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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46

연의 마음(4)

조연이 하은에게서 무(武)를 전수받으며 춤을 추었던 바로 그날.

둘은 드디어 한 쌍이 되었다.

한 쌍의 연인은 서약 마을을 나서며, 이전보다 조금 더 가까이 몸을 기댄 채 비행법기를 타고 날아갔다.

그날부로 둘은 언제나 함께했다.

이전에는 몸만이 함께했다면, 이제는 마음마저 서로가 완전히 이어진 셈이었다.

다시 두 사람은 몇 년을 함께하며 요수들을 퇴치하고 사랑을 더욱더 깊숙이 새겼다.

동시에 둘은 더욱더 성장했다.

하은의 무는 조연과 함께 일취월장하며, 오기조원의 극의에 이르기 위해 더더욱 날아올랐다.

조연이 창조 중인 의식공법은 하은과 정말로 연인이 된 이후로 대략적인 틀이 완전히 잡혔다.

츠츠츠츠츠-

“아름답네요….”

하은은 의식공법을 다듬는 조연을 보며 웃었다.

구체 형태의 의식이, 마치 범인의 것처럼 실이 되어 사방으로 흩날린다.

그리고 조연의 실들은 조연의 현 마음 상태에 따라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어 어찌 보면 촉수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의식 실들은 특히 조연의 얼굴에 돋아난 7개의 문신과 이어져 있어 더더욱 그와 연결된 듯 보였다.

최근 7개의 문양 중 두 개의 문양이 하나로 합쳐지고 있어서 그런지, 조연의 얼굴은 현재 촉수들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은 언뜻 기괴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의식 실들의 모습은 상당히 아름다워 그 중심에 있는 조연은 마치 의식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선인(仙人)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조연은 의식공법을 가라앉힌 후, 가면을 벗고 조연을 보고 있는 하은과 눈을 마주쳤다.

이제 하은은 더 이상 가면을 쓰고 다니지 않았다.

서로의 얼굴을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인지도 몰랐다.

“흠, 부끄럽군. 아직 미완성인 데다가… 실이 전신에서 뿜어지는 게 좀… 괴기하지 않나.”

“음….”

하은은 의식 실을 다시 구체 형태로 되돌리는 조연을 보며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인식의 차이 아닐까요?”

“인식의 차이?”

“네. 괴기하다고 보면 괴기하지만… 또 다른 시선으로 보면 정말로 아름다운걸요. 당신이 제 얼굴을 보고도 예쁘다고 해 줬던 것처럼요.”

“그건 정말로….”

“그만. 부끄러우니까 그만하시고요. 제 말은… 괴기(怪奇)하다고 인식하기에 괴기하다고 여겨지는 것뿐… 제 눈에는… 그래.”

하은은 잠시 단어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기묘(奇妙)해 보이는 것이, 상당히 신기하고 예뻐 보여요.”

“흠….”

조연은 얼굴을 붉혔다.

“단어 선택이… 이상하군. 공부를 더 하셔야겠소.”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기껏 칭찬해 드렸더니….”

“허억! 때리지 마시오, 신체 능력 차 때문에 아프다니까! 그, 그러지 말고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기분 풀리도록 맛있는 거라도 사 드리겠소….”

둘은 잠시 티격 댄 후, 근처 마을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선 하은은 조연과 손을 잡았다.

“후우….”

가면을 벗고 다니는 것이 익숙하지만은 않은 그녀였다.

곰보 자국은 특수한 역병이라 환골탈태로도 지울 수 없었고, 화상 자국은 그녀가 월비를 잃은 분노를 기억하기 위해 환골탈태 후에도 일부러 남겨 놓은 것.

그러나 복수가 끝난 지금에 와선, 그 화상 자국은 그녀로 하여금 상당한 수치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조연의 손을 잡고 마음의 안정을 찾은 채,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면서도 함께 객잔에 찾아갔다.

객잔 사람들의 시선이 둘에게 몰렸다.

곱사등이와 얼굴에 화상을 입은 흉한 여인이라니.

척 봐도 시선이 끌리는 조합이었으니까.

“흥!”

조연은 그 시선이 거슬렸는지 살의를 끌어 올렸다.

그의 의식파동이 사방으로 퍼지며, 객잔 안에 있는 범인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들은 순식간에 먹던 것을 해치우고 객잔을 나가 버렸고, 조연의 의식파동을 견딜 정도로 강한 이들 역시 그들에게서 시선을 뗐다.

“앗, 이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되는데.”

