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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2

42화 금패 용병의 정체 (2)

42화 금패 용병의 정체 (2)

나는 쿠를 보며 혼란에 빠졌다.

방금 뭐가 어떻게 된 것일까. 쿠는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으며, 대체 무슨 공격이었기에 미스트가 저렇게 날아간 거지?

[대상이 통찰에 저항했습니다.]

“금발 꼬마.”

“······.”

“전부터 종종 나를 엿보려는 것 같던데.”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쿠는 알고 있었던 거다. 내가 통찰을 시전하는 것을.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구나.”

나는 쿠의 목소리가 제대로 와닿지 않았다. 어느새 내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금 전 쿠가 쇄도해 왔던 광경.

그것이 묘하게 낯이 익었다.

“······.”

쿠는 말없이 주위를 둘러봤다.

입가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세실.

가슴에 단검이 꽂힌 채 널브러진 족제비.

저만치의 카인과 마르셀까지.

여자 마법사가 비척이며 쿠에게 다가갔다.

“······단장.”

“꽤 고전한 모양이군. 엘리샤.”

“뭐, 아주 조금?”

그렇게 말한 여자 마법사, 엘리샤의 입에서 주르륵 피가 흘렀다.

“끄웨에엑······!”

이어 한 움큼의 피를 토해낸 엘리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히죽 웃으며 엄지를 세웠다.

“라이칸은.”

“몰라요, 그 빌어먹을 자식. 어디서 음침하게 웃으며 암영의 모가지나 따고 있겠죠.”

“꼬마들을 부탁하지. 엘리샤.”

쿠가 나를 보며 말했다.

“물러나 있거라. 저 쿼드는 내가 상대한다.”

“하지만.”

내 어깨를 툭, 치며 한쪽 눈을 찡긋한 엘리샤가 세실을 안아 들었다.

나는 쿠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족제비에게 달려갔다. 그런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족제비는 놀랍게도 잠을 자고 있었다.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한 상태로.

이유는 이랬다. 미스트가 던진 단검은 족제비의 몸이 아닌 금패에 박혔다. 금패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단검의 칼날을 감싼 채로 굳어져 있었다. 뭐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어라라? 이걸 왜 얘가 갖고 있어?”

엘리샤가 헛웃음을 뱉었다.

“와······, 단장 진짜 치사하게. 내가 빌려달라고 했을 때는 들은 체도 안 하더니.”

투덜거리며 족제비 옆에 세실을 눕힌 엘리샤가 벌러덩 바닥에 드러누웠다.

“어이 금발. 나 이제 마법 못 쓰거든? 혹시라도 암영이 온다거나 하면 지켜줘야 한다?”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엘리샤는 코를 골며 잠들었다.

졸지에 세 명의 환자(족제비 제외)를 지키게 된 나는 카인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조금씩 몸을 꿈틀대는 것을 보니 살아있는 모양이다. 뭐, 어차피 죽더라도 녀석은 회귀할 테니까. 그런데 가만. 카인이 회귀하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머리 아픈 생각을 떨쳐낸 나는 저만치에서 몸을 일으키는 미스트를 봤다. 그녀는 사나운 눈으로 쿠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겁을 먹은 것처럼도 보였다.

“어이. 왼손잡이.”

“······.”

대답 없는 미스트를 보며 쿠가 피식 웃었다.

“혼자야?”

이번에도 미스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히죽히죽 웃던 쿠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네 첫째 오라비가 시켰나? 저 아이들을 죽이라고.”

“······일루산은 몰라.”

“보고 없이 저지른 돌발 행동이다, 이건가.”

쿠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마치 먹잇감을 위협하는 맹수처럼.

“각오는 되어 있겠지.”

쿠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자 미스트는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놀라웠다. 쿠는 기백만으로 쿼드 블레이드를 뒷걸음질 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괜찮겠나? 왼손잡이.”

“······뭐가.”

“네가 벌인 짓. 네 오라비가 알면 가만있지 않을 텐데.”

미스트의 눈이 흔들렸다. 그럴 만도 했다. 쿠가 말하는 미스트의 오라비는 ‘일루산 블레오파드’. 암영의 수장이었으니까.

