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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65

EP.464 18. 만우절 (6)

서커스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새로운 숙소에 도착하면 서로 엇갈리는 일이 없도록 기본 일정표를 짜서 걸어놓는 게 원칙이 됐다. 어제도 숙소의 청소를 끝내고 다들 일정표를 작성해서 걸어둔 참이었다.

4월 1일 아침. 단원들은 식사가 시작되기 전에 식당 앞 게시판 걸린 서로의 일정표를 눈에 담았다. 역할을 바꾸겠다고 한 것은 소꿉놀이나 하자는 게 아니었다. 하루만 서로의 일정을 바꿔서 수행하자는 말이었다.

“핫핫, 저는 엘라 양이니까…… 단장님과 자작님이랑 오늘 극장에 가서 만우절 이벤트가 뭔지 확인해야 하는군요. 아, 그럼 클라라 양과 설리반 씨랑 가야 하는 건가요?”

“보자. 내 역할은 우몬이니까, 나는 오전에 칼슨 씨에게 마사지를 받기로 되어 있군. 칼슨 씨 역할이 누구였지?”

“도스빌 아저씨, 저예요! 저!”

“꼬맹이가……. 제발 살살 부탁한다.”

그렇게 서로 일정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던 단원들은 곧 계단을 내려오는 한 사람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은빛이 도는 새하얀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 그리고 인형 같은 이목구비는 분명 그들이 알고 있는 마야였다.

그러나 그녀의 키는 평소보다 15cm는 더 자라 있었고, 무엇보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질량감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는 가슴팍의 단추를 풀고 가슴골을 드러내고 있기까지 했다.

“저기…… 마야……? 너는 유, 유라 언니 역할이었지? 그러니까…… 오, 오늘은 그냥 일정만 바꾸는 거지, 겉모습은 안 바꿔도 되는데……?”

엘라의 말에 마야는 무표정한 얼굴로 식당에 모인 단원들을 돌아봤다. 다들 그냥 평소의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몸매와 복장까지 바꾼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그러다 그녀는 식당 구석에 서 있던 원더스타인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그녀를 보고 당장이라도 웃음을 터트릴 것처럼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마야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위층으로 튀어 올라갔다. 식당에는 잠시 침묵이 돌았다. 주방에서 요리하던 유라크네는 밖이 조용해진 것을 이상하게 여겨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잠시 후, 마야가 평상복차림으로 내려왔다. 평소와 다름없는 그대로였다. 스벤이 방금 일에 대한 농담을 던지려다가 마야가 찌릿하고 노려보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클라라 님은 오늘 심기가 많이 불편하신 모양이군요?”

식사하기 위해 단원들끼리 탁자에 둘러앉는 와중에 바텔은 클라라의 상태가 뭔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포착했다. 그는 관록 있는 집사답게 사람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데 빨랐다.

단원들끼리 모였을 때, 어느 곳의 분위기가 굳어 있다 싶으면 그는 몇 마디 말로 그것을 풀어주곤 했다. 클라라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일도 평소에 늘 하던 것이었다.

“그러게. 저렇게 정색하고 있으니까 뭔가 무섭다.”

“무슨 일 있어요, 누나?”

평소였다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아침의 가십거리로 제공했을 그녀였다. 그런데 오늘은 드물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표정도 어딘가 뚱한 것이 뭔가 일이 있는 사람 같았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녀는 집중되는 이목에 억지로 웃어 보이고는 그것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웃는 남자에 의지하고 지내다 보니 평소에 자연스럽게 웃는 버릇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의식적으로 웃으려고 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 있게 됐다.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엘라는 클라라가 보고 있는 종이를 슬쩍 훔쳐봤다. 그것은 자신이 어제 점심에 아테레나 극장에서 받아온 만우절 행사 일정표였다. 그녀가 마침 읽고 있던 부분은 이번 만우절 행사에 참여하는 그랑프리 참여자들의 목록이 적혀 있었다.

“우리랑 만났던 서커스단도 몇 군데 있네. 오, 파파엘까지. 이쪽은 우리랑 거의 같은 속도로 돌고 있는걸. 아, 바퀴의 서커스도 있잖아? 아쉽네. 내가 보러 갈 수 있다면 좋았을걸.”

아침 식사를 마친 단원들은 일정표대로 움직이기 위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더스타인 역시 바로 나갈 준비를 하려는데 뒤에서 유라크네가 여섯 개의 팔로 그녀를 와락 붙잡았다.

“잠깐, 그전에!”

“유, 유라 씨?”

“클라라, 제가 저번에 가르쳐 준 머리 묶는 법 또 까먹었죠? 어휴, 옷은 이게 또 뭐예요?”

“이거 학교 체육복인데…….”