“흠… 어차피 할 말도 있으니 말이오.”

조연은 그녀를 데리고 객잔의 최상층에 올라가,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그는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으나 얼굴이 시뻘개져 우물쭈물대었다.

“음…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이오.”

조연은 얼마간 말을 더듬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결심한 듯 하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나와… 혼….”

툭-

막 중대한 사실을 말하려는 조연의 앞에, 누군가의 손이 탁자를 짚고 나타나 둘 사이를 갈랐다.

조연은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려 했다가 문득 소름돋는 사실을 알아채고 흠칫했다.

‘뭐지, 여기까지 다가올 때까지 둘 중 누구도 눈치를 못 챘다고?’

삿갓을 쓰고, 허름한 무복을 입고 있는 사내였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멍해 보이는 눈.

기분 나쁘게 짓고 있는 미소.

조연은 문득, 눈앞의 사내에게서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공포를 느꼈다.

하은과 조연이 얼어붙어 있을 때.

사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후후… 긴장 푸시지요, 두 분. 단지 두 분 이름자나 들으려 찾아왔으니 말입니다.”

조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귀하께서는, 어떤 선배님이십니까.”

“후후, 들으면 아실런지나 모르겠군요. 두 분께서 협행을 하시며 죽인 이들 중 한 명의… 그래. 아비 되는 자라 해야겠군요.”

오싹!

조연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그와 그녀가 협행을 시작하며 죽인 것은, 요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눈앞의 사내가 ‘두 사람이 죽여 온 요수 중 하나의 아버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연의 상식으로 이렇게 완벽히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요수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화형기(化形期)… 즉, 원영기 이상의 요수!’

조연은 사시나무 떨듯 눈앞의 사내 앞에서 벌벌 떨었다.

‘이렇게 끝인 건가….’

조연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을 때였다.

하은은 숨을 몰아쉬는 듯하더니, 사내에게 말했다.

“선배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는 저희로선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 말씀 올리자면, 저희가 참해 온 이들은 대부분 필요 이상으로 인간을 해하고 살육에 맛을 들인 요수들이었습니다. 어쩌다 한번 인간을 잡아먹은 요수들은 상처를 입히고 쫓아내며, 인간이 먹이가 아니란 걸 가르쳐 주었을 뿐이지요. 어떤 요수를 자제분으로 두셨는지, 저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손에 죽은 이들은 전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조연은 그런 그녀를 보며 아연한 표정이 되었다.

‘안 돼… 원영기 요수 앞에서 그런 말을… 그렇군. 나와는 달리 화형을 할 수 있는 요수가 어느 수준이란 모르는 건가….’

그러나 문득, 그는 그녀의 목덜미에 맺힌 식은땀을 보았다.

그랬다.

눈앞의 사내가 어떤 수준인지는 몰라도, 무시무시한 존재라는 건 알고 있단 소리였다.

그것을 알고도 그녀는 당당하게 대답한 것이었다.

조연은 그녀의 모습에서, 월비의 환영을 보았다.

‘아아… 벗이여. 그대는 정녕… 제자 안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조연이 절망 속에서 죽음의 압박을 느끼며 월비의 환영을 보고 있을 때였다.

“후후… 후흐하하하하!”

사내가 웃기 시작했다.

사내는 조연과 하은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오해 있으셨군요. 내 벗들이여. 저는 두 분께 책임을 물으려 온 게 아닙니다. 마침 폐품(廢品)을 처리해 주셨길래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것일 뿐입니다.”

‘폐품?’

조연과 하은의 눈이 꿈틀거렸다.

사내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두 분이 죽인 것은, 제가 비술(祕術)을 대성(大成)하던 도중 빠져나간 폐물. 괜히 조씨세가나 원씨세가 잔당들 눈에 띄면 곤란해서 제가 처리하려던 찰나에 두 분께서 수고를 덜어 주셨던 겁니다. 오히려 감사를 표해야 하지요. 그래서 감사를 위해 두 분 함자를 여쭈러 온 것이니 긴장들 푸시지요. 후후….”

“….”

“….”

사내의 말에 조연과 하은 사이에 있던 긴장감이 조금은 풀렸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소인의 이름은 조연(早緣)입니다.”

“소녀의 이름은 월하은(月下恩)입니다.”

“….”

그러나 둘의 이름을 들은 사내는 잠시 말이 없었다.

조연과 하은은 불안하게 서로의 눈치를 보며 사내를 쳐다보았다.

