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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4

미래를 보는 투자자 043

43화.

상황이 정리되자, 고준형은 엘리에게 말을 건넸다.

“Nice to meet you. I’m Junhyung Goh. What’s your business in Korea?”(반갑습니다. 전 고준형입니다. 한국에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어렸을 때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은 덕분인지 원어민이라 해도 손색없을 만큼 발음이 유창하다.

엘리 역시 영어로 답했다.

“I have an important business to take care of.”(중요한 업무가 있어서요.)

“May I ask what it is?”(무슨 업무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I’m sorry but it’s confidential.”(비밀이라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Oh, I am sorry.”(그렇군요)

그는 품에서 지갑을 꺼내 명함을 내밀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네요. 제 명함입니다.”

엘리는 명함을 받아들었다.

“GH건설에서 일하시는군요.”

고준형은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께서 회장님으로 계십니다. GH건설은 골든게이트와도 인연이 깊은데, 알고 계신가요?”

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도네시아에서 GH건설이 맡은 SOC사업에 골든게이트가 PF를 하고 있지요.”

PF란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대규모 토목공사에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데, 이 돈을 일개 회사가 혼자서 부담할 수는 없는 노릇. 때문에 사업계획에 대한 수익성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장기 대출을 해준다.

얘기를 들어보니, GH건설이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도로건설 사업을 따냈고, 그 자금을 골든게이트에가 대주고 있는 모양이다.

엘리 역시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Nice meeting you.”(만나서 반가웠어요.)

선아는 대화를 나누는 둘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다.

고준형은 나에게도 다가와 명함을 내밀었다.

“도움 필요할 일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연락해.”

내가 도움 받을 일이 있을 리가?

어쨌거나 난 명함을 받아들었다.

“예, 선배님.”

선아가 고준형에게 말했다.

“가요, 오빠.”

“그럼 우리는 가볼게.”

고준형은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선아는 차에 올라타기 전 나에게 말했다.

“다음에 봐.”

“어. 잘 가.”

부르릉!

시동을 걸자 중후한 엔진음이 울려퍼지고, 벤틀리는 미끄러지듯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난 차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역시 벤틀리는 내 취향이 아니야. 사려면 포르쉐나 마세라티가 낫겠지?

어떤 차를 살지 진지하게 고민 좀 해봐야겠다.

“우리도 가볼게.”

이만 가려는데, 경일이가 엘리에게 물었다.

“저희 지금 밥 먹으러 가는 길인데, 같이 가실래요?”

그러자 엘리가 말했다.

“음, 실례가 안 될까요?”

녀석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사과의 의미로 밥은 제가 사겠습니다.”

“······.”

너 아까 혜미 편들지 않았니?

후배들도 말했다.

“같이 가요.”

“부탁드릴게요.”

엘리는 허락을 구하는 표정으로 날 보았다.

“가도 될까요?”

“그럼요.”

어쩌다 보니 우리는 다 같이 학식을 먹기 위해 중앙도서관 학생식당으로 향했다.

민영이는 목소리를 낮추며 나에게 말했다.

“전역한 지 얼마나 됐다고 저런 미인이랑 만나다니. 좋겠다.”

“그런 거 아니야.”

난 민영이에게 물었다.

“방학 중인데 무슨 일로 학교에 온 거야?”

“토익스터디 때문에.”

“스터디에 애들이 이렇게 많이 와? 

“미리미리 준비하는 거지. 취업 안 되서 졸업 못하는 선배들 보면 한숨 밖에 안 나온다. 나도 내년이면 이제 4학년인데. 휴학하고 어학연수라도 다녀와야 하나 생각 중이야.”

만약 전역 후에 몇 가지 일들이 없었다면, 나도 지금쯤 비슷한 고민을 하며 각종 스터디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 * *

방학 중임에도 고준형이 학교에 온 이유는 총장과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대는 현재 교내 부지에 학생 기숙사를 건립 중이고, 그 공사를 GH건설이 맡고 있다.

아버지가 GH건설사 회장인 만큼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 몇 가지 업무를 맡았고, 총장과의 만남 역시 업무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났다.

‘강진후라고 했나?’

교내에서 사귀고 헤어지는 건 흔한 일이다. 때문에 학교에서 애인의 전 남친과 마주쳤다고 해서 특별할 건 없다.

그런데 자꾸만 뭔가 좀 거슬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많다는 건 그 자체가 권력이다. 인간은 타인의 권력에 대해 부러워하거나 무서워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앞에서 위축되었다.

물론 학교 동기나 선배, 교수님들은 그를 편하게 대한다. 그러나 그건 겉으로 보기에 그럴 뿐이지, 그들은 돈이라는 권력 앞에 알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심지어는 방금 만난 총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예외가 있다면, 그와 비슷한 지위나 부를 가진 사람들뿐이다. 

그런데······.

고준형을 아까 강진후와 악수할 때를 떠올렸다.

놀랍게도 상대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그저 선배를 대하는 후배의 태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혹시 모르나 싶어서 일부러 자신의 지위를 말하고 명함까지 건네주었지만, 여전히 아무렇지 않다는 모습이었다.

고준형은 운전을 하며 물었다.

“재밌는 애네. 1학년 때 잠깐 사귀었다고 했지?”

선아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설마 질투?”

“그럴 리가. 몰랐던 것도 아닌데. 나도 연애 안 해본 것도 아니고.”

고준형이 윤선아를 처음 본 것은 학교 축제에 잠시 놀러갔을 때였다. 그때 그녀 옆에는 그가 함께 있었다.

“희한한 차를 타고왔던데.”

선아는 웃음을 지었다.

“아마 친구 차가 맞을 걸요. 걔 친구 중에 그런 애가 한 명 있어요.”

