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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32

그녀 (9)

내가 삼목총에 모습을 드러내자, 장익의 제자 21인과 김영훈이 빠르게 내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존자,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려화가 황당한 듯 내게 질문했고, 나는 그들에게 상황을 요약해서 설명해 줬다.

“그, 그러니까….”

“존자 칭호를 받지 않겠다고 성사와 싸우셨단 말입니까?”

난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게 되었소. 그래도 내 나름대로 중요한 일이었는지라 그리하게 되었소.”

내 말에 그들은 하나같이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더니, 헛웃음을 지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존자께서 벌이신 일로 인해 몇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문제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고, 화초족의 려화가 입을 열었다.

“일단… 천족의 정보력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특유의 미래예지와 점괘 실력으로, 벌써 존자께서 심족에 속한 분이란 걸 알았습니다. 덕분에, 현재 수많은 천족과 지족에서 삼목총으로 쳐들어오겠다고 벼르고 있는 중입니다. 평소에는 함천존자의 위명이 두려워 쳐들어오지 않았습니다만, 성사께서 당하시니 눈이 돌아간 것 같습니다.”

“…몇 가지 문제라 했지. 다른 문제는 뭐요?”

“시(尸)입니다.”

“…!”

려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 먼 곳에서 커다란 생명체가 날아와 광선 같은 것을 삼목총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부웅 부웅, 부우웅!

콰르르릉!

다행히 심족 3단계 고수들이 나서 단체로 천겁을 뿌리자 괴수는 그대로 몸이 폭발해 버렸다.

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현재 저런 시가 한둘이 아님을 알아챘다.

“성사께서 막아 두고 있었던 광한계의 시들이 지금 단체로 광한계에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시들은 천지영기가 흐르는 것을 삼키는 특성이 있어, 지금 당장은 안계 지역부터 습격할 것입니다만… 들어오는 시의 수가 많아질수록 저희도 습격당할 확률이 올라갈 겁니다.”

“으음… 내가 정말 사고를 쳤군.”

내가 백운의 뇌전창을 뽑아 주려 하면서 그녀와 대화하려고 했던 건 내가 멍청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성사란 존재가 하고 있는 역할이라는 게 엄연히 존재했기에 그런 것이었다.

“괜찮습니다. 함천존자께서도 천지족을 뒤집어 놓은 적은 한두 번이 아니시니까요. 다만, 존자께서 일을 벌이신 만큼 삼목총을 보호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하지만… 내 그 전에 그대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소.”

“본래 최고지도회에 대한 명령권은 오로지 함천존자에게만 있으나…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서 존자님의 명령도 불합리한 것이 아니라면 따르겠습니다. 부탁이 아니라 명을 내리소서.”

나는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들에게 내 부탁을 전달했다.

“우선… 뜬금없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현재 내 동료 중 한 명이 천형의 저주로 앓으며 죽어 가는 중이외다. 그러니 그대들이 내 동료의 저주를 풀 방법을 찾아 주셨으면 좋겠소.”

김영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신 답해 주었다.

“북 소저의 저주 해법은 현재 삼목총에서도 꽤 신경 써 주며 찾아 주고 있다. 하지만 근방의 영초나 영약, 혹은 치유에 특화된 구현을 써도 낫지는 않더구나….”

“그렇다면, 천지족의 영역에까지 가서 수소문을 부탁드리겠소.”

“예!?”

내 말에 심족 최고지도회는 나를 미친놈 보듯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기사, 생각해 보면 심족 최고지도회더러 나가 죽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부탁이긴 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잘 들어 주시기 바라겠소, 사형 사저님들. 이 사제는, 사형사저들을 제 단말(端末)로 쓸 생각이외다.”

“뭐…?”

백문이 불여일견.

나는 말없이 기묘성심전을 통해 그들과 나의 의식을 잠시 연결했다.

찰나지만 내가 인식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그들에게도 인식될 것이었다.

나는 무색유리검을 꺼내 들고 눈을 반개하며 자세를 잡았다.

