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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18

< 미래를 보는 투자자 417 >

택규의 얘기를 들은 나는 어이가 없었다.

“또 그 세 명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고?”

“뭐, 로스트 판타지 팬들의 친목모임이랄까?”

셋 다 바쁜 몸이다.

그 여자들이 설마 게임 얘기하러 매번 나오겠는가?

“너 요즘 인기 좋네.”

택규는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면, 난 이제까지 여자에게 인기 있었던 적이 없었어.”

“……그런 거 진지하게 말하지 마.”

괜히 나까지 마음 아파지잖아!

난 위로의 의미로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니 맘 잘 알아.”

그러자 택규가 소리쳤다.

“거짓말! 너 같은 인싸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 넌 여고생한테 고백도 받았었잖아!”

옆에서 얘기를 듣던 엘리는 깜짝 놀랐다.

“여고생한테요?”

이게 절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난 택규를 향해 소리쳤다.

“그땐 나도 고등학생이었어!”

고등학생이 고등학생한테 고백 받는 게 뭐가 잘못이냐?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겠다.

“그거 말고도 대학생 때 여중생이 좋다고 고백했었다며?”

“아…….”

그런 일이 있긴 했었지.

그런데 그 얘기를 여기서 왜 하는 거냐?

엘리는 어느새 나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여중생이라니…… 진후 그런 사람이었군요.”

난 손을 내저었다.

“그, 그런 거 아니에요.”

“대체 그 여중생은 어떻게 만난 거예요?”

“1학년 때 잠깐 과외알바 했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당연히 거절했죠.”

“과외는 계속하구요?”

“어차피 단기라서 두달하고 그만뒀어요.”

엘리는 나를 보며 웃었다.

“흐음, 이제 보니 진후 꽤나 인기 많았네요.”

“뭐…….”

냉정하게 말해 엄청 인기가 있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냥 평균 정도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럴 땐 최대한 있어 보이는 척 하는 게 좋겠지?

난 괜히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시험기간만 되면 같이 공부하자는 여자애들도 있긴 했죠. 나중에 한국대 합격해 학교 앞에 이름 걸린 뒤에는 다른 반 애나 후배들이 와서 고백 비슷하게 하기도 했고.”

엘리는 눈을 빛냈다.

“정말요? 몇 명이나요?”

“글쎄요. 한 열댓 명 됐나?”

실제로는 세 명이었다. 정확하게 따지면 고백은 아니었고, 그냥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는 정도?

거짓말한 게 찔려서 난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엘리는 학창시절 때 어땠어요? 인기 많았어요?”

엘리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윽, 생각만 해도 싫어요.”

“왜요?”

“국제학교 다녔는데, 남자애들이 하도 말을 걸어서 공부를 못할 정도였어요. 심지어는 다른 학교 남학생들까지 학교 앞으로 계속 찾아오는 바람에 학부모들 항의전화도 쏟아지고, 그것 때문에 괜히 혼나기도 하고. 아! 심지어는 여자애한테 고백 받은 적도 많아요. 그때도 머리가 짧았거든요. 거절하면 그 자리에서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

얼굴도 예쁜 데다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한다. 인기가 많은 게 당연했겠지. 엘리 앞에서 인기 자랑해봐야 소용없구나.

올렸던 어깨를 재빨리 내리는데, 택규가 팔짱을 낀 채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모테키인가?”

“……그런 거 진지하게 말하지 말라니까.”

엘리가 나를 보며 물었다.

“모테키가 뭐예요?”

“인생 살다보면 세 번쯤 인기 절정의 시기가 찾아온다는 뜻이에요. 평소에는 인기가 없다가 갑자기 주변에 이성이 많아진다거나.”

“정말로 그래요?”

“그냥 속설이죠.”

대체로 인기란 돈과 비슷해서, 있는 사람은 계속 있고, 없는 사람은 계속 없기 마련이다.

“한국에는 그런 단어가 있었군요. 저만 몰랐네요.”

“한국어가 아니라 일본어에요. 저쪽 업계에서만 쓰는 단어니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모를 거예요.”

그런데 난 어째서 이런 걸 알고 있는 거냐?

“그래서 셋 중 누가 마음에 드는데?”

“진지하게 생각 중이야.”

“그냥 정하면 안 돼?”

“안 돼. 한번 루트를 정하면 바로 결혼 엔딩일 거 아니야?”

“……응?”

이 자식은 현실과 미연시를 착각하나?

