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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64

EP.463 18. 만우절 (5)

그는 거울 앞에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봤다. 손으로 얼굴을 더듬어 보기도 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모든 감각이 이것이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클라라의 몸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윽!”

살짝 몸을 움직였을 뿐인데 몸 여기저기서 통증이 올라왔다. 꽉 죄는 옷을 입고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혼과 몸의 거부반응이라는 것일까?

원더스타인의 몸에 익숙한 그에게 있어서 육체의 고통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는 아픈 부위가 모두 평소에 클라라의 몸을 정비해줄 때 자주 만졌던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즉, 지금 그가 느끼는 고통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온 부작용이 아니라 클라라 본인이 평소에 겪던 것이라는 말이 됐다.

그녀의 몸을 치료해준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이 정도 통증이라니. 그녀는 이런 걸 늘 달고 살았던 건가.

그는 거울에 비친 클라라의 인상이 평소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무래도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돌이켜 보면 그녀는 서커스단에 있는 시간 대부분을 웃고 지냈다. 치료하는 와중에도 마찬가지였다. 피부가 갈라지고 관절이 부서지고 있는데도 그녀는 바보처럼 웃어댔다.

-히힛, 괜찮아요. 단장님이 만져주니까 기분 좋아요.

지금까지 그는 그녀가 겉으로 보이는 증상에 비해 고통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늘 참고 있는 거였다.

어쩌면 그녀가 평소에 툭하면 비명을 내지르고 우는소리를 한 것도 그런 고통을 참는 과정에서 나왔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자신은 그런 것도 모르고 마냥 그녀가 엄살을 피운다고 생각했었다. 갑자기 마음이 숙연해졌다.

물론 클라라 본인이 이런 그의 생각을 알았다면 바로 부정해줬을 것이다. 플라스크 안에서만 겨우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래의 ‘실패작’ 육체에 비하면 인간의 몸은 그녀에게 편안한 쿠션과도 같았다.

원더스타인은 일단 자신의 방으로 가서 본인의 몸부터 확인해보기로 했다. 혹시 진짜 원더스타인이 몸에 들어온 반작용으로 자신이 클라라의 몸에 붙은 거라면 좋지 않았다.

“우웅, 언니, 어디 가?”

그가 움직이는 소리에 잠이 깬 루엘로가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클라라의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보고 어깨를 움찔 떨었다.

“왜 그래, 언니? 표정 무서워. 어디 아파?”

“아닙니다, 루엘로 양.”

그는 자신도 모르게 평소처럼 말하고 말았다. 루엘로는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말투? 아, 맞다. 언니, 오늘 단장님 역할이었지. 벌써 역할 놀이하는 거야?”

“아, 아냐. 나도 모르게 연습하다가 실수로……. 넌 그냥 자.”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말하는 이 어색한 기분은 오랜만에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딱 1년 만의 일이었다.

루엘로는 침대 위가 허전한 게 마음에 안 드는지 울상을 지었다.

“힝, 엄마 베개하고 싶었는데…….”

그 순간 원더스타인은 루엘로의 단원 퀘스트가 눈앞에 뜨는 것을 확인했다. 그 내용을 읽어본 그는 엄마 베개라는 것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자는 걸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다.

민망하기 짝이 없는 부탁이었다. 그는 그녀의 요구를 거절하려다가 이내 마음을 바꿨다.

일단 상태창이 그에게 퀘스트를 주는 것을 보면, 자신을 원더스타인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퀘스트의 달성이나 보상도 제대로 들어올까?

“알겠습니…… 아니, 알겠어, 루리. 같이 자자.”

그는 침대에 다시 누웠다. 그리고 품에 안겨드는 루엘로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헤헤, 좋다. 언니 가슴.”

루엘로는 클라라의 풀린 잠옷 단추 사이로 손을 집어넣더니 그녀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거기에 머리를 박고 마구 비벼댔다. 그녀의 숨결이 그의 가슴골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는 처음 느껴보는 이질적인 감각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원래 몸으로 이런 짓을 했다간 미노바가 날 죽이려 들겠지.’

그는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다행히 루엘로는 곧 쩍 하품을 하더니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의 머리카락도 비슷한 동작을 취하고는 축 늘어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알림음과 함께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소식이 떴다. 보상 역시 약속한 그대로 들어왔다.

그러나 다른 상태창의 기능들은 먹통이었다. 단원들의 평균 호감도 보상이나 서커스단의 명성 보상도 작동하지 않았다. 진화 연구소 기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현재 데볼루트를 조작할 수 없었다.

그는 클라라의 방을 나와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원더스타인 명패가 걸린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의 몸을 차지한 사람도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우와!”

그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을 보고 감탄사를 내뱉는 원더스타인의 얼굴과 마주쳤다. 그는 한눈에 클라라가 그의 몸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었다.

“클라라 양인가요?”

“단장님!”

클라라는 그를 와락 껴안았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것이었던 몸에 안기다니. 묘한 기분이었다.

그는 자신을 향해 싱글대는 원더스타인의 얼굴을 바라봤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잘생기긴 확실히 잘생겼다.

그는 원더스타인의 몸에 빙의하고 나서 진단 기능을 통해 사람을 몸을 살피는 게 버릇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사람을 겉모습이 아닌 세포와 조직의 복합 유기물로 인식하게 되었다.

해부도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바이오맨서 특유의 감각 때문에 사람을 보고 아름답다거나 멋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모든 외모가 생물학적 데이터의 표본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능력을 잃고 나니 비로소 사람의 외양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원더스타인의 얼굴은 같은 남자인 그가 봐도 반할 정도로 잘생겼다.

“이것 좀 놓아주시겠습니까?”

