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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48

EP.447 17. 인형의 집 (23)

니카는 밖으로 나갈 때까지 옆에서 지켜주겠다는 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비밀통로를 이용하는 것은 현재 방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 때문에 불가능했다.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이런 망측한 꼴로 부하들 앞에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호위를 받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임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찰리의 동행을 허락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가 제안을 거절한다면 그녀를 강제로라도 품에 안고 끌고 갈 것처럼 굴었기 때문이다.

“무력한 소녀를 전장에 두고 갈 수는 없는 법!”

“아니, 잠깐! 그렇다면 나보다 여기 루리를 안고 가겠다고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녀의 말에 찰리는 짐짓 화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나를 어린애 몸이나 만지작대는 변태로 보는 건가!”

“아, 미안. 난 그런 의도가…… 아니, 잠깐! 그럼 결국 내 몸을 만지작대겠다는 거잖아!”

니카는 그를 향해 버럭 소리를 쳤다가 방안에서 터져 나오는 금속성과 고함에 급히 언성을 낮췄다. 혹시나 주군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부하들이 튀어나오면 곤란해지는 건 그녀였다.

“좋아.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 그런데 나가기 전에 혹시…… 옷 좀 갈아입을 곳 없을까?”

“하긴 그 모습은 좀 그렇군. 근처에 고용인 휴게실이 있다. 간단히 씻을 수도 있지. 그곳으로 가자.”

찰리는 두 사람을 같은 층의 어느 방으로 데려갔다. 니카는 그곳에 걸려 있는 옷 중에 가장 펑퍼짐한 것을 골랐다. 이 정도라면 혹시나 부하들과 마주친다고 해도 자신이 여자로 변한 줄 모를 것이고, 중간에 남자로 돌아간다고 해도 단원들이 이상하게 여길 일도 없을 것이다.

“야, 뭘 보고 있어! 나가!”

니카는 구석에 서서 자신이 옷을 벗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찰리를 향해 바구니를 던졌다. 그는 그것을 한 손으로 받아내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걱정할 것 없다. 네 알몸이라면 이미 다 봤으니까.”

“뭐, 뭐라고?”

“지하 감옥에서 은신술로 숨어 있을 때, 클라라가 널 벗겨서 몸 검사하는 것을 지켜봤다. 너는 나이치고 상당히…….”

“이 미친 변태가!”

니카는 그의 안면에 정통으로 주먹을 꽂아 넣었다. 그는 코피를 흘리면서도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상대가 왜 이렇게 자신에게 따갑게 나오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아마 자신을 좋아한다는 속마음을 숨기려고 일부러 까칠하게 나가는 것일 것이다.

“나가서 기다리지.”

“당연한 소리를!”

니카는 자신에게 손 인사를 하는 찰리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올려주고는 그가 나가자마자 휴게실의 문을 잠가버렸다. 그리고는 루엘로가 기다리고 있는 샤워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아저씨 나갔어?”

“그래. 쫓아냈어. 이제 씻자.”

“으음, 근데 언니,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거기는 갑자기 왜 그런 거야? 다친 거야?”

루엘로는 그녀가 피를 흘린 곳을 유심히 쳐다보며 질문했다. 니카는 화들짝 놀라 수건으로 그곳을 가리며 대강 얼버무렸다. 평생을 남자로 살아온 그녀에게 있어서 이것은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같은 이유에서 그녀는 누군가에게 설명할 만큼 이것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세면대 앞에 선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노련한 정치가이자 협상가인 황태자 니콜라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아이 한 명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 나약한 모습을 보고 누가 그녀를 제국의 황태자라고 생각할까.

샤워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뜨거운 물세례를 받고 있으니 갑자기 절망과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녀가 현재 처한 상황은 최악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정적에게 자신이 여자로 변한 모습을 들키고 말았다. 거기다 상대는 그것에 대한 유력한 증거까지 손에 넣었다고 했다. 자신에게 쏟아질 정치적 공격을 생각하니 벌써 정신이 혼미해졌다.

