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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52

451화.

세상에는 수많은 국제기구와 회의가 있다.

경제 방면에서 가장 큰 회의는 바로 그 유명한 세계경제포럼이다. 매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기 때문에 다보스포럼이라고 한다.

각국의 지도자, 기업가, 투자자, 경제학자, 언론인 등이 참석해 세계경제의 문제와 해법 등을 논의하며, 여기서 나온 보고서나 성명 등은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끼친다.

참가 자격조건은 대단히 까다롭다. 초청된 인사들만 참가할 수 있고, 매년 1만7천 달러의 회비에 더해 참가비와 체류비를 따로 내야 한다.

이처럼 고액의 비용에 끼리끼리 모이다 보니, 고급 사교클럽이냐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한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서방세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향이 있고, 미국의 주류경제학 위주로 흘러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발도 적지는 않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이 주축이 돼 아시아경제포럼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평소 사이가 안 좋은 중국과 인도지만, 서방의 영향에서 벗어난 국제회의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고, 러시아가 나서 둘 사이를 조율해 포럼이 출범할 수 있었다.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아세안 국가들은 물론이고, 러시아의 영향을 받는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발기국에 이름을 올렸다.

이 자리에서는 지역개발, 투자유치, AIIB(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와 연계한 인프라 개발, 아시아 경제협력, 무역활성화 등 경제전반에 관련된 사항들이 논의된다. 또한 정상회담 및 각종 비즈니스가 성사되는 자리기도 하다.

한국은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발기국으로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명칭이 아시아경제포럼인 만큼 지정학적 이유를 들어 은근슬쩍 참가국에는 이름을 올렸다.

첫 포럼은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고, 2차 포럼은 인도 뭄바이에서, 그리고 이번에는 러시아 차례다.

모스크바에서 개회할 거라는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러시아는 포럼장소로 블라디보스토크를 택했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나라지만, 대부분이 사람이 살 수 없는 동토나 황무지다. 도시들 간의 거리도 아시아에서 유럽만큼이나 떨어져있기 때문에 지역 간의 불균형이 심각하다.

수도인 모스크바나 유럽과 인접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에 비하면 극동지역은 많이 낙후되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극동지역의 관문. 여기를 포럼장소로 택했다는 것은 러시아 정부의 극동지역 개발의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비소츠키 대통령은 칼리닌그라드에 이어 블라디보스토크에 TWR 세 기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포럼을 TWR 세일즈 기회로 삼고, 동시에 전력기반을 확충해 극동지역에 공장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비소츠키 대통령은 나에게 전화했다.

[슬슬 얼굴 한번 볼 때가 되지 않았나? 약혼녀와 한번 놀러오게. 블라디보스토크는 휴양지로서도 괜찮으니.]

굳이 나를 부르는 이유는 포럼과 TWR을 홍보하기 위함이겠지?

대통령이 직접 참석을 요청하는데, 거절하기가 마땅치 않다. 그리고 의장국이 러시아인 만큼 페트로프 교수는 당연히 참석하고,모한 교수도 오기로 했다.

이런 포럼은 처음이라 흥미가 좀 있기도 하다.

난 흔쾌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뵙겠습니다.”

* * *

난 엘리와 함께 전용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우리는 호텔로 이동해 짐을 풀었다. 엘리는 면세점에서 쇼핑한 물건들을 늘어놓고 분류했다.

“이건 어머님 거고, 이건 제시카 거고. 어! 이건 제 거네요. 어때요? 어울려요?”

엘리는 어깨에 가방을 메고는 포즈를 취해보였다.

“아주 잘 어울려요.”

구매할 때 면세점 직원들도 모델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모두에게 하는 립서비스겠지만, 반쯤은 진심이었겠지?

우리는 한 시간 정도 쉰 다음 나갈 준비를 했다.

엘리는 씻고 단정하게 정장을 갖춰 입었고, 나 역시 가지고 온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우리는 준비된 차를 타고 포럼이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 * *

제 3회 아시아경제포럼 개회식은 성대하게 열렸다.

난 비소츠키 대통령과 악수를 나눴다. 그는 내 어깨를 세차게 두드리며 말했다.

