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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2

미래를 보는 투자자 041

41화.

한국대학교는 서울 소재 대학들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한국대가 설립된 것은 해방 직후. 그때는 땅값이 싸서 부지를 크게 짓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크기도 큰 데다가 한국 최고의 대학인 만큼 지방이나 외국에서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온다. 대학로고가 새겨진 티셔츠와 기념품 판매점까지 있을 정도다.

뭐, 그런 것 치고 막상 가보면 딱히 볼 건 없다.

“한국대는 왜요?”

내 물음에 엘리가 대답했다.

“한국이 세 번째여서 관광지는 많이 가봤는데, 한국대는 못 가봐서요. 제시카에게 얘기도 많이 들었고. 그래서 예전부터 꼭 한 번 가보고 싶었어요.”

“그래요?”

현주 누나 대학시절이면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대학교가 안 변할 리 없다.

그 사이 건물 여러 채가 새로 지어지거나 리모델링되었다. 이게 다 학생들이 열심히 등록금을 갖다 바친 덕분이다.

“그럼 한국대로 갈게요.”

난 스마트폰 지도에 목적지로 한국대를 찍었다.

평일이고 출근시간도 이미 지난 터라 길은 별로 막히지 않았다.

“진후도 한국대 학생이죠?”

“예. 경영학과예요.”

“제시카는 경제학과죠?”

“맞아요.”

강변북로를 빠져 나오자 슬슬 한국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난 호은산 아랫자락에 펼쳐진 거대한 캠퍼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한국대예요.”

“정말 크네요.”

학교에 도착할 때쯤 난 중요한 문제를 깨달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타고 있는 차였다.

이 차는 평범한 차가 아닌 오택규카.

이런 차를 타고 다닌다는 소문이 퍼지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한국대는 넓고, 지금은 방학 중이다.

설마 아는 사람과 마주치지는 않겠지?

난 그렇게 생각하며 한국대 캠퍼스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오랜만에 왔구나. 휴학하고 군대 간 이후로 처음이다.

난 중앙도서관 근처 주차장 구석진 곳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재빨리 내렸다. 

“일단 도서관부터 안내할게요.”

난 엘리와 함께 도서관 건물로 향했다. 

한국대 도서관은 캠퍼스만큼이나 규모가 크다. 열람실, 독서실, 식당, 카페는 물론, 국보급 도서를 전시해놓은 전시관도 있었다.

“여긴 일반인들도 들어올 수 있나요?”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구역이 있고,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이 따로 있어요.”

천천히 안내를 해주는데, 지나가던 학생들이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쳐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든 여자든 할 것 없이 시선이 쏟아졌다. 당연하지만, 내가 아닌 옆에 있는 엘리를 보는 것이다. 

한국대는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결연을 맺고 교환학생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때문에 교내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시선을 끄는 것은 그녀의 외모였다. 큰 키에 쭉 뻗은 다리, 볼륨감 넘치는 몸매에 시원시원하고 또렷한 이목구비까지. 

게다가 그냥 백인이 아닌 혼혈 특유의 묘한 매력까지 더해졌다. 그저 서있는 것만으로도 패션화보 같았다.

예쁘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주목을 받을 줄이야.

내가 다 불편할 지경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엘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하긴,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지는 않았겠지.

방학 중임에도 도서관은 공부하는 학생들로 넘쳐났다. 엘리는 그 모습을 보고 놀란 듯 말했다.

“학구열이 대단하네요.”

“요즘 취업이 힘드니까요.”

아주 오래전(대략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 한국대 졸업장만 있으면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모셔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취업이 어려워 졸업을 미루는 선배가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놀 땐 다들 잘 놀아요.”

한국대 축제는 지역에서 꽤 유명하다. 주변 대학교 학생들도 많이 놀러올 정도다.

도서관 구경을 끝마친 후, 우리는 1층에 있는 카페에 앉았다.

