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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19

< 미래를 보는 투자자 418 >

진행파 원자로(TWR) 상용화의 길이 열리자, 러시아 언론은 물론 전 세계 언론이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번 일로 러시아의 핵물리학의 저력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TWR이 만들어졌다고, 당장 가동 중인 원전을 교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향후 건설되는 원전은 TWR이 대세가 될 것이다.

모든 면에서 기존 원전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나온 기술인 만큼 장기적으로 가동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아직은 모른다는 우려가 있긴 하지만, 이런 우려도 앞으로 1, 2년이면 사라질 것이다.

난 페트로프 교수와 통화했다.

“결국 해내셨네요.”

그는 기뻐하기보다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덕분입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기술은 개발했다고 끝이 아니니까요.]

TWR이 무슨 시대를 뛰어넘는 오버 테크놀로지나, 누구도 개발할 수 없는 독자적인 기술은 아니다.

개념은 진작 나와 있었고, 이리 여러 업체들이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로사톰의 압도적인 지원을 받은 페트로프 교수팀이 제일 먼저 성공시켰을 뿐이다.

이미 미국, 중국, 프랑스에서도 실험이 한창이다.

길어도 3년 정도면, 다른 나라들 역시 TWR을 상용화시킬 것이다. 그러니 그 사이에 최대한 기술격차를 벌이고, 많은 점유율을 차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국의 원전업체들을 프로젝트에 참여시킨 거고.

[아버지는 러시아를 핵 강국으로 만드셨습니다. 저는 이제 러시아를 원전강국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뒤쳐져있던 러시아의 원진기술을 세계최고로 끌어올렸다.

TWR 성공으로 그에게는 엄청난 부가 보장되었다. 핵물리학자라는 특성상 그는 러시아 정부의 최고 경호대상이기도 했다.

“저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 * *

OTK컴퍼니로 각계각층의 축하전화가 걸려왔고, 광화문에서는 환경단체들의 대규모 반대시위가 열렸다.

한국정부는 또다시 탈원전에 대한 논란이 커질까봐 조심스런 분위기였다.

난 어머니를 만나러 남산 실론호텔로 향했다.

오늘은 친구 없이 웬일로 혼자 계셨다.

“임수미 사장님은요?”

“말도 마. 요즘 수미 씨 정신없이 바빠. 나도 며칠 째 얼굴도 못 봤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제가 왜요?”

“니가 새만금 개발한다고 하는 바람에 수미 씨가 바빠졌잖아.”

“그것보다는 임진용 회장 구속 때문 아니에요?”

임진용 회장이 구속된 뒤 경영은 각 계열사 사장이 알아서 하고 있다. 임수미 사장은 새만금에 만들 테마파크와 복합리조트,실버타운 투자로 가뜩이나 바쁜 상황에서 그룹 내의 사소한 일들까지도 떠맡았다.

기존 업무 챙기며, 강남사옥에 새만금에, 해외출장까지. 몸에 열 개라도 부족할 것이다.

“그런데 임진용 회장은 어떻게 되는 거니?”

“저야 모르죠.”

“다른 사모님들도 다들 걱정하시는 것 같던데.”

“그래요?”

재계 사람이라면 다들 이게 남일 같지 않을 거다.

주식회사는 경영과 소유가 분리된다.

누가 경영을 하든 기업은 주식을 가진 주주들이 소유한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이 둘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재벌이라는 혈족으로 이어진 집단이 합심해서 경영을 하고,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세습체제가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장이 죄를 저질러 잡혀 들어가면, 기업이 망하고, 나라가 망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재밌는 사실은 국민들뿐 아니라, 당사자 역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인차를 개인차처럼 사용하거나, 회사 돈을 개인 돈처럼 빼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또한 자식이 회사를 차리면, 경쟁 입찰 없이 수의계약으로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회사의 부를 자연스럽게 넘겨주었다.

실제 그렇게 해서 대기업으로 성장한 회사도 한둘이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 7천 원이면 납품 받을 수 있는 부품을 아들 회사에서 1만 원에 납품을 받는다면, 회사에는 실제로 3천 원의 손실을 입는 셈이다. 이는 다른 주주들에게 손실을 입히는 배임행위다.

그동안 이런 일들이 관행처럼 이뤄진 이유는, 이렇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재벌들 편이었고, 정권은 이를 알면서도 묵인해줬다.

