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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56

EP.455 막간. 15일 뒤 석화 풀리는 찰리 (2)

무대 위의 조명을 껐다 켜는 것처럼 시야가 어두워졌다 밝아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마치 연극의 관객이 된 기분이었다.

한 번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화물칸 안의 등장인물도 계속 교체되었다. 찰리는 이제 저항하는 것을 포기하고 가만히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봤다.

“여기라면 둘이서 오붓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겁니다.”

메리사 세르펜티는 선하고 자애로운 인상의 여인이었다. 하얀 천으로 머리카락을 가린 그녀는 수도원에서 나온 친절한 수녀님처럼 보였다.

그러나 니카는 그녀의 겉모습에 속지 않았다. 그는 상대가 얼마나 교활하고 위험한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사근사근한 그녀의 목소리와 눈빛을 마주하면 보통 남자들은 맥을 못 췄다. 황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그렇게 황제를 조종해 10년 넘게 제국 정계를 뒤흔들었었다.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겁니까?”

어젯밤 메리사의 등장 이후로 니카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수천 명이나 되는 군인들의 보호를 받고 있었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1년 전, 니카가 정치계의 전면에 나서서 개혁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메리사가 실종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그는 착하지만 유약한 소년 연기를 하며 그녀의 견제를 최대한 피했었다. 그만큼 그녀가 황궁 안에서 가지는 입지는 절대적이었다.

니카가 비록 뱀 마녀의 첫 번째 정적으로 불리긴 했었지만, 그가 지녔던 실질적인 힘은 그녀가 가진 것의 1할도 되지 않았었다. 황태자라는 이름과 니카 개인의 역량으로 겨우 버텼을 뿐이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바랐던 그녀가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니카가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등장 이상으로 충격적인 것은 바로 그녀와 원더스타인의 관계였다. 두 사람은 남매지간이라고 했다.

“저도 전하를 여기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그 모습…… 상당히 귀여운데요?”

자신을 향해 생긋 웃는 그녀를 향해 니카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의아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역시 자신의 비밀에 대해 처음부터 모두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니카는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닥치십시오! 당신도, 단장님도 지금까지 전부 나를 가지고 논 겁니까? 전부 한 통 속이었습니까? 내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나는 당신들의 손바닥 위에 있었던 겁니까?”

그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자신이 사실 여자였다는 것보다, 뱀 마녀가 살아서 나타난 것보다, 원더스타인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이 더 그에게 충격이었다.

니카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인간의 겉과 속이 다름을 느끼며 살아왔었다. 황태자로서 받은 교육과 타고난 영민함 덕분에 인간 불신에 빠지는 길은 피할 수 있었지만, 대신 그의 무의식 아래에는 자기혐오가 자라나게 되었다.

그는 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모든 의도와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상대를 ‘믿는다’라는 행위는 마음으로 통하는 것이 아닌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는 상대의 진심조차 그 바닥까지 낱낱이 해체해야 받아들일 수 있는 자기 자신이 싫었다.

원더스타인은 그런 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그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처음에는 생각을 읽기 힘든 그를 무척 경계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그와 있는 게 가장 마음이 편했다. 모든 이가 벌거벗고 다니는 것으로 보이는 황태자의 눈에 그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옷을 갖춰 입고 다니는 남자였다.

특히 여자로 변하고 난 다음에는 그에 대한 호감도가 더 커졌다. 여자로 변했을 때 그녀는 독심술이 발동하지 않았기에, 갑자기 속내가 읽히지 않는 다른 사람들보다 언제나 변치 않는 그가 더 신뢰가 갔다. 그것이 바로 황태자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은 ‘믿는다’라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흘러가는 상황은 잔혹하게도 자신이 믿던 남자가 자신을 속이고 이용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혹시 내 감정도 모두 당신들 뜻대로 조작된 겁니까? 내가…… 워, 원더스타인 그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 역시 모두 예정된 거였습니까?”

