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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21

EP.420 16. 기사 이반 (28)

투기장은 선수들을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도핑 검사를 진행했다. 마신의 축복이나 연금술사의 비약, 마법이 깃든 장비 따위로 승부를 유리하게 풀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들키면 소유주에게는 거액의 벌금이 부과되었고, 선수는 일정 기간 출전이 금지되면서 자동으로 노예 기간이 연장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꼼수는 존재했다. 검투사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 도핑 검사를 피하는 방법들이 떠돌곤 했다.

베르카는 승부를 위해서 뭐든 하는 남자였지만 도핑만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가 그것에 대해 도덕적인 신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도핑에 단순히 적발되는 것 이상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투기장에서 일하는 은퇴한 검투사 중에는 도핑을 남발하다가 몸을 망친 사람이 많았다. 마신의 축복에는 항상 그 대가를 요구했고, 연금술사의 비약은 검증되지 않은 약물의 실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마법이 깃든 장비 역시 언제 부작용이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지니고 다니는 것과 같았다.

도핑으로 인한 피해는 어디에 호소하기도 힘들어서 문제가 터져도 마땅히 보상받을 길이 없었다. 판매자가 악질적인 경우는 상대 진영의 의뢰를 받고 일부러 하자품을 줘서 패배를 유도하기도 했다.

그래서 베르카는 도핑 관련 제안은 언제나 거절해 왔다. 어차피 그가 흥행력이 떨어지는 것은 실력이 낮아서가 아니었기에 소유주도 그에게 그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이상하게도 소유주가 그의 숙소에 도핑 관계자를 들여보냈다. 최근 투기장에 유망한 신인들을 공급하면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업체였다.

베르카는 그들이 데뷔시킨 선수들의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 모두 10대인데도 신체 능력이 어지간한 어른 검투사들을 상회한다고 했다.

그런 괴물 같은 신인은 가끔 등장하곤 했지만, 한 업체에서 무더기로 쏟아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연히 도핑 검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몸이나 장비에서는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았다.

‘그런 업체에서 내게 도핑 제안을 한 것을 보면, 역시나 애들도 무슨 수작을 부려서 키워낸 게 분명해.’

지금까지 뛰어난 신인들을 공급하며 이름값을 올린 것은 업체의 선전을 위해서일 것이다. 앞으로 그들이 업계에 끼칠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소유주도 이전과 달리 쳐내지 못한 것 같았다.

“명성이 자자한 투기장의 챔피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를 찾아온 것은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은 중년 여성과 흰색의 도복을 입은 젊은 남성이었다.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은 여자 쪽이었고, 남자는 호위 역인 듯 뒤에서 그의 숙소를 두리번거리만 하고 아무 말이 없었다.

베르카는 소유주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녀가 권한 것은 어떤 약물이었다. 그것을 마시고 주문을 외우면 몸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병 속에 담긴 끈적끈적한 검은 액체를 바라봤다.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점액질의 촉수로 유리병의 벽면을 긁고 있었다.

“원하는 대로 몸을 바꿀 수 있다? 그럼 내가 ‘날개가 생겨라!’라고 바란다면 날개가 돋아난다는 건가?”

“물론이죠! 연습이 필요하겠지만요.”

베르카의 입에 비웃음이 걸렸다. 하여간 이 약장수 놈들이 말하는 법은 항상 저런 식이었다.

“재미있군. 시험은 충분히 거쳤나?”

“챔피언님도 참. 이런 곳에 흘러드는 물건에 그런 게 있겠어요?”

베르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러니까 나를 실험 대상으로 삼고 싶다는 거군?”

콤프라치코스의 간부인 마샤는 그의 표정에 서린 강한 불신을 확인하고는 입을 딱 다물었다. 그 말고도 다른 투기장의 챔피언들도 다들 그녀의 말을 믿지 못했다.

원하는 대로 몸을 바꿀 수 있다니. 그녀도 이 약의 성분이 뭔지 몰랐다면 사기꾼의 헛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점 거짓 없는 진실이었다. 그녀가 권한 약물의 주성분은 다름 아닌 데볼루트였기 때문이다.

저주 역병의 원인 인자로 알려진 그것은 생물의 몸에 들어가면 무서운 현상을 일으켰다. 생물이 지닌 원래의 형태를 무너뜨리고 무제한의 변형을 일으키는 것이다.

