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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63

462화.

난 구치소 면회를 끝마치고 회사로 돌아왔다.

택규가 물었다.

“선배님께서는 잘 지내신대?”

“걱정은 안 해도 되겠더라.”

당연하지만, 재벌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 설사 유죄가 나오더라도 정권이 바뀐 뒤 사면되거나 길어야 한 1, 2년 살다 가석방 되겠지.

이걸 사법정의는 살아있다고 해야 하나, 재벌특혜라고 해야 하나?

법을 지키기만 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지만…… 그러면 임진용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세금 안 내고 자식에게 잘나가는 회사를 물려주려다 보니 생기는 문제다.

내 회사 내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이 말은 애초에 전제부터가 틀렸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회장님이 아니라 주주니까.

외국에서는 창업주가 경영을 잘못하면, 이사회나 주주총회에서 쫓겨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딱히 잘못이 없더라도 더 잘할 것 같은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기 위해 해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에서 만큼은 CEO를 해임하는 일을 죄악처럼 취급한다. 자녀에게 경영권을 세습하는 게 너무 당연해서 그런가?

“그럼 넌 나중에 자식 낳으면 경영권 안 물려줄 거야?”

“당연하지. 엘리 역시 동의했어.”

자식에게 물려주면, 자식은 또 자식에게 물려주고…… 그런 식으로 천년만년 경영권을 세습해 나갈 것도 아니고.

“뭐, 그때까지 내가 경영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거고.”

“응? 은퇴하게?”

“언젠가는 하겠지. 우리나라 회장님들처럼 관 속에 들어갈 때까지 경영할 건 아니잖아.”

이미 OTK컴퍼니의 규모는 말도 안 되게 커졌다. 종속기업의 경영에 개입하지 않고 알아서 하게 놔두려고 하고 있음에도 복잡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나마 미래를 보기 때문에 잘해나가고 있지만, 나중에는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보면 회사를 만들어 성장시키는 것보다, 알맞은 시점에 후계자를 선정하고 물러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지.

* * *

달력이 11월로 넘어가며,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의 문제가 생겨났다.

먼저 그동안 한일관계 최대쟁점이었던 강제징용 배상이 확정되었다. 한국정부의 제안에 따라 한일기업들이 자금을 출연해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했다.

정확한 비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략 한일청구권협정의 혜택을 받은 한국기업 2, 강제징용 일본기업이 8을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율이 이렇게 크게 올라간 것은 외교부 쪽에서 내 이름을 열심히 팔아가며 협상한 결과다.

배상금이 지급되자, 당시 소송에 참여했던 생존자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불렀다.

택규가 말했다.

“진작 줬으면, 금방 끝났을 것을.”

“사실 애초부터 돈은 큰 문제가 아니었어.”

다만 일본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게 끝났다는 입장인 만큼 절대 ‘배상금’ 명목으로는 지불할 수 없다고 버텼는데, 이번에 어쩔 수 없이 입장을 굽혔다.

택규가 물었다.

“정말로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게 다 끝난 거야?”

“그건 해석의 차이가 좀 있지.”

문서라는 게 모든 내용을 다 담기는 힘들고, 단어 하나에도 해석이 엇갈린다. 그래서 일본은 자기들 유리한 대로 해석 중이다.

“처음부터 계약을 잘 맺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던 거 아니야?”

“그땐 상황이 어쩔 수 없었잖아.”

청구권협정을 맺을 당시 한국은 한국전쟁으로 국토전체가 초토화된 최빈국이었던 반면, 일본은 패전 이후에도 여전히 강대국이었다. 한국전쟁 특수로 전후 경제부흥이 시작됐기도 하고.

결국 돈이 필요한 한국과 빨리 배상을 마무리 하고 싶어 하는 일본의 입장이 맞아 떨어지며, 협정은 마무리됐다.

웃기는 사실은 이것조차도 침략국이 피해국에게 한 배상 중 최대액수라는 것이다.

식민지배를 했던 열강들 중 피지배국에게 이 정도 배상을 해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는 당연히 일본이 패전국이었기 때문.

그렇다고 이러한 배상이 일본에게 일방적인 손해였냐면, 그건 또 아니다. 배상을 받은 나라가 경제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각종 소재와 부품, 자재, 기계 등을 구입해야 한다. 마침 가까운 곳에 그런 것을 매우 잘 만드는 나라가 있으니, 바로 일본이다.

