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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62

EP.461 18. 만우절 (3)

프라빈은 한때 고대 콜룸 제국의 수도가 있던 도시였다. 그래서 거리 곳곳에는 대리석으로 된 유적들이 즐비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다른 고도(古都)들처럼 사회적 지형 변화의 누적으로 인한 난개발은 이곳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것은 프라빈이 가진 두 가지 특징 때문이었다.

우선 콜룸 제국이 남긴 기반 시설들을 오늘날에도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남긴 건물들은 수백 년 전에 지어진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고 튼튼했다. 그래서 프라빈은 다른 도시들처럼 재개발이나 신도심 건설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았다.

거기에는 콜룸 제국이 남긴 발자취에 대한 프라빈 시민들의 사랑도 한몫했다. 그들은 세계 최초의 제국 수도에서 산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제국이 남긴 벽돌 한 장도 그들은 애지중지했다.

오랜 세월 수많은 군웅과 패자들이 이 도시를 거쳐 갔지만, 그들도 제국의 유산에 함부로 손을 대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권위와 정통성을 지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프라빈이 고색창연하기만 한 도시는 또 아니었다. 구시가지를 둘러싼 순환 도로 바깥의 신시가지는 산업 혁명을 거치며 급격하게 불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철저히 현대적인 도시 계획에 따라 개발되고 있었다.

기존 토지 소유주와 건물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시 당국은 필요하다 싶으면 온갖 규제와 세금을 휘둘러 계획을 강경하게 밀어붙였다. 이는 시 의회를 사회공화주의자들이 장학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수십 년 전, 공화주의 열풍이 전 대륙을 휩쓸면서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봉기가 일어났다. 대부분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래도 그 덕에 많은 도시가 상당히 넓은 자치권을 보장받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프라빈은 특별한 경우에 속했다. 포스투리카 연방은 느슨한 중소규모 국가들의 연합체였고, 연방 정부는 하위 국가의 정치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덕분에 프라빈은 세계의 이름난 사상가, 학자, 예술가들이 모여 그 재능의 꽃을 피우는 도시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그중에 과격한 자들도 있어서 때때로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30여 년 전. 사회주의 급진주의자들이 일으킨 극장 파괴 운동이 대표적이었다.

그들은 서커스나 연극을 피지배 계급이 지배 계급 앞에서 재롱을 떨고 그들의 유흥거리가 되어주는 봉건적인 시대의 구습이라 주장했다. 그들은 시내의 극장에 돈도 내지 않고 쳐들어가 무대에 썩은 토마토를 던지기도 했고, 거리에서 재주꾼이나 마술사, 무희 따위가 보이면 붙잡아 그들의 도구를 부수고 불태웠다. 심지어 그들이 가진 돈을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현혹하고 번 더러운 돈이라며 뺏기도 했다.

그들의 폭거에 원성이 자자했지만,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도 많았기에 그때까지만 해도 시 당국은 그들의 만행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아테레나 노천극장을 부수면서 여론이 바뀌었다.

아테레나 극장은 고대 콜룸 제국 시절에 만들어진 원형 극장으로 프라빈 북쪽의 언덕에 있었다. 그곳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이름난 배우, 음악가, 곡예사들이 머물렀다 간 극 문화의 성지 중 한 곳이었다. 온갖 행패를 부리던 급진주의자들도 그곳만은 함부로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극장 근처에서 가졌던 집회에 주최 측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군중들이 집결했다. 그날도 집회에서는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격론과 연설이 쏟아졌고, 어쩌다 보니 아테레나 극장을 부수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 버렸다.

잔뜩 흥분한 사람들은 그대로 극장으로 몰려가 극장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수백 년을 버텨온 석조 건축물이었지만, 수백 명이 통나무를 들고 공성추처럼 벽을 찧어댄 데다가 일부는 집회에 쓰려고 챙겨온 폭약을 쓰기까지 했으니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콜룸 제국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프라빈의 시민들은 그들의 행태에 분노해 들고 일어났다. 그제야 시 당국은 부랴부랴 경찰들을 동원해 급진주의자들 무리를 소탕했다.

그러나 정작 무너진 아테레나 극장은 바로 복구되지 못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당시 프라빈은 여러 가지 정치적 재정적 위기를 맞고 있었고,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관련 없는 곳에 대규모 토목 공사를 벌일 여력이 못됐다.

