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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47

EP.446 17. 인형의 집 (22)

록센은 한 손으로 목의 상처를 틀어막은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짚고 몸을 끌었다. 피가 쏟아지는 속도로 봤을 때, 그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레이나가 그의 목을 벤 순간 최면 상태에서 벗어나서는 쓰러진 원더스타인을 살피러 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방금까지 ‘아버지’를 향해 범상치 않은 증오를 쏟아낸 주제에 금방 ‘아빠’를 찾아댔다.

아버지와 아빠. 혹시 그녀는 두 대상을 구분해서 보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자신이 한 실수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감이 잡히는 듯했지만, 지금 와서 그런 것을 고찰할 여유는 없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었다. 그가 향하는 곳에는 책 한 권이 떨어져 있었다. 그가 클레벤타인에게 사금 2말을 바치고 얻은 마도서였다.

“하아, 하아, 아, 안 돼…….”

라테나는 가쁜 숨을 내쉬며 그가 마도서를 향해 손을 뻗는 것을 바라봤다. 현재 그녀의 몸 상태는 넘치기 전의 물컵과 비슷했다. 딱 한 마디. 그가 마도서에 손을 댄 채 한 마디의 주문만 외우면 마신이 이 세계로 넘어올 것이다.

“저 녀석이…… 하아, 저기에 손을 대면…… 윽, 레이나!”

라테나는 폭발 직전의 힘을 최대한 억누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현재 레이나는 검에 찔린 채 미동도 없는 원더스타인의 상태를 보고 공황 상태에 빠져서 미처 그녀의 목소리에 반응하지 못했다.

“아빠? 정신 차려요? 아빠? 어떡해. 내, 내가 아빠를…….”

그러는 사이 록센의 손은 마도서의 모서리에 움켜쥐는 데 성공했다.

“안 돼!”

“흐흐, 늦었다! 잘 가라, 까마귀 마녀! ᚲᛖᚢᛖᚾᛏᛁᚾᛖ ᛊᚢᛒᛞᛟᛚᚨ ᛊᛏᚱᚨᛏᛖᚷᛁᛊᛏ!”

그의 입에서 인간의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괴성이 터져 나왔다. 라테나를 결박한 쇠사슬이 박혀 있는 돌기둥이 부르르 떨었다. 그곳에 적혀 있던 붉은 문자들이 동시에 번쩍였다. 음산하기 짝이 없는 읊조림이 공동을 메아리쳤다. 수천, 수만 명의 사람이 같은 주문을 동시에 외는 것 같았다.

“아아아악!”

라테나는 영혼이 말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받았다. 일개 생물로서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지성체가 그녀의 머릿속을 한 번 헤집고 지나갔다. 마신에게는 고작 한 번의 흘끗거림이었을 뿐인데, 그녀의 정신은 하마터면 붕괴할 뻔했다.

그녀는 어릴 때 창조주의 실험실에서 ‘실패작’들이 어떠한 꼴을 하고 있는지 봤었다. 그녀 이전에도 클레벤타인의 정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공 사도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개 마신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폭주해 화신으로 변했었다.

인간에 가까운 그들 남매와 달리 실패작들은 대부분 제대로 된 지성도 갖추지 못한 괴물들이었다. 자신도 그렇게 변해버리는 것일까? 인격도, 추억도 모두 마신에게 잠식당해 가족도 못 알아보는 존재가 되는 것일까?

“으으윽.”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마신의 정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그녀가 마신의 의지에 거스르는 건 불가능했다. 밀려오는 힘의 파도는 아무런 저항 없이 그대로 그녀의 몸을 집어삼켰다.

라테나는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순간, 놀랍게도 고통은 뚝 하고 그치고 말았다. 쏟아지던 마력도 썰물처럼 밀려온 그대로 빠져나가 버렸다.

“뭐, 뭐지?”

그녀는 감았던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그녀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끄윽, 끄으으윽, 크아악!”

방금까지 다 죽어가던 록센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마구 비틀어댔다. 라테나는 그의 몸에서 부리와 깃털과 발톱이 마구 증식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익숙한 광경이었다. 창조주의 연구소에 갇혀 있던 실패작들의 모습이 딱 저랬었다.

