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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30

EP.429 17. 인형의 집 (5)

새벽달을 등지며 출발한 그들이 약속 장소에 도착한 것은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이었다. 스벤은 축제에 놀이꾼으로서 참여한 경험이 몇 번 있었다. 이번에 재주꾼들을 대대적으로 모집하는 것도 그러한 행사를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그가 지금까지 방문했던 곳들과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언덕 아래에서부터 중무장한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이거 느낌이 좋지 않은데…….”

“이, 인종청소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여기 흑사병이 퍼진 동네잖아요. 분명 우리를 몰아다 학살하려고…….”

스벤은 방금까지 신나서 이런저런 추측을 늘어놓던 이고르가 금방 부정적으로 돌변하는 것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고르가 예전에 몸을 담고 있던 부족은 주로 수공예품을 내다 팔던 곳이라고 했는데, 그는 기형적일 정도로 왜소한 체격과 공예품에 대한 괴상한 취향 때문에 부족 안에서도 따돌림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그가 그곳을 떠나 스벤의 무리로 온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의 부정적인 사고회로는 광대들의 엇나간 농담과 묘하게 잘 섞였고, 그가 만들어내는 괴악한 소도구들도 스벤은 마음에 들었다. 그의 의견은 대개 피해망상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이번 일은 스벤 역시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고작 재주꾼과 광대들을 모으는 행사치고 경계가 너무 삼엄했다. 그가 학살을 떠올리는 것도 마냥 피해망상이라 할 수 없었다.

흑사병 시기 동안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나곤 했다. 성자 빅터가 올바른 방역법을 보급해서 그런 일은 거의 없어졌다지만, 사람 일은 또 모를 일이었다.

“어서 움직여라! 그분들이 위에서 너희를 기다리신다!”

병사들의 책임자가 언덕 입구에서 머뭇거리는 집시들을 닦달했다. 사방에서 번뜩이는 칼날들을 보고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비탈길을 올랐다.

길 끝에는 커다란 공터가 있었고, 그곳에는 귀족의 별장으로 보이는 큰 저택이 서 있었다. 저택 주변을 물 샐 틈 하나 없이 포위한 병사들 사이에서 뚱뚱한 중년인이 걸어 나왔다.

“이들이 다인가?”

그는 저택 앞에 모인 집시들을 둘러보았다. 그 수는 대략 30여 명. 그는 그들의 지저분한 행색에 눈살을 찌푸리고는 시계를 확인했다.

곧 있으면 정오였다. 이제 더는 사람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그는 집시들을 향해 자신이 이 영지의 주인이자 그들을 소집한 사람임을 밝혔다.

“오늘이 예비 소집인 걸로 알고 있겠지만, 사실 그건 정보가 새어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너희들은 지금 당장 일해야 한다. 저 저택 안에 들어가 내 아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면 된다. 자, 그러면 들어오도록.”

그의 일방적인 선언에 그들은 누구 하나 호응하는 사람 없이 서로의 눈치만 봤다. 모든 일이 갑작스러웠다.

“우, 우리가 저택 안에 들어가면 밖에서 불을 지르려는 거 아닐까요?”

스벤은 이고르의 말을 쉽사리 부정하지 못했다. 주변에 모인 동지들도 다들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는지 불안한 눈길로 주변을 훑어봤다.

“이놈들이! 어서 움직이지 못해?”

영주는 자신이 직접 명령했음에도 꿈쩍하지도 않는 그들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주변의 병사들이 창을 다잡는 것을 보아 정 안되면 강제로라도 밀어 넣을 생각인 것 같았다.

스벤은 이러다 큰 사달이 나겠다 싶어-여기서 그의 장기인 ‘코가 쑥쑥 길어진다!’를 시도하면 사람들의 이목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절대 안 돼!” 하는 에스메랄다의 목소리가 들려 바로 마음을 접었다.-앞으로 나섰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겠습니까? 이런 외딴곳에서 갑자기 공연이라니요? 정말 돈을 주는 건 맞나요?”

그의 침착한 목소리가 뒤숭숭한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영주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괘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노려봤다.

‘더러운 집시 놈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하라면 그냥 할 것이지.’

그는 일단 으름장을 놓아 상대의 기를 꺾어놓으려고 했다. 그때, 저택의 안뜰에 서 있던 두건을 쓴 남자가 나와 그를 제지했다. 그는 영주보다 신분이 훨씬 높은 사람인지 영주는 그의 손짓 한 번에 바로 입을 다물고 뒤로 물러났다.

