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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58

457화.

스톰컨은 LA 인근의 애너하임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됐다.

거대한 컨벤션장에 입장권을 구매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행사장은 팬들과 업계 관계자들, 그리고 취재진들이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뤘다.

각종 행사들은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으로 방송되고, 49달러의 가상입장권을 구매한 이들은 현장에 가지 않고도 행사장면을 볼 수 있었다. 가상입장권 구매시 각종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스킨을 증정품으로 주기 때문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이를 사서 컴퓨터, 또는 스마트폰으로 시청했다.

행사장 내에서는 스톰컨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한정판 상품들이 판매되었고, 전문가들과 아마추어들이 제작한 그림과 영상전시,그리고 동인지와 인디게임 등 2차 창작물의 전시 및 판매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코스프레 콘테스트가 있어서 참가자와 우승자에게는 다양한 경품이 주어졌고, e스포츠 대회는 프로팀들뿐 아니라 아마추어팀들끼리의 경기도 따로 열렸다.

단순한 게임쇼가 아닌, 마치 아이스스톰 게임을 주제로 한 하나의 축제와도 같았다. 이게 가능한 건 아이스스톰이 20년 가까이 쌓아온 콘텐츠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행사장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게임을 사랑하는 것에는 국적도, 인종도, 나이도 상관없었다.

오택규, 정기홍, 안네케, 그리고 양하나는 느긋하게 행사를 관람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본 게임쇼와는 또 다른 모습에 정기홍 팀장은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스톰컨에 대해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오기를 잘했네요.”

택규가 물었다.

“팀장님도 아이스스톰 게임 많이 하셨죠?”

그 질문에 정기홍 팀장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그럼요. 대학생 때 진후…… 아니, 대표님과도 PC방 가서 스페이스크래프트 배틀넷 많이 했습니다. 다른 학과나 다른 학교 애들이랑 단체전 붙기도 했구요. 이제 와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제가 고등학생 때부터 폭풍커그로 유명했습니다. 한때 제 별명이 정기콩이었죠.”

꺄르르 웃는 안네케와는 달리 양하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지? 이게 웃긴 얘기인가? 설마 홍을 콩이라고 바꾼 게 웃음 포인트? 어째서?’

택규는 짐짓 감탄했다.

“오! 커그로 플레이하셨어요? 쉽지 않았을 텐데.”

“훗, 한번 커그는 영원한 커그죠.”

“나중에 한판 할까요?”

“좋습니다. 간만에 뮤짤 한번 해야겠네요.”

“아! 아예 회사원 게임대회를 한번 개최해볼까요? 우리뿐 아니라, 서성그룹이나 CL그룹 등 5대 그룹도 함께 하면 재밌을 것 같은데. 사내 리그를 거쳐서 우승자들끼리 맞붙는 거죠.”

양하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하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스페이스크래프는 또 뭐야? 이것도 공부해야 하나?’

택규와 정기홍 팀장은 메피스토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경쟁사 모기업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완벽한 위장이었다.

몇몇 메피스토 팬들이 반가워하며 말을 건넸다.

“Hello, guys. Where are you from?”

정기홍 팀장이 대답했다.

“저희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와우! 한국에서 여기까지요? 저희는 브루클린에서 왔어요.”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브루클린도 만만치 않게 멀다. 동부 끝에서 서부 끝까지 온 셈이니.

자신을 스톰브링거(게임 닉네임)라고 밝힌 남자는 메피스토를 즐기는 친구들과 함께 회사에 휴가를 내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비용과 시간을 써가면서 스톰컨에 참가한 이유는 단 하나.

“저희는 메피스토를 사랑하니까요. 메피스토를 만들어준 아이스스톰을 사랑하구요.”

“스페이스크레프트나 오버클락, 하스메탈 등 유명한 게임들이 많지만, 뭐니뭐니해도 메피스토가 최고죠!”

“전 이 친구들과 아주 오래전부터 메피스토를 했어요.”

다른 사람들 역시 삼삼오오 모여 메피스토에 대해 각자 얘기를 나눴다.

작년 스톰컨에 비해 메피스토 팬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이유는, 이번에 발표할 신작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이게 괜히 설레발을 치는 것은 아니고, 아이스스톰 측에서는 스톰컨이 열리기 몇 달 전부터 계속해서 정보를 흘렸다.