그녀는 그와 사귀던 시절 소개 받았던 친구를 떠올렸다.

“친구 이름이 좀 특이해요. 택규라고.”

“별로 특이할 건 없지 않나?”

“그런데 성이 오씨에요. 그래서 오택규.”

“뭐? 오타쿠?

“오타쿠가 아니라 오택규요.”

“하하, 웃기는 이름이네.”

고준형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골든게이트 변호사랑은 무슨 관계야? 명함 보니까 아시아지사에서 일하던데.”

선아는 방금 전에 만난 외국인을 떠올렸다. 

모델이라 해도 좋을 만큼 큰 키에 볼륨 있는 몸매. 변호사로 일한다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였다.

평범한 대학생이 골든게이트 변호사와 같이 있는 것은 확실히 이상하다.

그러나 선아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친구의 누나가 골든게이트 아시아지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고준형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래? 학교 구경시켜달라고 부탁받았나 보네.”

“그렇겠죠.”

그런 것 치고는 둘이 묘하게 가까워 보인다. 딱히 사귀는 사이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른 친분이라도 있는 걸까?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따로 있었다.

‘달라졌어.’

선이는 스스로 사람 보는 눈에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만 해도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만난 그는 뭔가 변했다.

그녀는 그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때 만남 이후로 채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았다. 

‘대체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니면······.

“백화점 가서 쇼핑이나 할까?”

고준형의 말에 선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녀는 머릿속의 생각을 떨쳐냈다.

‘그냥 착각이겠지.’

* * *

이게 얼마 만에 학식이야?

2년이라는 세월 동안 학식은 많이 발전했다. 무엇보다 크게 발전한 건 가격이다.

“천 원이나 올랐네.”

돈 많은 집 애들은 학식 가격 따위는 신경도 안 쓰겠지만, 내가 수천억을 번 것은 불과 몇 개월 사이의 일.

때문에 오른 가격이 한 눈에 들어왔다. 

민영이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그나마도 300원 더 올리겠다는 걸 학생들이 난리쳐서 간신히 막은 거야.”

고작 천 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학생 입장에서 매끼 천 원을 더 낸다는 건 만만치 않은 지출이다.

실제로 1천 원, 2천 원이 아까워서 밥 대신 라면을 먹는 애들도 있고.

난 학식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아침은 5성급 호텔 조식이었는데, 점심은 학식을 먹게 될 줄이야.

마찬가지로 학식을 받은 엘리는 내 옆에 앉았다. 그녀가 고른 메뉴는 돈까스.

“한국대에 오면 꼭 먹어보고 싶었어요.”

“왜요?”

“제시카가 돈까스가 제일 맛있다고 했거든요.”

“으음, 그건······.”

딱히 돈까스가 엄청 맛있어서 라기보다는, 다른 메뉴가 애매하기 때문이지.

식당에서도 엘리에게 관심이 쏟아졌다. 다른 테이블에서 밥 먹는 학생들은 힐끔힐끔 시선을 보냈고, 같은 자리에서 밥을 먹는 경영학과 후배들은 이것저것 질문했다.

골든게이트는 금융권 취업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모두가 들어가고 싶어 하는 꿈의 직장. 

엘리는 여러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하며 격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여자후배들과 이러저런 얘기를 하는데,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러고 있으니 마치 평범한 대학생 같다. 이게 평소 성격인가?

식사가 끝나자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다음에 보자.”

“연락할게.”

민영이와 경일이는 후배들과 함께 갔고, 우리는 계속해서 캠퍼스를 구경했다.

엘리가 말했다.

“아까 그 여자 분 예쁘던데요.”

“예? 누구요?”

혜미를 말하는 건가?

“벤틀리에 탄 여자 분이요.”

“아아, 선아요?”

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이 윤선아군요. 듣던 대로 미인이네요.”

그 말에 난 깜짝 놀랐다.

“예? 선아를 어떻게 알아요?”

“택규가 얘기해줬어요.”

“무슨 얘기를······?”

“학기 초에 만나 사귀었고, 1년이 안 되서 헤어졌고, 그 후 휴학하고 군대에 갔다고 들었어요.”

“······.”

아주 상세하게도 말했구나. 대체 왜 남의 연애사를 허락도 없이 떠벌리는 거냐?

엘리는 내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무슨 생각해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이 자식을 어떻게 죽일까 고민 중이었다.

“혹시 아직 좋아하나요?”

이건 선아에 대한 질문이겠지?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오래 전에 헤어졌는데요. 지금은 그냥 과동기일 뿐이에요.”

한때는 정말 많이 좋아했었지만, 다 옛날 일이다. 

지나간 인연에 미련을 둘 필요는 없겠지.

엘리는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 * *

우리는 학교 구경을 끝마치고, 대학가까지 한 바퀴 돌았다.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나니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돌아가려면 또 한 시간을 달려야한다.

난 엘리를 태우고 차를 출발시켰다. 도로를 달리는 내내 엘리는 창문 밖을 보았다.

“서울의 야경은 아름답네요.”

“홍콩도 아름답지 않나요?”

난 여행 프로그램에서 봤던 홍콩의 모습을 떠올렸다. 고층건물이 많이 없는 서울과는 달리 홍콩은 고층건물 천국. 밤이 되면 그 건물들이 형형색색의 빛으로 물들었다.

엘리는 웃으며 말했다.

“언제 한 번 놀러 와요. 그때는 제가 안내할게요.”

“그럴게요.”

차는 금세 영종도로 들어섰다.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주차를 하고 로비로 올라갔다.

엘리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일부터는 다시 업무네요. 오늘 데이트 즐거웠어요.”

하루 같이 다녔을 뿐이지만, 부쩍 친해진 것 같은 느낌이다.

난 그 손을 맞잡았다.

“저도요.”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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