스으으으으-

내 숨소리에 인근의 천지영기가 내게 빨려 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나는 체내의 합도영역을 관조했다.

내 혼의 심상영역을 관조했다.

나 자신의 정, 기, 신을 관조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휘둘렀다.

* * *

“죽일 테다! 죽일 테다! 죽인다죽인다죽인다…! 더러운 인간 심족의 비렁뱅이 자식!”

장목족 영역.

그곳에 있는 한 성 안쪽.

그곳에서, 한 사축기 장목족이 눈에서 수액을 흘리며 부르짖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장목족 영역의 절대다수의 고수들은 하나같이 바삐 움직이면서도 분노를 토해 내고 있었다.

콰르르릉!

하늘에서 거대한 괴수가 떨어져 내렸다.

공허간의 시들이었다.

콰가가각!

장목족의 사축기 수사는 그와 동 경지의 시를 향해 나무창을 던져 넣었다.

울컥, 울컥, 콰아앙!

시의 안쪽에서 나무창이 생장하더니, 시의 몸 곳곳을 뚫고 나뭇가지가 튀어나와 시가 폭발해 버렸다.

물론 폭발한 시는 바로 죽지 않고 더 작고 약한 시로 변했지만, 그나마 그런 시들 정도는 천인기 장목족들이 달려들어 처리했다.

“흐아아아아아! 성사님을! 인간족이! 더럽고 추악하고 쓰레기 같은 인간족이! 그것도 심족 첩자이자 명귀계 첩자 인간족 놈이! 내 성사님을, 내 성사를 더럽혔어!”

사축기 장목족은 미친 듯이 고함치며 시들을 박살 내 갔다.

“내, 내, 내 성사님이었어. 내 성사님이었다고! 내, 내가, 내가 먼저 동경했는데… 내가 먼저….”

사축기 장목족은 계속하여 용맹하게 시들을 상대했지만 점차 기력이 빠지고 있었다.

“내가….”

그리고 어느 순간.

푸확!

하늘의 구름을 뚫고, 50마리의 합체기 수준 시들이 나타났다.

“…아, 하하하….”

절규하던 사축기 장목족을 비롯한, 성내의 무수한 장목족들이 절망 어린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쿠르르르!

경천동지할 빛무리와 함께, 천지가 흔들렸다.

동시에 장목족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보았다.

하늘을 덮을 정도로 거대한 검기가, 일순간 하늘을 덮은 합체기 시들을 일거에 쓸어버리고 갔다.

천기를 읽는 것에 민감한 장목족들은 모두 하늘을 통해 천기를 읽어, 방금 전 검기가 온 곳을 추적해 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공포가 서렸다.

“시, 심족 영역에서… 여기까지 날아왔다고…?”

* * *

비익족 영역.

그곳에서는 방금 전까지 합체기 수준 시 3 마리를 상대로 분전을 벌여, 간신히 승리를 움켜쥐었던 비익족의 합체기 태수.

백명 태수가 얼떨떨한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태수급 시, 서른 마리…? 하하… 오늘 비익족이 끝나는 것인가….”

그는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제길, 몸도 다 낫지 않았거늘… 동귀어진을 하더라도 몇이나 길동무로 삼을 수 있을런….”

바로 그때였다.

“…!”

백명이 뭔가 반응하기도 전.

아득하게 머나먼 곳으로부터, 거대한 검기가 쏜살같이 날아와 합체기 시 서른 마리를 일거에 쓸어버렸다.

백명 태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천기와 지기를 읽었다.

천지쌍수 수련자인 백명은 양쪽의 시야를 가지고 있었기에 읽을 수 있는 정보량이 다른 태수보다 배는 많았고, 그렇기에 순식간에 그 검기의 발원지를 읽어 낼 수 있었다.

“시, 시, 심족 영역….”

백명 태수의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의 날개가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시, 심족… 검기… 거대한… 흐, 흐… 흐아아아! 자, 장 형! 장 어르신! 살려 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더 이상 녹소족으로 탕을 끓여 먹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흐아아아아아!!!”

