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417

EP.416 16. 기사 이반 (24)

원더스타인은 이반이 자신이 붙인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할지 알 수 없었다. 원작의 그와 달리 지금의 그에게는 그 이름을 써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를 치료하는 일은 앞으로 최소 몇 달은 걸릴 예정이었다. 원더스타인은 그동안 단원들이 그를 노예 명으로 부르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 그 손님……?”

“얌전하게 있어 주세요. 당신을 치료할 겁니다.”

“치, 치료…… 조, 좋은 거다…….”

이반을 안심시킨 그는 바로 마야를 불러 작업에 들어갔다. 그녀가 기억 스케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15분 정도가 한계였다.

마력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영적 정보를 불러 들어는 데 엄청난 집중력과 정신력이 소모되었다. 한 사람의 삶을 수만 배는 가속해서 체험하는 셈이니 애초에 그녀 정도의 천재가 아니면 감히 시도할 수도 없는 일이기도 했다.

오전에 시그마를 치료하느라 3분 분량을 썼으니 오늘은 이제 12분이 남았다. 거기에 더해 내일과 모레 각각 15분씩 쏟아붓는다면 충분히 이반을 투기장에 올릴 수 있을 거 같았다.

다음 주부터는 다시 공연 일정이 잡혀 있으니 마야도 그때부터는 1주일에 20분 이상 시간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 달에 1시간 정도? 손상된 뇌세포의 양을 봤을 때, 그렇게 치료를 3, 4달 정도 이어 간다면 이반의 기억을 모두 복구시킬 수 있을 것이다.

치료가 시작되자 마야의 스케치북이 초당 30장의 속도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원더스타인은 그곳에 나타나는 그림을 따라 뇌세포를 조정해나갔다.

환상에는 소리가 없었다. 그러나 마법사들은 메모리 디스크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있었다. 아르노와 마야에게서 그것에 대해 들었을 때, 원더스타인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은 원작에서도 나왔던 설정이었기 때문이다.

TT1이 발매되었던 초기에 사람들은 왜 전리품 수집 메뉴(아르노의 천막)에서 동영상을 재생하는 경우 자막을 끄는 설정이 없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때, 제작사가 돌려준 답변이 걸작이었다.

플레이어들이 보는 동영상은 설정상 마법사들이 메모리 디스크에 환상으로 저장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원래 소리가 없는 게 정상이었다. 아르노가 환상에 소리를 실을 수 있는 실력자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없는 소리를 만들어 내서 재생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동영상에서 소리가 났던 것은 환상 마법사들이 환상을 기록할 때, 주변의 소리를 ‘자막’의 형태로 메모리 디스크에 담기 때문이었다. 아르노는 그것을 읽고 적당히 소리를 만들어 영상에 입혀서 플레이어들에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다만, 그는 예의 바른 사람이기에 기록한 사람의 정성을 생각해 자막을 지우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게임 내의 설정을 적절히 활용한 재치 있는 답변이었기에 팬들은 모두 재밌어했다. 물론 제작사는 그렇게 답변하고 나서 곧바로 다음 패치에서 ‘아르노가 여행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환상에서 자막을 지워주기로 하였습니다’라는 소식을 전하며 자막 끄는 옵션을 추가해주었다.

현재 마야의 스케치북에 나타나는 그림에도 자막이 달려 있었다. 메모리 레코드를 통해 전해지는 음성 정보를 그녀가 문자로 치환한 것이었다. 덕분에 원더스타인은 마치 소리를 끄고 외국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의 기억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사흘째가 되었을 때, 이반의 상태는 처음에 비해 많이 호전되었다. 말을 더듬는 건 여전했지만 자신이 누군지는 확실히 기억해냈다. 다만 투기장에 들어와서 보낸 10년의 세월 동안 겪은 일은 거의 떠올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가 레이나의 그림자처럼 자신을 10살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너무 깊게 잠들고 일어났을 때, 자기 직전의 일을 바로 생각해내기 힘든 것과 유사한 상태라 할 수 있었다.

“그, 그렇군요. 소, 손님께서 저를……. 가, 감사합니다……. 더, 덕분에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기, 기억도 되찾고……. 하, 하지만…… 구,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왜, 왜 저를 이렇게까지 도우시는지……?”

이반이 질문할 것을 예상한 원더스타인은 뭐라고 대답할지도 미리 준비해두었다.

