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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27

< 미래를 보는 투자자 426 >

내가 술을 마시다가 멈칫하자, 엘리가 물었다.

“왜 그래요?”

“택규가 또 사고는 치지 않을까 걱정돼서요.”

“에이, 설마요.”

“그렇겠죠?”

노르웨이 공주가 좋아하는 남자라. 아마 지금쯤 택규는 공대생들의 질투를 한몸에 받고 있지 않을까?

뭐, 양하나도 온다고 하니까 별 일 없겠지.

졸업한지 얼마 안 된 유리는 얼굴을 아는 후배들이 많았다. 군대와 어학연수 등으로 인해 아직 재학 중인 동기들도 있었다.

“이야! 유리 너 엄청 예뻐졌네.”

“결국 OTK컴퍼니에 들어갔네.”

“일은 할 만해?”

역시 예쁘니 남학생들이 반겨준다.

경일이는 자기 딴에는 자연스럽지만, 대단히 어색한 타이밍에 질문했다.

“아직 남자친구는 없어?”

그 질문이 남학생들이 일제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 보였다.

유리는 웃으며 말했다.

“일이 바빠서 연애할 시간도 없어요. 당분간은 누구 만날 생각도 전혀 없구요.”

“그, 그렇지? 하하, 많이 바쁜가 보네. 그래도 뭐 밥 먹고 싶거나, 보고 싶은 영화 같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선배한테 연락해,”

민영이는 그만하라는 듯 경일이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후배들은 술과 음식을 나르는 한편, 계속해서 외부인 출입을 막아주어다. 그동안 학교에 무심했는데, 그래도 내가 선배라고 위해주는 후배들을 보니, 왠지 고마운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진후랑 같이 왔을 때가 생각나네요.”

“어! 저도 그 생각했는데.”

난 처음 엘리와 함께 한국대에 왔던 걸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벌써 4년 전 일이다.

“그러고 보니, 그때 만났던 그 여자 분은 잘 지내나 모르겠네요.”

“선아요?”

“그분 말구요.”

“아, 이혜미요?”

서로 지난 일을 생각하며 웃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진후야. 오랜만이야.”

난 당황했다.

“너도 왔어?”

짧은 스커트에 하이힐, 화려한 헤어스타일과 화장. 얜 졸업한 후에도 변함이 없구나.

이혜미는 나를 보며 친한 척했다.

“우리 이게 얼마만이야? 너무 반갑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게 얘의 큰 장점이지.

엘리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반가워요. 진짜 오랜만이네요.”

“아, 애인도 같이 오셨구나. 안녕하세요.”

갑자기 공손해진 모습이다.

이혜미는 옆에는 다른 여자 동기 두 명도 함께 있었다. 딱히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무슨 일로 온 거야?”

박미주가 말했다.

“너 온다는 얘기 듣고 우리도 놀러왔어.”

“응? 내가 온다는 얘기를 누가했어?”

말한 사람 몇 명 안 되는데.

김민영은 고개를 내저었고, 민경일은 괜히 호들갑을 떨었다.

“에이, 그게 뭐가 중요해? 동기끼리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게 중요한 거지. 자자, 한 잔하자.”

다른 학과 주점들은 적당히 비어있는데, 경영학과 주점은 어느새 만석이었다. 이렇게 장사가 잘 될 줄이야.

경영과 주점은 무대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서, 먼발치로 무대가 보였다. 마시며 얘기를 하는 동안에도 MC땡동의 진행이 이어졌다.

노래대회, 댄스대회, 장기자랑, 음대생들의 공연 등등. 같은 멘트라도 재밌게 하는 재능은 따로 있는 모양인지, 진행할 때마다 웃음이 터졌다.

“자, 그럼 댄스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엘리는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저 나갈래요!”

“취했어요?”

“왜요? 외부인도 된다고 하잖아요. 저 춤 잘 춰요.”

“잘 추니까 문제죠.”

엘리가 대학생들 장기자랑에 나가는 건 양민학살 아닌가?

유리는 다 마신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희 같이 나가요, 언니.”

“너도 취했니?”

그러고 보니, 어느새 테이블 위에는 소주병이 잔뜩 널려 있었다. 대체 언제 이만큼 마신 거야?

상엽 선배가 한 무리의 애들을 데리고 왔다.

꽤 마셨는지, 벌써 얼굴이 빨개진 모습이다.

