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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6

46화 전쟁과 불꽃의 신

예정된 아침의 공세.

디펜스 웨이브의 첫날, 악마들이 패주했다는 소식을 들은 안드로진은 분노에 휩싸였다.

“뭐?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쳤단 말이냐!”

첫날의 전투만으로 성을 공략할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원 역사대로라면 이 전투는 앞으로 5일 동안 계속되다가 끝내 멸망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제대로 싸우는 시늉조차 않고 궤멸한 것은 처음이었다. 백여년. 95번의 반복되는 역사 동안 이토록 치욕적인 패배는 없었다.

“이 겁쟁이 놈들!”

안드로진의 여덟 개의 박도가 춤추자 절단된 몸뚱이가 연달아 튀어올랐다.

-끼에에에에에엑!

안드로진의 박도들에 목이 따인 악마들은 정신계로 방출되지 않았다. 그들의 영혼은 핏빛으로 얼룩진 박도에 흡수되며 끊임없는 비명을 질렀다.

한심스러운 것들.

안드로진은 밤새 죽어나간 부하들이 아까웠다.

그것들은 색욕의 악마 중에서도 고통조차 쾌락으로 받아들이는 전쟁 특화종들이다.

그런 그들이 밤을 지세우고 나니 하나 같이 떡이 되어 있더랬다. 레온의 기습 탓이었다.

숱한 역사의 반복 동안 성을 뛰쳐나와 악마들을 직접 사냥하고 다니는 미친놈은 레온이 처음이었다.

대체 그 미친놈은 뭐가 아쉬워서 안전한 성을 내버리고 악마사냥을 나선단 말인가?

안드로진은 몰랐다.

밤새 있었던 악마 사냥이 악마의 존재에 공황장애를 일으킨 레온의 스트레스 해소라는 것을.

부하들을 책망하며 다시 결집하려던 그때──

“뭣?”

안드로진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떠졌다. 초목이 우거진 들판이, 숲이 순식간에 그 생기를 잃고 죽어나간 것이다.

정확히는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지만.

그리고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

“여왕의 꿈이… 깨어졌다?”

이 세계는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악재. 그 어떤 남녀라도 타락시킬 수 있는 여왕을 타락시키기 위한 공간.

꿈을 반복하며 타락의 정수로 여왕을 색욕의 악마로 변모시킨다.

그를 위해선 끝없는 절망이 필요했고 남은 5년은 확실하게 여왕을 굴복시키기 위한 마지막 단계였다.

본래라면 여왕의 타락 이후에나 깨어졌어야 할 꿈이, 강제로 깨어졌다?

뭔가 이변이 일어났다. 안드로진은 다급해졌다.

“빌어먹을! 여왕은, 쾌락의 군주로 탄생해야한단 말이다!”

그것이 현재 쾌락의 최고위 대악마가 명한 일.

다급해진 안드로진이 부하들을 이끌고 곧장 왕성으로 향했다. 모든 군세를 끌어모으기엔 시간이 부족했으나 시간이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레이날드와 지혜의 보옥. 레이날드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도우러 가야… 않겠습니까?”

[난 안 간다니깐?]

쫄보 새끼.

레이날드는 애써 그 말을 삼켰다.

* * * *

레온과 구대성, 야피가 비몽사몽한 헌터들을 두들겨 깨우고 곧장 왕궁 밖으로 나왔다.

헌터들은 꿈에서 깨어져 황폐하게 변한 성 내부를 보면서 어안이 벙벙하다.

“뭐, 뭐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분명… 우리가 지하로 내려가서… 무슨 일이 있었더라?”

헌터들의 의문에도 레온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이 급변한 사태에 대처하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

“악마들이다!”

“악마들이 성안으로 들어왔어!”

그러나 악마들은 이미 성문을 넘어 내부로 몰려들고 있었다. 헌터들로선 당최 이해할 수 없는 급변이다.

“젠장, 성벽의 병사들은 어디로 간 거야?”

“너, 너무 많은데?”

