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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63

EP.462 18. 만우절 (4)

“뭘 히죽대는 거야?”

“그냥요? 달밤의 풍경이 보기 좋아서요.”

“쳇, 싱겁기는…….”

엘라는 자신을 향해 미소 짓는 원더스타인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그녀의 입술은 자꾸 그녀의 통제를 벗어나 곡선을 그리려 했다. 그녀는 그가 오늘 왜 외출을 제안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숙소에 짐을 푼 그녀는 당장 노천극장을 구경 가려 했다. 아테레나는 극 문화의 역사와 함께하는 곳이었다. 길거리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백면극도 빨리 보고 싶었다.

그러나 모두가 장거리 이동으로 피곤해하고 있어서 마땅히 같이 갈 사람이 없었다. 아테레나처럼 인기 있는 극장은 사전에 예매가 없으면 입장이 어려울 확률이 높았다. 어쩌면 왕복 2시간의 헛걸음이 될지도 모르는 시도를 그녀 말고 다른 단원들이 할 리 없었다.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던 차에 원더스타인이 그녀에게 다가와 혹시 이걸 찾고 있지 않냐며 주머니에서 아테레나 극장의 표를 꺼내 보였다. 엘라는 가슴 속에서 그에 대한 애정이 왈칵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그는 ‘기분 전환 겸’ 같이 갔다 오자고 했다. 그것은 그가 요즘 자신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표를 준비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다 파악하고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사소한 배려였지만 그녀는 그와 마음이 통한 데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만족감을 느꼈다. 그러나 티를 내기 싫었기에 이곳까지 오는 내내 피곤해 죽겠는데 그가 졸라서 어쩔 수 없이 간다는 식으로 투덜댔었다.

엘라는 지난 4개월 내내 그에 대한 감정을 무시하려 애썼다. 그것을 인정하면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죽은 친구에 대한 모독이 될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찰리가 살아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원더스타인은 친구를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죽을 뻔한 것을 구해줬다.

덕분에 그녀는 더 이상 찰리에게 부채 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가슴에 무거운 돌 하나를 던 느낌이었다.

거기에는 찰리가 그녀에게 던진 폭언들의 영향도 컸다. 자신을 미워하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찰리가 설마 그렇게 진심으로 사람을 깔아뭉개는 듯한…… 그렇게 저열한 욕설들을 던질 줄은 몰랐다.

그때, 2막의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가 울렸다. 엘라는 다시 무대를 향해 시선을 돌리려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원더스타인을 향해 속삭였다.

“그런데 당신 괜찮겠어? 오늘 이거 4막까지 있다는데? 밤 10시는 넘어야 끝날 거야.”

“괜찮아요. 저는 극장이랑 배우 구경만 해도 즐거운걸요.”

원더스타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테레나 노천극장은 TT2에 등장하는 여섯 개의 메인 스테이지 중 하나였다. 특히 이곳의 배우들에 대해 그는 다른 극장의 사람들보다 특별히 더 큰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TT2에는 스테이지마다 숨겨진 도전 과제가 존재했다. 장미 풍차 카바레의 경우는 거미줄 같은 하수도를 탐사하는 것이었고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의 경우 광장 바닥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타레나 노천극장은 이곳의 주역 배우 60명의 명부를 모두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추리 게임이라 할 수 있었다.

노천극장의 배우들은 모두 가면으로 신분을 숨기고 있었기에 그들이 어떤 인물들이었는지 동료 배우들조차 알지 못했다. 극장의 유일한 생존자는 그들의 생사를 알고 싶다고 플레이어에게 60칸의 명부를 건네며 모두 채워올 것을 요구했다.

그중 일부는 살아 있었고, 일부는 괴물이 되었고, 일부는 죽어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맵에 남아 있는 사소한 실마리들을 수집하여 어느 가면의 주인이 누구인지 밝혀내야 했다.

예를 들어 어느 화재 현장을 조사하면 바닥에 정확히 오른쪽 절반만 불탄 가면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시청의 시체 안치소에 가면 신기하게도 정확히 오른쪽 반신만 불탄 시체가 부검대 위에 누워 있었다. 바닥에 고인 기름 위로 넘어졌다가 정확히 기름에 젖은 반만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거기서 안치소에 붙어 있는 이름표를 찾아 명부에 해당 가면의 주인으로 이름을 적어 넣으면 하나 달성하는 식이었다.

그 외에도 시장 저택에는 어느 가면의 주인이 시장으로부터 트로피를 받으며 함께 찍은 사진이 남아 있는데, 생존자 캠프에서 거지꼴을 한 인물이 트로피를 애지중지 안고 있다든지. 매일 아침 9시에 어느 카페에서 무조건 애플파이를 먹는다던 가면의 주인은 괴물이 되어서도 아침 9시만 되면 해당 카페에 나타나 어슬렁거린다든지.

