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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32

EP.431 17. 인형의 집 (7)

스벤이 눈을 뜨게 된 것은 그가 죽고 무려 80년이 흐른 뒤였다. 그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실감하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서 죽기 직전의 일은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딸과 헤어진 지 불과 하루도 흐르지 않은 것 같았다.

막 깨어났을 때의 그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역병 군주와 사투가 벌어졌던 저택은 지난 80년 사이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뼈다귀만 남은 자신이 손에 단검을 든 채 역병 군주와 싸우는 빅터의 등 뒤를 찌르는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둘은 진짜가 아니라 정교하게 만들어진 밀랍 인형이었다.

그는 몇 달을 고생한 끝에 간신히 몸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온몸에 접착제가 발라져 있어서 그걸 떼어내는 게 힘들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인형술사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의 몸은 영혼이라는 실을 통해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에 가까웠다.

그는 곧 지난 몇 달 동안 자신의 앞을 지나쳤던 사람들이 왜 자신을 경멸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는지 알게 되었다. 그의 몸이 전시된 장소 앞에는 이런 표제가 붙어 있었다.

[집시의 배신]

내용인즉슨 빅터가 역병 군주를 퇴치할 당시 그가 치료해준 환자에게 뒤에서 칼에 찔려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이 그의 의복에 난 상처와 현장에서 발견된 단검의 출처를 대조해 그것을 밝혀냈다고 적혀 있었다. 스벤은 자신이 이고르의 죄를 뒤집어썼음을 깨닫고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그는 그렇게 박물관이 문을 닫는 야간을 틈타 내부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았다. 자신이 죽은 지 80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꽤 충격을 받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쨌든 한 번은 죽었던 몸 아닌가? 80년 뒤 세계로 여행을 왔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얼마나 재밌는 것들이 많이 생겼을까?

그러나 그의 들뜬 기분도 오래가지 못했다. 빅터와 역병 군주의 마지막 대결에 관해 사실이 완전히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우선 역병 군주에게 몸을 점령당한 사람이 영주의 아들이 아닌 집시 중 한 명으로 바뀌어 있었다. 빅터의 협력자인 용감한 영주가 축제를 위해 집시들을 모으는 척하면서 그중에 한 명이 역병 군주임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아마 해당 영주의 가문에서 영주의 아들에 대한 진실을 숨기기 위해 정보를 조작한 모양이었다. 자기네 가문에서 악마에게 몸을 뺏긴 사람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면 자신들의 명예에 큰 흠집이 나니까 말이다.

그나마도 사건 당시에는 이러한 사실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성자와 악마가 쓰러진 장소를 사교 무리가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교황청 측에서 빅터가 죽은 장소를 철저하게 숨겼기 때문이다. 사실이 밝혀진 것은 몇십 년 후의 일이었다.

그래서 당시 집시들의 죽음은 그들이 모여 도적질을 하기로 작당해 영주와 그 아들을 죽이고 돈을 훔치고 달아나다가 병사들에게 붙잡혀 몰살당한 것으로 공표되었다. 그런 강도 행위에 대한 본보기로 근처에 체류하던 집시 무리가 대대적인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스벤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차피 80년 전의 일이었다. 에스메랄다는 이 일로 죽었든 그렇지 않든 아마 예전에 죽었을 것이다. 이미 시간이 상당히 흘렀음을 알았을 때부터 그녀의 죽음 자체는 각오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엉뚱한 오해를 품고 죽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쓰라렸다. 아빠가 돈을 훔치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사형당한 것을 들었을 때,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매즈가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생각했을 때도 며칠간 식음을 전폐했던 그녀였다.

-아빠, 금방 돌아올 거지?

-핫핫, 물론이지! 턱이 빠지도록 큰 일거리를 찾아서 돌아오마!