“영주님이 마음이 급해서 경황이 없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두건을 깊게 눌러쓴 데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기분을 평온하게 만드는 힘이 실려 있었다. 그는 저택 앞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자신을 소개했다.

“제 이름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합니다.”

그의 말에 집시들은 경악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여기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흑사병을 구제한 것으로 유명한 수도사로 세간에서는 성자로 불리고 있는 남자였다. 몇몇 정교회 신자들은 그의 앞에 고개를 조아리며 성경 구절을 외어댔다.

“여기 영주님의 아들분은 지금 악마에게 몸을 잠식당해 있습니다. 지금 저 저택 안에 있습니다. 그 악마의 이름은 다들 한 번씩 들어보셨을 겁니다. 놈은 ‘역병 군주’라고 합니다.”

그의 말에 다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이름 역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전 세계 인구의 1할을 앗아간 흑사병을 퍼트린 장본인이었다. 빅터는 그들의 소란이 충분히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악마 놈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려면 마술, 재주넘기, 코미디, 노래와 춤 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모집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놈의 시선을 붙잡아 주시면, 그동안 저희가 놈을 봉인하겠습니다.”

그제야 재주꾼들은 이 상황이 모두 이해가 갔다. 성자 빅터와 역병 군주와의 싸움은 간간이 이곳저곳에서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주로 빅터가 쫓고 악마가 계속 도망치는 모양새였는데 드디어 이곳에서 결착이 나려는 것이다.

“거, 거부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리고 그, 그 일…… 위험하지는 않나요?”

이고르의 질문에 빅터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겁나시면 참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소식이 퍼져나갔다간 사교의 무리가 꼬일지도 모르니 이곳에서 일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줬으면 합니다. 그리고 위험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제가 죽기 전까지 여러분이 죽는 일은 없을 겁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집시 무리는 조용해졌다. 영주는 그들이 모두 거부하면 어쩌나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아까부터 성경 구절을 읊조리던 남자가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섰다.

“저, 저는 예전에 기적궁에서 성자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제 지병을 치료받았지요. 성자님께서 가신다면 제가 한 손 거들고 싶습니다.”

이어서 다음 사람도 차례차례 앞으로 나섰다.

“저는 흑사병으로 가족들을 잃었습니다! 놈에게 한 방 먹일 기회를 주신다니 오히려 영광입니다!”

“나는 흑사병을 옮긴다고 몰매를 맞아 한쪽 다리를 잃었지. 따지고 보면 그것도 놈 때문이잖아? 복수라고 생각하고 덤비겠어.”

재주꾼들은 하나둘 저택의 안뜰로 들어가 빅터의 앞에 서기 시작했다. 인원이 절반쯤 빠졌을 때, 스벤은 이고르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핫핫, 세상을 구하는 광대라! 이거 빠질 수 없는 무대군. 안 그래?”

“저, 저는 그냥 돌아가고 싶은데…….”

“어차피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나. 성자님이 실패하신다면 이곳에 있어봤자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어.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게 낫지 않겠나?”

스벤의 설득에 이고르도 마지못해 무리에 합류했다. 그렇게 모든 재주꾼이 역병 군주를 잡는 계획에 동참하게 되었다.

빅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본인의 일행에게로 돌아갔다. 안뜰에는 그처럼 가면과 두건을 쓴 몇 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

“그러면 곧바로 진입하겠습니다. 놈은 아마 많이 약해진 상태일 겁니다. 정오를 고른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제가 신호를 주면 그때, 여러분의 재주를 보여주시면 됩니다.”

빅터와 그의 동료들, 영주와 몇 명의 기사들, 그리고 재주꾼들이 차례로 저택 안으로 진입했다. 스벤은 흡사 어떤 생물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실제로 안의 풍경은 그와 유사했다. 붉게 맥동하는 살덩어리가 저택의 벽 안쪽을 꽉 메우고 있었다. 그들이 밟는 바닥도 때로는 꿈틀대기도 했고 때로는 신음을 흘리기도 했으며 때로는 고약한 악취가 나는 액체를 뿜어대기도 했다.

“오, 신이시여, 이건 미친 짓이야. 여기서 나가야 해.”

“으으, 끔찍해. 진짜 악마의 소굴이야.”

“우리를 제물로 바치는 건 아닐까?”

“잡아먹힐 거야!”

대다수가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기사들은 물론 심지어 빅터의 일행들까지도 당황하는 기색이 보였다.

“지금까지와는 뭔가 느낌이 달라.”

“그래. 뭔가 이상해.”

“최후의 발악이라서 있는 힘을 다 짜낸 것이겠지. 걱정하지 마.”