배상금은 다시 일본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갔고, 그 나라가 성장함에 따라 수출시장도 확대됐다.

그동안 일본이 한국과의 무역을 통해 벌어들인 돈에 비하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지불한 금액은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다.

어떻게 보면 서로 윈윈 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

어쨌거나 오랜 세월 묵혀온 문제가 끝나며, 양국 모두 한숨 돌리는 분위기였다.

비록 배상은 이뤄졌지만, 일본은 여전히 정부 차원의 사과는 하지 않았다. 또한 위안부 문제 역시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이전까지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 온갖 막말을 하던 일본정부는 이제는 아예 언급을 피했다.

강제징용 배상에 대해 일본정부가 무릎을 꿇었다는 비판이 일자, 일본 각료들은 또 다시 A급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오카자키 총리는 직접 참배하지는 않았지만 공물을 보냈고, 연초에는 참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과 중국정부가 항의하자, 일본정부는 아예 못 들은 척 대꾸도 하지 않았다.

* * *

또 하나의 문제는 북한에서 생겼다.

[(속보) 김 위원장,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지시!]

[북측, 금강산 시설 철거 후 독자개발에 나설 것]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물 싹 들어내라 명령]

[대남 의존적인 금강산 개발은 전임자들의 잘못된 정책 수립에 있다고 비판]

[북한, 한국정부과 기업에 공식적으로 철거요청서 보내]

금강산 관광은 남북경협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금강산 관광은 한국인이 북한 땅을 밟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러나 관광객 피격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은 중단됐고, 호텔과 각종 시설은 동결에 들어갔다.

허창민 정부가 들어서고, 남북관계가 해빙모드에 접어들며, 최근 관광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높아졌는데, 갑자기 북측에서 시설철거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봤냐? 이게 북한 클래스다.

-ㅋㅋㅋ 건축에서 주체를 세워 민족제일주의,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철저하게 구현 ㅋㅋㅋ 지랄한다.

-어허!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한 자본주의 기업들의 건축물을 싹 들어내고, 그 자리에 인민의 힘으로 근로인민대중의 요구와 지향을 구현한 현대적이고 사회주의적인 봉사시설을 지어, 이 둘의 본질적인 차이를 종합적이고 직관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하시는데…… 이게 뭔 개소리야?

-이 꼴 보고도 남북경협하자는 놈들은 뇌가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이게 바로 북한의 현실이다. 도적떼만도 못한 놈들이다!

-철도랑 가스관? 웃기고 자빠졌네.

-냅둬요. 허프가 퍼주고 싶다는데.

-그런데 북한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임?

-ㅎㅎ 난 알겠는데.

-최고존놈께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뺨 맞고, 금강산에 화풀이 하러 갔음ㅋㅋㅋ

기사를 보던 택규는 나에게 말했다.

“이거 아무리 봐도 너 때문인 것 같지 않아?”

“응?”

“니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최고존엄의 심기를 건드려서 금강산까지 불똥이 튄 거 아냐? 이래서 비소츠키 대통령과 허창민 대통령 바람대로 철도랑 가스관 건설을 할 수 있겠어? 나중에 철도랑 가스관도 뜯어가라고 하면 어떡해?”

“설마…….”

“설마는 무슨 설마? 얘들이라면 거기 들어간 철 다 뜯어내서 토법고로에 넣어서 녹일 수도 있어.”

“…….”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

금강산관광은 북한의 중요 외화벌이 수단이자, 경제협력의 성공 모델. 지금이야 중단 상태지만,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재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철거하라고 하는 걸 보면, 정말이지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다.

이런 나라랑 뭔 일을 같이 하겠나?

정말로 남북경협은 불가능한 일인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갑자기 시야가 멀어지며 눈앞에 뭔가가 떠올랐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택규가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으헉! 저리 가!”

“이번엔 뭐야?”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은 방법이 하나 생각난 것 같아.”

택규는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그건 니가 생각해낸 게 아니라 예지가 알려준 거 아니야?”

“…….”

그게 그거지.

* * *

북한 측의 일방적인 금강산 시설 철거 통보에 통일부와 외교부는 또 다시 난리가 났다.

통일부는 장관이 주제하는 긴급회의를 열었다.

“당장 강제철거를 시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눈치도 봐야 하니까요.”