“잘 왔네. 오느라 불편한 건 없었나?”

“뭘요. 가까워서 금방 왔습니다.”

“하하, 그게 블라디보스토크의 최대 장점이지. 여기서 사업하는 것도 한번 고려해보게.”

리쑤웨이 상무부장이다. 그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갑게 내 손을 잡으며 인사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과 정신없이 인사를 나눴다. 다들 앞다투어 결혼축하 인사를 건넸다.

포럼이 진행되는 동안 정상들끼리의 회담과 밀실회의, 그리고 기업인과 투자인들끼리의 비즈니스 미팅이 이어졌다.

* * *

세계경제를 이끄는 것은 미국이고, 경제학 역시 가장 발달되어 있다. 때문에 노벨경제학상은 미국이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

하지만 중국 역시 세계최대의 인구와 세계 2위의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는 만큼 뛰어난 경제학자들이 많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는 바로 위허웨이 베이징대 경제학과 교수.

중국은 과거 공산주의국가였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이후에는 국가주도 발전전략을 채택했다.

원래 유명 경제학자였던 그가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는 2015년 상해종합지수 붕괴를 정확하게 예측했기 때문.

당시 2천 초반에 머물던 증시는 중국정부의 강력한 증시 부양책에 힘입어 5천을 넘을 정도로 치솟았다.

사람들은 본격적인 상승장이 시작됐다고 생각했고, 스님과 주부들까지도 주식을 사기 위해 돈을 싸 짊어지고 증권사로 달려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증시과열을 경고하는 위허웨이 교수의 말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상해종합지수는 고점을 찍은 뒤 불과 2개월 만에 40퍼센트 넘게 폭락했다.

거의 모든 종목이 반토막 났고, 업종에 따라서는 80~90퍼센트씩 폭락한 종목들도 허다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었냐면 중국 버블붕괴의 시작이자 세계경제 침체의 신호탄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다행히 중국정부의 갖은 노력 끝에 폭락세는 간신히 진정됐다. 여전히 상해종합지수는 그때의 주가 근처에도 못 가고 있지만.

난 통역기를 귀에 꼈지만, 중국어가 가능한 엘리는 그냥 들었다. 난 작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이런 국제포럼에서 중국경제 문제를 지적하는 발표를 해도 되는 거예요?”

엘리 역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그가 유명 경제학자라도 당의 뜻에 거스르는 발표를 할 수 있을 리 없다. 아마 어느 정도는 허용된 범위라고 봐야겠지.

이 정도 배경은 있어야 당에 쓴소리를 하고도 공안부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겠지.

전용기에는 지난주에 면세점에서 구매한 가방과 화장품들이 가득 실렸다.

“왠지 휴가 가는 느낌이네요.”

엘리는 고개를 저었다.

“휴가라니, 무슨 말이에요? 엄연히 일 때문에 가는 건데.”

공식적으로는 골든게이트 한국지사 직원으로 가는 출장이다. 이런 국제행사도 업무의 연장 아니겠나? 게다가 대통령이 직접 오라고 하기도 했고.

“그런데 여행책자는 왜 보고 있어요?”

“헤엣, 일 끝나고 잠깐만 둘러볼 거예요.”

“…….”

그런 것 치고는 호텔 수영장에서 입을 비키니까지 새로 샀다. 입은 모습이 보고 싶어서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비행시간은 대략 2시간. 한국 국적기들은 북한영공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용기는 돌아서 이동했다.

난 그 사이 참석자들 면면을 살펴보았다.

개회국 정상인 비소츠키 대통령은 당연히 참석하고, 아시아국가 정상들도 꽤 많이 온다. 허창민 대통령은 외교부장관과 통일부장관 등과 함께 올 예정이고, 한국 기업인들도 다수 참석한다.

최대 인원은 역시나 중국.

중국과 러시아 모두 아시아경제포럼을 다보스포럼을 견제할 세계적인 경제포럼으로 키울 생각인지 투자를 아끼지 않는 중이다.

두 나라는 아시아경제포럼 출범 이후부터는 다보스포럼에 불참했고, 정부의 눈치를 보는 기업인과 학자들 역시 자연히 발길을 끊었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이 포럼에 대해 탐탁지 않아 하지만, 민간기업과 개인의 참가에 대해서는 딱히 제재하지 않았다.