대부분의 미연시는 둘이 사귀기로 하면 결혼 엔딩이 나오지만, 현실에서는 사귄다고 해서 반드시 결혼하는 건 아니다.오히려 그 사이 헤어지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난 고민하는 택규에게 말했다.

“어쨌거나 열심히 해봐. 인생에 처음 찾아온 모테키를 마음껏 즐기든지 말든지.”

“그런데 이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란 말이지.”

“나쁠 건 뭔데?”

“잘못하면, 나이스 보트 엔딩이 될 수도 있어서.”

“아, 그건 조심해야지. 진짜 조심해야 돼.”

엘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이스 보트요? 그건 무슨 뜻이에요?”

“…….”

이게 또 설명하자면 긴데…….

* * *

같이 침대에 누워 얘기를 나누는데 엘리가 물었다.

“진후는 다른 여자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없는데요.”

“바로 대답하지 말고 진지하게 생각해봐요.”

난 진지하게 생각한 다음 대답했다.

“전혀요.”

“진후 좋다고 하는 여자들 많잖아요. 로즈 맥도웰도 그랬고, 안젤리나 틴터도 그랬고.”

난 그때 일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 여자들이 엘리는 아니잖아요.”

엘리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제 어디가 좋아요?”

“다 좋아요.”

“진짜요?”

“그럼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난 엘리의 눈을 보며 말했다.

“제가 가장 잘한 일은 엘리를 만난 거예요.”

일에서의 성공만큼이나,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중요하다.

한때 실리콘밸리의 악덕 사업자로 악명 높았던 빌 게이츠는 회사의 프로그래머였던 멜린다와 결혼한 뒤 세계최대 기부자로 변신했다.

제이크 바이런은 아내 매킨지 바이런이 아니었다면 AMZ를 창업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해왔다. 그가 잘나가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온라인서점 AMZ를 만들었을 때 그의 아내 역시 옆에서 그를 도왔다.(얼마 전 이혼을 발표했지만)

페이스노트의 마이크 골든버그 CEO는 상장 후 만나던 애인과 바로 결혼했다. 결혼계약서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까지 명시했다고 한다.

만약 내가 엘리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돈은 계속 벌었겠지만, 지금과 같은 행복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엘리는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저도 진후 사랑해요.”

* * *

글로벌 경기가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 전 세계의 이목이 러시아로 집중됐다.

페트로프 교수팀이 TWR 본격가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물론 OPEC과 셰일업체들 역시 이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TWR의 향방에 따라 세계 에너지시장의 판도가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과는 모두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속보) 진행파원자로 상용화 성공!]

[페트로프 교수팀, 성능과 안전성에 문제없어]

[로사톰 트루소바 사장, 향후 원전시장은 TWR로 재편될 거라 밝혀]

[비소츠키 대통령, 관계자들에게 직접 축전 보내]

-와아! 신형 원자로라니. 불곰 형들 기술력이 이 정도였어?

-소비에트연방 시절부터 핵 만지던 솜씨 어디 안 간 거지.

-세상에서 핵 개발이 가장 쉬웠어요~

-저기에 투자한 강진후가 더 대단하다. 워렌 보트보다 나중에 투자했는데 성과는 더 먼저 낸 거잖아.

-이제 신규원전은 TWR이 대세인가?

-페트로프 교수 노벨물리학상 타겠는데.

-김호민 교수, 모한 교수에 이어 페티로프 교수인가? 뭔 강진후한테 투자 받기만 하면 노벨상을 타?

-그런데 한수원은 대체 뭐하고 있음? 저기 달려가 봐야 하는 거 아님?

-우리는 탈원전해야죠.

실험에 성공한 시점에서 상용화는 시간 문제였다. 다만 이렇게 빨리 상용화의 길이 열린 것은 각국의 원전기업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덕분.

신형 원자로 개발 소식에 유가는 4퍼센트 넘게 하락했고,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크게 상승했다.

트루소바 사장은 칼리닌그라드에 TWR 3기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칼리닌그라드는 발트해를 접하고 있는 지역으로, 원래 러시아 본토와 이어져 있었으나 발트 3국이 독립하며 섬처럼 떨어지게 되었다.

서유럽과 동유럽의 한복판이자, 발트해를 건너면 바로 북유럽으로 이어진다. 이곳에 공장을 지으면 지리적 이점과 서유럽에 비해 저렴한 인건비를 누릴 수 있는만큼 오래전부터 자동차 회사들의 생산기지로 각광을 받았다. 카로스 역시 이곳을 유럽 생산기지로 점찍었다.

