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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18

EP.417 16. 기사 이반 (25)

이반이 폐인이 되고 난 이후에도 이네스와의 기억은 계속 이어졌다. 기억 스케치를 통해 드러난 초창기 이반의 상태는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 화장실을 가리지도 못하는 데다가 간단한 언어 구사도 힘들어했으며, 식사도 제대로 할 줄 몰라 음식을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입에 집어넣다가 목이 막혀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런 바보를 이네스는 온 정성을 다해 돌봐주었다.

그녀가 아무런 면식도 없던 12살짜리 검투사 노예에게 정을 베풀었던 것은 그에게서 사별한 남동생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마음은 그가 커 갈수록 이성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해 갔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그녀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원더스타인은 그림 너머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가 남몰래 눈물을 흘렸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를 응원하고 후원하던 사람들은 그의 처참한 몰골을 보고 하나둘 그의 곁을 떠났다. 다들 그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그나마 의리 있는 몇몇 이들은 그의 곁을 지켰지만, 그들도 그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녀는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자는 시간도 아껴 가며 매일 일과를 처리하는 틈틈이 그를 찾아와 그의 기억을 자극할 만한 말들을 던졌다. 그리고 의사가 권한 재활 치료도 하루에 몇 시간씩 꾸준히 해주었다.

그 마음이 통한 것일까. 사고가 난 지 3개월 흘렀을 무렵부터 이반의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기 시작했다. 4개월째가 되었을 때는 이제 혼자서 투기장 밖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심지어 5개월째가 되었을 때는 연무장에 굴러다니는 검을 들고 휘둘러 보기까지 했다. 그가 구사한 것은 분명 페드로프 가문의 가전 검술이었다. 자신이 한 짓에 놀라 금방 검을 내던지기는 했지만, 확실히 그는 자신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르카가 이반의 검투사 복장을 한 채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방금 막 멋지게 페트로프 13호의 복귀전을 치르고 온 참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의 링네임을 이어받았다고 밝히며 자신의 하인으로 전락한 이반의 처지를 조롱했다. 그리고 대련이라면서 목검으로 그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며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페트로프 13호의 복귀 소식을 듣고 놀라서 달려온 이네스는 그런 베르카의 앞을 막아서며 그를 비겁자에 인간 말종으로 매도했다.

그녀는 베르카가 이반을 이렇게 만든 데 일조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부엌에서 일했기에 그날 베르카가 몰래 이반의 음식에 약을 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원작에서 이반에게 그 사실을 귀띔해줬다는 투기장 직원이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그가 패악질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이 사실을 당국에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루에도 엄청난 돈이 오가는 곳이 투기장 도박판이었다. 특히, 이반을 이런 꼴로 만든 작년의 대결은 근 3년간 있었던 시합 중 가장 많은 판돈이 모였었다.

당시 도박에서 져서 크게 손해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만약 그들이 베르카가 한 짓거리를 알게 된다면 단체로 들고 일어날 게 뻔했고, 그렇다면 베르카는 검투사로서 입지뿐만 아니라 목숨이 위험할지도 몰랐다.

물론 이네스도 그런 풍파를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투기장 측에 어떤 위협을 받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 건에 있어서 너무 섣부르게 자신이 가진 패를 보이고 말았다. 그녀는 베르카라는 인간이 자신의 생존에 위협을 느끼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간과했다.

그는 여자 노예 한 명을 죽이고 그 뒷감당을 하는 것이 모든 것을 잃는 것보다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는 망설이지 않았고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환상에 소리는 없었다. 스케치북에 그려지는 그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원더스타인은 거기서 공포와 고통에 찬 여인의 비명과 뼈가 부러지고 피가 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장면이었지만, 그림 속 남자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그는 그녀의 저항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주먹으로 그녀를 으깨는 작업을 반복했다.

“마야 양, 이제 충분합니다. 그만…….”

“할 수 있어요.”

