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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27

EP.426 17. 인형의 집 (2)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미노바의 목이 돌아갔다. 열차 안에 있던 모든 단원의 시선이 원더스타인을 향했다.

“단장님?”

다들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적에게는 잔인하게 굴지 몰라도 단원들에게는 늘 친절한 남자였다. 그런 그가 동료에게 주먹을 쓴 것이었다. 다들 처음 보는 광경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젠장, 이게 무슨 짓이야?”

미노바가 입가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 안쪽이 찢어졌는지 그는 피를 한 모금 퉤 내뱉었다.

원더스타인은 손을 털고는 그를 향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바보 같은 소리를 하길래 저도 모르게 때리고 말았네요.”

“바보 같은 소리라고? 제기랄! 네놈이 뭘 안다고 그래? 네가 부모 입장이 되어봤어?”

“아뇨. 하지만 자식 입장은 되어봤죠.”

그의 말에 미노바는 입을 딱 다물었다. 그는 원더스타인이 떠돌이 집시들처럼 무적자 신분이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쳇, 그렇다면 더 잘 알 거 아니야? 그런 생활이 애한테 좋겠냐?”

“아뇨. 저도 정착된 환경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시골에서 정원사라도 하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는 잠자코 있었죠. 제가 화내고 싶은 건 당신이 루엘로를 버리겠다고 해서입니다.”

“버리겠다는 게 아니라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는 게…….”

“기억의 삭제는 곧 그 인격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관계는 끊어버린다고 끝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녀가 누군지 알 수도 없는 부잣집의 딸이 된다는 건 ‘미노바의 딸’, ‘삼손의 친구’, ‘괴물서커스단의 단원’ 루엘로를 죽여버리는 일입니다. 당신의 딸이 죽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 몸을 차지하는 거란 말입니다. 죽은 딸아이의 시체에 좋은 집, 좋은 옷,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게 그리 중요한 일입니까?”

미노바의 얼굴이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은 없는 듯했다. 다들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짐작하고 조용히 두 사람을 지켜보는 가운데, 원더스타인은 옛날 일을 떠올렸다.

***

전능교가 무너진 후, 전능원을 나온 허수아비는 유일하게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옛 친구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도로시. 그녀는 장애인들이 대부분인 전능원에서 몇 안 되는 정상인이었고, 예쁘장한 외모 덕분에 어느 부잣집의 딸로 입양될 수 있었다.

물론 입양되었다고 하면서 염전에 팔려 갔던 다른 친구처럼 그녀의 경우도 보육원 측에서 거짓말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전능교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은 그녀가 서울의 어느 부유한 가정집에서 잘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누구세요?”

그러나 용기를 내어 그녀를 찾아간 허수아비는 그녀로부터 전혀 모르는 사람 취급을 당했다. 그녀가 보육원을 떠난 지 시간이 꽤 흘렀다지만, 몇 년이나 함께 해온 친구를 어떻게 까맣게 잊을 수 있는지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 기억나요. 어려서 뭣도 모르고 지방 가는 버스를 탔다가 미아가 된 적이 있었죠. 그때, 어느 보육원에 한두 달 정도 신세를 졌었는데, 제가 있었던 곳이 거기였나 보네요?”

그녀의 기억은 왜곡되어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입양하고 보육원 물을 빼기 위해 그녀의 유년기 기억을 억압하는 방법을 택했다. 아이들의 기억은 주변의 환경에 의해 쉽게 왜곡되는 것을 이용해 그녀의 추억을 모조리 가짜 기억으로 대체해버린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자신들과 함께 올랐던 무대는 유치원 연극반에서 활동하던 것으로 알고 있었고, 개성 있는 친구들의 외모는 무대 분장으로 기억했으며, 몇 년간의 보육원 생활은 유치원 시절과 혼동하는 것으로 여겼다.

“뉴스에서 전능교에 대한 기사는 봤어요. 안타깝네요. 무엇을 기대하고 저를 찾아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거기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어요.”