‘도망치고 싶다.’

그녀는 이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제국의 미래건 뭐건 다 내던지고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었다. 그냥 지금처럼. 서커스단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니카는 자신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지난 1년간 자신이 진행했던 개혁의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떠올렸다.

양심적이고 깨끗한 학자가 그녀의 진영에 불리한 연구를 발표했다는 이유로 정치꾼이라는 비난을 받다가 자살했다. 가족과 동료, 친구들에게 평판이 좋던 유능한 장교가 사소한 직권남용 행위를 트집잡혀 직위를 박탈당하고 말단 병사로 제대했다. 올곧고 성실한 상인이 반대 진영에 물자를 공급했다는 이유로 온갖 고초를 겪고 재산을 몰수당했다.

그녀는 그들이 부당한 처지에 내몰리는 것을 보면서도 방치하거나 혹은 그 상황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대의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자신을 다독이며 그들을 못 본 척했다. 정치인으로서 큰일을 위해 다소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자신이 고작 여자라고 폭로되는 게 수치스럽다는 이유로 이 자리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그 ‘증거’라는 것이 문제가 되면 연관된 사람들을 모두 죽이면 그만이었다.

그녀는 어설픈 자기 연민을 마음속 깊숙이 쑤셔 넣었다. 그리고 냉혹하게 자신의 마음을 벼렸다. 궁지에 몰리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해졌다.

“어, 삼손이가 돌아왔어! 삼손아!”

샤워를 마치고 나온 루엘로는 본인의 머리카락이 다시 예전처럼 꿈틀대는 것을 보고 반가운 표정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삼손은 죽는 줄 알았다고 툴툴대며 머리카락을 쭉 펼치며 기지개를 펼치는 동작을 취했다.

니카의 몸이 다시 남자로 돌아온 것도 그때쯤이었다. 다행히 여자의 모습으로 부하들 앞에 나서는 불상사는 없을 듯했다.

그는 황태자의 자리에 돌아가면 몰래 별빛을 구해보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이제 상황은 그때와 완전히 달라졌다. 두 번 다시 그가 여자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이 씻는 동안 찰리는 복도에서 자신을 쫓아온 페렌츠와 비올라를 만나고 있었다. 콤프라치코스의 마도사들이 갑자기 기력을 잃으며 바닥에 널브러진 덕분에 그들은 무사히 그곳에서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충격 때문인지 내 기억이 돌아왔다. 후후, 지금까지 라테나와 록센에게 이용당했던 거더군 나는.”

찰리의 선언에 비올라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차, 찰리 오빠, 그럼 모두 기억난 거야?”

“그래. 모두 떠올랐다. 사실 닌자 마을 같은 건 없었어. 우리는 곡예사였어. 맞지?”

“아.”

비올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를 속였다는 사실도 그가 깨달았다는 말이 됐다. 다른 건 어떻게 넘어가더라도 그를 연인으로서 잠자리에 불렀던 것은 용서받기 힘들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겁탈당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나 찰리의 이어지는 말은 그녀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황당한 것이었다.

“우리는 곡예사로 살아가는 닌자였다.”

“뭐라고?”

페렌츠는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최면에서 벗어났다는 말에 이제야 닌자 타령이 끝나나 했는데 다시 닌자라니?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의심을 받지 않고 닌자 활동을 이어가기에는 그만한 직업이 없었지. 재주꾼으로 위장하면 경멸은 받을지언정 위험한 자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인술을 들킨다고 해도 곡예의 일종이라고 적당히 둘러댈 수 있었고……. 스승님은 그렇게 서커스단을 이끌면서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끌어모아 인술을 가르치셨다. 처음에는 그저 정체를 숨기기 위해 한 서커스 활동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그 일이 점점 마음에 들었지. 스승님도 우리가 원하면 닌자 대신 곡예사로 살아가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에 반발심을 느끼는 친구가 한 명 있었지.”

엘라. 그녀는 닌자로 태어나 닌자로 길러져 닌자 외의 인생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녀는 스승과 동료들이 서커스 생활에 젖어 무뎌져 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결국 어둠의 닌자 원더스타인의 꾐에 넘어갔다.