나는 혼란스러웠다. 쿠는 미스트를 알고 있고, 암영의 수장인 일루산이 미스트와 남매지간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렇게까지 암영에 대해 잘 아는 외부인이 있다고? 대체 쿠의 정체는 뭐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소설 속 인물 중에 저런 자는 없었다.

‘라이칸이라 했었지.’

우리를 여관에서 끌어낸 흑발 사내의 이름일 거다. 그리고 내 옆에 쓰러져 잠든 마법사는 엘리샤. 둘 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그들은 쿠를 ‘단장’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쿠는 용병단장일 가능성이 높겠지. 그런데 쿼드 블레이드가 두려워할 정도의 실력자가 용병 일을 하고 있다고? 게다가 마법사까지 데리고?

‘말도 안 돼.’

아까부터 나의 머릿속에서는 같은 광경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쿠가 미스트에게 쇄도했을 때의 모습.

낯설지만, 그럼에도 낯설지 않은.

부르르.

주머니 속에서 먼지가 몸을 떨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먼지의 기척에 나는 반가움을 느꼈다. 그러나 쿠의 등 뒤로 나타난 두 인영을 보자마자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쿠!”

암영의 살수들.

그것도 평범한 살수가 아닌, 트리플 블레이드(Triple-blade)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쿠의 옆얼굴을 봤다. 빙글 회전한 쿠의 검이 매끈한 곡선을 그렸다.

스겅.

그 한 번의 공격에 두 살수의 몸이 반으로 쪼개졌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상대는 트리플 블레이드. 기사로 비견하자면 소드 엑스퍼트에 해당하는 강자다. 그런 자들을 단칼에 쓰러뜨리는 검술이라니.

쿠의 검에는 광채가 깃들어 있었다. 나는 저런 것을 본 적이 있다. 광산 탈출을 시도했던 2회차와 3회차의 숲에서, 강철 심장의 에티엔이 발현했던 눈부신 빛의 오러.

‘아니야.’

그것과는 다르다.

쿠의 오러가 더 강력하다.

이제 와서는 당연한 말이지만, 쿠는 소드 엑스퍼트가 아니었다.

“이런 피라미들로 날 잡겠다고?”

소드마스터였다!

콰콰쾅!

미스트에게 돌진한 쿠가 검을 휘두르자 지면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그 강렬한 충격에 미스트가 뒤로 튕겨졌다.

“제대로 준비하고 왔어야지! 쿼드!”

쿠가 엄청난 기세와 속도로 미스트를 밀어붙였다. 미스트는 블레이드를 세워 막고 있었지만, 충격이 일 때마다 크게 몸이 휘청거렸다.

나는 홀린 듯이 쿠의 전투를 봤다. 이제 고작 30레벨에 도달한 내가 보기에도 그의 검술은 압도적이었다.

“대단해······.”

지금의 쿠를 이길 수 있는 소드마스터가 몇이나 될까. 아무리 봐도 쿠는 소드마스터 중에서도 특별한 강자였다. 대체 왜 저런 강자가 용병 일을 하는 거지? 그리고 광산 노예에 불과했던 우리를 도와준 이유는.

스륵.

미스트가 안개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림자 안개를 발현한 것이다. 그러나 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는 놀라운 발동작을 펼쳐 미스트의 팔목을 붙잡고, 내동댕이쳤다.

퍼엉! 지면에 고인 물웅덩이에서 폭발이 일었다. 엄청난 충격이었을 테지만 미스트는 날랜 표범처럼 구르며 몸을 일으켰다.

“누가 이길 거로 생각하죠?”

그 순간, 심장이 멈출 듯한 충격이 나를 엄습했다.

머릿속이 날아간 것처럼 공허했다. 수백 킬로그램의 압력이 목을 조이는 듯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지척에서 들려온 속삭임.

누구지? 언제 내 곁에 다가온 거지? 먼지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야.’

먼지는 반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극도의 두려움으로 패닉에 빠졌다. 차원의 그림자를 마주했던, 그날처럼.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라이칸을 처음 보았을 때와 비슷하지만, 그 이상으로 압도적인 어둠과 한기가 내 옆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나를 보며 웃는 남자의 붉은 눈을 마주하자마자, 나는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말했다.

“네몬······ 블레오파드.”

남자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호오. 나를 알고 있나요?”