“옛날에 당신 가문과 인연이 있어서 말이죠. 페트로프라는 이름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겠더군요.”

원더스타인은 원작에서 지나가며 나왔던 그의 과거를 기반으로 적당히 사정을 꾸며냈다. 이반은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를 듣더니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요. 배, 백부님은 그, 그런 분이었죠. 다, 단장님이 말씀하셨던 사건은 가, 가문 어른들이 조용히 덮고 지나가서 저, 저도 정확히 몰랐는데…… 그, 그때 단장님도 거기 계셨나 보군요.”

원더스타인이 털어놓은 이야기 중에는 이반이 투기장을 나가고 난 뒤에 가문의 옛 자료들을 모으다가 알게 된 것도 있었다. 현재의 자신도 모르는 가문의 사정까지 알고 있는 것을 보고 이반은 그를 완전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아무런 가진 것도 없는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을 리 만무했다.

원더스타인은 쉽게 자신을 믿는 그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원래 3명의 용사 중 가장 심성이 올바른 그였지만, 지금의 그는 그 이상으로 순진했다. 그렇기에 가문의 비전 검술도 함부로 남에게 가르쳐주고 믿었던 동생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기도 한 것이다.

“지금은 그것보다 내일 있을 경기를 대비하는 게 우선입니다.”

“겨, 경기요?”

“네. 당신이 자유를 되찾으려면 아직 1승이 더 필요하지 않습니까? 상대는 당신의 소유주가 보유하고 있는 검투사.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주, 주인님…… 아, 아니, 베, 베르카겠군요…….”

이반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지난 한 달 동안 그의 하인으로서 그에게 학대받았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그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무, 무리입니다……. 저, 저는 싸울 수 없어요……. 하,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싸우는 법 같은 건…….”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은 바로 당신의 전투 경험을 모두 되살릴 거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마지못해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침대 위에 누웠다. 원더스타인은 옆방에 대기하고 있던 마야를 불러 바로 치료에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자 선뜻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야 양? 괜찮은 건가요?”

그녀의 안색은 눈에 띄게 초췌했다. 이틀 연이어 기억 스케치 마법을 사용한 것은 아무리 천재인 그녀일지라도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신력은 마력처럼 하루 잤다가 일어났다고 해서 다시 차오르는 게 아니었다. 첫날 15분이 한계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그녀는 둘째 날에는 그보다 2, 3분 정도 줄어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스승님 앞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 없어서 억지로 15분을 채웠었다.

그렇게 무리한 탓인지 셋째 날인 오늘은 전날보다 더 힘들었다. 그녀는 자가 진단 결과 10분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그것을 말하는 대신 고집스럽게 고개를 붕붕 저어 보였다.

“할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원더스타인은 그 말을 듣고는 오히려 그녀에 대한 걱정이 더 솟구쳤다. 저렇게 말해놓고 위태위태한 지경까지 몇 번을 갔던 그녀 아닌가? 마야는 엘라와 달리 평소에 무리하는 타입이 아니었으나 이상하게 가끔 고집을 부리곤 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으니 나중에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그녀가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음을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았다.

어제도 원래는 이반의 기억을 투기장에서의 전투 초반부까지는 복구하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그녀가 기억을 읽는 속도가 뒤로 갈수록 점점 떨어져서 결국 거기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끝내고 말았다.

만약 그녀가 힘을 못 쓴다고 해도 그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표정으로 봐서는 무슨 말을 해도 고집을 꺾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대신 힘들면 언제든지 멈추는 겁니다.”

“네.”

그렇게 셋째 날 치료가 시작되었다. 걱정과 달리 마야는 순탄하게 이반의 기억을 읽어 내려갔다. 첫날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속도였다.

아무래도 그려지는 그림들이 어제나 그저께보다 간략한 덕분인 듯했다. 그런데 그 간략함이 도가 지나쳐서 어떨 때는 사람 대신 막대 인간이 서 있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마법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걱정하던 그는 신경세포 역시 같은 속도로 복구되는 것을 보고 그녀가 올바른 속도로 기억을 읽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왜 작업 속도가 올라간 건지 알 수 있었다.

