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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67

EP.466 18. 만우절 (8)

클로팽은 그녀의 싸늘한 눈빛을 보고 그녀가 아직도 자신을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긴 아버지의 손과 발을 잘라 버리고 부족에서 추방한 할아버지를 가족으로 여기기는 힘들 것이다.

비록 그것이 부족장의 강권이었다고는 하지만 결정하고 실행한 것은 클로팽 자신이었다. 그는 손녀가 제 부모를 따라 부족을 떠나던 날, 자신을 쏘아보던 그 원망 어린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단장님이…… 제 할아버지라고요?”

그녀의 물음은 클로팽에게 당신이 어떻게 감히 내 앞에서 할아버지를 자처할 수 있냐는 추궁으로 들렸다.

‘이건 또 무슨 이야기지?’

그러나 정작 말을 내뱉은 원더스타인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녀는 클라라가 지방의 부유한 장원에서 태어나 아가씨로 대접받으며 유복한 삶을 누려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레카체프 학교 사람들 역시 다들 그녀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언제나 단정하고 기품 있었던 그녀에게 어울리는 배경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사실 유랑민 출신이었다니?

그때, 원더스타인의 귀로 사람들의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클로팽을 따라온 단원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였다. 원더스타인은 그중 한 대목을 듣고 낯빛이 창백해졌다.

“사지를 자르는 형벌을 어떻게 자기 아들에게…….”

그 내용은 원더스타인이 자신도 모르게 짙은 혐오감을 담아 중얼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자신은 태어났을 때부터 그런 꼴이었기 때문에 싫어도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사람을 그렇게 만들다니? 그것도 부모라는 작자가?

클로팽은 손녀가 그때 일을 언급하며 자신을 비난하려 하자 표정이 엄하게 변했다. 손녀를 안쓰럽게 여기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 건에 관해서 자신이 그릇된 판결을 내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클라라, 네 아버지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잊지는 않았겠지? 마약을 만들어 유통하다가 걸렸다. 집시, 아니, 룸니 전체의 평판을 떨어트리는 일이었어. 그때 우리가 네 아버지를 추방하지 않았다면, 부족 전체가 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그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사실 그녀로서 할 말이 없기도 했다. 그녀는 진짜 클라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옛일을 들춰서 무엇하겠냐. 네가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아마 부족으로 복귀할 수 있는지 그 여부를 묻고 싶어서겠지. 네 나이는 이제 곧 19살이다. 너는 그날 아버지를 따라 부족을 떠났지만, 죄인의 자식에게는 죄가 없다. 네가 돌아오길 원한다면 성인식을 치르고 돌아올 수 있다.”

“제가 왜 부족으로 돌아가길 원한다고 생각하시죠?”

원더스타인은 자신도 모르게 클라라의 역할에 몰입해 그렇게 반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저런 곳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클로팽은 그녀가 일부러 모른척한다고 생각했는지 코웃음을 쳤다.

“푸리 다이의 후계자 자리를 탐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푸리 다이는 또 뭐야.

원더스타인은 말없이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그동안 네가 걸어온 행보를 봤을 때, 내가 그 정도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 같으냐? 확실히 너도 자격이 있다. 푸리 다이의 직계 혈족이니까. 부족에 들러 간단한 검사만 거치면 성인식을 치를 기회를 줄 거다.”

“간단한 검사?”

그녀의 반문에 클로팽은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어머니의 엄격함을 존경하기는 했지만, 손녀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게 솔직히 좀스럽게 느껴졌다.

“네가 아버지와 같은 죄를 저지른 건 아닌지 검증하겠다는 소리다.”

클라라의 아버지는 마약을 제조하고 판 죄로 부족에서 추방당했다. 원더스타인은 그 순간 클라라가 그믐쑥을 태우고 마신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반항심. 아버지를 쫓아낸 할아버지를 조롱하기 위해 약쟁이 딸도 약쟁이임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연기를 흡입했을 것이다.

이런 바보 같은. 원더스타인은 클라라의 행동에 대해 슬픔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어떻게 할 거냐? 성인식을 치르러 부족으로 올 거냐? 애초에 그걸 묻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이지 않냐?”