“진후는 지금 휴학 중이죠?”

“예.”

“학교는 계속 다닐 생각이에요?”

“아마도요.”

이제 와서 학교 졸업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어차피 기업 인수를 끝마치고 나면 딱히 내가 할 일은 없다.

어머니도 졸업하기를 바라고 계실 테고.

난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CC인지 팔짱을 끼고 다니는 커플의 모습도 보였다.

아마 예지력 같은 게 생기지 않았다면, 복학해서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지 않았을까? 그럼 엘리를 만날 일도 없었겠지.

학교 온 김에 민영이에게 연락이나 해볼까? 

그런데 주머니에 폰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내비게이션 보느라 센터페시아 위에 올려놓았던 것이 기억났다.

난 엘리에게 말했다.

“잠시 커피 마시고 있어요. 차에 가서 폰 좀 가져올게요.”

“천천히 다녀와요.”

난 중앙도서관 건물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내 차 바로 옆에 아까는 없던 거대한 흰색 차가 서있었다.

흰색 벤틀리 컨버터블.

컨티넨탈 GT인가? 학생이 타고 다닐 만한 차는 아니다.

차문을 열고 안에 놓아둔 폰을 꺼내는데, 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띠리링!

상엽 선배였다. 난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쩐 일이에요, 선배?”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상엽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시간 나서 연락해 봤어. 통화 괜찮아?]

“예. 오늘은 미팅이 없어서 쉬고 있어요.”

OTK컴퍼니가 외국계 스타트업을 만나 직접 투자하는 사이, 상엽 선배는 K컴퍼니 이름으로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었다. 

“많이 바빠요?”

[오늘도 줄줄이 미팅이지. 지금도 사무실에서 판교로 가는 길이야.]

“해보니 어때요? 할 만해요?”

내 물음에 선배는 엄살 부리듯 말했다.

[해고당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하는 중이지.]

“이쪽 일 끝나고 돌아가면 사무실에 들를게요.”

그렇게 말하고 끊으려는데, 상엽 선배가 말했다.

[진후야.]

“예?”

[고맙다.]

한마디뿐이지만, 충분히 진심이 느껴졌다.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 시작인데, 뭘 벌써 그래요? 감사인사는 나중에 실컷 들을게요.”

[하하, 알았어. 나중에 보자.]

짧은 통화가 끝났다.

상엽 선배의 목소리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바쁘고 힘든 것과는 별개로 의욕이 넘치는 모양이다.

주머니에 폰을 넣고 차에서 나오는데, 10여 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아는 얼굴이 보였다. 다름 아닌 민영이와 경일이었다.

경일이는 뒤에 있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한국대 식당들 중 중앙도서관 식당이 제일 맛있는 거 알지? 오늘은 내가 쏠 테니까 마음껏 먹어.”

“와아!”

“선배님 최고!”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후배들 데리고 밥 먹으러 가는 중인가?

평소라면 아는 척 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마주치면 곤란하다.

재빨리 몸을 숙이는데, 하필 그 순간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난 모른 척 지나가 달라는 뜻에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경일이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반가워하며 소리쳤다.

“야, 강진후! 학교엔 어쩐 일이야?”

“······.”

이 새끼가?

민영이는 물론, 뒤따라오던 후배들까지 일제히 나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난 어색하게 손을 들어보였다.

“어, 오랜만이다.”

경일이는 차를 보더니 호들갑을 떨었다.

“우와! 이 차는 뭐야? 설마 이거 니 차야?”

민영이 역시 놀랐다.

“너 이런 취미가 있었어?”

후배들 역시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다들 이런 오타쿠카는 다들 처음 보는 모양이다.

민영이는 일단 후배들에게 나를 소개시켰다.

“이쪽은 우리 동기인 강진후. 다들 인사해.”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처, 처음 뵙겠습니다.”

지금 인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잘못하다가는 오타쿠 선배로 낙인찍히게 생겼다.