데볼루트가 일으키는 변형은 마구잡이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세상에 알려지닌 않은 규칙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변형은 철저하게 감염자의 의지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속으로 몇 마디 바란다고 그래도 변형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다. 데볼루트는 감염자의 생각, 감정, 기억에 더해서 충동, 욕구, 열등감 등 온갖 것을 육체에 반영했다.

즉, 저주 역병의 피해자가 변하는 모습은 자기 내면의 형태라고 할 수 있었다. 저주 역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본인의 상상력에 잡아먹히는 것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저주 역병’의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탓에 거기에서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데볼루트의 이러한 속성은 반대로 말하자면 그 변형을 의식적으로 잘 조정하기만 하면 몸을 원하는 대로 개조할 수 있다는 말도 됐다. 그러나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역사상 그것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가 바로 성자 빅터였다. 그렇기에 그는 역병 군주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

물론 일반인도 특정한 도구를 이용하면 그와 근접한 수준으로 데볼루트를 조작할 수 있었다. 키르쿠스의 성물인 ‘트릴’이나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별빛’ 가루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콤프라치코스와 부두교는 지난 십수 년 동안 별빛 가루를 수집해 그것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 결과 그들은 아이를 개조해 팔거나 신도들에게 개조된 육체를 제공해줄 수 있었다.

두 조직의 방식은 각각 장단이 있었다. 콤프라치코스는 고객의 요구에 따라 속눈썹 한 올까지도 섬세하게 조정할 수 있었으나, 어린아이에게만 시술이 적용 가능했고 원형을 벗어난 큰 변형은 불가능했다. 부두교는 나이 상관없이 누구나 시술을 받을 수 있었고 원형을 크게 벗어난 변형도 가능했으나, 그 만듦새가 단순하고 조잡했다.

콤프라치코스의 부회장인 까마귀 마녀는 그 기술을 활용해 고아들에게 새 가정을 소개해 주는 일에 만족했다. 그러나 조직의 서열 3위라고 할 수 있는 록센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이 정도 힘을 가지고 고작 입양아 중계나 하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따르는 간부들을 따로 모아 비밀 실험을 진행했다. 병사로 쓸 수 있는 인간병기들을 키워내고 데볼루트로 개조할 수 있는 한계를 더 늘리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리고 며칠 전 그들은 직업에 따라 데볼루트를 통제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로 육체적인 일을 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하며, 잠깐의 집중력 차이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환경에 사는 사람들이 데볼루트를 다루는 데 높은 자질을 보였다.

해당 직군에 해당하는 사람으로는 군인, 용병, 선원 등이 있었다. 그러나 멀쩡한 직업과 신분이 있는 그들을 실험에 끌어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록센과 마샤는 투기장의 검투사들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그녀가 탈주한 실험체들을 찾는 일을 페렌츠에게 맡겨두고 검투사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다니는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다행히 인간병기의 힘을 시험해 보기 위해 투기장에 유통망을 뚫어두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역시 한 투기장의 챔피언쯤 되는 이를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며칠 내내 투기장을 전전한 그녀는 실험 효율은 떨어질지라도 기량이 모자라는 검투사들을 상대로 영업을 해보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녀가 작별 인사를 꺼내기 전에 숙소의 입구에서 누군가 뛰어 들어왔다. 그는 투기장의 일꾼이었는데 두건 밑으로 허연 수염이 늘어진 게 보일 정도로 나이가 들어 보였다.

“헉, 헉, 베르카…….”

“영감?”

노인은 수십 년 전에 은퇴한 검투사로 계약 조건을 채우지 못해 투기장에서 지금까지 일꾼으로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린 이반과 베르카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많이 해주었기에 하인의 신분이었지만 베르카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헉, 헉, 오늘…… 너의 대전 상대가 정해졌다.”

“내 원래 링네임을 사간 쪽이라고 했잖아. 투기장을 체험하러 온 기사와 가볍게 검을 나눠주면 된다며?”

베르카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노인이 어딘가 들뜨면서도 동시에 씁쓸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의 표정은 급속도로 싸늘해졌다.

“이봐, 설마…….”

“그래. 네가 잘 아는 사람이다.”

“큭,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럴 리 없잖아! 뭔가 잘못 본 거 아냐?”

“아니다. 그가 돌아왔다.”

베르카는 벌떡 일어나 노인의 멱살을 잡았다.

“웃기지 마!”

“녀석은 너를 죽이려 할 거다…….”

“젠장, 헛소리는! 그놈은 완전히 끝났다고!”

그러나 그의 외침이 무색하게 열린 문틈으로 마법으로 증폭된 쩌렁쩌렁한 고함이 들려왔다. 투기장의 중계석 방향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였다.