그런데 임진용 회장이 잡혀 들어가자, 재벌들은 그동안 저지른 불법에 대해 증거를 인멸하거나 입단속을 시키는 등 관리에 나섰다.

“언제 나올지는 아직 모르고?”

“재판을 해봐야 알겠죠.”

임진용 회장 입장에서 한 가지 다행인 것은 1심에서 유죄가 나와도 서성그룹 경영권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는 거다.

정작 경영권을 걱정해야 하는 기업은 따로 있다.

* * *

한때 은성차그룹은 재계2위로 서성그룹과도 경쟁하던 사이였다. 그러나 서성그룹은 계속 치고 올라선 반면, 은성차그룹은 바닥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추락했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근본적 원인은 경영실패였다.

은성차가 수소차 개발에 열중하는 사이 미래차의 주도권은 전기차가 가져갔다.

자율주행과 무인차 시대가 열렸고, 승차공유라는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했다. 차 한 대 없이 사업을 시작한 아이버는 오래 전 은성차 시총을 추월했다.

미래차 경쟁에서는 뒤쳐지는데, 그렇다고 기존 시장을 수성한 것도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SUV 열풍이 불 때도 세단에만 집중하다가 신차 투입 시기를 놓쳤고, 고급화에 실패한 사이 저우차를 비롯한 중국 자동차 메이커들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한때 다른 차를 베낀 듯한 디자인과 조악한 품질로 유명했던 중국차는, 어느새 ‘괜찮게 탈만한 차’,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차’로 발전했다.

중국차는 은성차의 점유율을 야금야금 먹어치웠다. 반면 프리미엄 이미지를 확고하게 굳힌 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차들이 받는 영향은 거의 없었다.

기술력으로도 압도하지도 못하고,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중국차에도 밀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현재도 중국시장은 사실상 철수상태나 다름없었다.

한때 800만 대를 넘어서 정점을 찍었던 판매량은 550만 대 수준까지 쪼그라 들었다. 이는 단지 매출이 30퍼센트 줄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판매대수가 줄어도 각종 고정비, 개발비, 인건비는 그대로 나간다. 원가가 높아진 만큼, 수익률은 곤두박질 쳤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은성차가 몰락할 수도 있는 우려를 나타냈다.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카로스와 제휴를 맺으면서부터다. 이는 사실상 은성차가 독자 기술개발을 포기하고, 카로스의 우산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카로스의 자율주행기술과 OTK배터리를 공급받은 덕분에 은성차는 다시 부활했고, 바닥을 기던 주가도 회복세를 탔다.

그러나 이는 경영진에게 양날의 칼이었다.

전기차 공동개발을 진행하며 카로스에서 전문가들이 건너왔고, 경영효율화라는 명목을 내세우며 경영간섭을 시작했다.

이사회와 임원들은 이에 반발했지만, 이제까지 누구도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은성차의 주력사업은 카로스와의 제휴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군산 전기차산업단지를 비롯해 대규모 투자 역시 카로스와OTK컴퍼니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사실상 은성차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었다.

능력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임원들이 소리 소문 없이 잘려나갔다.

은성차의 대표이사는 총 넷.

카로스와 제휴를 맺으며 이중 한 자리를 카로스 쪽 사람에게 내주었다. 그는 외국계 회계법인에 의뢰해 회계를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드러났고, 박종호 대표이사가 잘려나갔다.

그는 한찬영의 오른팔이었다. 그 자리에 그룹 내부 사람이 올라가긴 했지만, 그는 한찬영 쪽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친 카로스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한다.

한찬영은 위기감을 느꼈지만, 기관과 개인주주들이 카로스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반대는 쉽지 않았다.

* * *

난 한찬영 회장을 만났다.

가끔 일이 있을 때마다 만나기는 했어도 이렇게 둘이서 만나는 것은 오랜만이다. 그는 잔뜩 지쳐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는 나보다 큰 키에 건장한 체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서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게 달라진다고, 오늘따라 왠지 작아보였다.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 겁니까?”

난 담담하게 말했다.

“은성차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주셨으면 합니다.”

짐작하고 있었는지, 그는 별로 놀라는 표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커피잔을 든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아직 BW 만기가 안 됐을 텐데요.”