거침없이 적들을 깨나가다가 여기서 갑자기 추리 게임에 푹 빠져서 수십 시간을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단순한 논리로 문제를 푸는 식이라면 지루하겠지만, 60명의 가면 뒤에 각각 어떤 인생이 있었고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지켜보는 드라마 적인 요소 덕분에 몰입감이 높았다.

“저 두 사람 진짜로 사귀는 것 아닐까?”

엘라는 무대에서 서로 미워하는 연인 연기를 하는 두 가면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눈썰미에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연정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이 실제로 가면을 벗고 사귀게 되는 것은 몇 년 뒤의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둘은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가면 아래의 서로의 모습에 실망해 금방 헤어지고 말았다.

부부와 연인과 친구를 주제로 한 2막이 끝났다. 엘라는 보통의 연극에서는 보기 힘든, 현실적인 날것의 감성이 많이 들어가 있는 그들의 연기에 감탄했다. 아무래도 전문 연기자들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있는 덕분에 극본이 풍부해질 수 있는 것 같다고 그녀는 촌평했다.

그렇게 도시화와 이촌향도 현상에 관한 3막을 거쳐 가족에 대한 4막의 내용을 끝으로 백면극이 마무리되었다. 관객들은 무대 위에 올라온 가면 배우들에게 갈채와 환호를 보냈다.

나오는 길에 엘라는 매점에 들러서 기념품으로 가면 하나를 샀다. 그것은 2막에서 여자 연인 역을 맡았던 사람의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들고 잠시 주저하더니 곧 남자 연인을 맡았던 사람의 가면도 샀다.

“이건?”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내미는 가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더니 새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돈으로 사는 거야. 푯값 대신! 입장권 당신 개인 돈으로 산 거잖아.”

“그렇긴 하지만, 그냥 제 부단장에 대한 개인적인 선물로…….”

“시끄러워! 당신에게 빚지는 건 사절이야. 어서 받아!”

그녀의 강권에 원더스타인은 못 이기는 척 가면을 받아들었다.

사실 그도 나오는 길에 기념품 매점에 눈이 갔었다. 다른 극장의 잡동사니들과 달리 이곳의 기념품인 가면들은 그가 60명의 명부를 작성하기 위해 도시를 뛰어다니면서 사연을 파헤쳤던 물건들이었다. 하나쯤은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그녀가 선물해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래. 그거 보면서 항상 내 생각이나 해.”

“엘라 양 생각을요?”

“가, 감사하라는 소리였어!”

그녀는 빽 소리를 지르고는 손에 든 가면을 썼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향해서도 어서 쓰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자, 당신도 써 봐.”

“굳이 여기서요?”

“선물해준 옷은 바로 입어보는 게 예의잖아?”

원더스타인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가면을 썼다. 그러자 엘라는 기다렸다는 듯 백면극 특유의 흐느적거리는 동작을 취하더니 입으로 효과음까지 내며 팔을 내밀었다.

“팔짱을 낄까요, 단장님?”

아하, 무대에서 본 걸 따라 하고 싶었구나. 원더스타인은 엘라가 뭘 바라는지 비로소 깨닫고 기꺼이 팔을 내밀었다.

“얼마든지요, 부단장님.”

두 사람의 키 차이는 20cm나 났지만 엘라가 원더스타인의 어깨에 거의 기대듯이 붙는 걸로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엘라의 가면 아래에서 ‘히힛’, ‘킥킥’하는 소리가 반복되어 나오는 것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나 좋은가. 역시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는 데는 공연 관람만 한 게 없는 것 같았다.

***

3월 31일. 프라빈에 온 지 이틀째가 된 괴물서커스단은 아침부터 짐 정리를 하느라 바빴다. 그들이 잡은 숙소는 구도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고풍스러운 양식의 5층짜리 아파트였다.

프라빈 시 정부가 공공임대주택을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지어대자 월세가가 폭락하면서 건물주들은 다른 방식으로 활로를 찾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렇게 건물을 숙박시설로 개조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관련법의 규정을 교묘히 회피해 건물에 상주하는 직원을 두지 않음으로써 이것을 숙박업이 아닌 임대업이라고 우겼다. 여러 가지 세금과 봉사료가 붙은 호텔보다 숙박료가 쌌기에 많은 여행객이 이런 방식으로 방을 빌려 묵고는 했다.