“모두가 깜짝 놀랄 신작이라는데.”

“대체 몇 년을 기다린 건지.”

“2를 뛰어넘지 않아도 좋으니, 4 같은 망작만 아니면 기쁠 것 같아요.”

다들 메피스토 5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로 끓어오른 것 같은 모습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도 이렇게 친해질 수 있는 것이야말로 게임이 가진 매력이다. 같은 게임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게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고,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을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성장가능성 역시 무궁무진했다.

OTK게임즈의 경우 고작 10억 엔의 자본금으로 시작해, 지금은 1조 엔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게 가능한 것은 게임이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게임 내 캐릭터나 아이템이 수천만 원, 수억 원에 거래되는 일도 있다. 예전에 한 게임회사에서 경품이벤트로 중형자동차와 용살검(게임 아이템)을 선택할 수 있게 했는데, 당첨자는 용살검을 택했다.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게 뭔 미친 짓인가 싶었겠지만, 이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자동차는 감가상각으로 가격이 떨어지지만, 용살검 가격은 계속 올랐으니까.

정기홍 팀장은 존경스런 시선으로 택규를 보았다.

‘게임은 전 세계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지녔구나! 이런 가능성을 알아보고 미리 OTK게임즈에 투자를 한 부대표님 당신은 대체…….’

오해였다.

그건 그냥 로스트 판타지를 좋아해서 투자한 것뿐이었다. 그 이후 게임시장이 이렇게 성장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 * *

스톰컨에서는 다양한 게임들을 체험해볼 수 있었다. 알아서 잘 노는 안네케와 정기홍과는 달리, 양하나는 처음이다 보니 좀 어색했다.

택규는 그런 그녀를 위해 게임 세계관과 조작법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양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날 때부터 빼어난 미모와 부를 지니고 태어났다. 어디를 가든 주목 받는 것에 익숙했고, 원하는 것은 별다른 노력 없이 손만 뻗으면 가질 수 있었다.

때문에 뭔가에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에서 택규에게 부러움마저 느껴졌다.

‘하나에 집중하는 남자는 멋있다더니.’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도 택규는 좀 달랐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돈이나 능력이 아니다. 바로 따뜻한 마음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영 언니를 위해 헬토깽 운영자를 잡지도 않았겠지.’

양하나는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택규는 호의로 한 일이겠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일 이후로 민하영이 택규를 대하는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친구라는 것에 안주했다면,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호감을 어필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당사자는 전혀 눈치를 못 챈 듯했지만.

‘이번에는 하영 언니도 없으니, 좋은 기회야.’

문제는 노르웨이 공주.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여기는 왜 따라온 거야?’

스톰컨에 가자는 말에 안네케는 강의를 내팽개치고 합류했다. 택규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딱히 문제 삼지 않았다.

‘연재는 펑크 내면 안 되는데, 수업은 빠져도 되는 거야? 이게 대체 무슨 논리야?’

이에 대해 묻자 택규는 ‘연재는 독자와의 약속이지만, 수업은 자신과의 약속이잖아요. 독자와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자신과의 약속은 얼마든지 어겨도 돼요’ 라고 대답했다.

역시 무슨 논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안네케는 말괄량이 여동생 같이 생기 넘치고 발랄한 데다가, 노르웨이에서 게임 홍보대사를 할 정도로 게임에 조예가 깊다.

어떻게 보면 민하영보다도 더 요주의 인물이다.

게다가 그녀는 이곳에 오며 철저한 준비를 해왔다. 그것은 바로 코스프레.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행사장 안팎에서 코스프레를 하는 중이다. 오늘은 공식행사가 열리는 날도 아닌데, 각자 알아서 준비해온 의상을 입고 모여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각자 하고 싶은 것을 즐기는 것은 스톰컨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였다.

마침 코스프레를 한 서양인들이 근처에 모여 있었다.

‘흐음, 저런 걸 하면 재밌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안네케가 손목을 슬쩍 잡으며 말했다.

“같이 해요, 언니.”

“뭘요?”

“코스프레요.”

그 말에 양하나는 당황했다.

“예? 전 옷도 없는데…….”

그러자 안네케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언니 것도 만들어왔어요!”

“…….”

설마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가?

“자, 잠깐만요.”

차마 웃는 얼굴로 권유하는 안네케의 손을 강하게 뿌리치지 못하는데, 다행히 택규가 나서서 말려주었다.