문득, 사내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나 두 사람의 귀엔 사내의 혼잣말이 똑똑히 들렸다.

“연(緣)… 그건가, 혹시? 그럼 옆에 붙어 있는 건 또 뭐지. 흠… 명(命)이 뒤틀려서 잡것이 붙어 있는 걸지도….”

사내의 흐리멍덩한 눈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하은과 조연은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완전히 인격체가 아닌 정물(靜物)을 보는 눈빛!

‘우리를 어찌하려는 거지….’

조연이 불안해할 때였다.

사내가 문득 빙긋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두 분 벗께서는, 혹시 정인(情人)이십니까?”

그 말에 둘의 얼굴이 붉어졌다.

“음, 맞습니다.”

“그러합니다, 선배님.”

“하하, 그렇군요. 그렇다면 혹시… 두 분께서 연을 끊고 헤어져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

그 말에 조연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건, 송구한 말씀이오나 불가능하겠습니다.”

“호오, 어째서지요?”

“제 정인을 향한 마음은,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선배님께서 아무리 겁박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흐흠….”

조연의 말에 사내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대뜸 하은의 어깨를 잡고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지금 당장 나와 하룻밤을 잔다면 당신을 제 비(妃)로 들이고, 평생을 부족함 없이 살게 해 드리지요. 당신은 천 년을 더 살 수 있을 것이며, 인세의 모든 진귀한 것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이 무슨….”

조연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그리고, 사내의 눈이 세로로 찢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당장 저를 따라온다면… 두 분을 죽이지 않겠습니다.”

쿠구구구구!

어마어마한 압박이 객잔 전체를 뒤덮었다.

조연은 사내의 압박에 깔려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괴로워했고, 하은 역시 간신히 기세를 흘려 내며 숨을 헐떡였다.

“자… 선택하시지요. 여기서 개죽음을 당하시든, 저와 따라가시어 두 분 다 행복한 결말을 맞으시든….”

그리고 다음 순간이었다.

조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짝!

하은이, 사내의 뺨을 후려친 것이었다.

하은의 전신에선 사내의 압박을 거스르기 위해 호신강기가 불타고 있었고, 그녀의 손에는 수강(手罡)이 환하게 빛나는 중이었다.

하은은 이를 짓씹으며 씹어뱉었다.

“선배님께서 저희를 핍박하신다면, 이 자리에서 죽겠습니다. 여지껏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받아들여 준 것은 여기 조 가가이고, 나는 한번 이분에게 마음을 받을 이상 다른 분의 마음을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저희를 그만 모욕하시고, 죽이려면 빨리 죽이십시오!”

하은의 말에 사내는 잠시 맞은 뺨을 어루만지더니 신기하단 눈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사내가 다시 빙긋 웃었다.

“재밌군요. 제 비술이 분명 들어갔는데, 감정이 앞서다니… 후후. 그렇다면 한 가지 제안을 드리지요. 귀하께서는 앞으로 개명(改名)할 계획이 있습니까?”

사내는 하은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사람 앞일은 모르니 말이지요.”

“흠.., 좋습니다. 그럼 일단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요.”

사내는 두 사람의 어깨에서 손을 뗀 후 뒤를 돌았다.

그리고, 뒤돌아가는 사내를 향해 하은이 입을 열었다.

“도대체 저희에게 왜 그러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제대로 비를 들이고 사랑을 받고 싶다면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십시오. 그런 태도를 견지하신다면, 앞으로도 선배님께서는 절대 제대로 된 사랑을 받을 수 없을 겁니다.”

우뚝-

하은의 말에, 사내가 문득 그 자리에 멈춰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싹!

하은과 조연은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둘의 뇌리에, 순간 두 사람의 몸이 갈가리 찢겨져 나가는 환영이 스쳤다.

살기(殺氣)가 진하게 그들을 훑으며 생겨난 잔영이었다.

“아…!”

사내는 자신의 머리를 짚으며 웃었다.

“이거 죄송하군요. 순간 제가 익힌 비술에 잠시 결함이 생겨서 살기가 조금 흘렀습니다. 그럼 두 분께서는 앞으로도 금슬이 좋기를 바라겠습니다.”

사내는 빙긋 웃으며, 하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저께서는… 앞으로는 입을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두 분의 앞날이 밝기를 바라지만, 혹시 모르잖습니까. 입을 잘못 놀린 것 때문에 저조차 상상도 못 할 끔찍한 최후를 맞을지도 모르잖습니까. 후후….”

