아나이스, 레이나, 마야, 엘라는 서로 손바닥을 짝 마주쳤다. 원더스타인은 그들이 뭐 때문에 그렇게 즐거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이반을 서커스단으로 데려오는 작업은 시그마가 떠난 날 오후에 바로 진행되었다. 지난 5일 동안 아나이스는 미리 투기장 쪽에 밑밥을 깔아둔 상태였다. 그녀는 지난번처럼 투기장 사업에 관심 있는 상속녀인 척 노예주들에게 접근했다.

“제가 직접 고른 검투사를 무대에 올려보고 싶은데, 그러면 또 다음 시즌까지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하죠? 아쉽네요.”

아나이스는 그들과 점심과 저녁을 함께하며 미끼를 던지고는 이반의 소유주가 접근하기를 기다렸다. 그는 일급 검투사의 소유주 중 유일하게 선수가 비어있는 링네임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베르카가 이반의 링네임을 대행하면서 공석이 되어버린 흑투사의 자리였다.

현재 흑투사의 링네임은 이반의 것으로 등록되어 있긴 하지만, 그는 경기에 출전할 수 없으니 사실상 버려진 상태나 다름없었다. 새로운 검투사를 사서 그 자리를 채우려면 이반이나 베르카 둘 중 한 명을 방출해야 하는데, 이반을 빼면 그의 밥줄인 ‘페트로프 13호’의 링네임이 날아가 버리고, 베르카를 내보내면 페트로프 13호를 연기할 사람이 사라졌다. 그래서 흑투사는 이번 시즌 내내 그냥 버리는 패로 둬야 했다.

물론 이반이 흑투사 링네임을 들고 다른 소유주한테 이적한다면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됐다. 그러나 흑투사의 링네임은 인기는 낮아도 승률은 높아서 최소 이적료가 흥행력에 비해 비싸게 책정된 데다가 이미 선수로서 가망이 없는 이반까지 묶여 있으니 살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원래 대로 시장에 내놓는다면 페르로프 13호의 이름을 탐내는 사람이 이반을 떠안고 사든가, 베르카를 다른 링네임으로 키워볼 생각을 지닌 사람이 흑투사를 버릴 생각으로 사든가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욕심 많게 양쪽의 알짜배기만 챙기고 남은 것들을 묶어서 팔려고 하니까 도저히 팔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적절한 구매자가 나타났다. 그는 아나이스에게라면 ‘흑투사 이반’을 팔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원하는 건 이번 시즌에 시험 삼아 굴려볼 링네임이었다. 이미 자기 휘하에 투기장에 내보낼 만한 실력 있는 기사가 있다고 했으니 그녀에게 이반의 존재는 어차피 별로 의미가 없을 것이다.

“어떻습니까, 자작 부인? 저한테서 그 링네임을 사실 생각 없으십니까?”

아나이스는 이 모든 계산을 그가 해내도록 교묘하게 유도했다. 절대 그녀 자신이 접근한 게 아니라 그녀가 우연히 흘린 사정을 듣고 그가 찾아온 것처럼 상황을 조장했다.

이반과 베르카의 소유주는 원래 흑투사가 받을 만한 시장 가격과 최소 이적료의 중간쯤 되는 비용을 제시했다. 아나이스는 일부러 가격을 몇 번 깎는 척하고는 결국 거래를 받아들였다.

이번 일은 클라라를 되찾아올 때와 달리 진짜 정당한 거래였기에 그녀는 대금을 지급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 정도로 큰돈은 없었다. 아직 황실 비자금을 손에 넣지 못했을뿐더러, 그것을 문제없는 돈으로 세탁해서 사용하려면 한두 달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한 가지 꾀를 내어 그 문제를 해결했다.

“이 흑투사의 링네임에 귀속된 선수의 채무가 위험한데요. 딱 1승만 남겨두고 있잖아요?”

이반은 노예 계약이 만료될 예정이었던 마지막 경기에서 져서 이 꼴이 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한 번만 승리를 더 달성하면 계약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내일이라도 제정신을 차려서 1승을 챙기고 나가버리면 어쩌죠? 규정상 링네임에 귀속된 선수에게 우선권이 있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녀석은 이미 선수로서 재기 불능이거든요. 그 조건을 채울 수 없을 겁니다.”

“흠, 그래도 불안한데요. 혹시 이게 함정은 아닌가 싶어서…….”

아나이스는 피에르에게서 배운 협상법을 능숙하게 써먹었다. 결국 그녀가 주저하는 모습에 안달이 난 상대편이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자신이 계약금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단, 첫 번째 경기는 제 검투사와 치르셔야 합니다. 혹시나 다른 3류 검투사와 짜고 치는 판을 만들지도 모르니까요.”

“제가 굳이 바보 한 명 자유롭게 해주자고 그러겠나요? 아무튼 좋아요. 제가 보유한 최고의 기사를 내보내죠.”

“경기는 3일 뒤. 어떻습니까?”

“문제없어요.”

그렇게 그녀는 흑투사의 링네임과 함께 이반의 소유권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

“계약 과정에서 대금 지급은 베르그송 상회의 이름으로 어음을 썼어요.”

보통 은행에서는 거래 3일 후에 어음이 들어왔음을 상회 측에 알렸다. 당연히 이번 일 같은 경우는 해당 거래에 대해 보고받은 적 없는 베르그송 상회가 부정거래라고 고지할 것이고 은행에서는 괴물서커스단에게 수배령을 내릴 것이다.

“어음 위조는 중대 범죄예요. 경영자인 제가 직접 발행한 거지만, 저는 지금 진짜가 아니니까 인정이 되지 않겠죠. 그러니까 아무 탈 없이 이번 거래를 끝내려면 3일 후에 이 남자를 경기장에 올려서 상대를 격파해야 해요. 그러면 이 남자가 자유의 몸이 되고 동시에 어음도 상회에 알림이 가기 전에 회수할 수 있어요.”

“다 잘 될 겁니다.

원더스타인은 철야를 한다고 해도 3일 안에 이반의 기억을 완전히 복구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최면이나 약물에 의한 세뇌 정도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경기에서 이기는 정도라면 가능했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 이름을 뭐라고 부르죠? 흑투사라는 링네임도 엄밀히 말하자면 이 남자 것이 아닌데, 소유주한테 물어보니까 자신도 몇 다리 걸쳐서 건네받아서 본명에 대해 못 들었다고 하네요. 뭐 우리가 소유주니까 이름은 마음대로 붙일 수 있어요. 혹시 단장님께서 생각해두신 이름이 있나요?”

원더스타인은 낯선 방에 던져져 두려워하는 이반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검술 명가 페트로프 가문의 마지막 후손. 이름은 버린 지 오래된 남자였다. 하지만 그가 아는 역사에서 그는 투기장을 나서면서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만들어 붙였다.

원더스타인은 그가 자신이 아는 그 남자로 자라나길 바랐다. 그래서 그는 그를 그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그의 이름은 이반입니다. 이반 페트로프.”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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