은성차의 주가가 폭락했을 때 OTK컴퍼니는 장내에서 10퍼센트 가까이 매수했다. 그리고 은성차가 가진 자사주 9퍼센트를 넘겨받았다. 이후 매수가 더해지며, OTK컴퍼니는 가진 지분은 20퍼센트를 살짝 넘었다.

하지만 은성차는 카로스와 제휴를 맺으며 투자자금 확보를 위해 BW를 발행했고, 이를 OTK컴퍼니가 인수했다.

BW로 인한 신주 발행은 총 주식의 20퍼센트 규모.

BW(Bond with Warrant)란 말그대로 채권이자 콜옵션. 채권자가 빌려준 돈을 다시 회수하겠다고 하면 돈을 갚으면 되지만, 이를 주식으로 전환한다고 하면 기업은 돈 대신 신주를 발행해 지급해줘야 한다.

신주발행은 기존 주식의 가치가 희석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장 BW를 전부 주식으로 전환하면, 우리가 가진 지분율도 16퍼센트로 내려가게 된다. 물론 신주를 그 이상 받으니, 실제 지분율은 올라간다.

BW는 경영권 안정과 주주가치 보호를 위해 10년에 걸쳐 만기가 순차적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아시겠지만, 우호지분은 충분히 확보했습니다. 외국인 주주들은 우리 쪽 의견을 따를 겁니다.”

단순히 제휴를 넘어 아예 카로스의 계열사로 편입시키는 것은 주가에 있어서 호재다. 주주들 입장에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은성차의 외국인 지분은 30퍼센트가 넘고, 이 자금은 우리 편이다. 설사 국민연금이 한찬영 편을 든다고 해도 주총에서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다.

만에 하나 진다면, 지금 하고 있는 협업을 제외하고 은성차에 더 이상 투자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그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대표님과 저는 꽤나 악연이었네요.”

“그렇죠.”

“예전 일 때문입니까?”

우리 집이 망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은성차 때문. 잊을 만하면 뉴스에 나오는 흔한 대기업 갑질이었다.

과연 여기서 그의 책임은 얼마나 될까?

“그보다는 경영효율화를 위해서라고 해두죠.”

그는 임진용 회장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뒤를 따라 회장직에 올랐다.

하지만 그의 경영능력은 좋지 못했다. 애초에 경영능력이 훌륭했다면, 은성차가 카로스와 제휴를 맺을 일도 없었겠지.

그나마 그가 유일하게 잘한 일은 나에게 손을 벌린 것이었다.

만약 카로스와 제휴를 맺지 않았다면, 지금쯤 고사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그래도 내수시장이 있는 만큼 망하지는 않았겠지만.외국법인들은 차례대로 넘어갔겠지.

그는 태어날 때부터 재벌이었다. 임진용 회장과 마찬가지로 그의 운명은 은성차그룹을 물려받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반면 나는 내 능력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은성차의 갑질로 망한 하청업체 사장 아들이 은성차를 인수하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심지어 모체가 되는 카로스는 원래 은성차가 가지고 있던 자회사다.

한찬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쯤 되니 웃음 밖에 안 나오는군요. 처음부터 이렇게 할 생각이었습니까?”

난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내가 은성차를 도운 것은 예지를 봤기 때문. 그리고 예지는 내가 은성차를 갖게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니 이건 손을 잡을 때부터 정해진 일이었다고 봐도 좋다.

“카로스는 은성차를 계열사로 편입해 계속 투자를 해나갈 예정입니다. 주가는 지금보다 더 크게 오르게 될 겁니다.”

그가 은성차의 경영권을 내놓고 물러난다고 해도, 그가 주요주주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경영권을 빼앗은 사람이 열심히 할수록 경영권을 빼앗긴 사람이 더욱 부자가 된다. 아이러니해 보이지만, 이것 역시 주식시장의 생리겠지.

그룹명에서 알 수 있듯 은성차그룹의 중심은 은성차. 이게 떨어져 나간다면, 과연 은성차그룹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어쩌면 주요 계열사들이 다 떨어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은 은성그룹처럼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주력사업을 새롭게 키워낼 수도 있겠지.

“은성차라는 이름은 그대로 남게 됩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카로스 계열사로 편입되는 것일 뿐, 은성차는 여전히 한국회사니까요.”

< 미래를 보는 투자자 418 > 끝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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