혼란스러워하는 헌터들에게 구대성이 외쳤다.

“방패 들어…!”

방패 들어. 그 목소리에 헌터들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따닥따닥, 기계적으로 쌓이는 방패들. 순식간에 완성된 방진이 악마들을 맞이했다.

-죽여랏!

-없애버려!

색욕의 악마들이 벌거벗은 나체로 달려들었다. 그들의 전투력은 대단치 않다. 하지만 색욕의 악마들은 그 숫자가 특기.

정면에서 부딪쳐오는 질량의 덩어리만 백을 넘는다.

“크읍…!”

충돌하는 악마들을 버텨내는 헌터들. 곧장 방패 틈새 사이로 검을 찔러넣는다.

-킥!

-크엑!

하급 악마들은 헌터들의 칼질에도 쉽게 나자빠졌다.

【 악종의 공포 】

【 최대 악마 도살자 】

【 악마 군주 살해자 】

세 가지 트레잇이 헌터들의 대악마 대미지를 증폭시켰다. 그들의 공격은 항마의 성질을 띄고, 그들 주변에 있는 악마들은 힘이 쇠약해진다.

여기에 사자심장의 오라까지. 헌터들의 방어는 견고하다. 정면에서 오는 악마들에 한해서는.

-키에엑!

‘여, 옆으로 돌아온다!’

방진의 끝. 그곳에서 방패를 든 김진수 과장은 정면에서 돌아서 오는 악마들에 낭패감을 느꼈다.

둘러싸이는 건 순식간. 전멸도 삽시간이다.

‘그럼에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협회의 B급 탱커인 그도 초조해지는데, 어떻게 이 D급 헌터들은 침착하게 방진을 유지할까?

그 이유는 기사들의 존재였다.

-적성인자 섬멸. 웨폰 프리.

우수수 쏟아지는 미니멀 기관총. 그뿐만이 아니다. 성력을 머금은 강철 와이어가 인지를 벗어난 속도로 휘둘러진다.

“기…?”

“겟?”

그들은 자신의 몸통을 통과한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다만, 그것을 인지했을 때는 깔끔하게 썰린 단면이 미끄러졌다.

레온 쪽은 가관이었다. 악마들은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는 것만으로 오줌을 지리고 그가 내지른 호통 소리에 고막이 터져나갔다.

진형의 양측을 두 명의 성배기사가 커버한다. 그들이 휘두르는 일격일격은 방진의 헌터들이 휘두르는 칼질 모두를 합한 것보다 강력했다.

-히이익…!

-악마 도살자…!

-중앙이다! 중앙으로 끼어들엇!

악마들은 오히려 인원수가 많은 헌터들의 방진으로 몰려갔다.

괜히 좌우의 성배기사들에게 썰렸다가 영혼까지 탈곡되느니 방진 싸움에서 죽으면 정신계로 탈주하는 게 낫기 때문.

“크읍…!”

“왜 이리 무거워…!”

덕분에 헌터들의 부담이 늘어갔다. 김진수 과장이 외쳤다.

“프로텍터 실드!”

김진수 과장의 고유스킬, 수호자의 힘이다. 자신의 방어력 20%만큼 공략대 전원의 방어력을 일시적으로 상승시키는 스킬.

본래라면 서브 탱커 정도나 득을 보는 스킬이지만, 이곳에 있는 헌터들이 죄 탱커 아닌가.

견고해진 방어력으로 어렵사리 버텨내는 헌터들. 그런 그들에게 종언을 내리듯 안드로진이 후미에서 외쳤다.

“일해라, 노예들아! 고통의 쾌락 속에서 허우적대라!”

안드로진의 왕관이 거대한 암흑의 빛을 뿜어냈다. 왕관의 빛에 노출된 악마들의 시선이 기괴하게 비틀린다. 속된 말로… 맛이 갔다.

“키히히…!”

“캬하하하하!!”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악마들. 방패에 몸을 던지고 몸통이 관통되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마치 고통이 쾌락이 된 것처럼 기뻐하며 몸을 던진다.