“수학과 후배들이에요?”

“아니. 실전투자동아리 애들.”

실전투자동아리는 그다지 인기 있는 동아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상엽 선배가 유명해진 후 동아리 가입경쟁률은 한국대 입시를 방불케 했다.

요즘은 면접은 기본이고 모의투자까지 해서 뽑는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해서 동아리를 들어가야 돼?

“이 친구가 지금 동아리 회장.”

안경 쓴 남학생은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국어국문과 최영빈입니다. 그동안 선배님 전설은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를 보는 동아리 후배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앞으로 떡상할 코인이나 주식이라도 하나 추천해줘야 하나?

안타깝게도 나도 아는 게 없어서 말을 못해주겠다.

동아리 후배들을 보낸 뒤 상엽 선배는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나도 여기서 마셔야겠다.”

기홍 선배가 물었다.

“소주 드릴까요, 맥주 드릴까요?”

“적당히 섞어서 줘.”

건배를 하는데, 사과대 주점 쪽에서 일대 소란이 일었다.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우와! 경제학과에 지금 골든게이트 지사장이 남편이랑 왔대!”

“교수님들과 주점에서 술 마신다는데.”

“대박이다! 이번에 결혼한다고 CNN에도 나왔잖아!”

“오늘 뭔 날이야?”

엘리가 말했다.

“이제 왔나 보네요.”

일찍 출발한 우리와는 달리 현주 누나는 퇴근하고 따로 출발했다.

골든게이트 한국지사장이면, 웬만한 은행장이나 증권사 CEO보다도 높은 지위다. 그리고 헨리는 골든게이트 CEO의 손자.

사과대 전체가 뒤집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엘리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저쪽으로 놀러가 봐요.”

“잠깐 갔다 올게요.”

난 엘리와 함께 경제학과 주점으로 향했다.

주점에 현주 누나와 헨리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둘의 등장에 재학생들은 물론이고, 졸업생들까지도 잔뜩 얼어붙은 모습이었다.

다른 골든게이트 직원의 얼굴도 보였다.

“오셨어요, 누나?”

현주 누나는 신기하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진짜 많이 바뀌었네. 우리 학교 축제 같지 않은데.”

난 현주 누나 잔에 맥주를 채워주었다.

“그러고 보니, 학교에서 누나 보는 건 처음이네요.”

“그러게. 우리 선후배 사이인데 말이야.”

엘리는 일어나서 맥주잔을 들었다.

“오늘 술은 골든게이트 지사장님께서 사실 테니까, 다 같이 건배해요! 졸업하면 골든게이트에 취업원서 넣는 거 잊지 마시구요!”

그 말에 학생들은 일제히 잔을 들어 올렸다.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선배님!”

* * *

다시 경영학과 주점으로 돌아오자, 어느새 교수님들이 와계셨다.

김명준 교수님이 물었다.

“재밌게 놀고 있어?”

과대가 메뉴판을 들고 왔다.

“술은 뭐로 드릴까요?”

“그냥 다 가져와. 세계최고 부자가 여기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학생한테 얻어먹으면 안 되지 않아요?”

“학과주점에서는 괜찮아.”

드디어 기다리던 연예인 공연이 시작됐다.

이미 이전부터 무대 앞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요즘 강진후 대표님이 업어 키운 걸그룹으로 핫한 걸그룹이죠. 퓨어걸즈입니다!”

무대 위로 올라온 것은 네 명의 소녀가 올라왔고, MC땡동은 마이크를 내밀며 물었다.

“아시다시피 여기가 강진후 대표님의 모교입니다. 마침 오늘 이 자리에 강진후 대표님께서 직접 와 계신다고 하는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난 팬클럽에 가입도 안 했는데, 모두가 나를 공식 팬 1호로 여기고 있다.

리더인 이얼은 허리까지 숙이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표님. 초심을 잃지 않고 항상 열심히 하겠습니다.”

성격이 활발한 솔라가 옆에서 말했다.

“저희 앞으로도 계속 키워주세요!”

MC땡동이 말했다.

“원래 강진후 대표님을 이 자리에 모셔서 팬 미팅을 진행하려고 했는데, 그런 짓하면 당장 자를 거라고 위에서 연락이 와서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겠습니다.”

