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42

41. 거지남매 – 청부

여름은 금세 자리를 비웠다.

찬바람과 함께 가을이 찾아올 무렵, 아스틴 왕국의 왕자가 오르빌에 도착했다.

수백의 정예병과 시종을 대동하고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왕자는 위풍당당하게 행렬을 이끌었다.

그 화려한 행진을 보기 위해 몰려든 군중 속에는 레나와 레오도 끼어 있었다.

“레나야! 저기 온다. 왕자님이야.”

그동안 레오는 매일같이 동생을 챙기고 패밀리를 위해 일했다. 최근에는 두 번이나 실전에 투입돼서 그도 이젠 어엿한 라우노 패밀리의 전력으로 대우받았다.

[ 업적 : 민간인 살해 – 민간인 ‘2’명을 살해했습니다. 미약하게 불행해집니다. ]

이건 한 상인을 죽이고 뜬 것이었다. 전에 한스를 죽였을 때 봤던 것이라 놀랍지는 않았다.

미약한 불행, 이걸 보고 레오는 조금 불안해했지만, 지금은 잊어버렸다.

저것 때문에 생활에 변화가 있지는 않았다.

간혹 재수가 없는 일들, 이를테면 레나에게 주려고 사놨던 예쁜 옷핀을 길에 떨궜는지 어쨌는지 잃어버리거나, 막 따뜻한 목욕물을 받아놓고 오랜만에 개운하게 씻으려 하는데 갑자기 보스가 부르는 바람에 다녀와 보니 물이 차갑게 식어있었다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지만, 웃어넘길 수 있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해프닝에 불과했다.

반면, 레나는 잘 먹고 잘 쉬면서 화사한 미모를 꽃피웠다.

그녀는 패밀리 저택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면서 또래들과 함께 교육받았고, 그들과 어울리며 풋풋한 소녀의 삶을 되찾았다.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그리고 레오도 잘 먹으면서 몸에 근육이 붙고, 키가 자랐다.

비로소 {검술.2v}를 받쳐줄 신체가 만들어지면서, 이제 적어도 뒷골목에서는 그를 위협할만한 상대가 없었다.

단단한 안정감, ’미약한 불행’ 정도로는 이 안정감을 해치지 못한다. ─ 라고 자신하며 레오는 동생을 힐끔거리는 사내를 노려봤다.

그가 허리춤에 걸린 검집을 톡톡 두드리자 그 사내는 깨갱 눈을 깔았다.

레오의 목에는 라우노 패밀리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독 묻은 단도가 방패 뒤로 삐쭉 내밀어진 문신. 일반 시민들은 이것만 봐도 몸을 사렸다.

‘어딜 감히 내 동생을 쳐다봐. 뒈질라고.’

레오는 가볍게 목을 좌우로 꺾으며 코웃음 쳤고, 레나는 누가 자기 몸을 훔쳐본 줄도 모르고 환호성을 터뜨렸다.

“우와! 신기해! 왕자님이다!”

“멋있지?”

“응! 저런 건 처음…? 어라? 어디서 저런 걸 봤었나? 어쨌든 멋있어!”

동생이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레오는 감회가 새로웠다.

전에는 힘이 없어서 레나를 왕자의 행차에 데려오지 못했었다.

“레나야, 저 왕자님 어때?”

“뭐가?”

“네가 생각하기에 멋있어?”

“응! 멋있어!”

어쩐지 멋지다는 뜻이 서로 빗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는 다시 물었다.

“레나는 저런 왕자님한테 시집가고 싶지 않아?”

“응? 내가 어떻게 왕자님한테 시집을 가? 왕자님은 공주님을 만나야지.”

“레나야. 네가 공주란다.” ─ 라고 알려주고 싶지만 참았다.

이렇게 말하면 동생이 비웃을 게 분명했다. 오빠는 팔불출 멍텅구리라면서.

“그냥 만약에. 만약 결혼할 수 있으면 결혼할 거야?”

“으음~ 글쎄?”

레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고, 왕자가 멀리 사라지며 화려한 행진이 끝났다.

아쉬워하는 레나를 달래며 돌아오는 길에 레오는 조금 집요하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저런 왕자님이랑 결혼하고 싶지 않아?”

“글쎄?”

“별로야?”

“아니.”

“그럼?”

레나는 오빠를 흘겨봤다.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인상을 팍 썼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눈부시게 예뻤다. 좁아진 미간으로 뽈록 튀어나온 주름이 참을 수 없이 보드랍다.