“오늘 단장님 대신 서커스단 대표로 나가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우습게 보이고 싶어요?”

유라크네는 그녀의 복장을 보고 혀를 찼다. 아무리 그녀가 평소에 외모를 대충 꾸미고 다닌다지만 오늘은 좀 심했다. 머리카락의 상태를 보니 샤워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그게…….”

그것은 원더스타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원래 몸으로는 수백 번은 봤을 여인의 나체인 데도 이상하게 이 몸으로는 감히 그런 짓을 할 용기가 들지 않았다.

“자, 따라오세요. 잠깐, 설마 속옷도 안 입은 거예요?”

“으읏, 귀, 귀찮아서…….”

“어휴, 이런 꼴로 나섰다가 남성들이 다 쳐다볼 거예요.”

“아,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씻는 건 저 혼자서…….”

“혼자서 못하니까 제가 나서는 거잖아요! 자, 어서!”

그렇게 그녀는 유라크네와 팔자에도 없는 샤워를 해야 했다.

“또! 또! 발가락하고 가랑이 사이 대충 씻죠?”

“으앗!”

유라크네의 여섯 손이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문질렀다. 분명 남자로 있을 때는 그녀와 이것보다 야한 짓을 더 많이 했었는데……. 그때는 지금만큼 부끄럽지는 않았었다. 이 역시 바이오맨서의 감각에서 벗어난 덕분인 것 같았다.

“자, 끝! 그럼 잘 다녀오세요! 저는 오늘 알렌 씨 역할이라 조 씨 역할인 미키 군이랑 같이 뱀 사육실을 만들어야 해서 바빠요.”

그녀의 도움 덕분에 원더스타인은 레카체프의 교복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나올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다리를 훤히 드러내는 짧은 치마는 수치스럽기 그지없었다.

엘라는 이것보다 짧은 걸 어떻게 매일 입고 다니는 거지?

“우앗!”

그녀의 망신은 마차에 오르면서 자빠지는 것으로 정점을 찍었다. 자신도 모르게 평소 원더스타인의 몸으로 하던 것처럼 한 번의 도약으로 훌쩍 마차에 타려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통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설리반의 부축을 받아 겨우 몸을 일으켰다.

“역시 클라라 씨군.”

“우리도 저건 한 수 배워야 해. 요즘 너무 말로 웃기려 하잖아, 우리?”

알렌과 조는 매번 새로운 바보짓을 들고나오는 그녀에게 감탄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는 분한 듯 두 사람을 한 번 노려봐주고는 마차를 극장으로 출발시켰다.

6인용 마차 안에 그녀와 스벤, 설리반, 세 사람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꽉 찬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평소에는 인식하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보니 설리반의 덩치가 장난이 아니라는 깨달을 수 있었다. 우몬에 필적할 정도였다.

변신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저 상태로 곰 가죽만 뒤집어쓰기만 해도 진짜 곰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바이오맨서의 눈으로 봤을 때는 그냥 자신이 힘 좀 주면 찢어질 근육 정도로밖에 안 보였는데 지금 보니 꿈틀대는 게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괜찮습니까, 클라라 양?”

“무, 문제없어요!”

원더스타인은 스벤이 또 무슨 농담을 걸까 싶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녀의 표정만 봐도 그런 그녀의 마음이 다 들여다보여 웃음이 터지려 했다.

정말 놀리는 맛이 있는 아가씨란 말이야.

그는 그녀에게 농담을 건네는 대신 한 가지 조언을 주기로 했다.

“가족에게 배신당한 겁니까?”

“네?”

“핫핫, 광대의 통찰력입니다.”

“아.”

광대의 통찰력. 그것은 스벤이 호감도 30 보상으로 얻은 그의 두 번째 인스피라였다.

진실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상대가 품고 있는 고민의 ‘해답’을 하루에 한 번 도출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광대’의 통찰력답게 그것은 주로 상대가 받아들이기 힘든 농담이나 헛소리의 형태로 나오기 일쑤였다.

“저도 이 능력의 원리를 정확히 몰라서. 그저 클라라 양의 고민을 파헤치려는 순간, 이 문구가 떠올랐을 뿐입니다.”

“가족에게 배신당했다?”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족이라니. 자신에게 가족이 어디 있단 말인가.

마녀? 마녀 때문인가. 어쩌면 이번 일에 세 마녀 중 누군가의 장난이 개입된 건가?

아니, 어쩌면 자신이 아닌 이 몸의 원래 주인에 대해 꿰뚫어 본 걸지도 몰랐다.

그녀는 문뜩 클라라가 오늘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자신에게는 퀘스트 기능이 있었기 때문에 단원들이 바라는 걸 포착하고 대응할 수 있었지만, 과연 그녀에게 그런 어려운 일이 가능할까?