“만약 강제로 철거한다면, 어느 외국기업이 앞으로 북한에 공장을 짓겠습니까?”

북한에 위치해있다고 해도 건물 등의 시설물은 엄연한 남측 자산이다. 북한 측도 그걸 알기 때문에 남측에게 자진철거를 떠넘겼다.

니들 자산이니 니들이 알아서 다시 가져가라는 것이다.

‘강제철거를 하고 싶어도 그럴 돈이 없을 테고.’

북측의 철거통보가 진심은 아닐 것이다. 이건 그냥 ‘우리가 이만큼 화가 났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였다.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이라고 봐도 좋다. 이 전술의 문제는 잘못하면 정말로 벼랑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거지만…… 하지만 어차피 북한은 지금 상황에서 더 나빠질 것도 없다. 이래서 가진 것 없는 놈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법이지.

“실무회담 요청에 대해서는 뭐라고 합니까?”

“북측이 회담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서면으로 의견을 교환하자고 통보해왔습니다.”

윤제훈 통일부장관이 물었다. 속으로 혀를 찼다.

‘회담개최부터 우리가 매달리는 모양새를 만들어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생각이로군.’

이미 수차례 했던 방식이라 놀랄 것도 없었다.

“북한이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그 질문에 회의장 안에 갑자기 조용해졌다.

다들 머릿속에 한 사람을 떠올렸지만, 누구도 그 이름을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외교부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김성철 외교부장은 또다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니, 강진후한테 처맞고 왜 우리한테 화풀이 하는데?’

외교문제는 외교부 소관이지만, 그 외교 상대가 북한이면, 통일부 소관이다. 따라서 외교부는 상황파악에만 주력했다.

국정원과 주중한국대사관 등과 연락을 취하고 있는데, 보좌관이 다가와 말했다.

“전화가 왔습니다.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김성철 외교부장관은 고개를 저었다.

“나보다 위 아니면,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걸겠다고 해.”

“어, 음…….”

보좌관이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자, 그는 고개를 들며 물었다.

“나보다 위야, 아래야?”

“그, 그게…….”

행정부가 아니라 입법부까지 포함해도 장관보다 위는 몇 명 안 된다. 그런데도 보좌관은 ‘살면서 이렇게 난감한 질문은 처음이었다’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구 전화인데?”

“강진후 대표입니다.”

“…….”

이 정도면 고민할 만하다.

김성철 외교부장관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강진후 대표님. 어쩐 일로 연락을 다 주셨습니까?”

* * *

난 김성철 외교부장관을 만났다.

“제가 청사로 찾아가도 되는데요.”

“아닙니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요. 지금 상황에서 괜히 언론에 알려지면, 억측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관용차가 아닌 개인차를 타고 왔고, 로비에서 내리는 대신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올라온 건가?

“바쁘실 텐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대표님께서 보자고 하신 걸 보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만한 이유 없이 불렀으면, 가만히 안 있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기사를 봤는데, 정부에서는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이게 저희도 참 난감한 상황입니다. 아시다시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북회담을 통해 북한과 경제협력을 진행할 예정이었고,논의사항 중에는 금강산 관광 재개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은성금강의 한병선 사장도 왔었던 거군요.”

“예. 그런데 회담이 결렬되는 바람에 북측에서도 실망이 큰 것 같고, 그렇다 보니 괜히 금강산 시설물을 트집 잡으며 강짜를 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여러가지 일로 김 위원장의 기분이 크게 상했다는 얘기도 좀 있어서…….”

택규는 날 가리켰다.

“그냥 얘 때문이라고 말씀하세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김성철 외교부장관은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뭐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북한 측에서 직접 언급은 안 하고 있지만, 대표님께서 사과나 유감이라도 좀 표명했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사과하면 잘 해결될까요?”

김성철 외교부장관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럴 것 같지도 않습니다. 잘못하다가는 끌려만 다니다가 끝날 수도 있으니까요.”

“정부는 나진-하신 프로젝트와 연계한 철도와 가스관 연결 사업을 진행할 생각이죠?”

내 물음에 그는 한숨을 내쉬며, 속내를 드러냈다.

“지금 상황에서는 가능할지 저조차도 의문이 듭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북측 실무자를 한번 만나서 얘기를 좀 했으면 하는데, 가능할까요?”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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