“놀라지 마시라! 앞으로 6시간 뒤에 있을! 오늘 오후 경기의 대미를 장식할 시합은! 페트로프 13호의 이름을 쓰는 가짜 챔피언! 비열한 승부사 베르카! 그리고 그 상대는! 빼앗긴 링네임을 되찾기 위해 지옥 밑바닥에서 돌아온 흑투사! 우리가 아는 진짜 챔피언! 이반 페트로프! 이 경기를 놓치면 사나이가 아니지!”

사회자의 음성이 잦아들었다. 짧은 침묵 뒤에 베르카가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

투기장 경영자는 주주들로부터 투기장의 운영에 대한 전권을 받아 행사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흥행과 실적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관중들의 시선을 끌 거리를 발굴하려고 애썼다. 흥미로운 시합 프로그램을 짜는 건 기본이고, 검투사끼리 여러 대립, 협력 구도를 만들게 하고, 억지로라도 논란거리를 캐내어 화제에 오르도록 유도하고.

투기장 경영자에게 있어서 이번 이벤트는 절대 놓칠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마지막 한 번의 승리를 남겨두고 몰락해 링네임까지 빼앗겨버린 전 챔피언과 원래 자자하던 악당으로서의 명성을 이번 링네임 도둑질로 정점으로 찍어버린 현 챔피언 간의 대결! 당일 오전에 홍보해도 충분했다. 경기장은 분명 만원을 이룰 것이다.

“경영자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멋대로 경기 선전 문구를 바꾸면 어떡합니까? 베르카가 링네임 교환을 한 건 이번 시즌 동안 비밀로 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진정하게. 페트로프 13호의 경기를 몇 번 본 팬들은 이미 그가 예전의 그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분위기였어. 어차피 오래 못 가서 들킬 예정이었지. 애초에 링네임만 바꾸고 경기 스타일을 안 바꾸면 어쩌자는 거야? 뼈아픈 패배를 겪고 타락했다는 설정도 한계가 있지. 얼마 안 가 단물이 다 빠질 거야. 그렇게 될 바에 차라리 이런 식으로 대형 이벤트로 소모하는 게 낫지.“

흥행사의 보증에 베르카의 소유주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하나하나 손익을 따져보던 그는 잠시 후 이번 경기에 대한 원론적인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정말 가능합니까? 경기가? 그…… 페트로프는 분명 폐인이 됐을 텐데요…….”

“내가 이 눈으로 선수의 상태를 직접 확인했네. 그는 충분히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상태야.”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노인에게 사정을 모두 전해 들은 베르카는 소리 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분명 3일 전에 이곳을 떠날 때만 해도 페트로프는 자신의 일갈에 여전히 오줌이나 지리는 바보였다. 그런데 어떻게 고작 며칠 만에 원래 대로 돌아온 것일까? 그는 한 가지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도핑! 그래. 그게 분명하다. 보면 원래 대로 돌아온 게 아닐 수도 있어. 광전사의 물약 같은 것을 먹고 전투 본능만 되살려진 인형으로 경기장에 오르는 걸 수도……. 아니면 마신의 힘을 빌려서 마인이 되었다든지…….’

일단 경기 전에 있을 도핑 검사의 결과를 봐야 판명될 일이었다. 물론 상대도 작정하고 덤비는 이상 그깟 검사에 들키는 방법을 썼을 확률은 낮았다.

“좋습니다. 한 번 붙어 보죠. 놈은 언젠가 제 손으로 쓰러트리고 싶었으니.”

“하, 하지만 자네는 한 번도 그를 이긴 적이 없지 않나?”

“방법이 있습니다.”

베르카는 이제야 소유주가 왜 이 약장수 여자를 자신에게 보냈는지 깨달았다. 무슨 수를 동원해서라도 이기라는 신호였다.

도핑에는 도핑으로 상대하면 된다. 그는 테이블 위의 병에 든 끈적한 검은 액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괴물 신인들을 십수 명이나 배출한 것으로 현재 업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업체에서 제안한 물건이었다.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성능 하나는 확실할 것이다. 그가 아는 광전사의 물약 정도의 효과만 있어도 이반을 충분히 상대해 볼 만했다.

“이보쇼.”

“네. 챔피언님!”

마샤의 입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도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고 상황을 알아차린 것이다.

“당신의 제안 받아들이지.”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데볼루트 비약을 향해 손을 뻗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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