그렇게 극장이 폐허로 방치되면서 그곳에는 갈 곳 없는 유랑민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떠돌이 백면극 배우들도 있었다.

백면극이란 키예프 지역의 전통 가면극으로 배우들이 각 신분을 대표하는 인물의 가면을 쓰고 나와 세태를 비판하는 풍자극의 한 종류였다. 백면극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지난 세월 동안 누적된 가면의 종류만 수백 개였기 때문이다.

백면극에는 대단한 무대 장치나 의상이 필요 없었다. 그들은 가면 하나만 쓰면 어느 곳에서든 공연을 펼칠 수 있었다.

천년의 고도를 배경으로 하는 폐허 속에서 펼쳐지는 백면극이 내는 묘한 분위기는 금방 프라빈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오래된 도시의 풍경과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린 유적 사이에서 익살스러운 말을 늘어놓는 가면 배우들의 연기는 프라빈 주민들의 정서를 깊게 자극했다.

나중에 배우들은 유랑민들을 동원하여 노천극장을 자체적으로 정비했지만, 폐허가 내는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했다. 하늘에 걸린 달을 조명으로, 밤하늘을 커튼으로, 도시의 야경을 배경으로, 풀벌레 소리를 반주 삼아 진행되는 밤의 백면극은 프라빈에 들르면 꼭 봐야 하는 공연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렇게 폐허에 뿌리를 내린 백면극이 정식으로 극장의 주인임을 인정받은 것은 고작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일각에서는 서커스 그랑프리의 재개최에 맞춰 어쩔 수 없이 승인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서커스 그랑프리의 예선전이 열리는 6대 극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상설 공연을 펼치는 극단의 존재가 필수적이었다. 포스투리카에는 여러 도시국가가 존재했고, 자기네 도시를 나라의 대표로 세우기 위해 경쟁이 치열했다.

프라빈에는 ‘아테레나 노천극장’이라는 강력한 카드가 있었지만, 이곳을 대표로 세우기 위해서는 백면극단을 그곳의 주인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극단이 10년 이상 상주 중인 것이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여론이 분분했지만, 서커스 그랑프리가 진행 중인 지금에 와서는 불평하는 시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노천극장이 6대 극장 중 하나로 뽑힌 덕분에 관광객도 많이 늘었고 시내의 다른 극장들도 낙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그렇게 20여 년 만에 양지로 나온 백면극단이지만, 외부에 공개된 정보는 많지 않았다. 그동안 적법한 허가 없이 멋대로 공연을 펼쳤던지라 그들에게는 독특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가면 아래의 얼굴이나 이름을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 번 폭도의 수난을 겪어 무너졌던 무대에서 무단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극을 펼치는 그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고 철저하게 정체를 숨겼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배우들은 서로의 신분을 알지 못했다. 각 가면의 주인들은 일인 전승의 방식으로 후계자를 골라 가면을 물려주었다. 배우들은 백면극을 펼칠 때만 가면을 쓰고 모였고, 공연이 끝나면 그대로 해산했다.

어쩌면 이름 없는 극단의 무명 배우가, 명문가의 젊은 아가씨가, 저잣거리의 과일 장수가 가면의 주인일지도 몰랐다. 실제로 정체가 공개된 배우 중에는 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인생을 보내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

백면극은 본인의 가면 역할에만 충실하면 됐다. 전문 연기자처럼 다양한 정체성을 소화할 필요가 없었다. 백면극 스승들은 일상 속 그들의 모습에서 각자의 가면에 어울리는 재능을 발견하고 제자로 삼았다.

“아이고, 영주님! 영주님!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촐싹거리는 걸음새로 무대를 가로지르는 사람은 긴 염수 수염이 달린 가면을 쓰고 있었다. 백면극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인 ‘간잡이 마름’이었다. 그는 힘 있는 사람 앞에서는 비굴해 보일 정도로 굽신거리고 약한 사람들 앞에서는 황제라도 되는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곤 했다.

그의 외침을 듣고 돌기둥 뒤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멍청한 표정의 가면이 뒤뚱거리는 걸음새로 걸어 나왔다. 백면극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면 중 하나인 ‘바보 영주’였다.