“저는…….”

원더스타인은 대답을 망설였다. 클라라의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여기서 감히 자신이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그때, 그녀의 어깨를 짚고 누군가 앞으로 나섰다.

“핫핫, 이것 참. 우습지도 않군요. 우리는 지금 서커스 그랑프리 중입니다. 비록 무대 위에 오르는 전력은 아니라지만, 한 서커스단의 단장이라는 양반이 대놓고 다른 서커스단 단원의 이적을 종용하다니.”

“당신은 누구지?”

“클라라 양의 동료입니다!”

클로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이 업계에서 무려 80년을 보냈다. 덕분에 광대의 경우 그 말투와 호흡만 봐도 그 뿌리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신도 룸니로군? 그것도 제법 오래전에 활동한.”

“룸니? 집시를 말하는 거죠?”

“정말 오래됐나 보군.”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사지를 자르다니. 꽤 케케묵은 형벌이군요. 100년 전에도 그렇게 엄격한 부족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100년을 이어 내려온 부족이 거의 없는 거지.”

“그 과중에서 부족원 몇이 죽었죠? 우리 클라라 양을 그런 무서운 곳에 보내기는 싫은데요.”

“당신이 이 아이의 보호자라도 되나?”

“비슷하죠. 뭐 할아버지뻘이라고 할까.”

둘의 말싸움이 길어지자 사람들이 점점 그들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두 서커스단이 기 싸움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뭔가 다른 사정이 있어 보인 것이다.

스벤과 클로팽은 주변의 낌새를 눈치채고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그들은 클라라가 이번 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길 원치 않았다.

마침 두 사람 다 노련한 광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본좌 앞에서 감히 그런 시건방진 태도라니. 네놈이 화를 자초하는구나.”

클로팽이 주변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스벤도 질 수 없다는 듯 받아쳤다.

“갈! 진정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겠는가?”

클로팽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몸을 구부리고 그럴듯한 싸움 자세를 취했다.

“쯧,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하다니.”

스벤이 비스듬하게 몸을 기울이고는 상대를 당장이라도 베어낼 것처럼 손날을 세웠다.

“내가 오늘 살계를 열겠다!”

“스, 스벤 씨?”

원더스타인은 갑자기 두 사람의 대화가 밑도 끝도 없이 험악하게 치닫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미처 개입하기 전에 둘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오오오옷!”

“끼요오옷!”

기세 좋게 싸움을 시작한 두 사람이었지만 정작 보여준 것은 요란하기만 하고 실용성이라고는 짝이 없는 동작들이었다. 그들은 누가 더 기묘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지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갖가지 공격을 시도하고 상대의 동작을 받아내는 일을 반복했다.

“핫! 핫! 핫!”

“호잇! 욧! 욧!”

그들의 입에서 기합 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노인 둘이 벌이는 싸움 같지 않은 싸움은 사건의 당사자인 클라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서 있는 그녀를 향해 다른 서커스단 좌석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짧게 자른 붉은 머리에 운동복 차림새의 그녀는 바로 파파엘 서커스의 부단장인 카렌이었다.

“클라라 선배!”

“카렌.”

“무슨 일이에요? 스벤 영감님이랑 저 할아버지랑 왜 저러는 거예요?”

그녀가 질문하는 순간, 원더스타인은 주변 사람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그 내용을 그대로 읊었다.

“집시 권법. 옛날 재주꾼 유랑 부족끼리 싸움이 벌어질 것 같으면 각 부족이 광대들이 나와 저걸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곤 했어.”

잠시 후, 스벤과 클로팽은 지친 숨을 내쉬며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걸 하면 딸이 무지 부끄러워해서 제대로 한 적이 없는데 말이죠.”

“나도 우리 어머니가 무지 부끄러워해서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었소.”