원더스타인은 이반의 기억을 재생하는 작업이 마야의 정신력에 무리를 주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가뜩이나 지금까지 심마 때문에 고생이 많았던 그녀 아닌가. 그러나 그녀는 그의 만류를 물리치고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의 스케치북은 그녀가 직접 본 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즉, 이 기억 스케치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 그녀는 이반의 시점에서 그의 과거를 체험하는 일이 필요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중간에 한 번 이반은 베르카를 제지하기 위해 달려들긴 했다. 그러나 이미 그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던 상대에게 그의 어설픈 기습은 통하지 않았다.

베르카는 허리에 찬 검을 검집째 빼 들어 이반의 손에 들린 연습용 철검을 쳐냈다. 그리고 검집으로 그를 마구 두들겨 팼다. 그가 모든 전의를 상실할 때까지.

베르카는 제발 그만해 달라며 싹싹 비는 이반을 내려다보며 그를 비웃었다. 그리고는 그의 눈앞에서 이네스를 부수는 작업을 계속했다.

원더스타인은 그 광경에서 그만 눈을 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보다 어린 여자애가 버티고 있는 마당에 치료를 제안한 당사자가 물러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웃는 남자가 주는 평정심 덕분에 치료에 지장이 가지는 않았다. 그는 침착하게 웃는 얼굴로 메모리 레코드가 읽는 기억이 반응하는 신호에 따라 신경세포를 구성해나갔다.

마야는 그 모습에 용기를 얻었다. 그가 크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녀 역시 마음이 흔들릴 뻔했다. 마법사답게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는 스승님 앞에서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녀는 침착하게 이반의 기억을 체험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으으으.”

이반은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몸을 떨었다. 아버지가 죽는 기억을 되새길 때도, 가문이 몰락하는 순간을 재생할 때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그가 이번 기억을 주입할 때는 상당히 격한 반응을 보였다.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과는 그 감정적 크기가 다른 것이다.

정신적 충격 때문인지 혹은 너무 심하게 맞아서 그런지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졌던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으로 다시 흘러들어왔다. 베르카는 피떡이 되어 간신히 의식만 붙들고 있는 이네스를 이반의 눈앞에 내던졌다.

이네스는 겁에 질려 벌벌 떠는 그를 향해 처연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가 그에게 몇 마디 말을 던졌으나 목소리가 너무 작았던 탓에 그는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없었다. 베르카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원더스타인이 그 기억을 이반의 뇌에 새겨 넣는 순간, 그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와 동시에 그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베르카아아아아!”

그는 허리를 튕겨 몸을 일으키더니 바로 눈앞에 보이는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컥!”

번개처럼 내뻗어진 그의 손이 마야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하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는 당장이라도 그녀의 목을 부러뜨릴 것처럼 손에 힘을 주었다.

“마야 양!”

참혹하게 살해당한 이네스의 모습이 원더스타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몸을 끌어당기고 이반의 몸을 차 날려 버렸다.

미처 힘 조절할 새도 없었다. 이반의 몸은 3층 벽을 부수고 날아가더니 건물 밖으로 떨어졌다.

“우아앗! 뭐, 뭐야?”

마침 마당에서는 엘라가 알렌과 조 두 사람에게 뱀을 다루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날씨가 풀리면서 단지 안에서 하루의 9할을 잠으로 보내던 수아브가 동면에서 깨어났다. 갑자기 그녀의 활동량이 늘어난 탓에 알렌과 조는 그녀를 보살피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역에서 그녀를 잃어버리기까지 했었다.

평범한 뱀이라면 수아브 옆에서 본 게 있어서 두 사람도 다루는 법을 대충 알았다. 그러나 그녀 자신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의 혼이 들어간 뱀이라 그런지 보통 뱀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어 먹는 것도 오직 사람이 먹는 음식만 고집하는 것이 그랬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의 말을 할 수 없었기에 두 사람은 그녀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꺼리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엘라가 나서서 직접 수아브와 소통해 그녀의 신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내어 그들에게 알려주기로 했다.

두 사람은 한창 엘라가 알려주는 내용을 노트에 받아 적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이반이 갑자기 그들 앞에 떨어진 것이다.

“베르카아아! 죽인다!”

