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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2

42화 지혜의 악마는 사자심왕이 무섭다

스페로 왕성 앞 평야. 그곳에서는 온갖 타락과 쾌락의 아우성이 질척거리고 있었다.

기괴한 주둥이를 가진 사내가 채찍질을 하며 후려치고, 제 살을 토막내 구워먹거나 황금을 녹여 만든 물로 포로를 덧씌운다.

사치와 향락, 쾌락과 타락의 과잉이 악성으로 승화되는 기괴한 현장. 그곳에 레이날드 쉘먼이 지혜의 보옥을 쥔 채 입장한다.

-인간이다.

-흐히, 인간, 인간이야.

-방구석 폐인들이야. 책만 읽고 기록하는 괴짜들!

악마들은 지혜의 보옥에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그 정체를 추측했다. 그들의 사납고 야릇한 시선이 레이날드를 꿰었다.

“끄응… 괘, 괜찮은 겁니까? 위대한 존재시여.”

[저 천박한 창부들을 오래 쳐다보지 마랏. 필멸자는 금새 타락해버리닛.]

“네, 네넷!”

지혜의 보옥에서 말하는대로 레이날드는 항마의 방어막까지 펼치며 쾌락의 현장에서 눈을 돌렸다.

그러나 쾌락과 타락의 군영에서 다른 마신의 추종자가 나다니는 걸 허락할 악마는 없었다.

-쿵! 쿵! 쿵쿵!

광오한 소음과 함께 레이날드를 향해 다가오는 무언가. 그러나 그 소음과는 별개로 거대한 존재감이 레이날드를 압박했다.

“감히 글쟁이 놈들이 나의 향락장에 발을 들이밀어! 겁대가리를 상실했군!”

여덟 개의 팔에 살점이 덕지덕지 묻은 박도를 쥐고, 여섯 개의 젖꼭지에 빛바랜 황금 체인을 단 괴상한 모습의 거인.

그의 머리에 씌인 달빛의 왕관은 S급 마도사인 레이날드조차 영혼을 뒤흔드는 악성이 담겨 있다.

[왕관을 응시하지 마랏.]

“예, 예엣…….”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지혜의 보옥에서 흘러내리는 마기 덕이다. 지혜의 보옥은 보옥 너머를 가득 채운 여덟 팔의 거인을 응시했다.

[쾌락과 타락의 대악마. 안드로진.]

지혜의 보옥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흉측하게 찢어진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아~ 줏대 없는 책상물림. 벼락출세한 고블린이로구나.”

대악마 안드로진. 그의 멸시의 시선과 목소리에도 지혜의 보옥에선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짓!]

“제안? 제안이라고? 그하하하하하!”

안드로진이 비열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 광대한 웃음소리에 온 사방의 악마들이 낄낄 거리며 동조한다.

“주제를 알아라, 짐승! 네놈들이 아직도 우리와 동격이라 생각하나? 군주와 대악마들 대부분이 뒈져버린 너희들이 이 쾌락과 타락 앞에 대등히 설 수 있다 생각하나!”

안드로진은 200년에 걸쳐 사냥당한 지혜와 탐구의 악마들의 추태를 기억했다. 기어코 몇 놈 살아남지도 못하고 다 뒈져버렸다지.

[지들도 뒤져나갔으면서 잘난체얏…….]

“뭣이?!”

보옥에서 흘러나온 말에 발끈하는 안드로진. 하지만 팩트였다.

[180년 전 대강림 때, 뒈져나간 건 우리 군주님뿐이 아니닷! 쾌락의 군주님도 소멸했을 텐뎃!]

“이 버러지가!”

안드로진의 괴성에 가까운 포효가 악마들을 두렵게 했다. 저토록 분노한 안드로진은 제 주변의 악마들조차 화풀이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180년 전, 악성들은 끔찍한 피해를 입었다. 다섯 악성이 연합하는 유례 없는 사태.

무자비한 파괴, 잔혹한 무관심, 무질서한 탐구, 추악한 색욕, 좀먹는 강욕. 이 다섯 악성들이 한 세계를 침공했다.

결과는 끔찍한 궤멸. 군주급 악마만 셋이 죽어나가고 천만 악마가 통째로 소멸한 대참사였다.

데몬 게이트가 모조리 파괴되고 생존자가 없다시피 해서 수많은 악마들이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안드로진도 쾌락의 군주가 그곳에서 죽었다는 것만 알지 누가 죽였는지, 어떻게 죽었는지는 모른다.

이곳에서 안드로진이 100년 동안 벌이고 있는 일도 그 여파였고.

[나는 알짓.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짓! 나는 그곳의 생존자니깟!]

“네놈… 알고 있는 것이냐!”

[너희들의 아둔함으로는 그곳에서 벌어진 일을 알아내지 못하겠짓. 동물적인 본능에 사로잡힌 욕구의 짐승들앗. 내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고 했을 텐뎃!]