퓨어걸즈는 ‘캐치미 플리즈’를 포함해 세 곡을 열창했다. 이어서 남자 아이돌그룹 KST가 등장하자 여학생들은 환호를 내질렀다.

시간이 지나자 슬슬 취한 애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테이블에 엎드려서 자는 애, 취해서 우는 애, 옆에서 달래주는 애…….

“야! 황미나! 나 너 좋아해! 사귀자.”

이 와중에 술 취해서 고백하는 미친놈은 뭘까? 당연히 차였다.

이런 놈은 진짜 한 학번에 한명씩은 꼭 있는 것 같다.

“우리 학번에는 누구였지?”

경일의 물음에 민영이가 대답해주었다.

“너잖아, 너.”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술 취해서 니가 고백한 애가 몇인지 기억이나 하냐?”

박미주가 말했다.“

“맞아. 너 나한테도 고백했었잖아.”

“뭐? 내가?”

누구에게나 흑역사는 있는 법이지. 그나마 옛날에는 입으로 전해지고 끝이었으나, 요즘은 아예 영상으로 박제된다.

과대가 와서 말했다.

“저기, 강진후 선배님.”

“왜?”

“퓨어걸즈가 찾아와서 잠깐 선배님 좀 뵐 수 있겠냐고 하는데요.”

“응? 나를?”

엘리는 내 등을 떠밀었다.

“잘 됐네. 진후 팬이잖아요.”

“……제가요?”

오택규 어디 갔어?

어쨌거나 나한테 인사하겠다고 찾아왔는데, 그냥 돌아가라고 하기는 미안하다.

난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점 입구로 향했다.

앞에는 남자 매니저와 함께 네 명의 소녀가 서있었다. 순서대로 이얼, 솔라, 타미, 루이즈. 그 사이 옷을 갈아입었는지 무대복이 아닌 평범한 복장이다.

나를 본 이얼은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대표님. 처음 뵙겠습니다.”

통통한 볼, 쌍커플 없는 큰 눈, 새하얀 피부와 트레이드마크 같은 양갈래 머리. TV에서 봤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실제로 보니 귀엽긴 귀엽다.

“노래 잘 들었어요.”

“가, 감사합니다, 대표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앞으로 더욱 열심히…… 흑!”

이얼은 말을 하다 말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괜찮아요?”

“예. 자, 잠시만…… 흐엥!”

결국 감정이 복받쳤는지 울음을 터트렸고, 옆에 있던 다른 멤버들도 같이 울음을 터트렸다.

이거 내가 울린 건 아니지?

* * *

뒤로 갈수록 유명 가수들이 나오며,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공연이 한창 진행 중인 와중에 난 엘리와 함께 천천히 캠퍼스를 걸었다. 엘리는 취했는지 내 어깨에 몸을 기댔다.

“괜찮아요?”

“그럼요. 이렇게 기분 좋게 마신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주위도 어둡고, 다들 무대에 관심이 쏠려있어서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기저기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거나, 친구들의 부축을 받아 가는 애들도 보였다.

일부 학과는 일찌감치 주점을 정리하거나 집기를 날랐다.

축제란 한순간이다. 내일부터는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지.

엘리는 나를 보며 말했다.

“진후 표정이 왠지 쓸쓸해 보이네요.”

“그냥 좀 아쉬운 느낌이 들어서요.”

그 사이 난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은 돈을 벌었지만, 대신 남은 대학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만약 계속 학교를 다녔다면, 지금처럼 축제에도 참가하고 선배와 후배들과 어울렸겠지. 그러다가 지금쯤 졸업해서 어딘가에 취직했을 테고.

결국 그건 내가 갖지 못했던 것들이다.

내 얘기를 들은 엘리가 말했다.

“기회비용이네요.”

“그런 셈이죠.”

“후회해요?”

“그럴 리가요.”

어차피 인생은 한번뿐이고, 사람이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그래도 하나는 확실하게 알 것 같아요.”

“뭘요?”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를요.”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인생이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 선택(Choice)이라는 말처럼,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다.

생각해 보면, 난 이제 겨우 20대다. 앞으로 살면서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해야 할까?

뭔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것을 선택할 기회를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란 그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고 얻은 것이다.

그리고 미래란 현재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고 얻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확실하게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생각해요?”

“나중에 말해줄게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녀 역시 알고 있지 않을까?

엘리는 나를 보며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 미래를 보는 투자자 426 > 끝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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