말을 마친 사내는 웃는 얼굴로 계단을 내려갔다.

얼마 동안 둘은 그 자리에 굳어서 꼼짝할 수 없었다.

둘이 움직인 것은, 한참 후에야 둘의 코에 비릿한 냄새가 풍겨져 온 다음이었다.

조연이 객잔 밑을 내려다 보았다.

객잔에 남아 있던 이들 중 절대다수가 육편이 되어 터져 죽어 있었다.

아까 전 사내의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죽은 듯했다.

조연과 하은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지 않고 객잔을 나와, 마을을 나와 비행법기를 타고 한참을 도망쳤다.

다행히 누군가가 쫓아오진 않았다.

그러나 조연과 하은은 사내를 만났을 때 느낀 그 흉하고 불길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제가 뭔가 잘못 말했던 걸까요.”

하은은 씁쓸한 표정으로 허공에 떠서 말했다.

“왠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분 같길래 조언을 드린 것이었는데 말이에요.”

“흠… 사랑이라….”

조연은 방금 그 사내의 흐리멍덩한 눈과, 무미건조한 의념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의식공법의 틀을 잡기 시작하는 그는 아주 미약하게나마 의념의 색조를 보기 시작했기에, 사내의 의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사내의 의념은 너무나도 차갑고 묵직했으며, 소름 끼치는 불길함을 풍겼다.

조연은 여지껏 지내오며, 그만큼 고통에 절규하는 존재의 의념을 느낀 적이 없었다.

“내 생각에 그자는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미쳐 버린 존재 같았소만. 완전히 마음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소.”

두 사람은 객잔에서 죽은 범인들을 위로하는 돌탑을 쌓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객잔까지 다시 돌아가서 시체를 수습해 주기에는, 그 존재가 너무 두려웠다.

“그런가요… 뭐 감상은 다를 수 있지요. 그나저나, 객잔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결국… 조금 방해받았네요.”

“음? 어떤 말이요?”

마침내 돌탑을 전부 쌓은 후, 짧게나마 기도를 올린 하은이 조연을 보며 말했다.

“저와… 평생을 함께해 주실 수 있나요, 조 가가.”

“…아.”

조연은 그녀를 보며 자신의 한심함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생각해 보면, 그가 먼저 하려고 했던 청혼이 아니었던가.

결국 그녀가 먼저 해 버리게 됐다.

조연은 쓰게 웃으며, 하은의 양손을 잡고 말했다.

“그러겠소. 당신과 함께 백년해로, 아니, 천년해로라도 함께하며… 당신과 같이 늙어 가 한날한시에 죽겠소.”

“그렇군요… 감사드립니다.”

하은은 빙긋 웃었다.

조연도 쓴웃음을 져버리고, 완전히 환한 웃음을 지었다.

“정식 혼례는… 그곳에서 올리는 게 어떻소?”

“어떤 곳이지요?”

“우리가… 처음 통성명을 했던 곳.”

조연의 말에 하은은 눈을 반짝였다.

“아, 그곳이군요!”

“그래. 나중에, 봄이 와서 꽃이 만개했을 때… 그때에 길일을 잡아 그 모과나무 앞에서 우리 식을 올립시다.”

조연의 말에 하은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지금이 가을이니까….”

“반년 후면 모과꽃이 만개하겠군. 그때까지 조금 기다렸다가, 우리 함께 조촐할지언정 길일을 잡아 식을 올리는 거요.”

“좋아요. 그날 그때에, 저희 진정으로 하나가 되어요.”

하은의 말에, 조연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츠츠츠츳!

그의 얼굴에 일곱 색의 문양이 떠올랐다.

그리고, 반쯤 섞여 들어갔던 두 문양이 완전히 하나가 되며, 마침내 조연의 얼굴에는 여섯 개의 문양만이 남게 되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길일을 정하며, 혼수품을 정하기 위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조연은 범인들의 대장간을 빌려 그녀에게 가장 걸맞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재능을 총동원했고, 하은은 더더욱 자신의 무예를 갈고닦았다.

다시 한번 환골탈태를 하기 위해서였다.

첫 환골탈태를 할 때는 월비의 복수를 기억하기 위해 화상을 남겨 두었다.

그러나 이제, 월비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선에서 갚았다.

그러니 이제 그녀에게 화상 자국은 필요 없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조연과 하나가 되도록, 그녀는 다시 한번 환골탈태를 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혼인을 약속한 지 한 달 후.

조연은, 조씨세가에 잡혀가 버렸다.

* * *

“예…?”