안드로진은 저 무질서한 책상물림에게 말려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세계… ‘성법 사용자’들의 세계에서 생존한 악마들은 너무나 적다. 정보를 알더라도 숨기고 이용하는 작자들이 허다했기에 알아내기도 힘들다.

바로 저 보옥 너머의 대악마처럼.

“말해라. 나 안드로진이 놈을 끝없는 타락의 구덩이로 집어넣겠다!”

[키킷! 최고 대악마가 시킨 일을 하는 중이라고 들었는뎃?]

그 말에 안드로진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비틀렸다.

“이제 곧 끝난다. 결국에는 필멸자. 끝이 머지 않았지.”

[좋닷! 그럼 알려주짓! 쾌락의 군주를 살해한 자들의 지휘관이 바로 이 세계에 있으니깟!]

지혜의 보옥은 필요한 정보를 안드로진에게 건넸다. 그리고 레이날드의 손에 들린 채 막사를 빠져나온다.

“이걸로… 된 것입니까?”

[이것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닷!]

지혜의 보옥은 승리를 확신하지 않았다. 비록 약해졌다고는 하나 상대는 역전의 용사.

잘못하면 안드로진이 역으로 살해당하는 결과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칠대삼. 안드로진이 칠, 놈이 삼이닷.]

“그, 그 정도라면… S급 마도사인 저와 위대한 존재께서 개입하면 필승 아닙니까?”

[난 안 간다니깐?]

“…….”

쫄보 새끼. 레이날드는 대악마의 보신행위에 기가 질렸다.

[네놈도 나설 생각은 하지 마랏! 놈의 성법은 보옥을 부숴도 연결된 정신체를 소멸시키니깟!]

“……알겠습니다.”

방관자, 무조건 숨어서 암약한다. 그것이 철저한 자기보신이라는 것이 모양새 빠졌지만,

[안드로진은 나에 비하면 멍청한 짐승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바보는 아니닷! 사자심왕을 처리하기 위해 정예를 소집하겠짓!]

쾌락과 타락의 악마들은 악성들 중에서도 기괴함이라면 으뜸이지만, 전투력이 강력한 이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 숫자만큼은 강욕의 악마들만큼이나 많다. 숫자가 많다는 건 그만큼 풀이 넓다는 걸 의미한다.

[놈은 곧 고위 악마들을 소집하겠짓!]

이곳은 타락의 장. 군주를 잃은 뒤, 쾌락과 타락의 악마들이 100년 동안 공을 들이고 있는 곳이다.

“이제 어디로 갈까요?”

여기서 그칠 생각이 아니다. 지혜와 탐구의 악마들은 마법에 특화된 인텔리한 악마들이다.

그들은 다른 악마들을 강화시키고 마법적인 힘을 부여할 수 있다.

쾌락과 타락의 악마들이 전투력이 약한 편이긴 해도, 지혜의 악마가 직접 버프를 걸어준다면 능히 왕국과 함께 사자심왕을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

[먼저 왕성 근처 숲에서 난교를 벌이고 있는 시체 수확자들에게 간닷! 신선한 시체를 먹는 그놈들은 공격력 하나만큼은 확실하짓!]

시체 수확자들은 살해한 시체를 가지고 노는 흉악한 악마들이다.

시체의 부위를 수집할 때마다 몸에 장식으로 두고 다니는 악취미적인 악마들이지만, 신선한 시체를 확보하기 위해 전장을 쏘다니는지라 전투능력이 높다.

그것들을 마법으로 강화해준다면 어지간한 라이온하트 2군 네임드 정예부대와도 싸워볼 만한 강력한 부대가 되겠지.

[크흐흐, 기다려라, 라이온하트. 이 게이트가 너의 무덤이 될 것이닷.]

시체 수확자 부대가 있는 막사를 발견한 그때였다. 레이날드는 중급 악마인 시체 수확자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목격했다.

“저것이 시체 수확자…….”

실로 끔찍한 외형이었다.

한쪽 팔은 촉수였고, 다른 한 팔에는 큼직한 박도가 들려 있다.

머리 끝부터 고간, 발끝까지 나체인 주제에 착실하게 노출을 숨겼다. 시체조각 따위로 말이다.

흉악하기 그지 없는 싸이코패스 광전사들. 레이날드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려 했다.

[수, 숨엇!]

속삭이듯 하는 말과 동시, 시체 수확자의 목에 무언가가 걸린다. 시체 수확자가 외친다.

“그어어어, 시, 시러어어! 시러어어어어어!!”

절규어린 비명과 함께 솟구치는 시체 수확자. 그가 끌려가는 방향으로 시선이 따라간 레이날드는 믿지 못할 광경을 목도했다.

“흡…!”

거미줄.

숲에, 온 사방에 거미줄이 쳐져 있다.

-시러어어…….

-죽여줘어어…….

그리고 그곳에 매달린 희생자들. 거미줄에 붙잡혀 고통에 신음하는 시체 수확자들.