“이건…….”

“아, 아냐……. 이럴 리 없어……. 마신께서는 분명히…….”

록센은 어째서 자신을 대가로 화신이 소환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사용한 마도서는 클레벤타인이 직접 하사한 것이었고, 그는 거기에 나온 지침 대로 빠짐없이 주문을 완성했다. 잘못될 리가 없었다.

그때, 수천 개의 녹슨 금관악기가 동시에 연주하는 듯한 거친 소음이 그의 귀를 때렸다. 그것은 어떤 의지를 담은 목소리였으나 인간의 어떤 언어로도 해석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신의 육성이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 중 오직 라테나와 록센만이 그것에 담긴 뜻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것은 두 사람이 그의 신도였기 때문이다.

-속은 놈이 바보지.

카랑카랑한 노인의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지혜와 전략, 사기와 속임수를 즐기는 클레벤타인은 그렇게 자신에게 속아 넘어간 록센을 비웃었다. 그는 그제야 마신이 ‘가짜 사도’에 대한 경멸과 분노를 내보이며 자신을 꾀어냈던 것은 모두 연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면, 세뇌, 암시. 클레벤타인은 그것의 종주답게 간단한 몇 마디 말로 록센을 조종했다. 추종자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말로써 사용하는 것은 그의 특기였다.

“비, 빌어먹을…….”

록센은 절망적인 눈으로 자신의 혼이 수천 개의 부리에 마구 쪼이며 뜯겨 나가는 것을 느꼈다.

대부분 마신의 신도들은 죽은 뒤에 그들이 모시는 신의 영역에서 사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러나 클레벤타인의 영역에는 그의 신도가 거의 살지 않았다.

클레벤타인은 죽은 신도들의 영혼을 자신의 냄새가 배지 않도록 깔끔하게 발라먹은 다음, 거기에 새로운 인격을 심은 후, 다른 마신의 영역에 ‘간첩’으로 들여보냈다. 마치 상대 마신의 신도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통해 정보를 얻거나 내분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득을 취했다. 전략가와 사기꾼의 신다운 수법이었다.

흔히 동물로 표현되고는 하는 마신의 표상은 인간이 그들의 아주 일부를 관찰한 값에 지나지 않았다. 클레벤타인은 지혜로운 까마귀인 동시에 ‘탁란’을 일삼는 교활한 뻐꾸기였다. 괜히 콤프라치코스에 그의 신도들이 많은 것이 아니었다.

“크아아아아!”

록센, 아니, 이제 록센의 찌꺼기만 남아 있는 그의 몸뚱어리가 마구 뒤틀리며 변형을 시작했다. 근처에 있는 클레벤타인의 신도들로부터 끌어모은 마력이 그의 육신이 화신을 담을 수 있도록 변용시켰다.

라테나는 자신을 구속하던 쇠사슬에 담긴 마력이 모두 빠져나간 것을 확인했다. 그녀는 그것들을 끊어내고는 근처에 있는 클라라를 안은 뒤에 날개를 펼쳤다.

“뭘 하고 있어! 여기다 묶어!”

라테나는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굳어 있는 레이나에게 쇠사슬을 던졌다. 그녀는 그것을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상대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재빨리 그것으로 원더스타인의 몸을 단단하게 감쌌다.

“꽉 잡아! 전속력으로 이곳에서 빠져나간다!”

라테나는 지하통로로 향하는 대신 공동의 천장에 있는 구멍을 향해 날았다. 그곳을 통하면 바로 정원 구석에 있는 분수대 아래 숨겨진 공간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들이 그곳으로 빠져나감과 동시에 거대한 폭음이 공동을 한 차례 들썩이더니 거친 고함이 터져 나왔다.

“프랑크 원더스타인!”

***

엘라는 단원들을 이끌고 아동 박람회가 열리는 별관을 습격해 상품으로 나온 아이들을 구출했다. 그들은 최면과 세뇌의 영향 때문인지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일부는 그들이 콤프라치코스의 마도사들을 쓰러트리는 것을 보고 주인님을 해치려 한다며 덤비기도 했다.

