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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3

42. 거지남매 – 동상이몽

“오빠. 그 옷은 뭐야?”

“어때? 멋있지?”

오빠가 근사한 옷을 입고 왔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진 치수, 풍성한 넥스카프와 금빛 브로치는 오빠의 황금빛 눈동자와 잘 어울렸다.

당장 거리에 나가면 그의 외모에 숨죽일 여인들이 꽤 많을 것 같아서 레나는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기생오라비 같아.”

“그게 오빠한테 할 말이니? 다녀올게.”

“응. 올 때 맛있는 거 사와.”

레오는 기분 좋게 저택을 나섰다.

동생은 저택에서 잘 지내고 있다. 또래 애들과 함께 지내면서 많이 밝아졌고, 말을 거의 안 하던 동생이 먼저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사소한 잡담이었지만 레나가 활력을 얻은 모습에 요즘 그는 “살맛 난다!”를 외치고 있었다.

레오는 아낌없이 마차를 잡아탔다.

“에라린 대로로 가주세요.”

에라린 대로는 귀족들의 저택이 몰려있는 곳이었다.

대로는 마차 세 대가 한 번에 지나갈 정도로 넓었고, 대로를 걸어 다니는 귀족가의 시종 사이로 경비병들도 삼삼오오 돌아다녔다.

레오는 한 저택에서 마차를 세웠다. 타티안 후작의 저택이다.

겉보기에는 주위에 있는 저택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으나, 차이점이 있다면 이 저택은 돌담이 아닌 높은 창살로 둘러쳐져서 내부의 정원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비싼 철을 고작 담장을 두르는 데 쓰다니… 그것도 단지 정원을 자랑하려고.

현대사회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이곳에서는 얼마나 사치스러운 짓인지 레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혀를 내두르고는 저택을 지키는 경비병에게 다가가 편지봉투를 내밀었다.

경비병이 봉투에 찍힌 인장을 확인하자 레오는 곧 깐깐한 인상의 집사를 만나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저택 내부는 의외로 차분했다.

온갖 장식과 벽화, 그림, 샹들리에, 카펫, 고풍스러운 가구들, 조각상, 계단, 휘장, 커튼 등이 빈틈없이 배치되었음에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아있었다. 돌아다니는 사용인들의 입과 안색도 마치 인테리어의 일부인 양 무겁게 장식됐다.

집사는 레오를 응접실로 안내하고는, 후작의 일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간단한 다과를 접대했다.

집사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뻣뻣하게 서 있었다. 레오가 몇 마디 말을 건네봤지만, “네.”, “그렇습니다.” 등의 단답이 돌아왔을 뿐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윽고 시간을 살피던 집사가 레오를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주인님. 직인을 가진 손님이 왔습니다.”

집사는 그가 귀족이 아닌 걸 확인하고 평대로 레오를 알렸다. 그가 귀족이었다면 ‘방문하셨습니다.’와 같은 말로 후작에게 알렸으리라.

안에서 조금 쉰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들이게.”

집사는 레오를 들여보내고, 거대한 책상에 팔을 괸 중년의 사내에게 편지봉투를 건네준 뒤, 공손히 뒷걸음질 쳐 나갔다.

레오는 후작으로 보이는 남자 앞에 섰다.

그를 보니 왜 저택의 분위기가 화려하면서도 차분한지 알겠다.

이 신중한 인상의 남자를 닮은 것이었다.

후작은 화려한 의상을 몸에 걸쳤음에도, 얇지만 진한 눈썹과 얼어붙은 듯 새파란 눈동자, 핏기없는 입술로 본인의 절제된 매력을 풍겼다.

그는 봉투를 살피더니 곁에 있던 기사를 밖으로 내보냈다. 그제야 레오는 정중한 예법을 취했다.

후작은 움찔하더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개 깡패가 아니셨군. 실례했네.”

그는 레오의 고풍스러운 아카이아 제국의 예법에 답례로 같은 제국의 예법으로 인사를 돌려주었다.

레오는 {귀족 사회} 정보 덕분에 귀족들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게 가능했다.

귀족들은 예법을 통해 평민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관계를 구축했다. 그들은 예법이라는 몸짓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위치를 확인했다.

후작은 레오에게 푹신한 자리를 내어주며 자신도 앞에 앉았다.

“예법이 아주 훌륭하군. 어느 귀족가의 자제분이신가?”

“볼품없는 사생아에 불과합니다.”

레오는 거짓말을 했다. 문란한 귀족들에겐 사생아가 흔해서 둘러대기에 딱 좋은 핑계였으나 후작은 얇은 눈썹을 치켜들었다.

“흐음? 이 봉투는 분명 청부를 하려 보낸 것인데… 내가 듣기론 라우노 패밀리라는 곳은 돌봐주는 귀족이 없다고 들었네만?”

“맞습니다.”

라우노 패밀리는 뒤를 봐주는 귀족이 없구나. 이제야 알았다.

레오는 계속 능청을 떨었다.

“저는 한미한 가문에서 태어나 보잘것없는 검술 실력으로 라우노 패밀리에 몸을 의탁하고 있습니다. 딱히 패밀리와 가문이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군. 왜 이렇게 젊은 사람이 왔나 했어.”

