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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6

미래를 보는 투자자 045

45화.

우리는 수십 개의 스타트업에 투자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 사이 다른 투자처를 찾은 곳도 있고, 다른 기업에 인수된 곳도 있다.

카로스 역시 우리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투자금과 투자방식을 감당하기 힘들 거라는 것이 이유였다. 

다른 기업이었다면, 그 시점에서 제안을 철회했을 것이다. 꼭 이곳이 아니더라도 투자할 기업은 많으니까.

그런데 카로스만큼은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주 누나는 투자자금이 충분하고 투자의사가 있다는 제안서를 다시 메일을 보냈고, 결국 그쪽 COO가 연락을 해왔고 미팅 약속이 잡혔다.

실리콘밸리에서 인천으로 온 이들은 두 명이었다. 우리는 먼저 인사를 나누었다.

“반갑습니다. 카로스의 COO 라이언 게이츠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카로스의 CFO 세르게이 요바노비치입니다.”

COO(최고업무책임자)와 CFO(최고재무책임자)가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까지 우리가 만나 스타트업과는 규모가 달랐다.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라이언은 긴 비행 때문인지 잔뜩 피곤한 표정이었다. 광대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얼굴을 보니 원래 좀 예민한 성격인 것 같기도 하고.

체구가 작고 비쩍 마른 라이언과는 달리 세르게이는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했다. 외모만 봐서는 마치 러시아 마피아 같은 느낌이다. 아니면, KGB요원이나.

라이언은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OTK컴퍼니 측의 의사결정권자가 누구입니까?”

현주 누나는 사무적으로 말했다.

“제가 전권을 위임 받았습니다.”

“따로 결재를 받지 않아도 됩니까?”

“그렇습니다. 제 결정이 곧 OTK컴퍼니의 결정입니다.”

왜냐하면 OTK컴퍼니 경영진과 주주가 이 자리에 전부 모여 있기 때문이지.

그는 잘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카로스가 필요로 하는 투자금액은 1억 달러입니다. 가능하겠습니까?”

택규는 놀란 듯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1억 달러? 그렇게나 많이?”

이제까지 우리가 한 번에 투자한 금액은 대부분 100억 미만. 많아도 200억을 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여기는 그 다섯 배의 금액을 요구했다.

1억 달러면 원화로는 1100억 원. 한 기업에 투자하는 금액으로는 지나치게 크다.

현주 누나는 안경을 올려 쓰며 말했다.

“자금여력을 묻는 것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 말에 라이언과 세르게이는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일단 오긴 왔지만, 큰 기대는 안 했던 모양이다.

“그 전에 먼저 기업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예.”

세르게이는 가지고 온 노트북을 미팅룸에 있는 프로젝터에 연결했다. 그리고 스크린에 화면을 띄우며 설명을 시작했다.

“과거 자동차는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는 기계였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정교한 전자제품으로 바뀌어가는 중입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산업은 변화한다. 과거에는 유망하던 사업모델이 어느 순간부터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필름카메라를 만들던 코닥이 디지털카메라에 밀려 망했고, 피쳐폰의 강자였던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스마트폰의 흐름을 읽지 못해 망했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지금은 모든 산업이 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여기에는 자동차 산업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향후 자동차는 어떤 식으로 진화할까?

여기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현재 이 분야의 화두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전기차고, 다른 하나는 자율주행차다.

전기차가 동력기관을 내연기관에서 배터리로 바뀌는 하드웨어의 변화라면, 자율주행차는 차를 움직이는 주체가 인간에서 기계로 바뀌는 소프트웨어의 변화다.

자율주행은 미래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수많은 자동차업체와 IT업체들이 개발에 뛰어들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AMZ가 41퍼센트, 한국의 은성자동차가 40퍼센트, 그리고 일본의 전자업체인 이타치(Itachi)가 19퍼센트의 자본을 출자해 합작사를 설립했다.

그 회사가 바로 카로스다.

국경과 업종을 초월해 힘을 합쳐 자율주행차 시장을 선점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1년쯤 지났을 무렵 이타치는 가전분야에서 한국의 CL전자에게 밀리고, 야심차게 뛰어든 스마트폰 시장에서 서성전자에게 참패하며 경영위기를 겪게 되었다.

이타치는 사업 분야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카로스의 지분을 전부 매각했고, 그중 10퍼센트를 은성차가 인수하며, AMZ를 제치고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그런데 재작년에 AMZ마저 자율주행차 개발을 포기했다. 이미 경쟁사들이 앞서 가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투자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은성차는 고민에 빠졌다. 합작회사를 설립한 이유는 IT업체와의 협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업체들이 발을 빼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때 전면에 나선 사람이 바로 한찬영이다. 그는 3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전무라는 지위에 오르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한 인물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고속 승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능력을 지닌 뛰어난 인재였기 때문······ 이 아니라, 그가 은성차그룹 회장 한민구의 장남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말했다시피, 부모 잘 만난 것도 실력이다.

어쨌거나 한찬영은 미래차 개발을 진두지휘하기로 했다.

향후 그룹을 이끌어나갈 후계자가 관심을 보이자 그룹차원의 지원이 뒤따랐다. 은성차는 AMZ가 매각한 지분을 사들여, 보유지분을 86퍼센트까지 늘렸다.

사실상 카로스가 은성차의 자회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거액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만한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고, 주주들은 한찬영의 경영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투자를 유지할만한 명분을 찾기가 힘들었다. 

