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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27

그녀 (4)

“내 칭호?”

아무래도 함천존자 장익 같은, 존자로서의 별호를 말하는 듯했다.

‘존자의 칭호는 성사가 하사한다는 소문이 진짜였군.’

광한계의 풍문에는, 존자의 칭호는 성사가 하사해 준다는 설이 존재했다.

‘왜’ 칭호를 성사가 하사하는지에 대해서는 무수한 이야기가 나돌았지만 정확한 것은 없었다.

“내 칭호가… 뭐지?”

“그건 이제 곧… 아, 다 왔네요.”

그리고, 내가 막 칭호에 대해서 물어보려 할 때, 나와 김연은 북향화가 있다는 삼목숲의 한 집에 도착했다.

심족의 삼목총은 하늘을 뚫을 것처럼 울창한 삼목들의 집합이었다.

단순히 바깥의 다른 삼목들처럼 키가 큰 정도가 아닌, 그 강도와 두께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컸기에 심족들은 대다수가 삼목총의 삼목 중 하나를 골라잡아, 삼목 안쪽을 파내고 그곳에 지냈다.

심족의 ‘객’으로 취급받게 된 인족 역시 대다수가 현재 이런 곳에서 생활한다고 했다.

삼목집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북향화가 바쁘게 손을 놀리는 중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환한 문양이 떠올라 있었다.

그녀의 손 아래쪽에는 어떤 도안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도안에는 무수한 별자리들의 위치가 기록되어 있었다.

“뭘 하는 겁니까?”

나는 문득 그 모습에 어떠한 기시감과 불길함을 느끼며 질문했다.

북향화는 내 질문에 내게 도안을 더 자세히 보여 주었다.

“아, 폐관이 끝나셨군요. 존자(尊者)님.”

“…존자라는 말은 됐습니다. 그냥 일전에 말한 대로 불러 주시지요.”

“으음… 그래도 성사께 인정까지 받은 분이시거늘….”

“…제발 부탁입니다. 동료들에게는 그런 존칭을 받고 싶지 않군요.”

“…알겠습니다. 원하신다면… 그나저나 뭘 하는 거냐고 질문하셨지요? 봐주시지요. 수계의 별자리입니다.”

“…!”

나는 흠칫 놀라며 말했다.

“그 무슨… 수계의 별자리를 탐구하던 청문령이 어찌 되었는지 모르는 겁니까!”

“아 걱정은 마세요. 이건 수계의 별자리 중 ‘일부’만 그린 거니까요.”

“일부?”

“네. 수계의 별자리 중, 제가 일전 고력계의 심해에서 관측한 별자리와 ‘일치하는’ 별자리들. 그것들만 그려 본 거예요.”

“고력계의 심해?”

“예. 제 노리개는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도우의 무색유리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 노리개와 무색유리검은 어찌 된 일인지 모르나, 둘 다 고력(古力)의 힘을 머금고 있지요. 그러므로, 노리개에 얽힌 비밀을 풀려면 고력계의 비밀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나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노리개의 비밀은, 결국 내 회귀에 따른 여러 시간선의 힘이 교차되는 지점과 연결되어 있단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입 밖으로 내놓을 수는 없었다.

지나간 시간선은 어떤 짓을 해도 되돌릴 수 없고, 접촉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러므로 그녀가 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대신 그녀에게 질문을 건넸다.

“무색유리검과 노리개가, 굳이 고력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무색유리검에 대해서는 분명 ‘내 이전 회차’들의 기록이 담겨져 있었다.

하지만, 내 ‘이전 회차’가 어찌 ‘멸망한 세계의 힘’인 고력과 관계되었단 말인가?

‘이전 회차가 멸망한 세계로 취급당한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는 건가?’

내 말에 북향화가 내게 뭔가를 건넸다.

“폐관을 끝내셨다면 이걸 받으시지요.”

“음?”

난 북향화가 건넨 기이한 두루마리 같은 걸 받으며 흠칫 놀랐다.

‘이건 도대체…?’

그것은 단순한 두루마리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기(氣)의 덩어리였다.

실체가 잡힐 정도로 농밀한 기운 덩어리인 것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김연이 두루마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성사께서 존자의 칭호를 하사하셨다고 했잖아요. 거기에 적혀 있어요.”

“아…!”

나는 그 말을 듣고 두루마리를 풀어 보려 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두루마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김연이 설명을 이었다.

“성사의 화신이 전하기를, 그 두루마리는 존자의 일격으로 파괴하면 그 내용을 알 수 있으며, 그 내용을 받아들이면 당신이 완전히 광한계의 존자로 중경계 전체에 공표된다고 설명하셨어요.”