이곳에 허수아비의 친구였던 도로시는 없었다. 대신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녀의 몸을 차지하고 있었다. 친구는 사실상 살해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이름도, 말투도, 미소도 낯선 이에게.

그녀의 부모는 허수아비에게 진실을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지금의 행복을 깨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허수아비는 그녀에게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 그것이 그녀를 위한 길이라 믿었다. 굳이 자신이 겪은 아픔을 그녀도 겪을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집을 나오는 길에 너무나 천진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그녀를 보고 속에서 울컥 무언가 치솟고 말았다.

“이 배신자.”

그것이 그가 그녀에게 던진 마지막 한마디였다. 그리고 그는 그곳을 떠나서 한동안 그녀를 잊고 지냈다.

그가 그녀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개월 뒤였다. 그녀의 부모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들은 그녀의 부고를 전했다.

허수아비와 만남을 가진 뒤, 그녀는 자신을 향한 그의 적개심에 의구심을 느끼고 자신의 과거를 조사했다. 사실 그녀는 예전부터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이 뭔가 모호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 위화감을 어디서부터 조사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허수아비가 그 열쇠를 던져준 것이다.

전능교를 조사하는 일은 쉬웠다. 온갖 방송마다 그에 대해 떠들고 있었기에 인터넷 어디를 가도 그에 대한 정보는 수월하게 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녀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사실 전능교 교인의 자식이었다는 것, 부모가 사망하면서 전능원에 맡겨졌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몇 년을 지내다 입양되었다는 것까지.

억압되었던 그녀의 기억들이 해일처럼 그녀의 머릿속으로 쏟아졌다. 그것은 입양된 이후로 만들어졌던 그녀의 존재를 모두 파괴할 정도로 강력했다.

사상누각이라고 했던가. 사람의 인격은 한층 한층 인과에 따른 경험들이 쌓아져 가면서 형성되기 마련이었다. 어설프게 조작된 모래알 같은 기억 위에 형성된 정체성은 쉽게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보육원을 떠난 이후로 친구들이 어떤 운명을 맡게 되었는지도 모두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을 새까맣게 잊어버린 채 몇 년 동안 즐겁게 지낸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이 배신자.

허수아비가 그녀에게 남겨두고 간 한마디는 결정적으로 그녀의 죄책감을 폭발시키는 방아쇠가 됐다. 그녀는 원래의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다른 ‘그녀’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결국 그녀는 그에게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자살하고 말았다.

-미안해. 그곳에서 혼자 도망쳐버려서 미안해. 나 너무 늦게 모든 게 떠올랐어. 찾아간다고 했는데 못 찾아가서 미안해. 사자 오빠 죽었어? 깡통 오빠도? 마녀 언니도? 모두에게 미안해. 허수아비 오빠. 기억 못 해서 미안해. 나 너무 무서웠어. 춥고 어두운 곳에 갇혀 있었어.

그는 그렇게 마지막 남은 친구를 잃었다.

***

원더스타인은 자신이 미노바에게 내지른 일갈이 순수하게 루엘로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반처럼 자신이 구하지 못했던 한 친구를 의미했다.

“폭력을 써서 죄송합니다, 미노바 씨. 하지만 루엘로 양 앞에서는 그런 바보 같은 소리는 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당신은 그녀의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지 않습니까.”

미노바는 어딘가 분한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객실에서 나가버렸다. 원더스타인은 그가 객실을 완전히 떠날 때까지 바라보다가 자신을 지켜보는 단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러분도 각오 단단히 해두시길 바랍니다. 되도록 원만하게 끝났으면 하지만, 필요하다면 싸움을 피하지 않을 겁니다. 우린 무슨 일이 있어도 루엘로 양을 구할 겁니다. 다른 두 사람도요. 그걸 막는 장애물은…… 그게 뭐든 치워버릴 겁니다.”

단원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그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가장 열렬히 호응하는 것은 미키와 우몬이었다. 무릎 꿇고 있던 두 사람은 벌떡 일어나 주먹을 휘두르며 함성을 내질렀다. 엘라는 그러고는 은근슬쩍 자리에 앉는 두 사람을 못마땅한 눈으로 흘겨봤다.