괴물서커스단은 결과적으로 황실 비자금을 손에 넣지 못했다. 원래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게 몰래 그것들을 처분할 생각이었는데, 인형의 집 사건과 뱀 마녀의 정계 복귀 때문에 이목이 쏠리면서 그러려면 최소 몇 개월은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라테나가 돈을 지원해준 덕분에 서커스단 형편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막 사치를 부릴 정도는 못됐다. 특히, 시험에 치르는 동안에는 열차를 타고 이동할 때처럼 공연을 통해 돈을 충당하기 힘들었기에 아껴 써야 했다.

그런 이유로 잡게 된 아파트는 상당히 크고 아늑했다. 다만, 이런 숙소의 단점은 모든 일을 숙박객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원들이 아침부터 숙소를 청소하고 정돈하느라 바쁜 것은 모두 그 때문이었다.

그들이 일을 마친 것은 해가 다 기울어질 무렵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원더스타인은 단원들을 모두 모아 놓고 오늘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 뒤, 앞으로의 일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먼저 아테레나 노천극장의 시험이 화제에 올랐다. 가장 중요한 문제였으나 막상 토의하려고 해도 나눌 거리가 없었다. 아테레나의 시험은 과제가 매번 바뀌기 때문에 대비라 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제는 금방 만우절로 넘어갔다. 그들은 서커스 그랑프리 측에서 만우절로 어떤 이벤트를 준비했을지 즐겁게 떠들어댔다. 그때, 가만히 눈치만 보고 있던 클라라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소리쳤다.

“우리끼리도 간단하게 이벤트를 하는 건 어떨까요?”

“이벤트? 어떤?”

“역할 바꾸기 게임이요! 만우절에는 많이들 하잖아요.”

단원들이 좋다고 그녀에게 호응을 보냈다. 엘라는 아테레나 극장의 시험을 미리 치러보는 용도로 괜찮을 것 같다고 한마디 덧붙였다. 연기력은 그곳의 시험을 통과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클라라는 미리 준비한 상자를 꺼냈다. 거기에는 각자의 이름이 적힌 종이들이 담겨 있었다.

“오, 준비까지 해왔어? 뭔가. 본격적이네.”

“잠깐, 트라이머리 형제들의 이름이 나오면 어떡하지?”

“그러면 그 셋은 하루 내내 붙어 다녀야지.”

“아하.”

단원들은 돌아가며 이름표를 하나씩 뽑았다. 한 명 한 명 이름이 나올 때마다 왁자지껄 대소가 터져 나왔다.

“저는 클라라 양이군요.”

“앗, 신기하네요! 저는 마침 단장님이 걸렸어요!”

“한스텐과 세브람도 서로 이름이 바뀌었어!”

“머리 오른쪽과 왼쪽이 바뀐 거잖아?”

“크핫핫, 무슨 차이인가 그게!”

그렇게 역할 분배를 마친 단원들은 내일 아침 식사하러 모인 순간부터 놀이를 시작하기로 약속하고 이만 방으로 올라갔다. 원더스타인은 침대에 누워 클라라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만지작거리며 미소 지었다.

그는 이것이 왠지 부적처럼 느껴졌다.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내일은 클라라가 돼야 했다. 그 말인즉슨 진짜 원더스타인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됐다.

그는 그것을 품에 안고 눈을 감았다. 아무 일 없겠지. 그는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잠에 빠져들었다.

그가 눈을 뜬 것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녘이었다. 그는 바로 상태창을 확인했다.

4월 1일 4시 10분. 시간의 건너뜀 같은 것은 없었다. 아무것도 바뀐 것도 없었다.

‘괜히 긴장했군.’

잠을 다시 청할까 아니면 이만 일어날까 고민하던 찰나, 원더스타인은 머리를 강타하는 충격에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으악!”

그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는 얼얼한 뒤통수를 감싸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몸의 균형이 맞지 않았다. 관절 곳곳이 망가진 것처럼 삐걱거렸다.

“뭐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흡 하고 다물었다. 목소리조차 이상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이건?”

그는 그제야 방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깨어난 방은 그가 어제 잠들었던 방과 구조가 거의 비슷했지만, 세부적인 면에서 달랐다.

짐도 짐이지만, 그가 잠자고 있던 침대에는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누워 있었다. 바로 루엘로였다.

“우웅, 배불러, 언니. 그만 먹여.”

그녀는 몸을 뒤척이며 잠꼬대를 해댔다. 방금 그의 머리를 걷어찬 것도 그녀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가 알기로 그녀는 클라라와 같은 방을 쓰고 있었다.

“설마?”

단서들이 맞춰지며 그는 충격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화장대에 있는 거울을 들여다봤다.

그곳에 원더스타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푸른 머리칼의 여인이 서 있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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