“아 그렇군.”

그렇다면 아직까지 내 존자로서의 칭호는 알려지진 않은 것일 터였다.

‘존자의 일격이라면 역시… 별을 벨 정도의 힘을 뜻하는 거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루마리를 잡았다.

하지만 나는 두루마리를 보며 북향화에게 다시 질문했다.

“그래서 이 두루마리와 고력계 간의 힘에 대한 질문은 어찌 답해 주실 겁니까?”

북향화는 내 질문에 두루마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검은 두루마리… 어디서 본 적이 있지 않습니까?”

“어디서 봤… 음?”

나는 그 말에 눈을 찌푸렸다.

분명 이건 물질화할 정도로 농축된 기의 덩어리였기에, 종이 형태를 한 기의 덩어리를 이전에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 기운의 기질을 본 적이 있음을 기억했다.

“현고지!”

“그렇습니다. 고력계에서 봤던 현고지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현고지의 기운과 같은 기운을 가진 두루마리를 잠시 보관하며 연구해 봤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고(古)의 힘이 들어가는 것들에 대한 ‘공통점’을 찾아냈습니다.”

“공통점?”

“예. 그것은 바로, 고(古)의 힘이 들어가는 모든 것들은 전부 ‘꿈’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꿈?”

“예. 그러니까 제 말은… 단순히 잠잘 때에 꾸는 ‘꿈(夢)’이 아닌… 소망(所望)을 말하는 겁니다.”

북향화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 ‘유사 현고지’ 두루마리와 제 노리개, 그리고 일전 서 도우의 허락을 받아 무색유리검을 연구했을 때의 연구 자료를 합쳐 보던 도중, 수계의 별자리나, 혹은 고력계의 심해에 있던 몇몇 별자리들이 이 고(古)의 영력이 보이는 영력 흐름과 비슷하다는 걸 알아냈지요. 그리고 그 별자리들을 연구해 보던 중, 청문령 선배가 별자리들의 힘을 끌어내 어떤 법술을 펼치려 했듯이 몇몇 별자리를 통한다면 고(古)의 힘에 정신을 접속시킬 수 있단 추론에 도달했습니다.”

“뭣…!”

나는 그 말에 화들짝 놀랐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장 그만두십시오! 소금 기둥이라도 되고 싶단 말입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아니…!”

“왜냐하면, 만약에 고(古)의 힘이 누군가의 소망(所望)이 맞는다고 한다면! 제 노리개에 담긴 누군가의 소망은 높은 확률로 제 어머님의 소망일 테니까요!”

“….”

“존자… 아니, 서 도우.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600여 년 전. 저와 처음 만나셨을 때, 이 노리개를 제게 주셨잖습니까.”

“…그렇지요.”

북향화의 눈빛이 진중해졌다.

“서 도우께서는 그 노리개를 만든 것이 누구신지 알고 있습니까?”

“…소저의 어머님이시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노리개에 든 것은 높은 확률로 제 어머님의 소망일 것입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를 그리워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유품인 노리개를 보관해 온 것이고, 그분의 유언을 받들어 천색성에서 살아왔지요. 그렇기에, 이 노리개에 담긴 것이 어머님의 소망이라면… 저는 반드시 그것을 알아내야 합니다!”

“…거기에 담긴 소망이, 어머님의 소망이 아닐 수도 있지 않소.”

김연이 나를 조금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북향화 역시 나를 보며 갑자기 조금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질문했다.

“그렇다면… 이 노리개에 담긴 건 누구의 소망입니까?”

“….”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아마 소저의 어머니가 남긴 소망일 수도 있겠지. 나는 두루마리 속 내 칭호를 확인 좀 하고 오겠소.”

나는 그리 말하며 도망치듯이 북향화의 공방에서 빠져나왔다.

‘아….’

지끈, 지끈….

심장이 지끈거리며 쿵쾅거렸다.

노리개에 누군가의 소망이 담겨 있다면 그것은 누구의 소망일까.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노리개에 담긴 건, 10회차의 그녀, 그리고 그때의 나의 소망이었다.

나는 내 얼굴을 쓸었다.

근처 웅덩이를 보니, 내 얼굴은 눈에 띌 정도로 음울해져 있었고, 내 의념은 새파란 슬픔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파랗군.’

슬픔의 의념은 검푸른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검푸른색에 섞여 있던 ‘검은’ 의념은 슬픔과 함께하는 ‘또 다른’ 색인 듯했다.

‘집착… 인가.’

나는 소거법을 통해 검은 의념의 정체를 짐작했다.