반면 미국과 유럽의 경제학자들은 이번에 대거 참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 측에서 초청비와 체류비를 내주고 불렀기 때문이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었다랄까?

덕분에 참가국과 참가인원 모두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포럼이 열리는 컨벤션장 주변의 5성급 호텔은 진작 들어찼고, 다른 호텔들도 만석이었다.

때문에 에어비앤씨는 활황이었고, 블라디보스토크 시민들은 방이나 집을 통째로 빌려주며 용돈벌이에 나섰다.

뒤늦게 참여를 결정했지만, 우리는 주최 측의 배려로 방을 구할 수 있었다.

TWR에 대한 재무적 투자를 허용하는 조건 중 하나가 바로 러시아 제조업에 대한 투자. 때문에 카로스는 칼리닌그라드에 공장을 건설 중이다.

또한 은성차는 러시아 본토에서 공장을 운영 중이다. 향후 이 공장들은 순차적으로 전기차 생산라인으로 변경할 예정이다.

현재 러시아 경제는 서방제재로 인해 침체된 상태.

이 난관을 벗어나기 위해 비소츠키 대통령은 TWR 협력을 통해 유럽과의 관계회복을 꾀하는 한편,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포럼 장소로 이곳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고.

인사를 끝마친 비소츠키 대통령은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러 갔고, 그 사이 한 무리의 남자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하하! 오랜만입니다, 강 선생.”

“결혼하신다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강 선생과 중국의 인연이 남다르군요.”

리쑤웨이 상무부장은 이어서 엘리와도 인사를 나눴다. 엘리는 쓴웃음을 지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장핑화 주석은 폐회식 때나 올 예정이니,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 페트로프 교수와 모한 교수는 모레 올 예정이고.

노벨경제학상 후보로도 자주 거론되지만, 주류경제학과 거리가 있는 만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특이한 과정들을 거치며, 중국경제학은 계획경제 방면에 특히 발달되어 있다.

주류경제학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이제 막 경제개발을 시작한 나라들 입장에서는 참고할 만한 이론들이 많다.

난 위허웨이 교수의 발표를 들었다. 그는 현재 중국경제가 가진 문제점을 조목조목 얘기했다.

일명 회색 코뿔소로 불리는 중국경제의 3대 문제는 기업부채, 부동산거품, 그림자금융이다. 그는 데이터를 보여주며 이러한 문제가 일시적인 게 아니라 구조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지금은 경제성장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산적한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게 될 겁니다.”

“당 입장에서도 적절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주는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야 학문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쓴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연기할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나중에 경제정책을 바꿀 때 핑계 삼기도 좋구요.”

상반된 경제적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산업 구조조정을 시작하면 성장률은 낮아지고 실업은 늘게 된다.집권당으로서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위허웨이 교수의 할아버지는 마오쩌둥과 대장정을 함께했었고, 아버지와 형은 재정부에서 고위직으로 일하고 있으며, 그 역시 상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난 강연을 들으며 문득 흥미가 생겼다.

“저 교수님 한번 만나봐야겠는데요.”

* * *

발표가 끝난 뒤, 난 위허웨이 교수를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강연 잘 들었습니다.”

그는 나를 보고는 반색했다.

“강진후 대표님이시군요. 아까 앉아계신 모습 보고 놀랐습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차 한 잔 괜찮으세요?”

그는 시계를 보았다.

“약속이 있긴 한데, 40분 정도는 괜찮습니다.”

우리는 사람들 눈을 피해 자리를 옮겼다.

뭐, 눈을 피한다고 해도 이미 러시아와 중국 쪽에는 얘기가 다 들어가겠지만. 어차피 경제학자들을 두루 만나 얘기를 들어볼 생각이니.

“아까 강연에서 중국의 경제위기 가능성을 말씀하셨는데, 발생 가능성을 어느 정도라고 보시나요?”

내 질문에 위허웨이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질문이 잘못되었습니다. 중국의 위기는 가능성이 아니라 시기의 문제입니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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