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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24

< 미래를 보는 투자자 423 >

김호민 교수는 우리를 보며 말했다.

“일단 이 배터리를 JN배터리라고 부르고 있어.”

“JN배터리요? 혹시 제 이름을 딴 거예요?”

원칙대로라면 JH가 맞겠지만, 내가 영어이름을 발음에 따라 ‘Jinu’로 쓰는 만큼 약자도 JN으로 쓴다.

내 물음에 김호민 교수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었어. 전에는 OTK배터리였으니, 이번에는 JN배터리. 꼭 그래서 그렇게 지은 건 아니고, 이 배터리에 대량의 제라티늄이 들어가는데, 제라티늄의 원소기호가 Jn이거든.”

“아, 그렇군요.”

괜히 내 이름 딴 줄 알고 좋아할 뻔했네.

“사실 아예 관련이 없는 건 아니야. 원래는 제라티늄으로는 실험할 생각이 없었는데, 네 이름과 약칭이 같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본 거니까.”

택규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전부 얘 덕분이네요.”

“하하, 그런 셈이지.”

김호민 교수는 본격적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회토류 알지?”

“당연히 알죠.”

희토류(Rare Earth Element).

이름 그대로 자연계에는 매우 희귀하게 존재하고, 채굴량과 거래량도 적다. 하지만 소량으로도 소재의 성능을 좌우할 수 있고,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산업의 비타민’ 으로 불린다.

현재 세계 희토류 시장을 쥐고 흔드는 것은 중국. 회토류 시장 중국 점유율은 무려 80퍼센트가 넘는다.

사실상 세계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점유율이 압도적이다 보니, 아예 희토류를 무기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0년 일본과 센카쿠열도 분쟁이 생기자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전면금지시켜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받아낸 일이 있다.(이후 일본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이 중국산 희토류 수입을 줄이며, 오히려 중국경제가 타격을 입었다)

현재도 미국이 무역관련 압박을 가하면, 중국은 희토류 수출량을 줄이겠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중이다.

김호민 교수는 칠판에 원소기호를 나열했다.

“희토류는 Sc, Y, La, Ce, Pr, Nd, Pm, Sm, Eu, Gd, Tb, Dy, Ho, Er, Tm, Yb, Lu. 이렇게 총 17개로 란타넘족과 15개와 스칸듐과 이트륨을 포함해. 알다시피 이 중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것은 란타넘족에 속하는 네오디뮴이야. 희토류 중에서는 흔한 편이지만, 자연계에 순물질로 존재하지 않아서 따로 추출과정을 거쳐야 돼.”

“오! 그렇군요.”

택규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눈빛을 보냈다.

‘넌 한국대 다녔으니, 이 정도는 알지?’

나 역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으로 대답했다.

‘아니. 문과가 저걸 어떻게 알아?’

그래도 원자재시장 분석하며 네오디뮴 정도는 들어본 것 같다. 자석 만들 때 쓰이는 거였나?

약 30분에 걸쳐 각 희토류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이어졌다.

택규가 슬슬 졸기 시작할 때쯤 김호민 교수는 마커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 제라티늄이 루테튬보다도 생산량이 적어. 애초에 자연계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데다가 순물질을 추출하는 과정이 대단히 까다롭거든.”

희토류가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금보다 비싸진 않다.

대표적인 고가 희토류인 루테튬의 경우 금의 반값 정도다. 그런데 순수 제라티늄의 경우 현재 시세가 1킬로그램에 약 23만 달러.금 1킬로그램이 5만 달러를 넘는 점을 생각하면, 네 배 가량 비싸다.

이런 걸 배터리 주요소재로 사용했으니, 가격이 300배로 뛰어도 이상하지 않다.

“제라티늄은 산업계에서 거의 쓰이지 않아. 반드시 제라티늄을 써야할 만한 이유도 별로 없고, 웬만한 건 다른 희토류로도 대체가 가능하니까.”

“그렇군요.”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산업용으로 활발하게 사용되기 위해서는 공급도 어느 정도 이뤄져야하고 가격도 맞아야 한다. 희귀하니 가격이 비싸고, 가격이 비싸니 쓰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거의 쓰이지 않는 데도 가격이 저 정도라는 것. 그런데 이걸로 JN배터리를 양산하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지금보다 몇 배, 몇 십 배로 폭등한다.