“스피너 경. 그쪽은 처리했나?”

-끼룩!

그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과 차가운 기계음이 들린다. 레이날드와 지혜의 보옥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성배기사들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야! 제대로 감췄지? 은신 제대로 켰어?]

‘무, 물론입니다! 최상급 은신마법으로 시각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마법이라구요!’

[불안햇! 졸라 불안햇!]

지혜의 보옥은 자신의 마기를 이용했다. 기껏 산제물을 통해 쌓아둔 마기를 아낌없이 사용할 정도로 완벽한 은신마법을 펼치며.

-본기는 아직 생존한 개체가 있을 것으로 추정. 마지막으로 붙잡은 개체가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음.

“그렇게 청소를 했는데도 아직 있나.”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레이날드는 이 숲에 올 때까지 그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다.

이런 곳에서 저만한 숫자의 부대를 휩쓰려면 분명 소음이 발생할 텐데?

[성배기사의 정적의 성법이닷! 군마가 달리는 소리조차 차단하는 말도 안 되는 지랄이얏! 정적의 성법을 펼치고 숲 안의 모든 악마들을 사냥한 거닷!]

‘그, 그게 가능합니까?’

[나도 몰랏! 근데 저 새끼들은 한닷!]

성배기사의 전술성법. 그 불합리를 만끽한 지혜의 보옥이었다.

온갖 지식과 마법을 수집하는 지혜와 탐구의 악마들 사이에서도 성배기사들의 성법은 ‘불합리’ 그 이상의 해석이 불가한 것이었다.

“흐음… 이상하군. 불쾌한 기운이 느껴진다만…….”

그럴 리 없다. 지혜의 보옥은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지혜의 보옥이 방금 친 마법은 아공간 차원 박리까지 곁든 완벽한 은신이었다.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다는 단점은 있어도 이게 들킬 리가 없다!

“이 근처인 것 같은데…….”

레온의 얼굴이 레이날드의 옆을 지나간다. 거미줄 위에서 핏물을 뚝뚝 떨어지는 피의 숲에서 그의 광채어린 얼굴은 부자연 그 자체.

레이날드는 핏발 선 동공으로 그를 주시하며 침조차 삼키지 못했다.

‘제발 그냥 가라! 그냥 가라!’

“흐음…….”

의심이 짙어진다. 무언가가 있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변해간다. 레이날드는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만약 레온이 고개를 돌려 자신 쪽을 바라본다면, 그는 확실하게 자신들의 존재를 눈치챌 것이라고.

서서히 돌아가는 고개를 보며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그때──

-끼룩!

“무슨 일인가, 스피너 경.”

-간이위성 타겟 관측. 포인트 4-b17에서 처리 가능.

“오늘 더 사냥할 것들이 남아있었군.”

야피의 보고를 들은 레온은 곧장 고개를 돌렸다.

저벅저벅, 숲을 걸어가는 초인의 소리가 멀어져간다. 레이날드와 지혜의 보옥이 목소리를 낸 건 그들이 사라진 뒤, 5분이 지나고서였다.

“후아아아…….”

[디, 디질뻔 했닷…….]

인생과 악마생의 수명이 10년 사라진 순간이었다.

* * * *

밤사이 레온은 악마들을 300마리 넘게 도살하고 왔다. 모두 정예였다.

홧김에 뛰쳐나가긴 했어도 출정이 의미없진 않다.

“쾌락과 타락의 악마인가.”

그 이상성욕자들. 올바른 성애가 아닌 끔찍하게 뒤틀린 색욕을 추구하는 변태들.

레온은 이 게이트에 자리 잡은 악마가 그들임을 알고 불쾌해졌다.

악마들은 모조리 불쾌하며 태워 죽여야 할 벌레들이지만, 그중에서도 추악한 색욕의 악마들은 특히나 불쾌했다.

그것들은 인간을 타락시킨다.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향락과 색욕의 늪으로 빠뜨린다.

어지간한 인간들은 하급 악마의 유혹조차 견뎌내지 못할 정도.

제국과 이웃 왕국들에 만연한 타락을 주도한 게 그들이었으니.

전투력은 약한 편이지만, 가장 위험하다. 레온은 타락한 이들이 어떻게 제 형제와 가족들을 배신하는지 잘 알았다.

‘이상하군. 어째서 이 게이트에 그토록 많은 색욕의 악마들이 자리를 잡은 것이지?’

적지 않은 수의 상급 악마들. 그리고 색욕의 악마들 중에서도 정예로 구분되는 악마가 여럿 있었다. 당연히 대악마도 있을 테지.

‘그만한 존재가 게이트에서 죽을 치고 있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인데…….’

대체 무엇 때문에? 레온은 의문을 인내하지 않고 가장 의심되는 곳부터 살펴볼 생각이었다.

“지독한 냄새. 피로하실 텐데, 쉬지 않으시고요.”

귓가에 울리는 달짝지근한 목소리. 레온의 눈이 부릅 떠졌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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