조연은 아연한 표정으로 가문의 결단기 장로를 바라보았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도 못 알아듣는 게냐, 덜떨어진 녀석. 가주님께서는 대계(大計)를 세우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금신천뢰문, 흑색귀골곡, 대초원 부족연맹! 동방이야 너무 멀기 때문에 뭘 시도하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인근의 모든 세력들을 끌어모아, 대륙 전체를 관통하는 제국이 만들어질 것이란 말이다.”

“예, 예. 그건 이해했습니다. 하오나….”

“하오나는 무슨 하오나! 너는 이제 곧 흑색귀골곡의 후기지수 중 한 명과 정략결혼을 하게 될 것이라 하지 않았더냐. 그러니 이제 방랑은 그만두고 혼례 준비나 하거라.”

“자,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저는… 혼인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몸입니다. 장로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는 꼽추에다가 외모가 흉하고….”

“하지만 기문법재지! 그것도 원래는 칠문법재였지만 이번에 확인해 본바 육문법재로 진화했더군. 기문법재는 애당초 조씨세가의 혈통이 진해야만 타고날 수 있는 거다. 거기다가 법재가 상위단계로 진화하려면 혈통 중에서도 더더욱 순수한 재능을 타고났다는 의미일 터. 네 혈통은 가문 직계에 가까우니, 네 외형의 추잡함 따윈 문제 되지 않는다!”

“하, 하오나….”

조연은 침을 삼켰다.

가문 직계?

가문이 그에게 직계 대우 같은 걸 한 번이라도 해 준 적이 있던가?

그런 걸 받았더라면 그는 애당초 방랑 같은 걸 하고 있지 않았으리라.

조연은 논리나 이득이 아닌 감성에 호소해 보기로 했다.

“저는 이미 다른 이와 혼약을 약조했습니다.”

“음, 누구지? 혹시 대형 선파의 사람인가?”

“그건 아닙니다. 비록 무림인에 불과하지만 뛰어난 재능….”

콰앙!

“커헉!”

조연은 자신을 짓누르는 어마어마한 압박에 피를 토했다.

결단기 장로는 격노한 표정으로 조연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추잡한 것. 짐승과 혼약을 약조해? 가문 방계도 아니고, 기문법재를 각성한 가문의 얼굴이 그런 짐승과! 네 이놈, 입을 잘 단속해라. 만약 네가 짐승과 소꿉놀이를 한 게 알려지면 조씨세가는 세간의 비웃음거리가 될 테니! 잘 들어라 네놈. 범인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다! 짐승 내지는 가축이란 말이다! 금신천뢰문식 표현을 빌리자면… [비인간]인 셈이지! 네 추잡한 외모 때문에 안 그래도 흑색귀골곡 측에서 조금 불만을 가지고 있다만, 네가 수간(獸姦) 같은 역겨운 짓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 네 정략혼은 파토가 날 거다!”

결단기 장로는 격노를 멈추지 않으며 계속 소리쳤다.

장로의 앞에 모인, 이번에 흑색귀골곡과 정략혼을 하게 될 축기기 후기지수들은 하나같이 조연을 비웃었다.

“짐승과 혼약?”

“미쳤군. 역겨운 외모처럼 정욕도 비틀려 있었던 거야.”

“정말 더러워서 말이 안 나오는군. 큭큭….”

조연은 모두의 비웃음을 받으면서 이를 악물었다.

“장로님의 말대로… 저는 꼽추에다가 추잡한 외모를 지녔습니다. 하지만….”

그는 장로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는… 그녀는 짐승이 아닙니다! 그녀 역시 엄연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조연의 말에 장로가 대경하며 말했다.

“미친 것. 짐승을 사람이라 하다니! 짐승과 교접한 것도 모자라 짐승이 사람처럼 보이더냐! 너 이 미친놈, 지금 이번 정략혼에 얼마나 큰 이득이 걸려 있는지 아느냐! 비록 네 상대도 남성 편력 문제가 많긴 하지만 나름 흑색귀골곡의 저주일맥 장로 중 한 명의 여식이란 말이다!”

“그리 중요한 정략혼이라면 부디 저 같은 꼽추가 아니라 다른 젊고 잘생긴 후기지수를 내세워 주십시오. 저는 저주일맥 장로의 여식 같은 과분한 분과 혼인하기에는 많이 모자란 몸입니다.”