후작은 그제야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일으켜 뒤에 있던 장식장에서 고급스러운 술병과 잔을 꺼냈다.

“차를 내오라 하고 싶지만… 그보다는 술이 낫겠군.”

레오로서는 반가운 일이어서 그는 속으로 저것이 아주 독한 것이길 빌었다.

“한잔 받으시게. 오시는 동안 뭐 불편한 일은 없으셨나?”

“감사합니다. 불편할 것이 뭐 있었겠습니까. 아! 오는 길에 꽃이 폈더군요. 겨울인데도 말이죠. 아마 인조로 만든 꽃이겠지요.”

레오는 공주를 주제로 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귀족들은 단도직입적인 대화를 피해 교묘한 말을 나누며 서로의 관심사를 확인하는 걸 즐겼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급한 일이 있거나 감정이 상하면 생각을 그대로 뱉었다. 아까 후작이 깡패의 예법에 놀라서 직접 레오의 신상을 물었던 것처럼.

레오도 직접적으로 왜 후손을 끊으려 하느냐고 물어볼 수 있지만, 후작이 술잔을 건네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으니 그에 맞춰줄 따름이었다.

후작이 독한 술로 입을 축이곤 말했다.

“보기 드문 것을 보셨군. 그런 인조 꽃은……”

후작과의 대화는 비유로 점칠 됐지만 알아낸 것이 많았다.

그는 명백히 이 사태를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이 사람도 공주가 왜 그런 돌발행동을 했는지 모른다. 후작은 왕과 소통하고 있지 않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레오는 민감한 부분을 건들지 않고 피했다. 후작도 그러길 바랐는지 그 주제는 무난히 스쳐 지나갔고, 이후 가벼운 술기운이 돌면서 둘의 대화는 점점 노골적인 색채를 띠었다.

베나르 타티안 후작이 얼음을 티스푼으로 눌러 술에 가라앉히며 말했다.

“폭풍을 피하려는데 선원이 겁이 없어 걱정일세. 선장이라면 배가 침몰하지 않게 노력할 수밖에 없겠지.”

“지당한 말씀입니다만… 부선장을 잃으면 항해에 지장이 있지 않겠습니까?”

후작의 제안을 토턴 타티안이 거절했나 보다.

소드마스터의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따랐는데 후작의 아들은 무슨 이유인지 고집을 피우고 있다.

공주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을까?

후작은 짧게 선장의 결론을 내렸다.

“다른 배의 선원을 빌릴 수밖에.”

아들을 죽이고 양자를 들이려 한다. 그 말을 듣자 레오의 눈이 반짝였다.

“훌륭한 선원이 필요하시겠군요. 하지만 그런 선원을 다른 배에서 선뜻 내어줄 리 없으니…”

레오는 목을 가다듬었다.

“실력이 알려지지 않은 선원을 찾으셔야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살짝 손을 말아쥐었다.

후작은 레오의 제스쳐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상식적인 이야기로 레오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어려운 일이지. 일하는 모습도 확인해야 하고. 시간이 필요한 일이야.”

그래도 거절은 아니어서 레오는 작은 희망이 부풀어 올랐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인선보다 어려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실은 저도 배를 타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때…”

그는 여동생의 존재를 후작에게 드러냈다.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나 하나뿐이 아니라는 선전이었지만 후작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말을 돌렸다.

“오, 그렇지. 혈육만큼 가까운 사람이 없지. 옛날에 내 친우가 접시를 깨뜨렸는데…”

접시를 깨뜨렸다는 것은 결혼 전에 사고를 쳤다는 뜻이었다.

레오는 아쉬웠지만, 운을 떼어둔 정도로 만족하고 새로운 화제를 받았다.

하나뿐인 자신의 친우가 급히 결혼해서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이 아주 왈가닥이라는, 후작의 이야기는 다소 사소한 것이었다.

잘 들어보면 전하려 하는 메시지가 숨겨져 있는 듯도 했지만, 취한 후작이 의미 없는 얘기를 하는 것도 같아서 레오는 다른 생각을 했다.

‘후작의 힘을 빌리면 레나를 공주로 만들 수 있다.’

엄청난 {이벤트}가 여기에 숨어있었다.

당장 후작은 큰 관심을 내비치지 않았으나, 차차 증명해나가면 될 일이었다.

기사급의 검술 실력을 갖춘 아들과 왕국을 흔들 만큼 아름다운 딸. 청부를 맡아 실력을 증명하고, 후작에게 레나를 보여준다면 그는 틀림없이 남매를 양자, 양녀로 들일 터였다. 그러면…

레오가 보기엔 콘라드 왕국의 왕자를 쫓아내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쉬운 길로 보였다.

콘라드 왕국의 정보를 얻지 못해 착잡해져 있던 그는 욕심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후작과 대화를 더 나누다 헤어졌다.

마지막으로 레오는 우아하게 인사하며 청부의 시간과 장소를 맞추기 위해 다시 찾아오겠노라 약속했고, 후작은 패밀리에게 탐스러운 보상을 안겨주겠노라 확언했다.

