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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24

EP.423 16. 기사 이반 (31)

사회자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네 번째 라운드의 시작을 외쳤다. 현재 관중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검투사들끼리 경기에서 4라운드까지 가는 일은 잘 없었다. 검투사들이 입는 복장은 급소 부위만 간단히 가린 갑옷이었고, 보통 2라운드쯤 되면 서로 상처투성이가 되어 부상이 심한 쪽이 패배를 선언하기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라운드를 길어지는 경기가 꼭 재밌는 것도 아니었다. 보통 그런 경기들은 초보 검투사들이 서로 엉거주춤한 자세로 어설프게 공격하고 막으면서 제대로 된 유효타도 먹이지 못하고 질질 끄는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라운드가 짧은 경기일수록 수준 높은 기술전인 경우가 많았다. 달인들끼리의 결투는 호흡 한 번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그들은 처음부터 서로의 급소를 노리며 전력을 다해 싸웠고, 그래서 그들의 경기는 2라운드는커녕 1라운드를 넘기는 경우도 잘 없었다.

물론 거기에는 일류 검투사의 비싼 몸값 때문에 조금만 선수가 상처를 입어도 기권을 외치는 업계의 사정도 있었다. 중상보다 전적에 1패를 추가하는 게 상품 가치 보존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특히, 타이틀과 상금이 걸리지 않은 비정규 이벤트 전에서 그런 풍조가 제일 심했다.

그래서 이번 이반과 베르카의 대결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링네임 쟁탈전이라고 거창하게 포장했지만, 이미 정체가 다 까발려진 마당이라 쟁탈의 의미가 없었다. 주최 측은 두 선수가 서로를 못 죽여서 안달이라고 떠들어댔지만, 그야 여느 시합 홍보가 다 그렇듯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몇 년 동안 같은 훈련소 소속이었고, 검술도 같은 종류를 사용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막상 시합이 시작되면 거친 말로 분위기만 띄우고 대충 검 몇 합 나눈 뒤, 링네임을 교환하고 경기가 끝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싸움은 예상외로 살벌하게 진행되었다. 둘 다 진심으로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덤벼들었다.

수준 높은 공방은 물론 기회만 생기면 부상이 생길지도 모르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행했다. 관객들이 평소에 보던 이벤트 전이나 친선전이 아니었다. 정규 챔피언 전에 버금가는 혈투였다. 사람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경기장은 다들 이반의 승리를 점치는 분위기였다. 일단 1, 2라운드는 서로 주고받은 셈 칠 수 있지만, 3라운드에서 점수가 크게 벌어져 버렸다.

물론 앞으로 잘만 하면 베르카가 역전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그는 3라운드 내내 이반의 공격을 막기만 하다가 몸을 몇 군데 다치고 말았다. 오른쪽 장딴지 안쪽을 제법 깊게 베였으며 왼쪽 손가락도 한두 마디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보통이라면 당장 기권해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이었다. 그런데 베르카는 무엇을 노리는 건지 상처를 입는 와중에도 결코 경기를 포기하려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투혼에 찬사를 보냈다.

열기로 달아있는 객석의 분위기와 달리 무대 위에 선 두 선수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베르카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반의 표정을 보고 그가 각오했음을 눈치챘다.

이대로 자신을 살려서 보낼 바에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자신을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베르카 자신도 바라던 바였다.

‘그래. 와 봐라.’

심판이 호각을 붊과 동시에 이반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검이 그리는 궤적과 그의 준비 동작이 가리키는 것은 베르카가 기다리던 투혼 2단계의 2번째 응용 기술이었다.

거기에 대항하여 베르카가 꺼낸 것은 지극히 교과서적인 대응이었다. 그것은 이반의 머릿속에도 있던 선택지였기에 그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흘리며 공격을 이어 나가는 연계 동작을 취했다.

‘지금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베르카가 진짜로 노리던 것이었다. 그는 갑자기 자세를 무너뜨리고 왼쪽으로 휘두르려던 검을 손에서 놓았다. 그 순간 그 검을 낚아챈 것은 오른쪽으로 가속을 하고 있던 반대쪽 손이었다.

분명 이반의 공격에 대응하던 교과서적인 동작이 자세를 무너뜨림으로써 정확히 그의 연계 동작의 허점을 찔러 들어가는 구도로 전환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3년에 걸쳐서 탄생시킨 페트로프 죽이기의 첫 기술이었다.

그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미소를 지었다. 상대의 목이 자신의 칼에 베이는 장면이 그려졌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그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자신의 기습을 이반은 어느새 다리를 반보 앞으로 내뻗어 허리를 돌리는 축을 만듦으로써 회피해버린 것이다.