“여기까지 들었으면 눈치챘지? 수요공급보다 더 큰 문제가 따로 있다는걸.”

가격이 오르는 순간부터 전 세계 투기자본이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가격을 더욱 폭등시킬 것이다.

이제까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금융위기 이전 유가가 끝도 없이 치솟을 때는 투기자본들은 원유저장고를 빌려 가득 채워놓은 것도 모자라, 아예 원유를 가득 실은 유조선을 바다에 띄워서 보관했다.

최대한 사놓은 다음 가격이 오르면 팔아서 차익을 챙기기 위함이다.

배터리 생산량 증가로 코발트 가격이 오르자, 여기에도 투기자본이 뛰어들었고, 코발트 가격은 단기간에 네 배 이상 폭등했다.

투기자본들은 코발트를 매점매석한 채 국제시세를 조종했다. 하지만 끝도 없이 오를 것 같은 코발트 가격은 OTK배터리가 나온 이후 80퍼센트 넘게 폭락했고, 뒤늦게 투기에 뛰어든 투기꾼들은 다 같이 손잡고 강으로 뛰어내렸지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전 세계 투기꾼들이 창고 가득 제라티늄을 쌓아놓고 가격이 오르기만을 기다리겠네요.”

이래서 양산에 들어가면 가격이 수만 배로 뛸 거라고 얘기했구나.

“뭐, 어차피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제라티늄을 모조리 긁어모은다고 해도 공장 하나 돌리기 힘들 거야. 따라서 양산은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그제야 난 어째서 다른 연구원들 분위기가 차분했는지 알 수 있었다. JN배터리는 그야말로 세상을 뒤바꿀 발명.

하지만 아무리 좋은 발명을 해도 상용화가 불가능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택규가 물었다.

“제라티늄이 대량으로 매장된 광산을 발견한다면요?”

김호민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좋겠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어. 지금도 희토류 광산에서 제라티늄이 나오긴 해. 그 양이 워낙 적을 뿐이지. 새로 광산을 발견한다고 한들 그 광산에 매장된 제라티늄 비율이 월등히 높거나 하지는 않을 거야.”

이건 희토류 광산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여러 광물이 묻혀있는 광산에서 희토류가 같이 채굴될 뿐이다. 그리고 이 희토류를 채굴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광산을 갈아엎는다. 특정 희토류를 다른 광물과 분리시키기 위해 화학약품을 들이붓는 것은 덤이고.

“정말 운 좋게 대량 매장된 광산을 찾는다 해도 순물질을 추출하는 게 문제야. 저 가격 중 70퍼센트는 다른 광물과 섞여있는 걸 추출해내는데 쓰이는 비용이니까. 그나마 다른 방법은 합성을 통해 비슷한 물질을 만들어내는 건데…… 이것도 쉽지 않아. 일단 안정성부터가 문제일 거고. 알다시피 화학물질은 아주 사소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거든.”

이게 쉬웠다면 희토류를 아예 안 썼겠지.

현재도 가격이 비싼 희토류는 안 쓰거나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원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연구 중이다.

이런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김호민 교수는 더벅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너무 실망할 것 없어. 이것 말고도 새로운 소재로 대체하는 방안을 계속 연구 중이야. 어쩌면 이걸 기회로 뭔가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 * *

난 회사도 돌아온 뒤에도 계속 생각했다.

시제품은 어차피 시제품일 뿐. 발열과 안정성 문제를 해결하고, 실제로 양산이 가능하고 상품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시간과 인력을 들여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코닥이 세계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만들고, 노키아가 스마트폰을 만들고도 폐기한 이유기도 하다.

계속 투자해봐야 상품성이 없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JN배터리는 어떨까?

유리는 자료를 잔뜩 들고 CEO실로 올라왔다.

“말씀하신 자료 찾아왔습니다.”

“고마워.”

난 세계 배터리시장과 관련한 자료들을 훑어보았다.

현재 배터리 시장은 연평균 20퍼센트 넘게 성장 중이다. 이러한 성장세는 당연히 전기차시장의 급성장 때문.