“오빠는 내가 시집갔으면 좋겠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너도 몇 살 더 먹으면 시집을 가긴 가야지. 미리 취향을 물어본 거야.”

“…난 시집가기 싫은데.”

“응? 뭐라고?”

“아! 됐어! 오빠는 멍청이!”

레나는 더는 말하기 싫다는 듯이 몸을 휙 돌려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어? 레나야?”

“저리 가! 안 들여보내 줄 거야!”

“갑자기 왜 그래?”

“나 잘 거야!”

“아직 대낮인데?”

“…”

레나는 저녁이 돼서야 방에서 나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저녁을 같이 먹었고, 레오는 여자들의 기복은 따라잡기 힘들다고 생각하며 동생의 눈치를 봤다.

‘사춘기인가?’

그는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 * *

아스틴 왕국의 왕자 아놀프 드 클라우스, 그는 이번 시나리오에서도 변함없이 모욕을 당했다.

벨리타 왕국의 금지옥엽, 클로에 드 타탈리아 공주가 그의 면전에서 다른 남자와 키스를 했다. 그것도 정권을 쥔 소드마스터, 헤르만 포르테 백작의 아들 길버트 포르테와 진한 입맞춤을 나눴다.

그 예상치 못한 사태에 귀족들은 소드마스터의 눈치를 보느라 적절한 대응을 보이지 못했고, 왕자는 안색을 굳히며 돌아갔다. 몇 달을 행차해 먼 타국까지 왔는데, 고작 일 주일을 머무르지 못했다.

그 이후, 오르빌은 전운에 휩싸이며 철과 무기의 가격이 빠르게 상승했다. 그러자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코롤라 패밀리와 베르자 패밀리가 불법 무기 상권을 놓고 격돌했다.

오르빌 곳곳에서 난투극이 벌어지고, 여러 차례의 방화가 있었다.

여기까지는 레오도 알고 있는 사건이었다.

한편, 라우노 패밀리는 늘 그렇듯 몸을 사렸다. 그들은 오르빌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패밀리였다.

지금껏 오르빌에서 수많은 패밀리들이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소리 없이 자취를 감췄지만 라우노 패밀리는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그들은 평소처럼 상권을 보호하며 소상공인들과 선물을 주고받았고, 소상공인들이 누군가에게 원한이 맺히면 살인 청부를 받아주며 관계를 쌓았다.

레오는 조세프 라우노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맞아. 내 목표는 콘라드 왕국의 왕자를 몰아내는 일인데… 이건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야.’

일개 패밀리가 살아남기 위한 행태도 이렇게 신중한데, 그가 해야 할 일은 한 왕국을 뒤집어엎는 일이었다.

레오는 조급한 마음을 달래며 콘라드 왕국의 정보를 모으는 데 집중했다. 레나의 나이가 어린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타국의 정보, 그것도 최상층에 대한 정보는 길가의 돌멩이처럼 흔한 것이 아니었다.

아쉽게도 라우노 패밀리는 오르빌과 벨리타 왕국에 대한 정보에는 제법 빠삭했지만, 타국에는 관심이 없어서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레오는 발품을 팔아 콘라드 왕국에서 온 상인들을 찾아다녔다.

그의 눈앞에서 바짝 마른 상인이 난처하다는 듯 헛기침을 치며 말했다.

“뭐, 몇 번 다녀오면서 주워들은 게 있긴 한데… 별로 대수롭지도 않고 확실하지도 않아서 알려드리기가 좀…”

상인은 말끝을 흐렸다. 레오의 문신에 겁을 집어먹고도 대가를 바라는 거다.

레오는 약간의 힘을 실어 은화를 탁자에 ‘탁!’ 내려놓았고, 상인은 그제야 아는 이야기를 털어놨다.

쓸모없는 정보였다.

* * *

어느덧 겨울이 성큼 다가오자 라우노 패밀리의 저택은 장작을 넉넉하게 땠다.

오랜만에 레오를 부른 보스는 화로를 등지고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큰 건수가 들어왔네.”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지만, 뒷짐을 진 손가락이 까닥까닥 초조하게 흔들렸다.

“귀족을 죽여달라는 청부야.”

“귀족이요? 하지만 귀족을 죽이면 후폭풍이…”

평민이 귀족을 죽였다간 난리가 났다. 신분제가 엄격한 이 세상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어서 범인은 잡히거든 재판도 없이 사형에 처해졌다.

만약 범인이 달아나 잡히지 않거든 그의 친족들이 씨몰살을 당했고, 그가 살던 마을이나 지인들까지도 화를 입었다.