갑자기 그는 클라라에게 안겨 있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의 체취, 숨결, 촉감을 생화학적 신호가 아닌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오랜만의 일이었다.

“헤헤, 죄송해요. 너무 신기해서 말이에요.”

금발의 미남자는 헤픈 웃음을 지으며 혀를 날름거리더니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 모습은 얄미우면서도 매력적이었다.

원더스타인은 그동안 자신이 장난칠 때마다 아나이스와 유라크네가 그 같은 말을 던졌던 이유를 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젓고는 평정심을 회복하려 애썼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 가는 게 있습니까?”

“아무래도 우리가 벌인 일이 뭔가 주술적 작용을 한 것 같아요. 4월 1일이기도 하고…….”

거기에 원더스타인 자신이 키르쿠스의 사도라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그가 만우절을 불안하게 여겼던 이유도 이러한 일이 벌어질까 봐 그랬던 것이었다. 비록 진짜 원더스타인이 돌아온다는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난감한 건 마찬가지였다.

“만우절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까요?”

“흠, 그러지 않을까요? 뭐, 아닐 수도 있겠지만.”

클라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눈빛에 깃든 광기를 읽지 못했다.

대신 그는 그녀의 몸을 살피는 데 집중했다. 그녀는 자신과 달리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제 몸은?”

“아주 마음에 들어요.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느낌이에요! 이것 볼래요?”

클라라는 화병에 담긴 시든 꽃 한 송이를 손에 쥐었다. 그녀는 과거 플라스크에 있을 때 데볼루트를 다루던 감각을 끌어내 속으로 주문을 외었다. 그러자 시든 꽃이 손에서 활짝 피어났다.

“짠! 단장님이 하던 것과 똑같은 일을 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몸이 펄펄 날아다니는 게 즐거운 거 있죠?”

클라라는 제자리에서 공중제비를 몇 바퀴 돌아 보였다. 원더스타인의 육체는 이미 인간을 초월했다. 그녀에게 그 정도 동작은 숨 쉬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단장님은 제 몸 어떠세요? 괜찮은가요? 어디 불편한 데 없고?”

“네. 괜찮습니다.”

원더스타인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도 그동안 참고 지냈는데 자신이 여기서 아프다고 징징댈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클라라가 기뻐하는 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정상적인 몸을 가지고 싶다는 욕구는 그가 누구보다 깊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마 자신이 이 세계로 건너와서 처음으로 걸음을 익혔을 때처럼 그녀도 말로 표현하기 힘든 해방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일단 오늘은 이렇게 하루를 보내 보죠. 내일 원래 대로 돌아가면 안심입니다.”

“좋아요! 아, 맞다. 단장님, 그러면 이왕 온 김에 저랑 같이 씻는 것 어때요? 혹시 모르는 게 있으면 제가 몸 구석구석 가르쳐 드릴 수도 있는데?”

그녀가 불쑥 그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원더스타인은 자신과 그녀가 나신으로 목욕하는 상상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웃는 남자의 방어벽도 바이오맨서의 능력도 없는 그에게 그녀의 이런 접근은 당혹스러웠다.

“그,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당신 몸은 제가 워낙 많이 다뤄봤지 않습니까? 잘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청발의 여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방을 나갔다. 금발의 남자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올리며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헷, 부끄러워하는 건가. 의외로 귀엽잖아, 단장님.”

클라라는 탁자 위에 놓인 원더스타인의 이름이 적힌 종이쪽지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소파에 등을 기대어 그것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어쨌든 작전 성공.”

이번 일은 모두 그녀가 꾸민 일이었다. 만우절, 주술 의식, 그리고 최근 1주일 동안 원더스타인에게 음료를 가져다주는 척하면서 먹였던 약품들. 그리고 인형의 집에서 대량으로 공수해 온 별빛. 그 모든 것을 기반으로 짠 육체 교환 주술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키르쿠스의 사도라는 것과 그와 그녀가 영혼의 남매라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 그 두 요소가 없었다면 아무리 그녀라도 원더스타인의 혼을 떼어내는 짓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클라라는 인형의 집에서 원더스타인의 목표를 들었을 때부터 어떻게든 그를 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두 언니가 오빠에게 너무 무르게 굴었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를 살리고 싶은 거라면 그의 뜻을 꺾어서라도 그를 붙잡는 게 맞았다.

‘겨우 생긴 가족인데 누가 죽게 내버려 둘 줄 알고.’

원더스타인은 내일이면 주술이 풀릴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클라라는 그러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주술은 몇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채우거나 양쪽 다 원래 몸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으면 풀리지 않았다.

‘오라버니는 내 거야. 내 하나뿐인 오빠라고.’

그녀는 오빠가 현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길 바랐다. 그럴 수 없다면 그를 강제로 굴복시키고 절망을 학습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라도 그에게 목줄을 채울 생각이었다.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나 이만 욕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앞으로 자신이 벌일 일들을 상상하며 즐거운 콧노래를 불렀다.

그녀가 샤워하는 사이, 찢어진 방충망 사이로 나비 한 마리가 들어왔다. 녀석은 방금 클라라가 되살렸던 꽃의 생생한 향기에 이끌려서 들어온 것이었다.

녀석은 꽃 위에 몸을 안착시키고 말린 입을 쭉 뻗어서 꽃 안의 꿀을 빨아 먹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꽃잎들이 활짝 펼쳐지며 이빨의 형태로 변하더니 나비의 몸을 집어삼켰다.

꽃은 짐승의 아가리처럼 나비의 몸을 말 그대로 씹어 먹었다. 나비의 몸은 순식간에 부스러졌다.

잠시 후, 꽃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그 잎을 펼쳤다. 그곳에 나비가 갔다간 흔적은 바닥에 떨어진 한 장의 날개뿐이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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