니카는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간신히 마지막 문장을 내뱉었다. 그의 눈동자는 배신감에 얼룩져 있었다.

“전하답지 않게 감정적이시네요.”

메리사는 고작 1년 못 본 사이 니카가 보인 변화가 흥미로웠다. 자신이 어떤 수작을 걸어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냉철함으로 맞받아치던 그 아니었나.

“말 돌리지 말고 대답하십시오!”

“이런. 전하께서 우리 동생이 꽤 마음에 드셨나 봐요?”

“시, 시끄럽습니다! 좋아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모두 당신들이 조작했기 때문에…….”

“글쎄요. 그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겠어요. 전하가 직접 원디에게 물어보세요. 전하의 마음을 어떻게 빼앗았는지 말이죠.”

“그, 그런 걸 본인에게 물을 수 있을 리가…….”

“그것보다 앞으로의 일에 대화를 나누죠. 원래의 우리 사이로 돌아가도록 할까요?”

메리사는 원더스타인에 대해 더는 말하지 않을 작정인 것 같았다. 니카는 분한 표정을 지었지만, 무엇이 우선인지 그도 모르지 않았다. 얼마 안 가 냉정함을 회복한 그는 그녀를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황궁으로 돌아갈 겁니까?”

“그래야 하지 않겠어요? 저주가 풀리자마자 제국 전역에 심어둔 제 아이들로부터 소식을 받았어요. 지금 아주 혼란스러운 모양이더군요.”

“헛소리. 당신이 있을 때보다는 나아졌습니다.”

“저는 제국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정치, 사회, 경제 다 관심 없어요. 알 바 아니죠.”

메리사의 말에 니카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외치려 했다. 그러나 그의 독심술은 말하고 있었다. 뱀 마녀가 처음으로 그의 앞에서 솔직하게 진실을 털어놓고 있다는 것을.

“당신의, 아니, 당신들의 목적이 뭡니까? 제국에 관심이 없다면, 그럼 그동안 왜 그런 일들을 벌인 거죠?”

“서커스 그랑프리.”

그녀가 언급한 한 마디에 니카는 부하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나왔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메리사는 정계에 있으면서 유일하게 서커스 그랑프리에 대해서는 일관적인 행보를 보였고, 하필 대회의 재개최가 선포된 이후로 실종되었다. 그래서 그녀가 목적을 달성했기에 사라진 것은 아니냐는 소문이 떠돌았었다.

하지만 곧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되었다. 상식적으로 축제 하나를 위해 그렇게 제국을 휘저은 것은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제가 사라진 뒤로 여론이 제멋대로 굴러가고 있어요. 장미 풍차 카바레의 사건,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의 사건, 칼디르에서의 사건 등. 사회적으로 이번 서커스 그랑프리도 위험한 거 아니냐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죠. 이러다가 본선이 열리는 장소가 하늘섬이 아닌 지상으로 바뀔지도 몰라요. 저는 그것을 절대적으로 막아야 하고요.”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예요. 그것보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이야기하죠. 저와 전하가 이대로 황실로 복귀하면 분명 피비린내 나는 정쟁이 벌어질 거예요. 전하의 사람들 상당수가 목이 떨어지겠죠. 저는 세상을 제 목적대로 움직이기 위해 전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요. 그 과정에서 어떤 방법이든 사용할 생각이에요. 전하의 비밀을 폭로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제3 황비의 죽음도 전하의 탓으로 몰 거고요.”

그녀의 말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았다. 상황은 불과 몇 시간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제3 황비의 죽음이 호재였던 것은 그녀가 죽음으로써 적들이 모일 정치적 구심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뱀 마녀가 다시 등장하면 제3 황비의 죽음은 최악의 악재가 됐다.