조세프 라우노는 손에 든 종이를 넘겨주며 말했다.

“맞아. 우리 패밀리가 거덜 나겠지. 그런데 청부를 요청한 사람이 그의 아버지야.”

레오는 근사하게 장식된 편지를 받아들었다. 편지 아래에는 왕당파의 수장인 베나르 타티안 후작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편지는 수려한 필체로 아들의 죽음을 원했다.

조세프는 착잡한 안색으로 레오가 글을 다 읽기까지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타티안 후작의 대변인이 이걸 주고 갔네. 원한다면 후작을 접견할 시간을 준다고 했어.”

그는 레오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레오의 키가 작아서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다독이는 듯했고, 실제로 조세프는 그런 신뢰를 담아 말했다.

“자네가 후작을 만나고 오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청부가 들어온 거죠?”

“아직 못 들었군. 우리 공주님께서 또 사고를 치셨네.”

조세프 라우노는 깜박했다는 듯 레오를 자리에 앉히며 본인도 앞에 앉고는 연초를 권했다. 레오는 사양하지 않았다. 보스와 나란히 연초를 태우는 건 대단히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두 사람이 뱉은 연기가 어두운 색상으로 치장된 보스의 방을 떠돌았다.

라우노는 간략하게 며칠 전에 일어난 사건을 전했다.

베나르 타티안 후작의 아들, 토턴 타티안과 클로에 공주가 연회 자리에서 끈적하게 붙어있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부끄럽게도 공주는 아침이 돼서야 왕궁에 복귀했고, 왕은 허락도 없이 외박한 공주에게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공주의 외도를 묵인한 것이었다.

“지금 정계 상황은 알고 있지?”

“네. 왕당파랑 소드마스터파가 대립 중이죠. 대체로 소드마스터파가 득세했고요.”

“그래. 그리고 왕당파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사람이 바로 타티안 후작이지.”

보스는 연기를 깊게 삼켰다.

“공주님께서 두 파벌을 이끄는 수장들을 간접적으로 건드린 셈이 됐어. 아마 왕께서 명하신 일이겠지.”

클로에 드 타탈리아 공주는 평소에 품행이 바르고 정숙하기로 소문난 공주였다. 그래서 누구도 그녀가 자의로 사고를 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레오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왕께서 이런 일을 벌이셨을까요?”

“그걸 모르겠네. 왕께선 지금껏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셨는데… 그래서 자네 역할이 중요해.”

조세프는 연초를 버리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레오도 미처 태우지 못한 연초를 화로에 던져넣었다.

“베나르 타티안 후작이 자기 아들을 죽여달라고 청부했어. 이상하지 않나? 왕이 벌인 일인데, 왕당파의 수장은 사건을 수습해서 소드마스터파와의 갈등을 피하려 하고 있네.”

“…”

“소드마스터가 자기 아들을 수도교회로 보내버린 것과는 달라. 어쩌면 타티안 후작이 왕을 불신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자네는 후작에게 가서 의중을 살짝 떠보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고민을 많이 했지. 그런데 자네는 젊기도 하고 묘하게 신뢰가 가네. 신뢰가 가는 젊은이에게는 후작이 한 마디라도 더 말하지 않을까?”

[ 업적 : 패밀리 보스와의 첫 만남 – 깡패들이 당신의 말을 신뢰합니다. ]

이 업적 때문에 착각을 한 것 같다.

“이 청부를 받아들이면 어차피 자네에게 맡길 생각이었네. 자네 실력이 가장 좋으니까. 기왕 하게 될 일 처음부터 끝까지 부탁하네. 후작의 청부를 받아 우리 패밀리가 뭔가를 얻어낼지, 아니면 몸을 사릴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그는 말을 끝마치며 편지봉투를 내밀었다.

봉투에는 후작가의 직인이 달려 있었는데, 봉투를 봉하는 용도로 쓰였던 듯 봉투 끝에 매달려 있었다.

타티안 후작가의 상징은 저울.

듬뿍 떨구어진 연녹색 양초에 과감하게 찍힌 그 저울 문양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저울에 아무것도 놓이지 않았음에도.

레오의 몸이 달아올랐다.

이게 있으면 왕국 정계의 중심에 있는 대귀족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꿀꺽, 레오는 침을 삼키며 손을 내밀었고, 붉게 타오르는 화로 앞에서 봉투는 그에게 넘어갔다.

레오가 던져넣은 연초는 불타지 못하고 화로 가장자리에 떨어져 서서히 타들어 가고 있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