허공분쇄의 이름을 정하며, 북향화에 대한 태도를 정하고 집착을 떨어냈다.

그런 후에 바로 슬픔의 의념을 흘리니 흑청색이 완전한 청색이 되었다.

오기조원에 달하며 모든 의념을 볼 수 있게 됐지만, 아직도 역시나 의념의 세계는 무궁무진한 듯했다.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뒤쪽에선 김연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어쩐지 담담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괜찮으신가요?”

“난 괜찮아. 너는?”

“…괜찮아요.”

“…알겠어. 나는 내 칭호를 확인하고 성사께 잠시 다녀올게. 현고지나 고력에 대해서도, 성사라면 더 잘 알고 계시겠지.”

우리는 서로에게 다 보이는 거짓말을 하며 웃어 보였다.

나도 괜찮지 않았고, 내 이상한 감정을 확인한 김연 역시 뭔가 심란한 의념이었지만, 나로선 이걸 설명할 수 없었고 그녀 역시 굳이 내게 설명을 독촉하진 않았다.

나는 심족 영역 위쪽의 하늘로 날아오르며 잠시 아래쪽의 김연을 흘긋 쳐다보았다.

‘뭔가가, 변하고 있다.’

북향화와 만난 순간부터, 아니 정확히는 그녀와 친해진 순간부터 김연은 뭔가가 변하고 있었다.

명귀계에서 보았던 불안한 정신이 그녀와 만난 후부터 조금 치유되는 것 같았기에 좋은 쪽이라 생각하여 내버려 뒀었다.

‘좋은 쪽으로 변하는 걸까.’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어느 쪽으로 변화하든 그것은 내가 그것을 ‘좋은’ 쪽인지 아닌지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오만함이다.

‘다만 심마가 걸려 광증이 치솟지 않기를 바라야겠지….’

난 부디 김연이 올바른 성장을 하기를 바라며, 심족 영역이 점보다 작아질 정도로 올라왔을 때 허공으로 두루마리를 띄웠다.

‘자 그럼. 성사가 내 칭호를 무엇으로 내렸는지나 확인해 볼까.’

파아아아앗!

나는 단악검법 31초, 적진성산의 초식을 그대로 두루마리에 사용했다.

번쩍!

행성을 베어 낼 수 있을 수준의 일격이 두루마리에 내리꽂혔다.

일반적인 힘으로는 꿈쩍도 않던 두루마리는 적진성산의 일초를 맞으며, 그대로 빛과 함께 폭발하였다.

그와 동시에.

쿠구구구구!

어마어마한 폭발이 터져 나오며, 주변의 시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 이건…!’

나는 지금 일어나는 현상이 무엇인지를 인지하며 경악했다.

‘이런 미친…!’

광한계 전체의 천기가, 이 자리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백운 성사의 의지가 이 자리에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광한계의 힘을 빌어, 일반적인 성반기는 불가능한 이적(異跡)을 발휘하고 있었다.

두루마리가 폭발함과 동시에 그 안쪽에서 무수한 물질로 이뤄진 먼지구름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시공간의 비틀림과 천기의 집약.

광한계의 힘이 먼지구름을 압축하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

그 중심에서부터 알 수 없는 태동(胎動)이 느껴지며, 무언가가 심족 영토의 상공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벼, 별…!’

그것은 행성(行星)이었다.

먼지구름은 방금의 내 일격을 삼키고, 내 기운을 머금은 행성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행성이 점차 먼지구름을 빨아들이며 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인력 너머로 백운 성사의 의지가 내 뇌리에 임하였다.

[새로이 존자(尊者)의 영역에 발을 들인 인간족의 서은현을 축복하며, 그대에게 새로운 영지(領地)이자 법구(法具)를 하사한다. 이는 앞으로 그대의 상징이 될 것이며, 그대와 광한계와의 인연을 상징하는 표식이 될지어라.]

쿠구구구구!

나는 내 앞에서 만들어지는 별을 보며 어안이 벙벙해졌고, 동시에 별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별의 이름은 재천(在天). 우리가 거하는 기의 계위를 떠나, 혼의 계위에 오른 심족의 존자인 그대를 기리며 지은 이름이니라. 새로운 하늘에 도달한 것을 환영하며, 그대를 광한계의 존자, 재천존자(在天尊者)로 봉(封)하겠노라.]

쿠오오오오오-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 인력을 저 재천성에 연결하면, 나는 즉시 재천존자로 봉해지고 진정한 광한계의 존자가 되리라.

허공분쇄에 오른 이후, 내 인력은 이전보다 강해져 있었다.