버겁다. 방패가 무거워 당장이라도 던져버리고 싶다. 하지만 구대성은 그러지 않았다. 헌터들은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병사의 미덕은 한 가지만 잘하면 된다. 오직 막는 것에 전력을 다해라. 나머지는 기사가 해결할 것이다.]

왕은 그들에게 한 가지만을 명했다.

자리를 지키고, 적을 막아내라.

그리하면 기사가 적들을 분쇄할지니.

‘버티기만 하면…!’

‘폐하께서 어떻게든 해주실 것이다!’

기사를 믿는다. 사자심왕을 믿는다. 병사들은 그저 버티고 버텨서 승리를 향해 내달리는 왕의 등을 응시한다.

“가자, 스탈리온!”

보아라, 저 굳건한 등을.

사자심왕 폐하가 어떻게든 해낼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어어?”

헌터들의 시야에서 레온이 사라졌다. 끝없이 몰려드는 악마의 검은 파도가 홀로인 레온을 집어삼킨 것이다.

희망이 사라진다.

검은 파도가 눈앞에 가득하였다.

* * * *

많다.

레온은 눈앞을 가득 채운 악의 무리에 거침없이 성검을 휘둘렀다.

일격에 다섯 악마들이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금방 다른 악마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악마들에게 두려운 기색은 없다. 그 핏발선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제정신이 아니다.

쾌락의 대악마들이 몇 번인가 보여준 요술이다.

군집의 고통을 쾌락으로 치환하고 오직 쾌락을 추구하는 광인들로 만든다.

전투력이 약한 색욕의 악마들이지만, 이런 버프를 받으면 성가시기 그지 없다.

‘돌파력이 부족하다.’

적의 숫자가 너무 많다. 안드로진 직접 군세를 이끌고 온 것이다. 본래라면 디펜스의 마지막 날에야 있을 최후결전.

그것이 여왕의 꿈이 깨지면서 앞당겨졌다.

‘할 수 있을까?’

성배 기사단… 아니, 하다못해 휘하의 변경 기사단이라도 있었더라면.

‘없는 걸 탓해서 어찌하리요.’

레온은 줄곧 혼자 싸워왔다. 180년 동안 계속된 악과의 전쟁. 그것은 모든 악마와 레온의 생사결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와 지금은 다르다.

그때는 신성이 존재하는 땅이 있었다.

인류사의 시작부터 쌓아온 신들에 대한 신앙과 성력, 모든 신들이 지원하는 권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신앙은 부족하고, 가진 것이라곤 몸뚱아리 하나뿐.

수없이 남발해오던 성법은 기껏해야 한둘만 사용 가능했고, 성검과 성창은 전성기의 힘을 잃었다.

할 수 있을까?

“아니! 해야만 하는 것이다!!”

레온의 검이 휘황의 빛을 뿜었다. 겹겹이 쌓여진 빛이 악마를 가른다.

이 등을 지켜보는 병사들을 위해서라도, 영광과 명예를 바칠 신들을 위해서라도.

오직 혼자라도, 그는 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가 사자심왕인 이유요, 신들의 유일한 대행자인 이유다.

“라이온하트에──!!”

그때였다. 레온의 사각. 검은 마기를 뿜어내는 박도가 날아든다. 레온의 성검이 이를 튕겨냈으나 튕겨나간 박도가 스탈리온의 목을 베었다.

“스탈리온…!”

박도에 베인 스탈리온이 무너지며 낙마하는 레온. 소환된 성배가 긴급히 신마의 수복에 나섰지만,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리고 기사가 낙마한 순간이야말로 잡졸들에겐 기회. 일제히 몰려드는 악마들의 파도가 레온을 집어삼키려는 순간이었다.

-돌-격──하라!

질량이 부딪쳐온다. 가속과 무게를 더한 충격의 순간은 극적이었다.

꽈앙! 하고 튕겨나가는 악마들. 그 선두에 데스나이트 리카르도 번즈가 있다.