스벤은 울 수만 있다면 울고 싶었다. 그러나 이 몸뚱어리는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살아 있었을까?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에 대한 배신감이 깊어지면 깊어졌지, 얕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빅터의 등을 찌른 단검을 에스메랄다가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어쩌면 매즈를 죽인 사람이 자신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친구를 죽이고 누명을 씌운 비겁자.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게 사명이라고 주장하고 다니던 위선자. 자신을 구해준 성자의 등을 찌른 배신자. 그녀에게 새로운 오해만 남겼을 수도 있었다. 차라리 도적놈으로 알고 죽었다면 다행이었다.

한동안 슬픔에 잠겨 있던 스벤은 몇 주 동안 전시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 몸뚱어리로 다시 살아났다고 해서 좋을 게 없었다. 이 꼴로 밖을 나돌아다니는 것은 불가능했다. 평생 박물관 안에서 낮에는 전시물로 서 있다가, 밤에는 누구와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홀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법조차 알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것은 관리인실로 배달되는 신문과 잡지를 통해 정보를 모으는 것뿐이었다.

결국 그는 일단 바깥세상을 조사해 보기로 했다. 어쩌면 뭔가 실마리가 있을지도 몰랐다.

이 박물관이 세워진 지는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 이 저택은 지난 수십 년간 영주 가문과 교황청의 주도 아래에 폐쇄되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성자의 유해조차 이곳에 그대로 안치되었다고 했다. 역병의 악마와 싸운 탓에 성자의 육신이라 할지라도 어떤 병원균이 남아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가 머무르는 ‘성 빅터의 삶과 발자취’ 박물관이 세워진 것은 성 빅터 대성당이 황제의 심술 때문에 광대와 재주꾼들의 학교로 개조된 이후였다. 황제의 패악질에 대한 반발심으로 사제와 학자들이 모여 이 저택을 개수해 박물관으로 만든 것이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저택이었지만, 지역 사제들이 비밀리에 관리하고 있었기에 건물의 상태는 양호했다.

“광대와 재주꾼들이 성당을 학교로 쓰다니. 세상 많이 좋아졌구나.”

스벤은 서커스 그랑프리라는 것과 거기서 벌어진 테러 사건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스벤은 자신이 날짜를 잘못 센 것이 아니라면 테러가 벌어진 그 날이 바로 자신이 눈을 뜬 그 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뭔가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렇게 몇 년을 박물관 안에서 지내다 보니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구가 더욱 커졌다. 그러나 마땅히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코미디를 연습하는 것뿐이었다.

“안녕하세요, 빅터 씨. 역병 군주도 안녕? 오늘은 프릴라 간호사님의 집으로 가기로 했죠. 어이, 거기 흑사병 걸린 집시들, 여기라고, 여길 주목 하라고. 아, 그리고 나의 단짝, 해골 머리 아가씨.”

그는 밤이면 밀랍 인형과 유일하게 자신 말고 하나 있는 해골 한 짝을 모아두고 관객 겸 상대 배역으로 배치하고는 광대로서 기량을 갈고닦았다. 그는 잡지와 신문 읽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가 생전에 제법 뛰어난 광대였지만, 코미디라는 것은 시대와 같이 흘러가기 마련이었다. 사람을 모르면 사람을 웃길 수 없었다.

“핫핫, 오늘의 쇼는 여기까지! 환호 감사합니다, 역병 군주가 만들어낸 괴물 관객분들! 저는 해골 광대, 스벤이었습니다!”

갈채도, 환호도, 웃음도 없었다. 멍청한 표정의 밀랍 인형들만이 서 있는 적막한 홀에 서서 그는 웃었다. 그가 그렇게 광기에 가까운 15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직감 때문이었다.

역병 군주를 퇴치하기 위해 재주꾼들을 모았던 빅터, 그리고 서커스 그랑프리의 테러와 함께 부활한 자신. 그리고 그 사건의 원흉으로 지목된 검은 마도사.

어쩌면 자신을 이 꼴로 만든 악마와 다시 마주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자신의 재주가 또 필요해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그는 15년을 버텼다.