이반은 떨어지는 순간 반사적으로 낙법을 펼쳤기에 부상 없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주변을 살피던 그는 마침 눈앞에 검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빼 들었다.

“이봐, 그건 내 거야!”

조는 그의 손에서 검을 빼앗기 위해 그에게 다가갔다. 검날이 뿌리는 날카로운 빛에 취한 사람처럼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던 이반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챙. 정확히 조의 목을 노리고 날아든 이반의 검. 그것을 막아선 사람은 알렌이었다. 그는 친구를 뒤로 밀침과 동시에 자신의 검으로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네놈은 뭐냐, 다짜고짜!”

“끙. 덕분에 살았군……. 방심했다. 잠깐, 이 사람은 단장님이 데려온 그 검투사 아냐?”

“뭔가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군. 넌 부단장을 데리고 뒤로 빠져 있어!”

알렌은 이반의 실력이 보통이 아님을 한눈에 간파했다. 방금 조를 베려고 했던 동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네스…… 죽였어……. 베르카! 내가 죽인다!”

이반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오직 베르카에 대한 증오만을 불태우며 알렌에게 달려들었다. 둘 사이에 금속성 마찰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큭, 이거 진짜 장난 아닌데?”

알렌은 가진 실력을 모두 짜내 필사적으로 이반의 공격을 막아냈다. 처음에는 상대를 상처 없이 제압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덤볐는데, 지금 보니 그 정도로 감당 가능한 상대가 아니었다. 방심한다면 그의 목이 달아날 판이었다.

이반은 현재 투기장에서 페트로프 13호로 활동하던 때의 실력을 완벽하게 발휘하고 있었다. 이네스 쪽으로 이야기가 새면서 7할 정도 회복되었다고 가늠했던 전투에 대한 그의 기억이 방금의 정신적 충격 때문에 100% 회복되고 만 것이다.

원더스타인은 그가 마야에게 달려들기 직전에 그것을 감지했다. 머릿속에 번개가 내려치는 듯한 충격과 함께 그의 기억이 복구되는 것을 말이다.

마야의 몸을 살핀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마침 달려온 유라크네에게 넘기고는 부서진 벽에서 뛰어내려 마당에 착지했다. 그는 한 차례 검을 나누고는 떨어진 채 숨을 돌리고 있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어, 단장님?”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알렌 씨? 이 사람은 제가 맡아야 할 것 같군요.”

알렌은 막 제 실력을 발휘할 참이었다고 큰소리치려다가 뭔가를 깨닫고는 검을 집어넣었다. 그는 검사로서 자신을 버리겠다고 맹세한 몸이었다. 그런데 분위기에 휩쓸려 그것을 그만 깜빡하고 말았다. 그만큼 상대는 그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호승심을 일깨울 정도로 검의 고수였다.

“단장님이라면…… 괜찮겠죠.”

알렌은 원더스타인의 힘을 알고 있었기에 이만 물러섰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그는 이번에 바이오맨서로서의 힘은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원더스타인은 소품실을 통해 원작에서 기사가 썼던 것과 제일 비슷한 종류의 검을 소환해 손에 쥐었다. 그리고 스킬북의 빈칸에 검술을 배치했다.

예전에 스킬북의 효과를 검증할 때, 그는 전투에 이 마도구의 힘을 사용하는 건 힘들다고 결론을 내렸었다. 정권 지르기나 연속 베기를 아무리 완벽한 동작으로 해낸다고 해도 실전에서는 통용되기 힘들었다.

진짜 싸움에서 기술은 어디까지나 도구에 불과했다. 실제로 승부를 가르는 것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수 싸움이었다. 대전 격투 게임에서 고수가 회피와 기초 기술만으로 화려한 필살기를 퍼붓는 초보자를 농락하곤 하는 것과 같은 논리였다.

검으로 싸워본 경험이 없는 그가 스킬북에 ‘검술’을 장착해 봤자 검으로 제대로 된 싸움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특정한 조건이 갖춰지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는 자신을 향해 살기를 내뿜고 있는 상대를 향해 검을 내밀었다.

“그럼 한 번 재볼까요. 당신의 레벨.”

이반이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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