지금 이곳에는 황태자 파벌의 군대가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제3 황비가 악마의 제물로 죽어버렸다는 말이 퍼지면, 가장 먼저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히 황태자였다. 거기에 그가 사실 이곳의 흑마법으로 태어난 생명이었다는 소식까지 더해지면 파벌이 무너지는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니카 본인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

“전하와 전하의 사람들 목숨은 제 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

“아까 말했죠. 저와 전하가 황궁으로 돌아가면 벌어질 일이라고요. 그래서 해결책도 간단해요. 제안을 하나 할게요. 그걸 받아들일지 안 받아들이지는 전하 자유예요.”

아쉽게도 찰리는 그녀가 어떤 제안을 했는지는 듣지 못했다. 그 순간 시야가 암전되었기 때문이다.

대화에 잡음이 많아서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서커스 그랑프리. 그게 바로 원더스타인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뭔지 감이 잡히려는 순간, 다시 시야가 밝아졌다. 뱀 머리카락의 여인은 이번에는 그녀의 자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런 건 원디에게 물어봐도 될 텐데요. 굳이 바쁜 사람을 불러낸 겁니까?”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 그게…… 그 자식 뭔가 좀 이상해. 기억이 온전치 못한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옛날 일들을 잘 못 떠올리는 것 같아.”

자매의 말에 메리사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원디는 사신의 낫에 베였거든요. 당신도 아까 들었다시피 원더랜드에서도 사신들과 부딪혔던 것 같고요.”

라테나는 안타까운 신음을 흘렸다. 사신의 낫에 베이면 기억이 지워진다는 것은 그녀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메리사는 그녀의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대뜸 엉뚱한 말을 꺼냈다.

“기분 좋지 않나요?”

“뭐가?”

“사신의 낫은 행복한 기억을 앗아가잖아요. 저도 어제 원디랑 대화를 나눠봤는데, 주로 우리와 함께 보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드문드문한 것 같더라고요.”

“아, 그렇다면…….”

“네. 우리와 함께했던 날들이 그에게 그만큼 행복했다는 것이죠.”

“그 녀석…….”

메리사와 라테나는 동시에 추억에 잠겨 미소를 지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이가 멀어진 세 자매였지만 어렸을 때는 그들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들은 원더스타인의 방을 아지트로 삼고는 모여 놀곤 했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너는 왜 네 저주에 당했던 건데?”

라테나의 질문에 메리사는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냥 실수로…….”

메리사는 차마 그때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와 언쟁을 벌이다가 도저히 그녀를 말로 이길 수 없자 비장의 수단을 꺼냈다. 그것은 그가 정말 싫어하는 방법이었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누나들에게 꼭 써먹곤 했다.

-메리사 누나. 내가 누나 중에서 누나를 제일 좋아하는 거 알지? 응? 이렇게 부탁할게. 사랑하는 누나.

-우웃, 워, 원디, 그런 눈빛과 말투로 애원하면…… 꺄악! 배, 뱀에 물렸어요! 어서 해독제를 만들어…… 워, 원디?

-그대로 잠자고 계세요, 잔소리 마녀!

-워, 원디! 원디! 웃, 치, 치사합니다…….

메리사는 결코 그때 일을 말하지만 않았지만, 라테나는 그녀의 사정을 대강 짐작했다. 자신과도 일이 잘 안 풀린다 싶으면 ‘제일 좋아하는 누나’라고 아부를 떨어 그녀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곤 했었다.

“그래서 그건 됐고. 어쩌다 언쟁까지 간 게 된 건데?”

“우리 고향에 찾아갔습니다.”

“고향? 아, 연구소. 그 녀석…… 거기 절대 다시 가기 싫어했잖아. 우리도 다들 그랬고.”

“네. 하지만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각오 같은 것을 다지고 싶어 한 것 같더군요. 그런데 거기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곳 위에 마을을 세워 놓았더군요.”

찰리는 메리사가 묘사하는 마을의 정경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그녀가 말한 곳은 그가 잘 알고 있는 곳이었다. 바로 그의 고향이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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