“그게 아니라······.”

내 차가 아니라 잠깐 빌려 탄 거라고 말하려는데,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에 뭘 이런 걸 붙이고 다녀?”

갈색 머리카락에 짙은 화장, 커다란 링 귀걸이. 화려하고 눈에 띄는 옷차림에 루이비통백을 든 여학생이었다.

이 추운 날씨에 짧은 치마에 몸매가 다 드러나는 얇은 옷을 입고 발등이 거의 일자가 될 정도로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었다.

얜 경영학과가 아니라 무용과를 갔어야 하는 거 아니야? 발레하는 줄.

“너도 있었냐?”

그녀는 과동기인 이혜미. 

예쁘고 화려한 외모 덕분에 과내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지만, 나와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이유는 학기 초에 있었던 조별과제 때문. 

전공과목인 데다가, 교수는 학과장, 여기에 기말시험을 대체하는 조별과제라는 점까지 겹치며 모두가 의욕을 불태웠다. 

그런데 혜미는 약속이 있다 어쩐다 하며 빠지기 일쑤였다. 어쩌다 참석할 때도 자료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당시 조장을 맡고 있던 내가 지적을 하면 웃음과 애교로 얼버무렸다. 다른 동기들은 그걸로 충분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난 한 번만 더 빠지면 아예 이름을 빼버리겠다고 경고했고, 그녀는 역시나 웃으며 넘어갔다. 그러고는 급한 일이 있다며 다음날 또 빠졌다.

결국 난 당일에 그녀의 이름을 빼고 발표했다. 1학년 치고는 꽤 잘한 발표였고, 덕분에 조원들은 대부분 A학점을 받았다. 그러나 혜미만은 F였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혜미는 울며불며 한바탕 난리를 쳤고, 그 이후에는 강의실에서 마주쳐도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혜미는 날 보며 대놓고 비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다니면, 안 부끄러워?”

사실 부끄럽다. 

난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남이야 차에 뭘 붙이고 다니든 뭔 상관인데?”

“보는 사람 생각도 해야지. 기분 나쁘잖아.”

부끄러운 거야 그렇다 치고, 대체 왜 기분 나쁘다는 소리까지 들어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니가 기분 나쁠 건 뭐야?”

그러자 혜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여자의 성을 상품화하는 이런 스티커를 차에 붙이고 다니는데, 여자로서 기분이 안 나쁘겠어?”

뭔 개소리야? 이게 성 상품화와 무슨 관련이 있다고?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혜미는 계속 떠들어댔다.

“이런 게 바로 여성혐오야. 넌 여자후배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여기서 여성혐오가 왜 나와? 

그러고 보니 그때도 조별과제에 이름을 뺀 건 여성차별이니 미소지니니 하지 않았나?

어이없어 하는데 민영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얘가 이러는 거 하루 이틀이야?”

그렇긴 한데, 오랜만에 보니 적응이 잘 안 된다.

“주위에서 뭐라고 안 해?”

“그래도 남자애들이 받아주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그저 예쁘기만 하면 받아주는 남자 놈들도 문제다.

그 순간, 옆에 주차된 벤틀리에 불이 들어왔다.

삐빅!

혜미는 마침 잘됐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준형 선배! 선아야!”

선아?

난 시선을 돌렸다. 팔짱을 낀 남녀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작은 얼굴에 커다란 눈과 오뚝한 코, 새하얀 피부와 긴 생머리. 복장도 화장도 화려하지 않았지만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선아는 날 보고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놀라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

그녀의 옆에는 한 남자가 같이 있었다. 둘은 벤틀리 앞에서 멈춰 섰다.

성공한 뒤 외제차를 몰고 보란 듯이 나타나고 싶은 마음은 딱히 없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마주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난 흰색 벤틀리 컨버터블과 게임 캐릭터가 붙어 있는 빨간색 경차를 번갈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아, 진작 차 한 대 살 걸······.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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