저택 밖으로 나오는 레오의 품에는 후작이 건네준 출입증이 있었다.

레오는 술기운에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마차를 잡아탔다.

드디어 뭐가 풀리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높은 창가에서 그를 내려다보던 타티안 후작은 술병과 술잔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그는 평생 취해본 적이 없었다.

* * *

레오는 알싸한 취기를 느끼며 가죽 거리로 돌아왔다.

후작과의 만남은 만족스러웠다.

보스가 시킨 일도 거의 완수했고 레나를 공주로 만들 방안도 얻었다.

‘아 참, 레나가 간식을 사다 달라고 했지.’

그는 주위를 둘러봤으나 시간이 너무 늦어서 문이 열린 가게는 없을 것 같았다.

레오는 귀찮음에 잠시 망설였지만, 간식을 들고 좋아할 레나를 떠올리고는 길을 돌아 가죽 거리의 쉼터를 향했다. 오베르는 아직 근무 중일 거다.

오베르는 항상 먹을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군것질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험상궂은 인상과 달리 마음씨가 선한 오베르는 가끔 거지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곤 했다.

“오베르 아저씨. 저 왔…”

막 내리기 시작한 눈송이를 털어낸 레오는 삐끄덕, 헐거워진 문을 열며 오베르에게 인사하려다가 멈칫했다.

“오. 레오 왔구나.”

그는 카시아와 함께 있었다.

옅은 미소를 띠던 레오는 안색을 조금 굳히며 용건을 꺼냈다. 카시아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저씨. 혹시 주전부리가 있나요? 레나한테 간식을 사다 주기로 했는데 제가 깜박했어요.”

“레나 꺼? 잠시만.”

오베르가 서랍을 뒤적거릴 때, 카시아는 오랜만에 만난 레오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레오는 그녀의 눈길이 영 부담스럽고 싫었다.

저 여자가 밉다.

지금의 카시아가 저지른 일은 아니었지만, 당시의 앙금이 사라지지 않아서 그는 카시아에게 인사 한마디 건네지 않고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여기 있다.”

오베르가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안에서는 얇은 기름종이에 쌓인 알사탕들이 부스럭거렸다.

“고마워요. 꼭 갚을게요.”

“갚기는 뭘. 가족끼리.”

오베르는 그에게 호의가 듬뿍 담긴 눈빛을 보냈다. 업적의 효과일까? 레오는 라우노 패밀리에서 인기가 좋았다.

레오는 오베르에게 인사하고 서둘러 저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또각

그런데 카시아가 슬그머니 그를 따랐다. 레오는 짐짓 모르는 척 걸었지만, 그녀는 떨어질 줄 모르고 계속 뒤를 쫓았다.

‘대체 어디까지 따라오려는 거지?’

역시 이상한 여자다.

카시아는 일하러 가기 전에 오베르에게 들렸다.

늘 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어제 창관에서 얻은 정보를 보호세 명목으로 전해주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런 일까지 한 것은 아니었으나, 오베르는 카시아에게 은인 같은 사람이었다.

옛날, 목숨을 끊으려던 카시아에게 오베르가 고함을 질렀다. 그는 시궁창에도 반드시 볕 들 날이 찾아온다며, 거칠지만 진심을 담아 그녀를 돌려세웠다.

그의 절절한 외침에, 카시아는 죽지 않았다. 무의미하지만 어쨌든 삶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이 청년을 만났다.

보는 것만으로도 애간장이 끓어오르는 청년. 카시아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왜 이러지?’

정신을 차려보니 그를 쫓고 있었다.

창관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레오는 라우노 패밀리로 떠나버렸지만, 카시아는 그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반년 만에 만난 이 사내는 앙상했던 몸에 살이 붙으며, 평온과 강인함이 신체를 덮어 몰라볼 정도로 변해 있었다.

카시아는 숨을 참으며 훌쩍 커버린 그를 따르는데, 좁고 어두운 골목에서 레오가 휙 돌아섰다.

얼굴이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카시아는 그의 얼굴을 보고 싶어 가까이 다가갔다.

이 남자한테 안기고 싶다.

‘짜증 나는 여자.’

전에도 이 여자는 이렇게 손을 뻗었다.

낡은 가죽과 먼지 냄새, 흐트러진 금화, 레나의 고운 입에서 뱉어진 욕설과 뛰쳐나가는 뒷모습.

그리고 발버둥… 레오는 카시아의 목을 조르던 손바닥의 감촉이 되살아나며 구토감을 느꼈다.

그는 힘을 조금 실어서 카시아를 밀어냈고, 밀쳐진 카시아는 깜짝 놀란 듯 들었던 손을 움츠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오는 그냥 돌아서 버렸다. 모질게도 잘 가라는 인사 한마디 없이 성큼성큼 저택을 향했다.

카시아는 어둠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가만히 멈춰서서 멀어져가는 그의 발자취만 멍청하게 눈에 담았다.

밀쳐진 어깨가 부서질 듯 아프다.

머리에 눈이 소복이 쌓일 때까지 골목길에 멍하니 서 있던 그녀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지 십 년 만이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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