로사톰이 자국 산업단지 인근에 TWR을 짓는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경제 회복 기대감에 루블화는 상승세였고, 비소츠키 대통령의 지지율도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현재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는 중. 그동안은 영토분쟁을 통해 지지율을 끌어올렸지만, 경제가 회복되는 상황에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비소츠키 대통령은 연일 유럽정상들과 회담을 하며 경제협력을 강조했고, 이를 위해 민스크 협정 이행 의지를 밝혔다.

일단 우크라이나에서의 무력분쟁은 중단됐다. 여전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국경에 군대가 배치되어 있긴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피한 셈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소강국면에 접어들며, NATO 동맹국은 한숨 돌렸다는 분위기였다.

유럽의 유력매체들은 ‘NATO가 못한 일을 강진후가 해냈다’ 며 기사를 쏟아냈다.

로사톰은 아예 국경에 대량의 TWR을 건설한 다음 인접국에 전기를 판매하는 방안도 고려했다.

지금도 유럽은 천연가 수입 상당 부분을 러시아의 파이프라인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아예 전력 자체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유럽에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완화 움직임이 일자 독일과는 달리 프랑스는 신중론을 펼쳤다. 이유는 당연히 프랑스가 유럽 최대의 원전기업 EDF를 가지고 있기 때문.

전문가들은 로사톰이 EDF를 넘어 세계최대 원전기업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난 비소츠키 대통령과 통화했다.

“축하드립니다.”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자네 예상이 맞았군. TWR 덕분에 러시아 원전산업이 세계적으로 각광 받고 있네. 각국 정상들도 대단한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아주 목소리에서부터 신이 났다. 하긴, 요즘 지지율도, 루블화도, 주가도 크게 올랐으니 신날 만도 하겠지.

그만큼 에너지란 국가의 최우선 과제다.

러시아는 모두가 알다시피 자원의존형 경제. 그나마 무기산업을 제외하면, 제조업에서 딱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이번 TWR 상용화는 러시아 제조업에 새로운 기회였다. 땅속의 천연가스를 퍼서 파는 일은 고용유발효과가 별로 없다.

그러나 원전은 건설은 물론 유지관리에서 많은 고용을 창출한다. 밑의 부품산업들도 같이 성장할 테고.

또한 저렴한 금액으로 산업용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면, 다른 제조업 공장들도 얼마든지 끌어들일 수 있다.

TWR로 우리가 당장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많지 않다. 지분가치는 투자했을 때에 비해 이미 5배 이상 올랐지만, 계약에 따라 다른 데에 팔수도 없다. 오직

어차피 로사톰이 TWR로 벌어들이는 돈은 계속 신규 원전건설에 쓰일 테고. 당장의 이익보다는 러시아 시장과 미래 에너지산업에 한 발 걸쳤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TWR이 늘어날수록 에너지 시장에서 OTK컴퍼니의 영향력 역시 커지게 될 테니.

[새만금은 어떻게 되어가나? 그쪽에도 TWR을 건설해야 하지 않겠나?]

“예. 새만금은 한국과 러시아의 경제협력에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새만금에는 항공우주산업을 위한 연구단지와 관련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러시아는 한국에 비해 대부분의 산업이 뒤쳐졌다. 하지만 러시아가 강점을 가진 분야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항공우주산업.

항공이야 말할 것도 없고, 우주개발은 당장 돈이 되지는 않지만, 향후 미래에 있어서 중요한 산업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분야의 톱3라고 한다면, 당연히 미국, 중국, 러시아다.

기술력으로는 역시나 미국이 최고고, 중국은 10년 사이 국가적으로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며 유인우주선 발사까지 성공시켰다. 러시아는 최근 투자가 주춤하긴 하지만, 전통적인 우주개발 강국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우주개발에 눈독을 들이고 있고, 한국 역시 경제 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온 만큼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임진용 회장이 구속됐던데. 자네는 괜찮은 건가?]

“물론입니다.”

나야 죄진 게 없으니까.

[혹시 문제 생기면 얘기하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도울 테니.]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미국에 이어서 러시아라는 뒷배가 생긴 셈인가?

내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

[조만간 한국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으니, 그때 보드카나 한 잔 하지. 내가 사겠네.]

“알겠습니다.”

< 미래를 보는 투자자 417 > 끝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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