아마 허공분쇄, 어전이보에 오른 이들은 천지족처럼 인력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된 탓이리라.

그러나 나는 내 인력을 눈앞의 별에 연결하지 않고 잠시 바라만 보았다.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천(在天)은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에 이름’을 뜻하는 단어다.

기의 계위에서 혼의 계위에 완전히 오를 수 있게 된 나를 뜻하는 상징이리라.

하지만 나는 어두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성사시여. 한 말씀 올리겠나이다.”

광한계 전역은 백운의 권역이나 다름없기에, 나는 지금 백운이 이곳을 주시할 것이라 짐작하며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저는 이 칭호와 별을 원치 않습니다. 거두어 주십시오.”

다음 순간이었다.

꾸웅!

내 정신은 일전처럼 백운 성사가 있는 천련산의 정상.

백옥 누각 안으로 도달해 있었다.

“간만에 뵙습니다. 성사시여.”

나는 백운 성사를 향해 예를 취하였고, 그녀는 조금 놀라는 표정이었다.

[으음, 정신만을 불렀건만….]

“아시다시피, 심족은 육(肉)과 혼(魂)이 동일해졌기에 정신만 불러도 언제든 본체로 올 수 있지요.”

나는 성사를 마주하며, 그녀가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알아챘다.

‘본체로 존자들을 만나기를 꺼리는 건가. 하긴, 그녀도 천족일 테니 심족인 나를 본체로 마주하긴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

[장익은 그러지 못했다. 자네처럼 기의 계위와 혼의 계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진 못했으니까….]

“아….”

아무리 장익이라도 정신만 불려 온다고 바로 본체를 꺼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내 총천검이 지닌 공능 덕에 이런 것이 가능했던 모양.

‘심족 존자는 다 가능한 줄 알았는데 또 아니었나 보군.’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후, 성사에게 진언했다.

“다시 한번 진언하겠나이다. 성사시여. 부디 제 칭호를 거두어 가 주십시오.”

나는 저 멀리서 느껴지는 인력을 느끼며 진언했다.

내 본체가 성사의 앞으로 이동하자, 심족 영역 위의 재천성이 내 쪽을 향해 이동해 오고 있었다.

‘별 주제에 축지법을 써서 오는가.’

별 자체가 인력으로 공간을 구부리며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아마 얼마 후면 이곳에 도달하리라.

백운 성사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어찌 거부하는가. 그대에게 하사한 재천성은 장익에게 하사한 함천성과 마찬가지로 축지(縮地)의 술법을 각인해 놓아, 심족인 그대가 천지족 쇄성기 존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무량한 시공간을 넘을 수 있게 도와주는 법구일세.]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것일지라도 받을 수 없습니다.”

[어째서지?]

“그것은….”

나는 허공분쇄의 경지를, 이 경지에 올라 얻은 무량한 시야를 느끼며 답했다.

“제가 이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인연(因緣) 덕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누군가가 저를 부르는 이름에는 인연에 대한 뜻이 들어갔으면 합니다.”

하늘에게 빌어서 내려받은 경지가 아니다.

인연들을 쌓아 도달한 경지다.

등봉조극에 오른 그날부터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의지.

‘몇 번을 하늘을 부르짖었는가.’

하늘은 내게 답하지 않았다.

‘몇 번을 하늘에 도움을 빌었는가.’

하늘은 내게 재액과 고통을 안겨 주었다.

‘하늘이여….’

나는, 하늘을 혐오한다.

내게서 앗아 가고 또 앗아 간 공허한 하늘을 부정한다.

단순히 내 운명을 혐오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하늘’은 곧 진선을 뜻하기도 하니까.

아직도 내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린 태산의 주인에 대한 혐오와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선(仙), 명(命), 천(天)에 대한 것을 칭호로 받아들일 생각은 결단코 없었다.

그러므로, 내 칭호에는 하늘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름에 대해 본능적으로 드는 혐오감을 가까스로 감추며, 나는 백운 성사에게 예를 갖춰 진언했다.

“부디 성사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제 칭호를 다른 것으로 바꿔 주시기 바랍니다!”

재천이라는 이름을 듣기만 해도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혐오감이 치밀어 올랐다.

내 말에 성사는 조금 곤혹스러운 기색을 보이더니 말했다.

[그 이름은 내가 지은 것이 아닌, 명점(名占)을 쳐서 나온 것이네. 그대에게 가장 좋은 이름이자 그대의 운명에 최적의 도움을 주는 이름이 그것이란 말이지.]

명점(名占).