그렇게 오늘도 코미디 연습을 마치고 이만 자리를 정리하려는데 객석에서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스벤은 관객들의 호응에 굶주린 나머지 자신이 환청을 듣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소리가 들려온 곳에는 정말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검은 정장에 검은 망토를 두른 검은 모자를 쓴 금발의 잘생긴 남자였다.

“이거 야간에 박물관을 둘러보러 왔다가 재밌는 구경을 하는군요. 제 이름은 프랑크 원더스타인이라고 합니다. 혹시 저랑 같이 서커스를 할 생각 없습니까?”

***

스벤의 이야기가 끝나고도 사람들은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가 밝힌 역사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들도 충분히 놀라운 것이었지만, 항상 방정맞기만 하던 그에게 이런 슬픈 사연이 있다는 것 또한 충격적이었다.

스벤은 그런 일행들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뭔가 못마땅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잠시 바닥을 바라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턱을 달그락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그가 왜 그러나 싶어 주목하는 순간, 그는 고개를 쳐들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핫핫핫핫, 정말 방금 이야기를 믿으셨습니까? 정말 우리 일행분들은 순진하군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스벤은 단원들을 바라보며 씩 웃더니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핫핫핫, 이런 이야기가 진짜일 리 없지 않습니까? 제가 적당히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거짓말!”

“핫핫, 잘 생각해 보세요. 이야기에 우리 여정에서 따온 부분이 많지요! 공연을 보는 것에 시선을 뺏기는 악마나 저주 역병, 성 빅터 같은 것 말입니다. 핫핫,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를 그럴듯하게 박물관 배경 설정에 갖다 붙인 것에서 눈치챌 줄 알았는데요? 핫핫, 이거 순간 제 인스피라인 ‘광대의 허언’이 단원들에게도 통하는 줄 알았지 뭡니까!”

적막했던 열차 안이 금방 소란스러워졌다. 몇몇 단원은 또 당했다며 고개를 내젓고 말았지만, 진짜로 그의 이야기에 몰입해 듣고 있던 단원들 대다수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이 인간이 진짜!”

“나가 죽으세요!”

“웬일로 진지하게 구나 했네!”

“야, 저 영감탱이 어깨 빼 버려!”

“정강이뼈를 뽑자!”

단원들이 정말로 그의 관절을 부술 작정으로 달려들자 스벤은 기겁해서 소리쳤다.

“어이쿠! 이러지 마세요! 여러분이 너무 진지하게 몰입해서 거짓말이 커지고 말았잖습니까!”

“이게 우리 탓이야?”

“젠장, 스벤의 인스피라가 뭔지 생각해 보면, 애초에 믿는 게 아닌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인 거야?”

“박물관에 있던 건 사실이에요?”

“아니, 애초에 그런 박물관이 있긴 있어요?”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이 억울해서 일부나마 진실이길 바랐다. 그러나 스벤은 그러한 그들의 기대를 무참히 배신했다.

“모두 거짓말입니다! 핫핫!”

뻔뻔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다들 인내심이 바닥났다. 그들은 와 하며 함성을 내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어 그를 해부학적으로 더는 분해될 수 없을 때까지 산산조각 내어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다. 물론 그는 5분도 안 되어 스스로 몸을 조립해 쓰레기통에서 기어 나오긴 했지만, 단원들의 싸늘한 시선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으그극. 이, 이거? 터, 턱이 부정교합이 생긴 것 같은데요?”

“자업자득이지.”

엘라의 으르렁거림에 스벤은 찔끔 놀라 얌전히 입을 닫고 자리에 앉았다. 트라이머리 3형제는 그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혀를 찼다.

“스벤 영감, 실망이야. 우리의 과거는 엄청 진지한 이야기라고.”

한스텐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우리 이야기는 그 현실성 때문에 더 몰입하게 될 거야. 누구나 일상에서 겪을 만한 가슴 아픈 이야기니까.”

두네돌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는 이 모습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엄청난 차별과 박해를 받아왔어. 감정적으로 엄청 피폐해질 테니까 듣고 싶지 않은 사람은 듣지 않아도 좋아.”

세브람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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