뭔가가 그의 안 좋은 추억을 건드린 듯, 백명 태수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발광하며 날뛰기 시작했다.

* * *

장목족과 비익족을 포함하여,

투귀족, 균해족, 부휴족은 물론이고.

지족의 대형 종족들의 상공에도 여지없이 예의 거대한 검기가 날아와 그들 영역을 습격하던 시들을 쓸어버렸다.

천족은 천기를 읽어, 지족은 지기의 기운을 역추적해, 광한계의 모두가 검기의 발원지를 알 수 있었다.

그곳은 심족 영역인 삼목총.

그곳에서, ‘누군가’가 수천만 리의 거리를 격해 검기를 날려 그들을 도와준 것이었다.

콰아아앙!

지족 진룡맹.

봉명주의 관리자 중 하나이자, 최근 합체기에 오른 용왕(龍王) 규련은 천공에 떠오른 시들을 상대하던 와중, 수백 마리의 시들을 일거에 쓸어 간 방금의 검기를 떠올리며 식겁했다.

“도, 도대체 무슨….”

촤라라락!

그녀는 천지영기를 역추적하여 검기의 발원지를 찾아냈다.

“심족 영역…? 심족 영역은 최소로 잡아도 억 리를 넘는 거리에 있거늘….”

그녀의 안색이 하얘졌다.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녀의 뇌리에, 방금 전 천겁을 통해 송출된 ‘백운 성사를 고문하던 악귀’가 떠올랐다.

21개의 머리를 가진 단단히 미친 그 마귀.

백운 성사가 송출한 정보 속에서, 그녀를 비롯한 무수한 이들은 그 마귀가 ‘심족’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마귀가 방금 우리를 도와준 건가…?’

부르르!

규련은 몸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성사를 대뜸 고문하던 그 마귀 놈이 우리를 도왔을 리 없어. 심족들은 겉과 속이 일치한다 했으니, 겉으로 보일 정도로 악해 보이는 그 악귀 같은 존재는 절대로 남을 도울 리 없지. 하지만… 이 정도 일격은 최소 존자가 아니면 보낼 수 없거늘….’

규련을 비롯한 무수한 합체기 요왕들은, 문득 떠오른 한 가지 사실에 모두 공포에 절었다.

‘그렇다면… 설마, 심족에 존자가 두 명이나 탄생했단 말인가!’

그건 정말로 무시무시한 일일 터였다.

그날, 진룡맹 봉명주에서는 ‘두 명이나 탄생한 심족 존자’에 대한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 * *

키이이잉-

체내에서 광음(光陰)이 회전한다.

그리고, 체내의 광음이 회전하며, 소모되었던 내 기운이 다시 원상복구 되었다.

이것은 시(時)의 신통.

척!

난 존자 수준의 일격을 날린 후, 또다시 자세를 잡고 일격을 날렸다.

쿠구구구구구!

내 일격은 일순간 혼의 계위로 올라가, 무수한 시공간을 격하여, 수천만 리 이상을 떨어진 태호족 영역의 시들을 쓸어버렸다.

그런 후, 나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키이잉!

광음이 회전하며 법력이 회복된다.

이것은 산외산부진!

끊임없이 원상태로 돌아가며 공격을 가하는 절기였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평상시의 산외산부진은 내 심력과 체력, 그리고 기술을 통해 발동된다면 이번의 산외산부진은 시의 신통과 합쳐져 반무한에 가깝게 펼쳐진단 것이었다.

‘놀랍군….’

이것이 합체기 육신통(六神通)과 무공을 합쳤을 때 나타나는 상승효과였다.

부웅!

나는 집중력을 다해, 또다시 거력을 검에 충천하여 휘둘렀다.

다시금 내 검기가 무량한 시공간을 격하여, 또 다른 약소종족들의 자리에 도달해 시들을 쓸어버렸다.

뚝, 뚝뚝….

땀이 흘렀다.

법력 소모는 거의 없을지언정 아무래도 시의 신통을 사용하는 건 심력이 꽤 소모되는 일이었기에 갈수록 정신력이 고갈되는 일이긴 했다.