혁신이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기존에 있는 제품을 발전시키는 것도 혁신이다.

스마트폰은 기존의 있던 기능들을 핸드폰 하나에 합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엔플이 엔폰을 발표하는 순간부터 세상은 바뀌었다.

이건 OTK배터리 역시 마찬가지다.

OTK배터리는 전기차 시대를 5년은 앞당겼다. 배터리기술의 발전 덕분에 거의 모든 면에서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를 압도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OTK배터리보다 20배가 뛰어난 JN배터리는 산업에서 과연 어떻게 사용될까?

사실 배터리 용량을 늘리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건전지도 하나 쓸 거 두 개, 두 개 쓸 거 세 개 쓰면, 그만큼 사용시간이 배로 늘어난다.

문제는 무게와 부피다.

오래 가는 폰을 쓰겠다고, 벽돌 크기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특히 무한정 무게와 부피를 늘릴 수 없는 제품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대표적인 게 드론이다.

드론(Drone)이란 사람이 타지 않고 조종하는 비행기를 뜻한다.

쓰이는 분야도 다양하다. 정찰과 공격 등 군사용, 농약과 비료를 뿌리는 농업용, 산불이나 해안사고를 감시하는 감시용,위험지역에 있는 사람을 구하거나 약품을 전달하는 인명구조용, 영화와 드라마를 찍는 촬영용, 애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용 등등.

드론을 활용한 택배서비스는 이미 실험 중이고, 최근에는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드론까지 등장했다.

이미 20여 개 이상의 업체들이 기술을 개발 중이고, CES 등에서 프로토타입이 공개됐다. 아이버는 내년부터 유인드론을 활용한 승객수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어쩌면 수년 안에 도로를 달리는 택시를 넘어 하늘을 나는 플라잉 택시의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

드론은 무게와 크기를 줄이기 위해 배터리와 모터로 작동한다. 그래서 OTK배터리가 출시되자, 드론업계는 두 팔을 벌리고 환영했다.

문제는 OTK배터리로도 1시간 이상 비행이 힘들다는 데 있다. 여기에 택배나 사람을 실으면 비행시간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JN배터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만약 상용화할 수만 있다면, 드론뿐 아니라 비행기도 배터리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는 효율성뿐 아니라, 안전에도 유리하다.

항공사고 중 가장 자주 일어나고 치명적인 것이 바로 버드스트라이크(Birdstrike). 날아오는 새가 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이다.

현재로서는 새를 내쫓는 것 외에 다른 해결책이 없다. 그런데 구동방식을 배터리와 모터로 변경하면, 아예 엔진을 없애버리는 게 가능하다.

전기비행기를 만들면 보잉과 에어버스가 장악하고 있는 세계 항공시장에 새롭게 도전장을 내밀 수도 있지 않을까?

OTK배터리가 전기차 시장을 열었다면, JN배터리는 자동차를 넘어 향후 새로운 모빌리티 시대를 열어갈 열쇠다.

아예 산업전반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을 테고.

택규가 말했다.

“가격만 해결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그게 해결이 안 되는 게 문제라고.”

기존 리튬이온배터리보다 용량이 네 배 이상 많은 수소배터리의 경우 이미 군사용으로 사용 중이다. 이런 좋은 기술이 민간에 널리 쓰이지 않는 이유는 가격이나 양산과정에 문제가 있기 때문.

“‘제라티늄이 많으면 JN배터리를 만들 수 있을 텐데’ 라는 말이 ‘핵 분열시 방사능을 내뿜지 않는 우라늄이 있으면 안전한 원전을 만들 텐데’, ‘사람에게 날개가 있으면 하늘을 날 수 있을 텐데’, ‘우리 아빠가 건물주면 난 놀고먹어도 될 텐데’ 같은 얘기랑 뭐가 달라?”

핵 분열시 방사능을 내뿜지 않는 우라늄은 없고, 사람에게는 날개가 없다. 그리고 우리 아빠는 건물주가 아니다.

난 결론을 내렸다.

“아빠에게 건물이 생기지 않는 한 열심히 공부해서 취직해야 하는 것처럼, 제라티늄의 가격과 생산량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한 상용화는 불가능해.”

< 미래를 보는 투자자 423 > 끝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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