***

까마귀 마녀는 클라라에게 레이나나 엘라의 정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의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라라가 보기에 다른 여자들은 자신과 오라버니 사이의 깊은 관계에 비하면 모두 들러리에 불과했다. 어쩌면 1년 반밖에 안 남았을지도 모를 오빠와의 알콩달콩한 생활을 그들에게 더는 뺏기기 싫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난잡한 여자관계를 정리하기로 했다. 물론 서커스단의 운영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딱 이성으로서의 정만 떼게 할 생각이었다. 서커스단이 망가진다거나 그들을 재기불능으로 만들면 원더스타인의 반발심이 커져 주술이 깨어질 확률이 높아졌다.

클라라는 우선 오늘 같이 외출할 대상인 마야를 목표로 잡았다. 다른 마신의 사도로부터는 정보를 수집할 수 없기에 그는 원더스타인과 그녀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그녀가 원더스타인을 주제로 어떤 말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공개석상에서 보인 모습과 소문으로 유추했을 때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마야는 유독 스승과 제자 관계에 집착하고 있어.’

아마 오라버니는 저 어린 여자애한테도 몇 번 치근덕거렸을 것이다. 몇몇 단원은 그가 그녀를 호텔로 끌고 갔다가 마야가 화난 모습으로 뛰쳐나오는 것을 봤다고도 했다. 주변의 소문을 수집하는 클라라의 능력 덕분에 그녀는 간접적으로 그들의 행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마야는 어디까지나 사제 관계로 남고 싶어 하지만, 오라버니가 자꾸 여지를 주면서 수작을 거는 거겠지. 그나마 그녀를 호텔로 데려갔다가 실패한 뒤로는 자제하고 있는 것 같지만…… 후후, 내가 오늘 완전히 망쳐주겠어.’

오늘 유라크네와 클라라는 함께 식료품을 장보기로 했었다. 즉, 실제로 장을 봐오는 사람은 둘의 역할이 걸린 원더스타인과 마야였다.

마야는 그와 둘이서만 외출한다는 생각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늘 아침에 잔뜩 기합이 들어갔던 것도 그래서였다.

만약 지금도 다리가 아프다는 설정이었다면 그와 딱 달라붙어서 갈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인형의 집 이후로 그녀는 그것을 포기했다. 화신과 싸운 뒤로 허리가 나았다는 식으로 어물쩡 넘어갔다. 더는 끌었다가 그에게 거짓말을 들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식으로 제자로 인정받은 것은 큰 수익이었다. 이반이 제자로 들어온 마당에 자신은 왜 안 받아주냐고 따지자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녀도 제자로 받아주었다.

비록 자신이 마음속 깊이 바라는 그 관계는 이제 힘들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사제 관계라면…… 그렇게라도 이분과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면 좋았다.

“마야 양, 오늘 아주 아름답군요.”

“……네?”

그래서 스승이 갑자기 외모를 칭찬하고 들어오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한 번도 입에 담은 적 없는 말이다.

‘후훗, 당황한다. 당황한다.’

클라라는 자신의 수가 먹힌 것을 보고 속으로 조소했다 환상 마법사는 겉모습에 집착하는 걸 경멸하는 성향이 강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은 전부 허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마야는 속으로 반발심을 느끼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는 이어서 다음 공격을 날렸다.

“우리 장 보는 건 잠시 미루고 데이트 안 할래요?”

“흣……! 잇……? 엣……! 그, 그런……!”

언제나 인형처럼 하나의 얼굴을 고수하던 마야의 무표정이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지금 단장님이 무슨 소리를? 데이트? 데이트라고?

그녀는 어찌나 충격을 받았는지 몸을 떨기까지 했다. 클라라는 아예 그녀를 희롱하듯 그녀의 볼을 손가락으로 간질이며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거절하는 건 안 됩니다. 스승으로서의 명령이에요. 아니, 남자로서 부탁이라고 해야 하나? 후후.”

나, 남자로서 부탁!

마야는 이제 현기증마저 느끼려 했다.

“하악, 하악, 그, 그러니까 ……다, 당연! 아, 아니, 환영! 하악, 그, 그러니까…… 그, 그, 그러니까…… 네! 네……. 하악, 아, 알았어요……! 무, 무조건!”

마야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행운에 흥분해 하마터면 과호흡증후군까지 올 뻔했다. 그녀는 위아래로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새하얀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분홍빛으로 달아올랐다.

그녀가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동요를 보인 적이 있던가? 클라라는 그녀가 분노로 인한 흥분을 간신히 가라앉히고 있음을 확신했다.

[마야의 호감도가 17 올랐습니다.]

멀리서 마차를 타고 가고 있던 원더스타인은 갑작스러운 메시지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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