‘이번이 마지막이겠군.’

나는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검기를 날려 약소 종족을 습격하는 시들을 쓸어버린 후, 잠시 멈춰서 땀을 쓸었다.

“후우우….”

기묘성심전의 연결을 잠시 끊어 낸 후.

나는 주변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최고지도회에게 말했다.

“이해하시겠소?”

“…알겠습니다. 저희를 광한계 곳곳에 파견하여, 단말로 쓰시며 더욱더 정밀하게 광한계 곳곳에 일격을 뿌려 시들을 없애시려는 것이군요.”

“정확하오.”

그들은 잠시 서로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현 최고지도회 부지도자인 려화는 김영훈을 보며 말했다.

“영훈 대인께서는 존자님과 함께 심족 영역을 수호해 주십시오. 저희는 저희 제자와 추종자들을 데리고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나를 믿을 수 있겠소?”

“지난 십 년간 잔뜩 깨달음을 나누어 보았으니, 저희들 사이에 거리낄 것은 없지 않습니까. 저는 영훈 대인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김영훈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예로부터 저는 좋은 종자를 골라내는 데엔 일가견이 있어서 말입니다. 곧 있으면 개화(開花)할 것 같은 씨앗이라면 얼마든지 안정을 취하게 해 줘야지요.”

난 려화의 말에 김영훈을 돌아보았다.

그는 쓰게 웃을 뿐이었다.

“과한 칭찬이오. 아직 저 경지에 이르려면 까마득하건만….”

“후후… 과한 겸양은 그 자체로 교만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 영훈 대인과 유연이 남아 심족 영역을 지켜 주시도록 하시지요.”

려화는 그렇게 결정을 내린 후, 빠르게 나에게서 분혼을 받아 자신들의 몸에 받아들였다.

그런 후 그들은 빠르게 구현 3단계의 심족들을 데리고 광한계 곳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저들은 앞으로 광한계를 떠돌며, 내 단말이 될 것이다.

나는 저들을 통해 공격을 날려 공허간의 시들을 정리할 것이었다.

그리되면 그들은 내 위세를 등에 업고 천지족에게 심족 영역을 넘보지 말라는 경고를 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북향화의 저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터였다.

‘좋아, 이대로만 가 볼까.’

그리고, 내가 막 흩어진 심족들을 통해 공허간의 시들을 정리하려 할 때였다.

후웅!

난 갑자기 내 옆에서 나를 기습한 유연의 공격을 빠르게 피했다.

하곡족의 유연은 두 주먹에 기운을 깃들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짓이오, 사형?”

“사저입니다.”

“아… 정말 실례했습니다, 사저. 체내의 음양 비율을 보고 사형인 줄로만 알고….”

“괜찮습니다. 다들 많이 헷갈리곤 하시니까요. 저는 하곡족 중에서도 기형아라 어렸을 때부터 신체에 음양이기가 끓어 넘쳤습니다. 아마 그 덕에 음양의 비율이 이상해 보이는 것일 겁니다.”

“그렇….”

내 말이 끝나기도 전.

그녀는 내게 달려들어 다시 주먹을 뻗었다.

콰아앙!

그녀의 양 주먹에서 어마어마한 폭음이 일어나, 일대를 휩쓸었다.

나는 먼지구름을 흩어 버리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저와 대련을 나누시고 싶으신가 봅니다.”

“저희 함천존자의 수제자들은 아무래도 투지(鬪志)에 민감해서 말입니다. 존자께서 저희와 손속을 겨뤄 보고자 하신다는 건 진즉 눈치챘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지난번에 보셨듯이, 경창 사형도 제 손에 죽었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기억합니다. 경창 사형은 저와 특히 친했지요. 애당초… 구현의 이름도 저와 경창 사형은 둘 다 하곡(河曲)으로 똑같습니다.”

“….”