“대장군인가.”

“사자-심왕.”

영광의 시절 스스로 목을 베어 구천을 떠도는 망자가 된 망령들. 죽어서도 여왕에게 충성하는 근위기사들이 여왕의 곁을 떠나 이곳에 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꿈에서 깨었느냐, 기사들이여.”

“여왕전하-를 위한-충심은-여전하다.”

“응당 그래야지.”

“허나… 그대-가 변화-를 일으킬 수-있다면…….”

거기에 한 번 걸어보겠다. 레온은 피식 웃었다.

예로부터 그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악종들에 의해 세계가 멸망하는 순간에도, 신들이 그의 심장에 대피한 순간에도.

작금에 이르러서는 헌터들과 여왕의 충성스러운 기사들까지도.

“그렇다면 보여줘야겠지. 응당 그 기대에 응하고 말고.”

그가 언제나 해오던 일.

역경을 해치고 별을 향해.

“전쟁과 불꽃의 신성이시여! 이들의 용(勇)에 응답하소서!!”

응답한다.

어떠한 제단도, 신전도 필요치 않으며 오직 용맹의 열기 속에서만 답을 주는 신성이 강고한 목소리를 흘렸다.

[여전히 네놈은 손해보는 역할이구나. 결국 네가 없으면 언제라도 무너져내릴 찰나의 불꽃이다.]

“그럼 언제까지고 그들 앞에 서리라. 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날까지.”

스탈리온이 사라져간다. 맹우의 곁을 지키지 못하고 역소환되는 것에 하얀 신수가 치욕 속에 울부짖었다.

“고맙다, 나의 맹우여. 잠시 쉬어라.”

레온은 어느새 자신을 보호하며 악마들을 막아서는 38기의 기사들을 바라봤다. 그들의 한가운데에서 사자심왕이 외친다.

“나 라이온하트! 전쟁과 불꽃의 신성 페토스의 으뜸가는 전쟁기수!”

쩌렁쩌렁한 외침에 악마들이 고통스러워하고 병사와 기사들이 레온의 존재를 상기한다.

“전쟁이여! 불꽃이여! 그대의 으뜸가는 전쟁기수가 마땅히 요청하나니, 지금 이곳에 전쟁의 불꽃을…!”

한 음절, 한 음절마다 굽히지 않는 영광과 무게가 실린다. 그 명료한 요청에 전쟁의 불꽃이 마땅히 응답했다.

그 순간, 피부를 태우는 열기와 굉음이 진동을 일으키며 전장 한복판을 뒤흔들었다.

악마들도, 기사들도, 헌터들도… 모두의 시선이 그 불길의 중심을 향한다. 악마가 닿는 것만으로 소멸되는 신성한 불꽃의 한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상식을 아득히 넘어선 밀도의 신성이었다.

불을 뿜는 황소.

난폭하고 사나운 기세를 뿜어내는 그 신수는 인간의 이치를 벗어난 규격 외의 존재다.

그런 황소 두 마리가 이끄는 거대한 전쟁마차. 레온은 그 위에 올라타 고삐를 쥐었다. 그가 외쳤다.

“나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가 여왕의 충성스러운 기사들에게 고한다!”

38명의 기수들. 검과 창을 든 데스나이트들이 공포에 휩싸인 악마들에게서 물러나며 전쟁마차의 뒤로 도열한다.

“스페로 왕국의 긍지 높은 검이자, 여왕의 방패인 그대들은!”

“삿된 악종들을 벌하는 고귀한 임무를 맡았노니.”

“영광의 기사들이여! 악을 정화하는 불꽃이 되어라!”

타오르는 전쟁의 불꽃이 데스나이트들의 검에 옮겨붙었다.

삿된 것을 불태우고 정화하는 불길이 그들을 정순한 존재로 인정했음이다.

“나를 따르라.”

레온이 창을 겨눈다.

선두는 언제나 그의 몫이다.

“그럼 승리할지니.”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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