‘이럴 수가!’

자신이 3년에 걸쳐서 개발한 비장의 한 수가 즉석에서 격파당하고 말았다. 충격으로 망연자실하여 굳어 있는 그를 향해 이반의 검이 날아왔다. 허리를 반 바퀴 돌린 탓에 역회전이 걸려 속도가 조금 죽었지만, 얇은 검투사용 갑옷 정도는 벨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실려 있었다.

콰직. 이반의 검이 베르카의 갑옷을 부수고 그의 몸을 파고 들어갔다. 검은 그의 가슴 아래에서 시작하여 그의 몸통을 절반이나 가르고 난 다음에야 빠져나왔다.

붉은 피가 퍽하고 터져 나왔다. 베르카는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겨, 경기 중단! 선수의 심각한 부상으로 경기 중단! 승자는…… 우리가 아는 그 챔피언! 이반 페트로프!”

4라운드가 시작된 지 몇 초도 되지 않아 결판이 나버렸다. 관객들은 당황했지만 잠시뿐이었다. 그들은 이반 페트로프의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방금의 짧은 순간에 오간 두 사람의 공방에 담긴 의미를 파악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 투기장 물 좀 먹었다는 관객들도 베르카가 부상으로 자세가 무너졌기 때문에 졌다고 여겼다.

사회자는 5년 동안 이 투기장의 챔피언으로 군림해온 페트로프 13호가 계약 조건을 충족시켜 은퇴하게 되었음을 관객들에게 알려주었다. 그가 링네임을 되찾고 다시 투기장으로 복귀할 줄 알았던 관객들은 안타까운 비명을 내질렀지만, 금방 축하하는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이반은 주최 측에서 자신을 위해 은퇴식 무대를 설치하는 것을 바라보며 바닥에 누워 있는 베르카 옆에 섰다. 의료진들은 그가 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제, 제길…… 여, 여기까지일 줄이야…….”

베르카는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의 얼굴에는 체념의 빛이 가득했다. 그가 마지막에 맛본 압도적인 패배감은 그를 좌절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마, 만족하나? 이네스 누님의 복수를 했으니…….”

“그럴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군. 결국 마지막까지 난 페트로프의 검으로서 싸웠다.”

이반은 베르카의 몸을 베는 순간, 복수로 인한 희열보다 상대의 수를 격파했다는 쾌감이 더 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네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자신을 격정으로 몰아봤지만, 검을 마주한 순간, 그의 몸과 마음을 지배한 건 순수한 검사로서의 정체성이었다.

“크, 크큭, 끄, 끝까지 모범생이었군그래?”

베르카는 피를 쿨럭 토하며 웃음을 흐렸다. 결국 자신은 그의 무엇도 무너뜨리지 못했다.

“마,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어, 어떻게…… 어, 어떻게 그걸…… 간파한 거지? 내, 내가 3년에 걸쳐서 개발한 건데…….”

이반은 그가 자신에게 시도했던 기술을 떠올렸다. 그것은 확실히 위협적인 한 수였다. 만약 아무런 대비 없이 그 기술과 처음 마주쳤으면 죽는 건 자신이었을지도 몰랐다.

“난 그 기술을 몇 번 경험한 적이 있다.”

“그게 무슨……? 누, 누구에게도 보여 준 적이 없는데…….”

“너보다 뛰어난 검사가 훨씬 오래전부터 페트로프 가문의 검술을 꺾기 위해 노력해 왔다. 나는 그분 덕분에 목숨을 건졌고, 그분 덕분에 그것을 알게 되었지. 그분은 네가 사용했던 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초식에 대해서도 파훼법을 만들어 내셨다.”

이반의 말에 베르카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도달했다고 생각한 경지가 이미 누군가에게는 옛날옛적에 지나간 발자취에 불과했다니.

“그, 그 남자의 이름은?”

이반은 잠시 머뭇거렸다. 검을 놓은 분의 이름을 이렇게 함부로 밝혀도 되나 싶었다. 그러나 어차피 죽을 사람에게는 상관없을 것 같았다.

“프랑크 원더스타인.”

“그, 그렇군……. 그가 네 ……이란 말이지…….”

베르카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숨을 거뒀다. 이반은 그가 죽기 직전에 입에 담은 단어를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혼미한 의식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온 단어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자신이 원더스타인이라는 남자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베르카의 입장에서 솔직하게 바라본 대로 말해준 셈이 됐다.