“어릴 적부터 경창 사형과 함께해 왔고, 그분을 따라 스승님의 문하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제 인생은… 오로지 그분의 뒤를 따라갔기에 의미가 있었던 것이었지요.”

저것은 무슨 감정일까.

연분홍빛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또 다른 무수한 감정의 집합이기도 했다.

“제 하곡(河曲)은 풍정낭식(風定浪息). 어릴 적부터 들끓어 오르던 음양이기를 잠재우기 위해, 저희 하곡족의 평온한 삶을 위해… 제가 생을 바쳐 얻어 낸 구현입니다.”

그녀의 뒤로, 무수한 각오가 떠오르는 듯했다.

나는 얼핏 시의 신통을 통해 그녀의 과거 속 장면을 얼핏얼핏 읽어 냈다.

어릴 적부터 괴질을 가지고 태어난 하곡족의 소녀.

그녀는 소인족의 소년과 만나 재주를 갈고닦으며, 하곡이란 이름으로 발전시켜 심족이 되었다.

둘은 장익을 만나 수련받고, 무수한 풍파를 거치며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지금.

경창이 죽은 이 순간.

그녀는 경창이 마지막에 보았던 것을 따라가기 위해 내 앞에 섰다.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촤락!

그녀는 자신의 몸을 덮은 새우 껍질 같은 것을 벗어 던졌다.

이윽고 드러난 것은 소인족 소녀와 비슷한 형태의 유연의 모습이었다.

치이이이이!

그녀의 피부는 햇빛을 받자마자 점차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피부가 너무 연약하여 새우 껍데기를 쓰고 다녀야 하며, 평소에는 강물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강물의 흐름 하나에도 이리저리 휘말리는 가장 연약한 종족.

그것이 하곡족이었다.

쿠구구구구구!

“갑니다!”

-경창 사형은 그때 무엇을 보았을까?

그녀의 마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이제 존자도 한 분 더 탄생하셨으니, 우리는 걱정할 것도 없겠지.

그녀의 양 주먹에, 경창의 불시풍우에 맞먹는 거대한 거력(巨力)이 충천(充天)하였다.

-그러니, 남은 것은 전력을 다해 부딪힐 뿐… 오로지, 사형을 따라가기 위해!

나는 진중한 표정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다음 순간.

말은 필요 없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절기 중 최강의 파괴력을 가진 절기로 그녀의 절기를 맞받아쳤다.

“단악(斷岳)!”

“풍정(風定)!”

새하얀 빛이 서로를 향해 끓어올랐다.

다음 순간.

빛이 가셨고, 우리의 위치는 반대가 되어 있었다.

푸콱!

“…아아….”

유연은 맑게 미소 지었다.

“거기에 도달했군요. 사형….”

그녀는 가루가 되어,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나는 내 무색유리검 끝에 맺힌 작은 그을음을 보았다.

그을음은 곧이어 허공으로 흩어져 날아가 버렸다.

나는 바람을 잡아 보려 했으나, 바람은 내 손에서 흩어질 뿐이었다.

그녀의 흔적이었다.

허망하고도 아름답게 간 그녀를 보며, 나는 또다시 찰나에 대한 갈피를 잡았다.

순간과 순간이 하나 되어 완성되는 것이 시간이라먼,

순간은 모두 언젠가 스러짐을 상징하는 것이 바람일지도.

“…이것이… 바람(風)인가.”

시(時)의 신통을 얻은 직후.

나는, 장익의 수제자 중 두 번째 수제자, 유연을 죽였다.

그리고, 나는 바람에 대하여 참오했다.

바람이란 자신의 원(願)을 그리는 바람.

집착을 위한 욕정이 아닌, 그저 마음에 그리는 행위.

언젠가 풍화(風化)되어 사라질지라도.

바람이 남긴 흔적은 구름에, 바다에, 태산에 흔적이 되어 남으리라.

-바람과 함께 날아올라라.

난 멸법진언의 구결과 그녀의 마지막 일초를 떠올리며, 마침내 풍(風)의 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얻은 두 번째 신통이었다.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回歸修仙傳, 회귀수선전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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