쿨로팽의 입가에 시원한 미소가 걸렸다. 그는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에서 오랜만에 해방되어 광대처럼 군 것이 만족스러웠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꿈만 꿨지 한 번도 성사된 적이 없는 집시 권법을 성공시킨 것이 뿌듯했다. 집시 권법은 사람들 앞에서 정말로 갈등이 일어나야 했고, 자신도 상대도 그걸 웃음으로 무마할 의도가 있어야 성립하는 것이었다.

그마저도 어머니가 싫어해서 감히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품어왔던 숙원을 드디어 풀고 말았다.

클로팽은 눈빛으로 스벤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그것은 엄격한 어머니의 시선을 피해 할아버지가 슬쩍 선물해 준 사탕을 받은 어린아이가 표하는 마음과 같은 것이었다.

“몸을 망치는 것으로 가족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아십니까?”

대회 관계자가 달려와 가벼운 농담으로 상황을 수습하는 사이, 스벤은 진지한 목소리로 원더스타인을 꾸짖었다. 그는 옆에서 그녀와 클로팽의 대화를 듣고 그녀가 무슨 의도로 약에 손댔는지 짐작한 듯했다.

“죄송해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만 해주세요.”

원더스타인을 바라보는 스벤의 눈빛은 정말 손녀를 걱정하는 할아버지의 것과 같았다. 그녀는 스벤이 가진 의외의 면모에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극장 내의 소란이 얼마 있지 않아 가라앉았다. 사회자는 괴물서커스단과 바퀴의 서커스 사이에서 일어난 싸움을 경쟁심으로 인한 가벼운 충돌로 정리했다.

이제 상황을 마무리할 때였다. 원더스타인은 무대 앞으로 나서서 바퀴의 서커스 진영을 향해 소리쳤다.

“1등은 우리 괴물서커스단이 차지할 겁니다.”

그녀의 당당한 태도와 말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클로팽은 비로소 손녀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학교를 쉬고 다른 서커스단에 들어간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다. 성인식이나 부족으로의 복귀는 그녀에게 있어서 후 순위의 일이었다. 일단은 아버지를 쫓아낸 자신에게 도전해 공개적으로 꺾는 것이 그녀의 목표였다.

“재미있구나. 받아주마. 그 도전.”

클로팽은 오랜만에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마음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

오전 행사를 마친 카렌은 괴물서커스단의 숙소를 향해 움직였다. 그녀는 몸 쓰는 일에는 강하지만 머리 쓰는 데는 자신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일찌감치 행사를 포기하고 놀기로 했다. 클라라가 그녀에게 숙소의 위치와 마야의 일정표를 가르쳐 준 덕분에 그녀는 마야가 지금쯤 원더스타인과의 장보기를 마치고 주방에서 채소를 손질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클라라 선배 뭔가 멋있었어.’

카렌은 아까 극장에서 일어난 일을 떠올렸다. 그 바퀴의 서커스를 상대로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승리 선언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카렌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역시 원더스타인 단장님 앞에서 헤실거리며 바보짓을 하던 것은 전부 내숭이었나 봐. 무섭다, 선배.”

카렌은 그런 식의 ‘여자다움’을 과시하는 여자에게는 어려움을 느꼈다. 남자애들과 같이 자란 그녀는 남자들 앞에서 약한 척 모자란 척 구는 여자들과 가깝기 지내기 힘들었다.

대신 그녀는 남자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차가운 분위기를 발산하는 여자에게 끌렸다. 마야나 방금의 클라라 같은.

그녀들 앞에서는 자신도 얼마든지 귀여운 척 굴 수 있었다. 남자에게는 무리였다. 그녀는 남자들에게는 경쟁의식을 느끼지 아양을 떨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마야아앙!”

카렌은 반갑게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단원들 대부분 밖에서 일정을 수행하고 있었기에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카렌은 친구가 응답이 없자 공개를 갸웃거리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도마 앞에 멍한 눈빛으로 앉아 있는 마야가 있었다.

“마야!”

“카렌.”

마야는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한 눈빛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카렌은 친구가 넋을 놓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왜 그래? 무슨 고민 있어?”

마야는 잠시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 일을 친구에게 솔직히 털어놓아도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곧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나 아무래도 단장님에게 고백받은 것 같아.”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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