“맞아. 지금 와서 되돌아갈 수도 없어.”

빅터는 뒤를 흘끗 돌아봤다. 그들이 들어왔던 저택의 입구는 어느새 꿈틀거리는 것들로 막혀 있었다. 이제는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무너진 중앙의 계단을 돌아 식당을 가로지른 그들은 커다란 홀에 도착했다. 그곳의 단상 위에는 사람으로 보이는 형체가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아들아!”

영주는 실루엣만 봐도 그것이 본인의 아들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실제로 그 형체는 그를 보고 반갑게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것은 분명 아들의 목소리였다. 영주는 앞으로 뛰어나가려고 했지만, 그 순간, 빅터가 그를 제지했다.

“녀석은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낼 수 있습니다. 2번째 싸움부터 녀석은 그걸로 우리를 몇 번이나 농락했습니다.”

“하, 하지만…….”

“그동안 일부러 괴성만 낸 것은 지금 당신을 흔들어 놓기 위해서일 겁니다. 가만히 계십시오.”

“아, 알겠소…….”

빅터와 그의 동료들이 어둠 속에 앉은 형체의 주변을 에워쌌다. 역병 군주는 그들을 둘러보며 웃음을 흘렸다.

“피차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좀 즐기게 두는 아량은 없나? 성자라는 이름이 아깝군, 빅터.”

“너 때문에 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워졌는지 모른다. 이제 다시 자러 갈 때다, 혼돈의 파편이여.”

빅터는 재주꾼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은 저택에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미지의 상황에 압도당한 듯 보였으나 역병 군주가 전면에 나온 지금은 오히려 적의를 불태울 대상이 명확해져서인지 두려움이 많이 가신 듯했다.

아마 예전이었다면 그들은 놈과 마주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놈은 보는 것만으로 대상에게 부정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빅터와 그의 동료들이 몰아붙인 덕에 힘을 많이 깎아낼 수 있었다.

“좋습니다. 지금입니다! 재주를 펼치십시오!”

빅터가 신호를 내림과 동시에 역병 군주가 앉아 있던 어둠의 장막이 걷혔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것이 그 존재를 드러났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빅터는 자신들이 역병 군주에 대해 큰 오산을 했음을 깨달았다. 놈은 자신들에게 쫓기면서 힘이 점점 약해져 갔던 게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의 함정을 위한 놈의 연기였다.

“으아악!”

“괴물이다!”

“살려줘!”

장막 안에서 드러난 것은 거대한 눈이었다. 집채만 한 거대한 눈동자가 사람들을 쏘아보자 그들은 공포에 질려 이성을 잃어버렸다.

옷 안에 신성한 내의를 갖춰 입은 빅터의 일행들과 영주와 기사들은 다행히 버틸 수 있었지만, 집시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앞다투어 이곳에서 도망치기 위해 입구로 달려 나갔다.

“멍청이들아! 도망치지 말고 공연을 하란 말이다!”

영주가 그들의 앞을 막아서며 일갈했으나 그들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그가 앞세운 칼에 스스로 몸을 던져가면서까지 어떻게든 저 눈동자에서 멀어지려 했다. 차라리 죽음으로 도망치는 게 낫다는 듯 가지고 있던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도 있었다.

“이봐, 이고르!”

스벤은 동료가 기사가 내민 칼에 그 자신을 찔러넣으려는 것을 보고 재빨리 제지했다. 어째서인지 그만은 이 혼란 속에서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빅터의 외침이 들려온 순간 웃어버린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살과 뼈를 주무르는 이 끔찍한 악마 앞에서 고작 눈이 빠지는 연기를 할 자신이 얼마나 우습게 보일지 상상하는 게 웃겼다. 그 순간, 그는 성스러운 의복보다 더 큰 혼돈에 대한 방호를 얻게 되었다.

“이고르, 정신 차리게!”

그는 눈을 까뒤집고 벌벌 떠는 이고르의 뺨을 몇 차례 때렸다. 빅터와 그의 동료들은 이미 역병 군주와의 싸움을 시작해서 그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흐앗, 떨어져! 저리 가!”

이고르는 눈을 뜨자마자 품에서 단검을 꺼내어 그에게 휘둘렀다. 스벤은 능숙한 동작으로 그의 공격을 피했다.

“허억, 허억, 스, 스벤?”

이고르는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그도 제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스벤은 그것보다 다른 데 더 눈이 갔다.

그것은 바로 이고르가 손에 쥐고 있는 단검이었다. 그건 얼마 전 돈을 훔쳐 부족에서 달아난 친구가 지니고 다녔던 물건이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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