잠시 후, 그의 은퇴식이 시작되었다. 관객들의 환호 아래에 투기장의 경영자가 직접 나와서 그의 은퇴를 축하해주었다.

“혹시 어디 갈 곳은 정했나? 귀족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소유주를 통해서 기사 자리를 알아봐 줄 수 있는데.”

그는 경영자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원래의 그였다면 그것을 받아들였을지도 몰랐다. 가문의 이름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다는 욕망은 언제나 그의 마음 한구석에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그는 그렇지 않았다. 가문을 다시 부흥시키는 것도 좋지만, 현재 그가 온 힘을 쏟아부어야 할 곳은 그곳이 아니었다. 여태껏 계속 고민하던 문제였는데 방금 베르카가 남긴 마지막 말을 듣고 결심을 내릴 수 있었다.

은퇴식을 마친 그는 괴물서커스단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향했다. 단원들은 모두 그가 자유민이 된 것을 축하해주었다.

“어디로 갈지는 정했나요?”

원더스타인은 은근한 어조로 그에게 질문했다. 그의 시선은 한쪽에 떠 있는 퀘스트 창을 향해 있었다.

*서브 퀘스트-기사

: 용사는 원작대로의 길을 가야 합니다.

달성 조건

: 이반에게 자유를 되찾아 주고 기사로 만드십시오.

성공 시 보상

: [원더스타인의 기억이 담긴 메모리 디스크 No.2]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이네스가 살아 있었다면 원더스타인은 그가 그녀와 함께 떠나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줬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의 미래를 멋대로 바꿔버린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보답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게 된 이상, 이제 그에게 있어서 최고의 시나리오는 그가 기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드디어 원더스타인의 과거에 대해 뭔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의 기대가 무색하게 이반은 이미 이곳에 온 시점에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그는 원더스타인 앞에 검을 가지런히 놓고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제게 검을 가르쳐 주십시오.”

원더스타인은 그의 요청을 듣고 당황하지 않았다. 그가 이런 생각을 품고 있음을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솔직하게 자신이 그를 가르칠 능력이 되지 않음을 밝혔다.

“이반 씨, 당신은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군요. 저는 검사가 아닙니다. 그저 일개 서커스단의 단장일 뿐이죠. 검을 쥐는 것도 오직 곡예를 위해서입니다. 알고 있는 검술도 딱 2가지뿐이에요. 당신의 가문 검술과 그것을 부수는 검술.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더는 당신에게 가르칠 건 없습니다.”

그는 이것으로 설명이 충분히 됐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이반은 그의 말을 듣고 그에 대해 품고 있는 자신의 추측에 확신을 더하게 되었다.

아마 그는 어떤 일을 통해 살인에 회의감을 느끼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서커스를 시작했을 것이다. (원더스타인이 알았다면 그건 알렌과 조라고 말해줬을 것이다.)

검 자체를 잊기로 결심한 그가 저 2가지 검술을 떠올려버린 것은 실수였을 것이다. 그도 설마 이런 투기장 구석에 페트로프 가문의 후예가 살아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잘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언젠가 당신 가문을 부흥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개 떠돌이 마술사의 제자가 된다고요? 세간의 비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원더스타인은 그의 입장을 다시 한번 주지시켰다. 그러나 이반은 고개를 저었다.

원작의 그가 기사가 됐던 것은 투기장을 나오는 과정에서 여러 귀족과 척진 탓에 몸을 지키기 위해 방패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그는 그런 게 필요 없었다.

그는 원더스타인의 말처럼 그의 밑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에게서 새로운 무언가를 얻어내기는 힘들 거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가문의 비전 검술을 부수기 위한 검술은 그가 도달한 최고 지점일 테니까. 아마 그와 대련을 반복한다면 1년 반 정도면 모두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반이 그에게 반한 것은 그가 단순히 검술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10살의 나이에 투기장으로 들어온 지 10년이 되었다. 언제나 홀로 살아가고 스스로 무언가를 깨우쳐 나가는 데 익숙한 그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받았다.

아까 베르카를 잡아낼 방법을 그가 거절했을 때, 자신이 느꼈던 섭섭함은 20살의 자신이 10살 시절에 두고 왔던, 의지할 수 있는 어른에 대한 투정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버지나 삼촌에게 느낄 법한.

이반은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대상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베르카가 죽기 직전에 가르쳐 주었다.

“스승님.”

[단원 목록에 ‘이반 페트로프’가 추가되었습니다.]

[서브 퀘스트-기사를 실패하셨습니다.]

원더스타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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