그의 입가가 더욱 넓게 펼쳐졌다. 그 웃음 뒤에 숨겨진 암흑이 나를 집어삼킬 듯했다.

나는 내 몸이 서서히 얼어붙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마치 수천 마리의 벌레가 피부 속을 기어다니는 감각이었다.

“내가 당신의 생명을 구해준 적이 있다는 거, 알고 있나요?”

네몬의 붉은 눈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는 거의 이마가 맞닿을 정도로 내게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내 몸이 저절로 뒤로 밀렸다. 식은땀으로 온몸이 축축해졌다. 달아날 수도,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금발 꼬마!”

쿠의 목소리가 나를 둘러싼 무형의 결박을 아주 조금 느슨하게 했다. 맹수처럼 사나운 눈을 뜬 쿠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 너머로, 지면에 쓰러졌던 미스트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를 구해야겠군요.”

자리에서 일어선 네몬이 나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사라졌다.

카앙!

쿠의 검과 네몬의 블레이드가 부딪쳤다. 네몬의 등장에 놀란 것은 나와 쿠만이 아니었다. 미스트도 두 눈을 부릅뜬 채 멍하니 네몬을 바라봤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정한 듯, 미스트는 네몬을 도와 쿠를 공격했다. 나는 당황했다. 아무리 쿠가 강력한 소드마스터라고 해도 두 명의 쿼드를 상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네몬 블레오파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리메이크를 발현할 수 없다. 미스트를 곤경에 빠뜨렸던 혼돈의 힘도 사라진 지 오래다.

‘생각해라. 방법을 찾아.’

내 머리가 고속으로 회전하며 경우의 수를 계산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혼절한 세실의 스킬을 카피할까 생각했지만, 저들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힐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리메이크도, 세실의 기술을 카피하는 것도 안 된다. 그렇다고 엘리샤의 마법을 카피하는 것은 위험하다. 통찰이 먹힐 가능성은 둘째 치고, 마법을 알지 못하는 내가 카피한 스킬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두 명의 쿼드에게 통하리라는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직감에 맡기기로 했다.

[대상과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동기화를 처음 발현했던 날을 떠올렸다.

단지 본능으로만 발현됐던 그날의 동기화는 C조의 숙소 어딘가에 있었을 카인의 ‘아주 특별한 능력’을 카피했었다.

[대상의 레벨이 지나치게 높습니다.]

.

.

.

[동기화(Lv.1)가 2레벨로 진화합니다.]

[동기화에 성공했습니다.]

나는 쿠와의 동기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카피할 능력은 고르지 않는다.

[리메이커가 대상의 능력을 알지 못하거나, 혹은 어떠한 이유로 카피할 능력을 선택하지 않았을 시 ‘무한회귀 시스템’이 선택을 대신한다.]

패닉에 빠진 먼지를 다독이며, 집중했다. 그리고 기대했다. 부디 이 난관을 타개할 ‘아주 특별한 능력’이 카피되기를.

[카피할 능력이 선택되었습니다.]

뒤이은 상태창을 확인한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믿을 수 없는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은월검(銀月劍)]

은월검.

무한회귀의 수많은 등장인물 중, 오직 ‘루나’만이 지녔던 검기(劍氣).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머릿속에서 불꽃이라도 터진 듯한 충격이 일었다. 그제야 알았다. 쿠가 미스트를 향해 돌진했을 때 느꼈던 기시감의 정체를.

파지지짓······!

쿠의 칼날에서 지금까지와 다른 은빛의 오러가 발현됐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새치 가득했던 그의 검은 머리카락과 수염이 마법처럼 색을 바꿨다.

때마침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달과 같은, 은빛으로.

[은월검(銀月劍)을 발현합니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지금까지 쿠의 정체를 알지 못했던 이유.

무한회귀의 세계에서 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은 자였으니까.

‘뭐, 내게도 너희 또래의 아이가 있거든.’

루나의 회상 속에서 단 한 번 등장했던.

배려심 많고 순수했던 루나가 그의 사후 다른 사람처럼 성격이 바뀔 정도의 충격을 안겨준 인물.

루나의 아버지이자, 몰락한 왕가의 후손.

암영의 수장마저 그 존재를 두려워했던 검사.

은월(銀月)의 소드마스터.

쿠훌린 아르테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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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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