일류 바둑기사는 지금까지 두었던 모든 대국을 암기한다고들 한다. 그것은 모든 대국의 날을 동영상처럼 기억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바둑판 위에서 바둑알들이 놓이는 데는 어떤 규칙이 있었고, 기사는 그 흐름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늘 그들이 다루는 것은 이반이 투기장에서 보낸 10년 동안 치른 전투의 기록이었다. 그 역시 싸움 자체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주고받은 기술과 수읽기를 그 맥락에 따라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제보다 간단한 그림으로도 같은 속도로 신경세포가 복구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끝날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원더스타인의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스케치북에 떠오르는 그림의 내용이 갑자기 변한 것이다.

험악한 분장을 한 채 흉악한 무기를 들고 휘두르던 상대 검투사는 어디 가고 갑자기 묘령의 여인이 나타났다. 배경 역시 변했다. 이반은 투기장 대신 평범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계속 그림에 나타나는 그 여인과 함께.

마야는 그것을 보고 적잖이 당황해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는 안도감에 잠시 집중력을 놓은 사이 메모리 레코드가 지시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기억을 읽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작업을 중간에 멈출 수 없었다. 연속적으로 생성되는 신경세포를 갑자기 뚝 끓는다거나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다른 곳에 접합했다가는 기억이 꼬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숨소리가 변하는 것을 보고 역시 그녀가 실수했음을 알아차렸다. 지난 이틀 동안은 이런 일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무리한 게 맞는 것 같았다.

이반의 대전 기록에 따라 순차적으로 기억의 복구를 진행했기 때문에 원더스타인은 그의 현재 전투 경험이 어디까지 왔는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아마 2년 전의 그와 유사할 것이다.

그 정도로 흑투사 베르카를 이길 수 있을지는 조금 있다가 그가 깨어난 뒤에 검증해볼 일이었다. 그는 일단 마야가 계속 기억을 복구하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원더스타인은 그림 속의 여인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네스. 이반보다 5, 6살 많은 여인으로 그가 이 도시에서 좋은 추억을 가진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투기장의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검투사들의 식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맡은 일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 역시 노예 처지였다. 이반이 그보다 나이가 많은 10대 검투사들에게 식사를 빼앗겨 자주 배를 곯던 상황에 그녀는 그에게 식사를 몰래 따로 챙겨주곤 했다.

며칠 굶은 채 경기장에 올랐다가 어떤 변을 당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에게 그녀는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누나, 동생 하며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다.

그림의 시점은 빠른 속도로 변했다. 처음에는 그녀를 올려다봤던 이반은 어느새 그녀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마야의 그림은 이반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고, 당연히 그의 주관이 들어갔다. 그녀의 얼굴이 다른 기억들에 비해 유독 밝고 자세하게 묘사되는 것으로 보아 그는 그녀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TTT 원작에서도 그녀가 나왔었다. 벨리키 볼라크에 도착한 기사는 옛 친구의 소식을 알아보고 다녔고 그러다가 투기장 손님들의 식사를 만드는 주방에서 괴물로 변한 그녀와 마주쳤다.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혼자 떠났다고 원망 어린 외침을 내뱉으며 그에게 덤벼들었다.

실제로 그가 이 도시를 찾은 것은 그가 떠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사정은 있었다.

귀족 사회로 들어가 실력 하나로 승승장구하는 그는 주변으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았었다. 그러나 가문도, 가족도 없는 그였기에 흔들 수 있는 수단은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거침없이 그가 원하는 대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그에게 소중한 이가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정적들은 그 대신 그녀를 괴롭히고 나설 게 분명했다. 이네스에게 다른 배경이 있으면 모르되 한낱 노예 출신의 평민이었다. 그래서 그는 몰래 돈을 보내 그녀를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을 끝으로 더는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뒤늦게 듣게 된 이네스는 기사의 품에서 눈물을 흘리고는 그에게 사과하며 죽어갔다. 그러한 미래를 알고 있는 원더스타인에게 스케치북에 묘사되는 이반과 이네스의 풋풋한 청춘은 상당히 애처로워 보였다.

역사가 바뀌어서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이반이 기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원더스타인은 이반이 원한다면 그녀 역시 자유를 찾게 해줄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떠나서 살 수 있을 정도로 자금 역시 지원해줄 생각이었다.

아나이스가 따지긴 하겠지만, 그는 원작의 영웅에게 그 정도 예우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피워보기도 전에 꺾이고 말았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