“이놈! 그쪽에서 얼마나 기문법재의 혈통을 원하는지 알기나 하느냐! 기문법재라면 무조건 이번 정략혼에 참여해야 한다! 지금껏 네가 누려 온 가문의 은혜에 불응할 셈이느냐! 그깟 짐승과의 비틀린 애정 때문에? 가문을 웃음거리로 만들지 말아라. 네가 지금껏 자라 오고 수선의 길을 걸어오며 얼마나 가문의 은혜를 많이 얻었는지 기억해라!”

장로의 서슬퍼런 외침에 조연은 이를 짓씹었다.

가문의 은혜?

무얼 받았더라?

조연은 어릴 적부터 그를 두들겼던 아버지, 본가로 가서는 항상 그를 괴롭혔던 또래 가원들과 눈에 띄면 역겹다고 걷어찼던 어른들을 떠올렸다.

그가 가문에서 지급받은 영석과 단약은 항상 또래들에게 빼앗겼고, 본래라면 축기기에 오르기 위해 지급받는 축기단 세 알조차 친척에게 빼앗겨, 시장에서 찌꺼기 단약인 축허단을 사서 먹고서야 축기기에 오른 게 조연이었다.

거기다가 그의 친한 벗을 죽인 것도 조씨세가가 아니던가?

조연은 안 그래도 혐오스러웠던 가문이었지만, 그런 가문에게서 은혜를 운운하는 말과 하은을 모욕하는 말을 듣자 눈이 뒤집어졌다.

“그녀를 모욕하지 마십시오. 누가 짐승이라는 겁니까! 그녀는 의를 아는 무인이고, 인의를 품은 사람입니다. 진짜 짐승은 오히려 같은 가문 사람이라도 방계는 실험체 취급이나 하는….”

“그만!”

콰앙!

조연은 결단기 장로의 노호성에 다시금 피를 흘리며 말을 멈췄다.

“단단히 미쳤군. 완전히 짐승에 홀렸어. 안 되겠다! 여봐라, 이 미치광이를 독방에 가두고 잘 감시해라! 정략혼이 치러질 때까지 놈을 가두고 절대 풀어주지 말아라!”

장로는 조연을 노려보며 말했다.

“좋든 싫든 가문을 위해서 희생해라! 너는 조씨의 성과 혈통을 이어받았고, 위대한 기문법재를 타고 태어나 가문의 지원을 받고 축기기까지 올랐다! 수혜를 누려 왔으면 은혜를 갚을 줄도 알아야지! 정략혼은 올 겨울에 치러질 것이야. 그때까지 독방에서 면벽하며 마음을 정리해 두고나 있어라!”

“자, 잠깐!”

조연이 저항했으나, 가문의 축기기 수사들이 몰려들어 그를 제압하고 끌고갔다.

“기다리십시오, 장로 대인! 저는 정략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녀와 약속을….”

그러나 그의 의지는 묵살되었고, 그는 독방에 갇혀 버렸다.

조연은 아연한 표정으로 독방에 갇혀서 밖을 바라보았다.

독방에는 빈틈없는 결계가 뒤덮혀, 탈출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조연을 이를 짓씹었다.

‘안 돼….’

이럴 순 없었다.

자신은 그녀와 이어져야 했다.

“안 돼!”

콰앙!

그는 눈을 붉히며 벽을 두들겼다.

콰르릉!

그러나 그가 날뛰자 결계가 작동하며, 그의 의식에 충격을 주는 법술이 발동되었다.

“크으으윽!”

조연은 의식에 충격을 받으며 눈을 부릅떴다.

‘이, 이건….’

결계에 의식이 부딪히자 정신이 이상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방의 결계는 조연을 세뇌시키기 위한 결계였다.

그의 몸과 마음을 조씨세가에 바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뇌결계!

뿌드드득….

조연은 확신했다.

이곳에 겨울까지 갇히게 된다면, 결국 완전히 미쳐 버려, 그녀를 잊고 가문의 명령에만 따르는 꼭두각시가 될 터였다.

‘나가야 해, 혼인 날짜가 다가오기 전까지!’

그는 결계를 파악하며, 자신이 개발하던 의식공법을 더더욱 진화시키기 시작했다.

절대 세뇌당하지 않도록.

조연이라는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 남을 수 있도록.

그리고… 이 방의 결계를 풀 수 있도록.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마침내 겨울이 다가왔고, 조연은 독방에 찾아온 장로를 맞이했다.

“이제 조금 제정신을 차렸느냐.”

“…예 어르신. 이전에는 제가 잠시 미쳐 추잡한 짓을 했던 것 같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말씀에 제대로 따르겠습니다.”