합작회사를 설립하기 전에도 은성차는 이미 그룹계열사인 은성MD를 통해 자율주행에 필요한 각종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고, 현재는 제한적 자율주행을 양산차에 탑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굳이 중복되는 사업에 계속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경영실패라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 한찬영은 성공이 보장된 고급차개발 부서로 이동했고, 은성차는 계륵이나 다름없는 카로스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예전이었다며 모를까 지금 시점에서는 마땅히 팔 수 있는 곳이 없었다.

IT업체인 엔플이나 구블, 자동차업체인 다임러그룹, 폭스바겐그룹, 토요타그룹 등은 이미 자체적으로 자율주행차를 개발 중이었고, 카로스는 거액을 들여 인수할 만큼 매력적이지 않았다.

몇 차례 매각이 무산되자, 은성차는 최후의 수단을 꺼내들었다.

바로 카로스가 보유한 각종 특허와 핵심기술을 나눠서 매각해 투자금의 일부라도 회수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카로스는 빈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카로스의 임원과 직원들은 격렬하게 반발했지만, 모회사의 결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CEO인 데릴은 특허 매각을 지연시키는 한편, 직접 나서서 다른 투자자를 물색했다.

은성차 입장에서도 헐값에 나눠서 매각하느니, 제값을 쳐줄 투자자가 나타나는 게 이득이다.

카로스는 글로벌IB, 사모펀드, 국부펀드 등에 투자를 요청했다. 

골든게이트 역시 기획안을 검토했으나 투자금액 대비해서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해 거절했고, 기획안은 돌고돌아 스타트업들 기획안과 함께 나에게 흘러들어왔다. 

설명을 다 들은 택규는 눈을 껌뻑거렸다.

“이게 뭔 소리야?”

현주 누나는 들고 있던 볼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정리하자면, 카로스 지분 대부분을 현재 은성차가 가지고 있고, 은성차는 그 지분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고 싶어 해. 1억 달러는 은성차가 요구하는 지분 매각금액이야.”

택규가 다시 물었다.

“자, 잠깐. 그러니까 우리가 1억 달러를 투자하면, 그게 은성차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거야?”

“맞아.”

“우리가 투자 안 하면?”

“은성차는 특허와 핵심기술을 나눠서 매각하겠지. 그 경우 건질 수 있는 금액은 5천만 달러도 안 될 걸.”

현주 누나의 말에 녀석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뭐야? 그럼 결국 은성차만 좋은 일 시켜주는 거 아니야?”

“그런 셈이지.”

택규는 나를 보며 물었다.

“너 이런 기업이라는 거 알고 있었어?”

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

기획안만 한 백번은 넘게 읽어본 것 같다. 아예 퍼센트까지 정확하게 외우고 있었다.

“야, 이건 아니지. 나랑 얘기 좀 해. 일단 나와 봐.”

대답을 듣기도 전에 택규는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미팅룸을 나갔다.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라이언과 세르게이는 갑작스런 택규의 태도에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이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주 누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잠시 따로 얘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 * *

미팅룸을 나온 우리는 현주 누나의 방에 모였다. 스위트룸이라 침실과 거실이 따로 구분되어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꽁초가 가득 쌓인 재떨이와 서류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이 자리에 OTK컴퍼니 주주들이 다 모여 있으니, 나름 주주총회인 셈이다. 물론 엘리는 예외지만.

안건은 카로스에 대한 것이다. 

택규는 흥분하며 말했다.

“너 제정신이야? 무슨 생각으로 저딴 기업을 만나자고 한 거야?”

난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왜 니가 흥분해, 임마? 화를 내도 내가 내야지.”

그러자 택규는 당황했다.

“그, 그건 그런데. 아무튼 쟤들은 안 돼. 뭐 하러 은성차 좋은 일 시켜줘? 걔들 잘 되는 꼴은 절대 못 봐.”

얘기를 듣던 엘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현주 누나에게 물었다.

“은성차와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진후에게 직접 물어봐.”

그녀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난 엘리에게 물었다.

“은성차가 뭐하는 곳인지는 알죠?”

“물론이에요. 한국 최대이자, 세계 6위의 자동차 생산 업체잖아요.”

“그 정도가 아니죠.”

대한민국 재계서열 2위 은성차그룹.

먼저 완성차를 조립하는 은성차가 있고, 철강을 공급하는 은성제철, 부품개발과 제조, 서비스센터를 운영하는 은성MD, 철도를 만드는 은성RT, 물류수송을 담당하는 글로마스, 광고와 마케팅 업체인 리노션 등등.

은성차그룹에 속해 있는 계열사 시총을 전부 합치면 150조가 넘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 밑에는 1차, 2차, 3차에 이르는 수많은 협력사들이 존재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은성그룹이 소유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은성그룹 산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은성차그룹은 은성차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제조왕국이다. 전세계 곳곳에 생산기지를 둔 글로벌 기업이지만, 그중에서도 한국 시장에서 판매량은 압도적이다.

내수 점유율은 무려 70퍼센트로 사실상 독점이나 다름없는 지위를 누리고 있다. 내수차별이니 어쩌니 말이 많긴 하지만, 좋게 생각하면 자랑스러운 한국기업이다. 

그러나······.

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냥 개새끼들이에요.”

내 입에서 나온 욕에 엘리는 깜짝 놀랐다.

“예?”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집이 망한 건 은성차 때문이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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