원더스타인은 잠시 바람을 쐬겠다며 객실에서 나왔다. 미노바가 나간 곳과 반대 방향이었다.

그는 오랜만에 원더스타인을 연기한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본래의 자신을 드러내고 말았다.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저기 단장님?

-아, 레이나 양. 듣고 있었습니까?

그는 레이나와 여전히 통신을 연결해둔 상태였다는 것을 떠올렸다. 자신은 그녀의 귀에다 대고 고함을 쳐버린 게 됐다. 그는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거 못 볼 꼴을 보였군요.

-아니에요. 잘 말해주셨어요. 저는 조금 감동 받았어요.

원더스타인은 단원 중에서 방금 자신이 말한 사례에 가장 잘 들어맞는 사람이 바로 그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상처를 괜히 자극했다는 생각에 그는 더 미안해졌다.

-죄송합니다.

-단장님이 사과하실 일이 아니에요. 단장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궁금하긴 하네요. 제 진짜 아빠, 엄마는 어떤 분이셨을까요?

원작에서 그녀의 친부모가 누군지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현재의 모습으로 개조한 사람이 원더스타인이라는 것만 밝혀졌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를 서포트 캐릭터로 데리고 다닐 때, 원더스타인과 마주치면 그는 그녀의 진짜 아빠는 자신이 아니냐며 그녀를 조롱하곤 했다.

-저는 아빠가 있다면, 단장님 같은 분이었으면 좋겠어요.

레이나의 말은 원더스타인의 두 가지 죄책감을 자극했다. 그것은 그녀를 그렇게 만든 이 몸뚱어리의 주인으로서였고, 다른 하나는 구할 수 있었던 친구를 죽게 만들고 말았던 허수아비로서였다.

-저는 그렇게 좋은 부모가 못됩니다.

-미노바 씨의 말을 신경 쓰시는 건가요? 저는 단장님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건 제가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두 사람이 객실을 나간 사이, 나머지 단원들은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있었다.

“단장님이 저렇게 화내는 게 처음 봤어.”

“웃는 얼굴로 화내는 게 어째 더 무서운 거 같아.”

“미노바 씨 마음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 우리는 그냥 평범하게 개조당해서 부잣집에 팔려 가면 좋겠는데.”

일반 단원들과 달리 괴물 단원들은 미노바의 주장에 상당히 동조하는 편이었다. 밑바닥 중에서도 밑바닥 인생을 살아본 그들은 다르게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꿈을 꿔본 적이 많았다.

“그런데 저…… 다들 어떻게 서커스단에 들어오게 됐죠?”

서커스단에 합류한 지 하루밖에 안 된 이반은 어쩌다가 이런 이들이 원더스타인 밑에 모이게 되었는지 궁금해했다. 그는 스승이 검을 버리고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건 우리도 지금까지 못 들었는데.”

“맞네. 한 번도 물어볼 생각을 못 했군.”

“그럴 기회가 없었으니까.”

다른 단원들도 이반의 질문에 동조했다. 지금까지 늦게 들어온 단원들에게 이전에 있었던 사건들을 말해주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서커스 그랑프리에 뛰어들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시기 중에는 다들 원더스타인을 두려워해서 피해 다니던 때가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잊힌 역사처럼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나타샤와 약속한 역까지는 아직 1시간 정도 남았지?”

엘라가 시계를 확인했다. 나타샤는 몇 시간 전, 원더스타인에게 콤프라치코스라는 조직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요구해서 듣고는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중간에 합류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말이다.

이제 곧 있으면 그녀가 약속한 역이 나타났다. 니카의 원래 신분이 지체 높은 귀족의 자제라는 것을 생각하면 병력이라도 한 무리 이끌고 오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럼 그때까지 얘기나 해볼까? 누구부터 할래?”

엘라가 괴물 단원들을 돌아봤다. 잠시 후, 그중 가장 크고 어린 이가 먼저 손을 들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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