조연의 눈은 어딘지 흐리멍덩한 듯해 보였다.

그의 모습에 장르는 흡족한 듯 웃었다.

“아주 좋군. 해룡족에서 내준 훈육 결계가 잘 만들어졌어. 며칠 후가 혼례 날짜니 준비하고 있거라. 아예 미리 옷을 입혀놓는 게 좋겠군. 여봐라!”

장로의 명에 조씨세가의 시비들이 들어와 조연의 옷을 갈아입혔다.

조연에겐 조씨세가의 전통 혼례복이 입혀졌다.

연분홍빛의 깨끗한 비단옷.

장로는 그 모습을 보며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꼽추 놈이라도 이리 입으니 그럭저럭 볼 만하군. 하하! 자 그럼 너는 여기서 며칠만 더 면벽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어라. 이제 곧 흑색귀골곡 저주일맥과 우리가 사돈이 될 테니….”

장로는 만족스럽게 말한 후 독방을 나갔다.

그러나 장로가 나간 후, 조연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의식을 뻗었다.

츠츠츠츠츳!

의식의 실들이 방 안에 가득찼다.

조연은 의식의 실에 정신을 집중하며, 바닥에 손을 가져다 댔다.

우우웅!

그의 의식 실이 독방의 천장, 벽, 바닥에 붙으며 기이한 회로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그래도 결계 정도는 해제할 수 있다.’

우우웅!

조연의 회로가 결계를 장악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번쩍!

조연은 결계를 완전히 장악하고, 아무런 티도 나지 않게 결계의 일부를 해체했다.

“됐다!”

그는 희열이 서린 미소를 지으며, 마침내 바깥으로 나섰다.

‘장로가 다녀가서 그런지 경계가 약해졌군.’

그는 주변을 둘러본 후,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아챈 후 능숙하게 조씨세가를 빠져나갔다.

조씨세가의 진법결계가 번번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으나, 조연은 특유의 의식공법과 회로를 통해 결계를 뚫고 나갔다.

시간은 늦은 밤시간.

그는 어둠을 틈타 마침내 조씨세가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났다.

“됐다, 됐어!”

조연은 조씨세가의 영역을 벗어난 후 빠르게 비행법기를 타고 저 멀리, 성제국으로 향했다.

‘이제 곧 정략혼의 기일이 다가올 터. 그 전에… 그녀와 혼인해야 해.’

조연도 알고 있었다.

그와 그녀는 결국 다시 조씨세가에 잡혀갈 터였다.

아마 이 정략혼도 피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조연은 그럴지언정 최소한 그녀와는 처음으로 혼례를 올리고 싶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흑색귀골곡의 여수사 같은 사람과 첫 혼례를 올리고, 나중에 그녀와 두 번째 혼례를 올린다?

‘절대로 그럴 순 없다.’

저승에 간 월비를 보아서라도, 조연은 무조건 하은과 첫 혼례를 올리겠노라 다짐하며 빠르게 날아갔다.

파아아앗!

어두운 밤하늘을 날아, 마침내 조연은 어느 숲속 한 구석에 도착했다.

“아…!”

그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눈시울을 붉혔다.

한겨울.

나뭇잎은 모조리 다 떨어진 모과나무의 옆.

그곳에는, 하은이 오두막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이 모과나무 앞에서 혼례를 올리자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조연은 오두막집에 들어섰다.

“누구… 아!”

하은이 그를 보며 놀란 얼굴이 되었다.

잠시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침묵했다.

말은 없었지만 뜻은 전해졌다.

조연과 월하은은 서로에게 달려가 서로를 껴안았다.

“보고 싶었소.”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한참동안 그 둘은 그 말 직후,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조연이 입을 열었다.

“가문에서, 나를 정략결혼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오.”

그는 하은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그걸 피할 순 없소. 조씨세가는 대륙제일세가니… 도망쳐도 결국 쫓아올 거요.”

“그런….”

“하지만… 우리가 부부가 될 순 있소.”

조연은 타오르는 눈빛으로 하은과 눈을 마주쳤다.

“오늘, 혼례를 올립시다. 비록 나는 다시 잡혀가 정략혼을 당하게 되겠지만, 당신은 내 첫 번째 부인이 될 것이오. 아무리 정략혼을 성대하게 치를지언정 내 상대는 두 번째 부인이 될 터.”

두 사람은 손을 꼭 거머쥐었다.