“하기 싫다고 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시키면 안 돼. 코스프레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해야 하는 거야.”

그 말에 안네케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언니에게 선물해 주려고 몇 달 전부터 유럽 왕실에 전통의상을 납품하는 업체에 부탁해 여성형 메피스토 의상을 준비해왔는데.”

양하나는 더욱 황당해졌다.

‘유럽 왕실 옷을 만드는 곳에 그런 걸 왜 부탁해?’

택규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여성형 메피스토는 내가 메피스토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기도 하고, 하나 씨가 입으면 매우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지만,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 말에 양하나는 움찔했다.

‘뭐?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안네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왕 준비해온 거 아까우니까, 이 옷도 제가 입어볼게요. 사이즈가 좀 안 맞긴 하지만, 패드를 좀 더 넣으면 될 것 같아요.”

그 순간, 양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저 할래요!”

택규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갑자기요?”

“왠지 얘기 듣다보니 저도 하고 싶어졌어요. 평소 코스프레에도 관심이 있었구요.”

“진짜요?”

“그, 그럼요.”

그 말에 안네케의 표정은 한순간에 밝아졌다.

“그럼 어서 갈아입으러 가요, 언니!”

* * *

얼떨결에 안네케의 손에 이끌려 코스프레를 하게 된 양하나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일단 옷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입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먼저 재빨리 의상을 갈아입은 안네케가 옆에서 도와주었다.

아니, 도와주었다기보다는 마치 인형놀이라도 하듯 갈아입혔다.

“자, 잠깐.”

머뭇거릴 새도 없이 옷을 다 입었고, 이어서 메이크업이 시작됐다.

“그대로 있어요, 언니. 움직이면 안 돼요.”

안네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그녀의 얼굴에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를 만져주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안네케의 의상은 밝은 색상의 경갑옷과 흰색의 천이 어우러진 천사, 정확히는 메피스토에 등장하는 4대 천사 중 한명인 라티엘이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양하나는 경악했다.

몸에 달라붙는 검은색 광택 레깅스, 허리를 조이는 코르셋과 검은색 깃털이 달려있는 화려한 의상, 뿔이 달려 있는 써클렛과 짙은 화장.

노출이 별로 없음에도 매혹적이고 강렬한 이미지였다.

‘대체 좋은 명품 옷 놔두고 왜 이런 걸 입는 거야?’

“얼른 나가요!”

“응?”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그녀는 안네케의 손에 의해 행사장으로 끌려 나갔다. 밖에는 택규와 정기홍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때요, 오빠? 잘 어울리죠?”

양하나는 당장이라도 다시 탈의실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는 택규가 멍한 표정으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

그동안 수차례 만나면서, 이렇게 강렬한 시선을 받아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 생각해 보면 이것도 패션쇼 같은 거잖아.’

사실 패션쇼에 등장하는 옷들 중에서는 코스프레 의장보다 더 기괴한 옷들도 많다. 모델들은 그런 옷도 잘만 입고 무대 위에 선다.

그러니 코스프레도 패션쇼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지 않을까?

……라고 잠시 행복회로를 돌려보았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부끄러웠다.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화장이 짙어서 아무도 그녀인지 못 알아볼 거라는 것.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에 익숙하긴 하지만, 그건 모임이나 파티에서지, 이런 곳에서 주목 받고 싶지는 않았다.

즐거워하며 의상을 뽐내는 안네케와는 달리 양하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어! 저기 봐!”

“우와! 4대 천사 라티엘과 여성형 메피스토다!”

생기 넘치는 소녀 같은 안네케와 늘씬하고 성숙한 매력을 뽐내는 양하나.

천사와 악마, 서양과 동양의 조화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서양인들은 놀라움에 탄성을 내질렀다.

“오! 마이 갓!”

“이런 퀄리티라니!”

“대체 저 옷을 어떻게 만든 거지?”

“크윽! 아이스스톰 코스프레만큼은 미국인들이 지지 않을 거라 여겼는데!”

“언제나 우리보다 뛰어난 아시아인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더니! 그게 사실이었어!”

마찬가지로 여성형 메피스토 코스프레를 한 서양여성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훗, 분하지만, 이건 인정할 수밖에.”

그 말을 들으며 양하나는 속으로 절규했다.

‘아, 안 돼! 이런 거 인정하지 마!’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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