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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57

EP.456 막간. 15일 뒤 석화 풀리는 찰리 (3)

메리사가 괴물서커스단을 찾은 것은 작년 2월의 일이었다.

그녀가 제국의 중추에 들어간 것은 모두 서커스 그랑프리의 재개최를 위해서였다. 그녀는 10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한 끝에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었다.

개막식까지 앞으로 100일. 이제 대회가 시작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그동안 쉴 틈 없이 일만 해온 그녀는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 동생을 만나기 위해 왔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메리사라고 합니다.”

그녀는 서커스단에 들어가길 바라는 신입 단원인 척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특이한 외형 덕분에 아무도 그녀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았다.

“왜 온 거죠?”

퉁명스러운 동생의 태도에 메리사는 순간 서운할 표정을 지을 뻔했다. 누구 덕분에 10년을 꼬박 팔자에도 없는 정치인 노릇을 했는데.

“그게 오랜만에 본 누나에게 할 말입니까? 안아주지는 못할망정.”

볼멘 표정을 지으며 삐친 척하는 그녀의 모습을 황실 사람들이 본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제국을 쥐락펴락하는 요설가가 평범한 여인처럼 투정을 부리고 있으니 말이다.

원더스타인은 곤란한 미소를 짓더니 마지못해 그녀를 안아주었다. 엎드려 절받기나 다름없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는 동정심이 섞여 있었다. 그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여유가 없는 것을 보고 그의 마음을 짐작한 것이다.

“많이 힘들었나 보군요.”

속내를 들킨 그는 잠시 몸을 움찔 떨었으나 곧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 보였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제 앞에서는 강한 척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은 제 동생이에요. 얼마든지 어리광 피워도 됩니다.”

메리사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는 그가 예전처럼 자신에게 안겨서 투덜거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가로젓고는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어린애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 점이 대견하면서도 못내 섭섭했다.

“아직도 저 아이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은 겁니까?”

메리사는 창밖에서 단원들을 모아 놓고 기초 체력 훈련을 시키고 있는 엘라를 바라봤다. 서커스단에 들어오면서 확인했다. 그녀는 아직 그를 미워하고 있었다.

즉, 진실을 모르고 있었다.

“서커스 그랑프리에 참여하기 전에는 털어놓을 겁니다.”

“그녀가 계획에 반대해도 어쩔 수 없게 말이죠?”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꺼냈다.

“황실로는 언제 돌아갈 생각입니까?”

“한두 달 있다가요? 개막식 전에는 돌아갈 거예요. 그동안 이곳에서 쉴 거고요.”

“호화로운 생활을 하던 누님에게 마차 여행은 힘들 텐데요. 어디 최고급 별장에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원디, 이상한 말을 하는군요. 제게 당신 옆만큼 편안한 곳은 없어요.”

그렇게 메리사는 괴물서커스단의 일원으로서 그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게 됐다.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합류한 김에 그들이 태어난 장소를 다시 한번 들르고 싶어 했다.

“그곳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자매 중 최소 두 사람의 동의가 필요해요.”

“렐에게 편지를 쓰겠습니다.”

“그녀는 제가 당신과 둘이 있다고 하면 쉽게 허락하지 않을 텐데요. 질투가 많으니까요.”

“어, 그건…….”

메리사는 그가 품에서 꺼낸 편지를 찌릿하고 노려봤다. 그가 황급히 손으로 가린 탓에 전문을 읽지는 못했지만 ‘성가신 잔소리꾼’이라는 단어와 ‘제일 좋아하는 누나’ 같은 몇몇 단어들로 그 내용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흥. 못된 사람.”

“아니, 잠깐만요. 메리사…….”

“됐어요. 성가신 잔소리꾼은 이만 떠날게요.”

“그러지 마요, 잠깐, 메리사, 제발, 아니, 그러니까…… 누나!”

결국 원더스타인은 그녀 앞에 무릎 꿇고 필살 애교를 시전 해야 했고, 그녀가 제시한 한 가지 조건을 받아들임으로써 겨우 용서받을 수 있었다. 그 조건이란 바로 떠나는 날까지 그녀를 껴안고 자는 것이었다.

“예전 생각나는군요.”

그녀는 원더스타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머리카락을 마구 비벼댔다. 원더스타인은 못 말리겠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그 시절을 회상했다.

“제 방을 멋대로 세 분이 아지트로 삼았을 때 말하는 겁니까?”

“어머, 싫었어요?”

“그때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나와서 누나들과 한 ‘연습’이 사실 남매들 간에는 금기시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좀 충격이었죠.”

그의 말에 메리사는 얼굴을 붉히며 변명하듯 말했다.