그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객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바보 영주는 그들을 보더니. 상종 못 할 것들을 마주했다는 듯 쥘부채를 펼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표정도 없고 대사 한 마디 없었다. 그러나 그의 동작 하나하나가 관객들의 뇌리에 딱 박힐 정도로 적절하게 그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의 야유는 바보 영주의 바보짓에 으레 따라오는 반응이었다. 사실상 그의 등장에 반갑다고 갈채를 보내는 것과 같았다.

“엣헴, 내가 바로 이곳의 영주이올시다.”

관객들을 향한 영주의 인사말과 함께 백면극이 시작되었다.

***

“정말 대단한데? 제국 땅을 지나오면서 백면극은 길거리에서도 보고 극장에서도 봤지만, 이 정도로 대본이 잘 짜인 건 처음 봤어. 사실 가면극이라는 게 보통 대본이 거기서 거기 거든. 그런데 여기는…… 놀라워.”

1막이 끝나고 엘라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방금 본 공연에 대한 평을 쏟아냈다. 언덕을 오를 때만 해도 피로에 찌들어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였는데 공연이 시작되자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미소가 입에서 떠나갈 줄 몰랐다.

“보통 코미디 극본에는 한계가 있어. 작가 중에 희극 작가가 제일 수명이 짧다는 말이 있잖아. 그만큼 웃기는 글을 쓰는 건 어려워. 괜히 광대들이 먹히는 하나만 계속 밀고 나가는 게 아니야. 하지만 여기는 1막만 봐도 온갖 아이디어가 꽉꽉 채워져 있어. 바보 영주와 간잡이 마름, 현자 소작농은 몇 번 봤던 거라 되게 뻔하다고 생각했는데…….”

신나가 떠들던 엘라는 원더스타인이 아무런 반응 없이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말을 멈췄다.

“당신은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나 봐?”

“저 지금 웃고 있는데요?”

“쳇, 언제나 그러면서……. 뭐가 문제인 거야?”

“그게 사실…… 몇몇 농담이 이해되지 않아서요.”

“뭐? 그렇게 어려운 건 없었는데…….”

“소와 쟁기와 세금과 거름의 문제라든가.”

“뭐? 그건 어렸을 때 한 번쯤은 봤을 거 아니야. 농사꾼들이 거름 지게를 맬 때…… 아니, 아니다. 당신은 확실히 그럴 수 있겠다. 코미디는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느끼기 어려우니까. 당신 같은 악마는 느끼기 힘들지도…….”

“너무한데요. 악마라뇨.”

“사실이잖아.”

엘라는 그의 누나들이라는 작자들을 만나고 캇피에게 몇 가지 설명을 들으면서 그의 정체에 대해 이제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는 듯했다. 사실 그녀의 짐작은 방향성은 달랐지만, 사실과 통하는 부분이 꽤 있었다.

그가 이 시대 사람들과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힘들다는 점 말이다. 21세기의 현대사회를 살아온 그가 영주와 마름, 소작인의 관계를 머리로는 이해해도 미묘한 부분까지 심정적으로 느끼기 힘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원더스타인은 그 사실이 별로 아쉽지 않았다. 오늘 엘라를 이곳에 데리고 온 목적을 이미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가 프라빈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온 것은 모두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지난 일주일 동안 우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찰리가 석화가 풀리던 날, 원더스타인과 엘라는 그와 직접 대화를 나누고 오해를 풀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저주가 풀리자마자 두 사람에게 온갖 증오 어린 폭언을 쏟아냈다.

그가 어찌나 험악하고 상스러운 욕을 해댔던지 엘라는 그 자리에 하얗게 질려서 굳어버렸다. 찰리는 그런 그녀를 보고 죄책감과 저열한 쾌감이 뒤섞인 조소를 짓고는 그대로 달아나버렸다.

그날 이후로 엘라는 누군가 건드리기만 하면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표정을 종종 짓고는 했다. 어릴 적부터 함께했던 친구에게 그런 욕을 들었으니 충분히 충격을 받을 만했다.

그렇다고 원더스타인 본인이 그녀를 위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사건의 원인은 그가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좋아하는 공연으로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는데 의도했던 대로 잘 먹힌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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