적합한 이름을 점치는 점술이었다. 지족 작명관들이 점을 보아서 홍범의 이름을 지어 준 것 역시 명점에 속했다. 백운 성사는 같은 방식으로 내 칭호를 정해 준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최적의 도움 같은 건 괜찮습니다. 다른 이름을 주십시오.”

[으음, 알겠네.]

백운 성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지영기로 또 다른 이름을 눈앞에 띄워 주었다.

[그 이름은 어떠한가. 명점을 쳐서 나온 이름 중 하나였다네. 재천보다는 조금 이름이 가진 인력이 약해서 2안으로 남겨 뒀네만… 자네가 말하는 ‘인연’에 대해서라면 이 이름이 더 좋겠지.]

내 눈앞에 떠오른 것은 천제(天梯)였다.

하늘사다리(天梯)라는 이름.

[인연이란 곧 서로를 이끌어 주는 밧줄이자 사다리. 하늘이 내린 사다리로 경지에 오른 존자라는 뜻을 담을 수 있는 이름이네.]

나는 잠시 눈앞의 하늘사다리라는 단어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하늘이 내려 준 인연이 아닙니다.”

[음?]

“우리가 만났을 뿐입니다.”

이 이름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의 인연이 하늘이 내려 준 것이라면, 거둬 가는 것도 하늘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지금 당장 죽어 가는 북향화 역시 하늘이 내려 준 인연이라면, 지금 당장 죽어 가는 것 역시 하늘이라는 뜻이 아닌가.

하늘사다리라는 이름은, 앞으로 나를 만나는 모든 인연들이 마치 하늘사다리를 통해 떠나갈 것 같은 기분 나쁜 느낌을 주었다.

백운은 침음성을 흘리며 손을 흔들었다.

천제라는 글자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내 앞에 또 다른 단어가 나타났다.

[하늘이라는 이름을 싫어하는 듯하니 빼 주도록 하지. 광한계의 모든 존자들은 이름에 하늘이 들어가면 매우 흡족해했는데, 그대는 조금 특이하군.]

이어 나타난 단어는 극광(極光)이었다.

[성계에 있는 별들의 극지에서 일어나는 빛을 극광(極光:오로라)이라 하네. 부해계 출신들은 대부분 뭔지 모른다만, 한번 보면 그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지. 인연은 한번 맺으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니, 극광이 어떻겠나.]

나는 잠시 그 단어를 쳐다보았다.

좋은 이름이다.

하지만….

-빛을 조심해라.

문득, 내게 수없이 경고를 해 줬던 이들의 말이 내 뇌리를 스쳤다.

일전 무극교단의 광음역 같은 경우, ‘광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꼭 ‘빛’에 국한된 단어가 아니기도 했으며, 나 자신이 아닌 우리의 땅에 붙이는 명칭이었기에 대강 붙인 것이었다.

그러나 백운 성사가 내준 이름에서는 ‘힘’이 느껴졌다.

이 이름을 받으면 ‘극광’이라는 이름의 별과 축복이 내 운명을 도와준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런 힘이 내 칭호에 붙는 것이다.

나는 극광이라는 이름에서, 빛을 조심하라는 이들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 고개를 저었다.

“빛(光)이라는 단어를 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리고, 내 말에 백운 성사가 드디어 한숨을 쉬었다.

[어찌 그리 바라는 것이 많은가. 그럴 순 없네.]

“예?”

이어진 백운 성사의 말에 나는 몸을 움찔했다.

[광한계 출신의 모든 존자는, [무조건] 이름에 하늘(天)이나 빛(光)을 상징하는 자가 들어가야 하네. 그대의 요청은 들어줄 수 없어.]

그녀는 준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그만 받아들이게. 재천, 천제, 극광. 전부 좋은 이름이며 그대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칭호들이자 운명들일세!]

쿠구구구구!

백운 성사의 기세가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그 이름들을 생각해 보다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칭호를 하사받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하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 존자의 칭호라면, 굳이 필요 없다.

어차피 하늘은,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저는 제힘으로 운명을 살아가겠습니다. 구태여 성사께서 이름을 하사해 주실 필요 없습니다.”

내 말에 백운 성사는 당황한 듯하더니 소리쳤다.

[그 무슨! 있을 수 없네. 모든 존자는 성사에게 칭호를 하사받아야 해! 그것이 중경계의 법(法)일세!]

쿠구구구구구!

어마어마한 압력이 나를 짓눌렀다.

광한계 전체가 나를 깔아뭉개려는 듯했다.

나는 성사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칼을 꺼내 들어 그녀에게 겨눴다.

“거절합니다.”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回歸修仙傳, 회귀수선전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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