“그, 그때는 우, 우리도 잘 몰랐다고요! 그, 그냥 책으로만 읽던 걸 해보고 싶어서…… 그, 그렇다고 이고르 그 늙은이랑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잖아요! 두두는 랫맨이었고, 나머지는 성별의 구분이 없는 몸들이었고, 박사님이 있긴 했지만 여자인데다가 말 꺼내기 무서웠고요!”

“알았어요. 그런 걸로 해두죠.”

“음…… 그러면 말 나온 김에 우리 옛 추억을 되살려서 ‘엄마랑 아기’ 놀이 안 할래요?”

“싫습니다.”

웃는 남자 때문에 티를 내지는 못했지만, 원더스타인은 지난 몇 년간의 일 때문에 정신적으로 상당히 궁지에 몰려 있었다. 특히, 엘라와 최악의 재회를 한 뒤로 그는 우울증마저 느꼈다.

주변에 이러한 심정을 토로할 사람도 없었다. 가장 친했던 라테나와는 크게 싸우고 연락을 끊고 지내고 있었으며, 우르수스는 그의 신변의 안전 때문에 접근하기 힘들었고, 그나마 가장 연락을 자주 하던 렐은 누군가를 위로할 성격이 못됐다.

토끼 마녀 렐 로헤라는 세 마녀 중 가장 어린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나 태어난 순서는 가장 먼저였다. 그래서인지 곧잘 맏이를 자처했고, 문제 해결에는 언제나 말보다 주먹이 앞섰다. 원더스타인이 힘든 소리를 하면, 징징거리지 말라고 꿀밤을 먹이거나 힘내라고 엉덩이를 걷어차기나 할 것이다.

그런 와중에 바빠서 연락이 힘들던 메리사가 그를 찾아와준 것은 그에게 큰 힘이 됐다. 두 사람은 밤이면 마차 안에 나란히 누워 옛날 일을 나눴다.

“그러고 보니 두두는 어떻게 됐죠? 랫맨들 사이에서 그가 안 보이던데요?”

두두는 연구소 시절 원더스타인이 말을 놓고 지냈던 유일한 ‘친구’였다. 그는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진행하던 저주 역병 치료제 연구의 최종 표본이었다.

박사는 전 세계의 랫맨들을 혈통별, 지역별로 분류해 데려와 원더스타인과 함께 지내는 실험을 했다. 랫맨의 질병 저항력을 통해 데볼루트의 항체 물질을 그들의 몸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지 실험한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연금술 길드에서 ‘은하수’의 핵심 원료를 생산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저주 역병에 걸린 지역에 랫맨 실험체들을 투입하고는 병에 걸린 그들의 몸에서 혈청을 빼내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랫맨은 대부분 죽기 마련이었다. 원더스타인과 함께 지내는 랫맨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원더스타인은 자신과 친하게 지낸 랫맨일수록 일찍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서 웃는 빈도가 높은 랫맨일수록 몸에 데볼루트가 빨리 퍼지는 탓이었다.

그래서 그는 실험이 진행될수록 랫맨들을 차갑게 대했다. 그게 그들을 위한 것이라 여겼다. 또한, 정을 붙인 이의 죽음을 계속 지켜봐야 하는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이나 진행된 실험 속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랫맨이 있었다. 그가 바로 두두였다.

그는 놀랍게도 데볼루트에 대한 높은 저항성을 보였다. 원더스타인과 몇 달을 함께 지내도 멀쩡했다. 그는 끝까지 저주 역병에 대한 유의미한 증상을 보이지 않았고, 마침내 은하수의 원료가 되는 물질을 몸에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찍찍! 너는 꽤! 괜찮은 남자다! 내 여동생을! 신부로 주고 싶군!”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원더스타인과 그는 상당히 친해졌다.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쓰던 원더스타인도 두두가 내뱉는 어처구니없는 헛소리들에 반박하다 보니 그에게는 자연스럽게 반말이 나오게 됐다.

“내가! 저주 역병 치료제라니! 내가 바로 성자 빅터의! 환생이다!”

“그랬다면 오죽 좋았을까.”

“찍찍! 어쩐지! 박사님이! 날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밤에 날 덮칠지도 모른다!”

“미친놈.”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이 세상을 떠나고, 연구소가 폐쇄하고 난 후, 두두는 본인의 마을로 돌아갔다. 그리고 종종 원더스타인과 연락을 하고 지냈다.