그녀는 원더스타인을 도와 동료들을 몰살시키고 서커스단을 떠났다. 마침 의뢰가 있어 숙소를 나가 있었던 아이들 몇 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찰리는 그들을 규합해 엘라에게 복수하기 위해 찾아갔지만, 결국 패배하고 본인과 그의 연인인 비올라만이 겨우 라테나에게 구조될 수 있었다.

“그렇게 된 거다.”

찰리의 말이 끝났을 때, 페렌츠는 찝찝한 표정으로 비올라를 돌아봤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모른 척 피하고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 전부 기억났네! 미안하지만 그동안…….”

“너로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 이해한다.”

비올라는 자신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주군 비올라 아가씨’가 아닌 ‘동료 비올라’로 변한 것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연인 관계는 유지된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완전히 기억을 되찾지 않은 것만으로 그녀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저자가 왜 너희를 따라다니는 거지?”

페렌츠와 비올라의 뒤에는 거구의 남자가 있었다. 찰리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가 투기장에서 이곳으로 데려왔던 베르카였다.

“보, 복수해야 한다. 이, 이반 페트로프……. 그, 그리고 프랑크 원더스타인…….”

“아까 소동에서 관이 열리는 바람에 이놈이 깨어났다.”

“원래 완전히 부활하기 전까지 절대 관을 열지 말라고 했는데…….”

“상태는 괜찮은 건가?”

“정신은 오락가락한 것 같지만 몸은 멀쩡하더군. 오다가 만난 조직원 몇 명을 순식간에 때려눕혔다. 그리고 관을 열고 가장 먼저 눈을 마주쳤기 때문인지 비올라를 따르는 것 같다.”

“끄으으.”

비올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달라붙으려는 베르카를 손짓으로 제지했다. 다행히 그는 그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얼마 가지 않아 까먹고 또 같은 행동을 반복했지만 말이다.

“좋은 전력이 될 거다.”

찰리는 페렌츠의 말에 동의했다. 그는 베르카가 이반과 맞붙는 경기를 바로 눈앞에서 봤었다.

“좋아. 데려가자. 이녀석도 콤프라치코스에 이용당한 처지니 동지라고 할 수 있군.”

그렇게 찰리 일행은 인형의 집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작은 종이를 한 장씩 나누어주었다.

“이게 뭐냐?”

“순간이동 인술이다. 정해진 장소로 갈 수 있지. 각자 손에 들고 찢어라. 나도 곧 따라가겠다.”

“오빠는 왜?”

“잠시 정리할 일이 있다.”

비올라는 그가 함께 갔으면 했지만, 그가 풍기는 진중한 분위기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이 그가 건넨 종이를 찢자 번쩍하는 빛과 함께 그들은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제 라센 공을 만나러 가볼까.”

찰리는 이제 록센이 반란을 일으킨 덕에 그녀가 실각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 만약 자신이 등장해 그녀를 구출하면 어떨까? 그녀는 자신을 은인으로 여기지 않을까?

비록 그녀가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 이용해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었다. 찰리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서 이따금 단순한 도구를 바라보는 것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 아마도 처음에는 이용할 생각이었겠지만, 함께 땀을 흘리고 정을 나누면서 생각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라테나와 니카를 같이 데려나갈 생각이었다. 자신에게 반한 두 사람을 내버려 둘 정도로 그는 성격이 모질지 못했다. 그는 사랑스러운 여인 세 사람을 끼고 살 생각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휴게실의 문을 열었다.

“이봐, 다 갈아 입었…….”

그 순간, 뒤통수에 다시 둔탁한 충격이 가해지면서 그는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루엘로는 쓰러진 그를 내려다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퇴, 퇴치!”

“잘했어! 이 변태 자식! 무슨 상황을 노리고 노크도 없이 들어와?”

니카는 쓰러진 찰리의 머리통을 한 대 걷어차고는 루엘로를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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