“결국 정략혼을 하는 게 내 운명일지라도, 나는 그 운명 속에서 당신을 내 처음으로 여기겠소. 그러니… 준비도 잘 안되었고, 식도 빈약하게밖에 못 올리겠으나….”

말을 하면서, 조연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가 생각한 것처럼 되지 않았다.

봄날에 봄꽃을 보며 길일을 정해 혼례를 하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 이렇게 급작스럽게 한겨울에 식을 올려야 한다는 상황 자체가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그녀와 연을 맺고 싶었다.

“나와 혼인해 주시겠소?”

하은 역시 조연의 진심을 들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네. 저는 이미 얼마든지, 언제라도 당신과 함께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조연의 손을 잡고, 그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었다.

그녀의 화상이 있던 자리.

그녀는 결국 그 몇 개월간, 다시 한번 환골탈태를 하는 데에 성공하여 화상 자국을 지운 것이었다.

조연과 하은은 오두막 바깥으로 나갔다.

오두막 바깥.

두 사람이 처음으로 통성명을 했던, 두 사람의 목숨을 구해 준 모과나무 앞.

둘은 모과나무 앞에 냉수를 떠 놓았다.

하은은 씁쓸한 눈으로 모과나무를 바라보았다.

“봄꽃이 만개할 때 이어지고 싶었는데, 운명이 허락하지 않는군요.”

“….”

하은의 말에 조연은 가지밖에 안 남은 앙상한 모과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입고 온 옷을 벗었다.

조씨세가에서 흑색귀골곡 여수사와 정략혼을 할 때에 입으라고 준 조씨세가의 전통 예복.

그는 연분홍빛 비단옷을 잠시 바라보더니, 망설임 없이 비단옷을 찢었다.

부욱, 북!

그는 빠른 손놀림으로 비단옷을 찢고 잘랐다.

얼마 후, 조연의 비단옷은 수십 가닥의 연분홍빛 끈이 되어 있었다.

조연은 빠르게 모과나무로 올라가, 직접 나뭇가지 하나하나에 자신의 연분홍빛 끈을 걸었다.

꽃이 만개하진 않았으나 수십 가닥의 연분홍빛 끈이 걸린 모과나무는 퍽 아름다웠다.

조연은 나무에서 내려와 빙긋 웃었다.

“이 정도밖에 못 해 주어 미안하오. 하지만 그래도… 이것이 내 나름의 봄이오.”

그는 겨울바람에 펄럭이는 수많은 연분홍빛 끈을 보며 쓰게 웃었다.

“…괴상하군 …너무 괴기해서 미안하오.”

그리고 하은은 고개를 저었다.

“…말했죠, 괴기한 게 아니라… 기묘한 거라고. …아름답네요.”

하은은 그 나무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기묘하고도 아름다워요. 당신처럼.”

두 사람은 냉수 한 잔을 앞에 두고, 연분홍빛 끈이 잔뜩 걸린 모과나무 앞에서 식을 치렀다.

“천지신명께 고하나이다.”

밤이 지나고 저 멀리서 새벽녘이 피어나고 있었다.

달이 지고 해가 뜨는 시간.

조연과 하은은 해와 달 앞에서 맹세했다.

“태초부터 축복을 주관하셨던 여덟 빛 앞에 저희는 맹세합니다. 모든 산신과 지신, 천상과 저승의 신들 앞에 맹세합니다. 저희는 앞으로 천지신명의 주관 아래에 맺어져 하나의 인연이 될 것입니다. 저희는 백년해로, 천년해로하며 함께 늙어 갈 것입니다.”

“그이가 백발이 성성하면 저 역시 백발이 성성할 것이고, 그이가 미쳐 진창을 구르면 저 역시 함께 진창을 구르겠습니다. 그이가 죄를 범해 지옥 밑바닥에 떨어지면 저 역시 함께 밑바닥으로 향하겠습니다. 극락도 지옥도 영원히 함께하리니.”

“저희 비익조가 되어 함께 하늘 날고, 연리지가 되어 함께 땅에 뿌리 내리도록 천신과 산신과 뱀신을 비롯한 천지천상 모든 신들께서 축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혼례식의 절차를 약식으로 밟은 두 사람은 새벽빛을 받은 냉수를 반반 나눠서 마셨다.

그런 후 둘은 서로의 손을 잡았다.

휘이이이이-

바람이 불어와 둘을 축복하듯 둘러싸는 듯했다.

그렇게, 월하은과 조연은 부부가 되었다.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回歸修仙傳, 회귀수선전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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