그가 정말로 자신을 성자 빅터의 환생이라고 믿는지는 몰랐지만, 그는 그와 비슷한 일을 하고 다녔다. 바로 저주 역병이 발생한 곳을 찾아가서 본인의 피를 탄 음료를 그들에게 제공하는 것이었다. 가난해서 은하수를 구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그의 선행은 곧 기적이었다.

그는 랫맨답게 망상이 심하긴 했지만, 똑똑하고 현실 파악은 잘했다. 그는 괜히 사람들 앞에 나서서 자신이 저주 역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무지한 사람들은 그가 역병의 원흉이라고 죽이려 들 수 있었다. 그리고 잘 아는 사람은 그를 실험체로 포획하려 들지 몰랐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마을에 몰래 치료제를 두고 가는 식으로 행동했다.

원더스타인이 본격적으로 제2회 서커스 그랑프리 일을 준비하면서 바쁜 탓에 한동안 연락이 끊기긴 했다. 그래도 그는 그날의 사고 이후로 친구에게 편지 쓰는 것은 잊지 않았다.

역병 군주가 다시 세상을 활보하기 시작했으니 이제 성자 빅터 흉내는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어느 순간부터 수수께끼의 성자에 대한 소문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친구가 자신의 충고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

“저 랫맨들은 두두가 살던 마을 주민들입니다. 검사를 해보니 그처럼 다들 높은 데볼루트 저항력을 가지고 있더군요. 꾸준히 미약한 데볼루트에 노출되면 몸에서 은하수의 원료가 되는 물질을 생성할 수 있을 겁니다.”

원더스타인이 랫맨들의 마을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 두두는 없었다. 그가 친구에게 보냈던 경고 편지는 개봉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친구는 이미 그전에 실종된 것이다.

“아마도 어딘가를 떠돌다가 객사한 것은 아닐까요?”

“그럴지도요.”

원더스타인이 서커스단에 받아달라는 랫맨들의 억지를 들어준 것도 친구가 생각나서였다. 마을의 장로인 버크만은 두두의 아버지였고, 자신의 첫 번째 정혼자를 자처하는 쿠쿠는 두두의 여동생이었다.

연구소 인근에 도착한 원더스타인은 마침 근처에 마을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엘라에게 일행들을 데리고 그곳에 먼저 가 있으라고 했다.

“저는 잠시 근처를 둘러보다 들어가죠.”

“메리사 씨는 왜 데려가는 건가요?”

“제가 단장님 마음에 들어서겠죠?”

메리사는 자신을 질투 어린 눈으로 노려보는 유라크네에게 뻔뻔한 얼굴로 그렇게 답했다. 유라크네의 여섯 주먹이 동시에 불끈 쥐어졌다.

일행을 떠난 두 사람은 길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있는 절벽을 찾았다. 주변에는 마을 사람들이 설치한 것인지 이상하게도 덫이 많았지만, 메리사의 예민한 감각 덕에 모두 피해 갈 수 있었다.

“원디.”

“뚫렸군요.”

연구소의 입구는 원래 돌벽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겉으로 봤을 때는 절벽과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은 활짝 열려 있었다.

“덩굴이 자라난 것으로 봤을 때 문이 열린 지 최소 10년이 넘었습니다.”

“어떻게 열었을까요? 보안 장치가 되어 있는데.”

두 사람은 열린 틈을 통해 절벽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곧 통로에 설치된 각종 보안 장치들이 파괴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고르가 한 짓이 아닐까요?”

“글쎄요. 그에게 굳이 이곳을 다시 방문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에 남아 있는 자료보다 그의 머릿속에 든 게 더 많을 텐데요. 무엇보다 보안 장치가 파괴된 흔적들을 보면 이것들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이가 억지로 돌파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이고르는 아니에요.”

복도를 통과해 연구소의 내부로 들어선 그들은 그 입구에 놓인 붉은색 연꽃의 장식을 발견했다. 메리사는 그것을 보더니 뭔가를 떠올렸다.

“붉은 연꽃…… 도적이군요…….”

“들어본 적 있습니다. 어떤 함정이든 보안이든 다 뚫어내는 신출귀몰한 자라고…….”

“그럼 그가 연구소를 턴 것일까요? 하지만 이곳의 존재를 어떻게 알고?”

그때, 메리사는 오싹한 기운이 등골을 훑는 것을 느꼈다. 뒤를 돌아본 그녀는 원더스타인이 무언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디?”

조심스럽게 그의 뒤로 다가간 메리사는 그가 보고 있는 것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회백색의 유골이었다.

유골의 주인은 생전에 누군가에게 고문당한 듯 다리와 팔의 뼈가 군데군데 부러져 있었다. 인간의 것은 아니었다. 그 형태로 보아 랫맨이 분명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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