박람회장을 지키던 마도사들은 처음에는 침입자들로부터 상품을 지키려 들다가, 곧 그들이 아이들에게 무르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역으로 상품을 인질로 삼는 발상을 떠올렸다. 그들이 명령을 내리자 아이들은 각자 근처에 있는 날카로운 물건으로 스스로 목을 겨눴다.

“애들이 죽는 꼴을 보고 싶나!”

“무기 버려! 이 자식들아!”

그들의 요구에 단원들은 어쩔 수 없이 들고 있던 총과 칼을 바닥에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엘라는 자신이 정의감에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닌가 싶어 발을 동동 구르는데, 갑자기 마도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원들에게 기회였다. 그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마도사들을 때려눕혔다. 그와 동시에 자신들을 적대시하던 아이들도 그눈동자에 생기가 돌더니 하나둘 세뇌가 풀리기 시작했다.

“내가 황태자 니콜라이다, 이놈들아!”

그렇게 그들은 박람회장에 있던 모든 아이를 구출할 수 있었다. 여전히 최면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신을 황태자라고 믿는 남자애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제정신을 차렸다.

“좋았어. 조금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성공했네.”

“수백 명이나 되는 애들을 방치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들은 아이들에게 일단 싸움이 끝날 때까지 별관 안에 있으라고 말한 뒤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이제 완전한 저녁이었지만, 인형의 집 주변은 대낮처럼 훤했다. 사방의 밀밭에서 타오르는 불 때문이었다.

“이거 우리도 여기 갇혀서 타 죽는 건 아니겠지?”

“괜찮아. 저택 주변은 공터니까. 건물까지 불이 번지는 일은 없을 거야.”

그들은 오랜만에 야영장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은 기분에 빠졌다. 그러나 감상에 젖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그들 뒤편에 있는 분수대 조형이 쾅 하고 들썩이더니 그 아래에서 사람으로 보이는 형체가 물길을 헤치고 솟은 것이다.

“으악, 뭐, 뭐야?”

“적이냐?”

“아니, 잠깐, 저거, 레이나 아냐?”

“클라라 씨하고 단장님도 있군요!”

단원들은 라테나가 끌고 온 세 사람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그들이 원더스타인의 일행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순순히 그들에게 세 사람을 넘겨주었다.

지상으로 올라온 라테나는 주변의 풍경을 보고 실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15년의 세월을 들여 가꿔온 이곳이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말았다. 사방에 쓰러져 있는 조직원들은 대부분 록센 파벌의 사람들이었으나 한때 그녀의 부하들이기도 했다. 그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누,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단장과 단원들을 데려와 주셔서 감사해요!”

엘라가 그녀에게 다가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라테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원망과 질투의 감정이 솟구쳤다.

그녀만 없었다면 자신들 남매는 오순도순하게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녀 때문에 원더스타인은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걸어야 했다. 라테나가 찰리를 이용해 그녀를 괴롭힐 계획을 짠 것도 모두 그녀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그녀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엘라는 처음 보는 상대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록 상대가 그녀의 일행을 구해주었다지만, 그것 때문에 눈치를 볼 그녀도 아니었다. 그녀는 당당히 고개를 치켜들고 라테나의 시선을 맞받아쳤다.

“단장님!”

“아빠!”

원더스타인이 눈을 뜬 것도 딱 그때였다. 레이나는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꽉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검으로 찌른 것은 다시는 겪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경험이었다.

“괜찮아요. 잠시 기절했을 뿐입니다.”

원더스타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으며 그녀를 다독여 주었다. 라테나는 록센이 자신하던 주술이 그에게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한 것을 보고 의아해했지만, 곧 그 주술 역시 클레벤타이인이 준 마도서에서 나온 것이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교활한 늙은이가 무슨 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더스타인을 도와준 것이다. 물론 그녀는 그것이 그의 개인적인 호의 때문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마 그가 그리는 큰 그림에 필요한 수일 것이다.

그때, 그녀는 지하에서 무언가 쿵 하고 울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땅거죽이 한 차례 들썩이는 것을 경험했다.

“뭐야, 뭐야?”

“지진인가?”

“온다!”

라테나는 지하에서 꿈틀대는 존재가 지상을 향해 급속도로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소리쳤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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