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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68

EP.467 18. 만우절 (9)

마야의 충격적인 선언에 굳어버렸던 카렌은 잠시 후 그녀의 안색을 살피더니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음, 마야? 그러니까…… 단장님이 네게 이성으로서 좋아한다고 밝혔다는 거야?”

“응.”

한 치 흔들림 없는 친구의 대답에 카렌은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에 쿵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감정적 동요를 최대한 억누르며 질문을 이어나갔다.

“아, 그, 그렇구나……. 음, 그런데 있잖아. 지금까지 여러 가지 착각도 오해도 많았잖아? 지난번에도 그렇고, 그전에도 그렇고. 어, 그러니까…… 정말 고백받은 것 맞아?”

“네가 확인해줬으면 좋겠어.”

마야는 환상을 만들어 오전에 있었던 일을 친구에게 직접 보여주었다. 그녀는 이제 환상에 목소리를 입힐 수 있었기에 카렌은 정말 마야가 겪었던 일을 그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영상을 모두 본 카렌은 친구가 착각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더스타인은 누가 봐도 마야에게 이성적인 관심이 있는 것처럼 굴었다.

-오늘만은 단장의 의무를 내려놓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안 그러면 마야 양과 이런 시간을 언제 또 보낼 수 있을까요?

-마야 양이랑 사귀는 사람은 참 행복할 것 같아요.

-스승으로서 당신에게 알려줄 수 있는 건 뭐든지 알려주고 싶습니다. 마법 외에도 말이죠.

환상의 재현을 마친 마야는 친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걱정과 기대가 뒤섞인 그녀의 눈빛은 겁먹은 고양이를 연상케 했다.

카렌은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이것은 친구가 그토록 바라던 상황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사실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10살이나 어린 여자애한테 노골적으로 수작을 거는 원더스타인이 불쾌해서 그런지도 몰랐다. 그녀는 그런 종류의 남자들이 어떻게 여자를 홀리고 어떻게 가지고 노는지 무용담처럼 떠드는 몇몇 동료들 덕분에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원더스타인을 향한 적개심에는 또 다른 원인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그동안 마야에게 품어왔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화, 확실히 단장님이 널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하네……? 그러니까 남자로서 말이야…….”

“정말이지?”

마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자신이 또 뭔가 오해한 건 아닌지 안절부절못했는데 카렌이 보증하고 나니 마음이 놓인 것이다.

언제나 무표정하던 마야의 표정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카렌은 질투심을 억누르며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하핫, 그것 봐. 내가 뭐라고 했어? 너 정도 외모면 무조건 먹힌다고 했지? 내가 남자였다면…… 너에게 고백했을걸? 하하! 하, 하하…… 어쨌든 자, 잘됐다…….”

카렌은 자신이 그동안 친구를 응원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 그녀와 원더스타인이 정말로 잘될 리가 없다는 믿음에 기반한 것이었음을 알아차렸다. 마야가 진정으로 다른 남자의 것이 된다고 생각하니 비로소 그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단순한 동경이나 우정이 아님을 자각했다.

“그래서 말인데 어떻게 할 거야? 받아들일 거야?”

그녀는 마야가 원더스타인의 마음을 거절하기를 바랐다. 친구가 계속 자신 옆에 있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마야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일 거야.”

“……그래?”

“이번 행사가 끝난 뒤에 단장님께 진지하게 교제를 신청할 거야.”

“조, 좋아! 으, 응원할게!”

카렌이 그렇게 외친 순간, 마야가 그녀를 돌아봤다. 카렌은 순간 자신이 너무 티를 냈나 싶어 입을 딱 다물었다. 그러나 마야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에 대한 추궁이 아닌 감사였다.

“고마워, 카렌.”

“응? 뭐가?”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런 얘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을 거야.”

그녀의 말에 카렌은 잠시 표정이 굳었다가 곧 평상시처럼 씩 웃었다.

“왜 그래. 부끄럽게……. 우린 친구잖아? 그렇지? 아! 맞다! 나도 우리 오빠 녀석을 도와줘야 하는데…… 이만 가볼게!”

카렌은 그렇게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 짓고 숙소를 나왔다. 그녀는 한동안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무작정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그렇게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저 떠날 보낼 때가 되어서야 자신의 마음이 단순한 호감 이상이었음을 깨닫게 되어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본인 감정을 파악하는 일에 미숙한 남자애들이 사춘기에 종종 겪곤 하는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석교 한가운데 멈춰 선 카렌은 강물을 내려다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자신이 이 감정을 몇 개월 전에 깨달았으면 사랑이 너무 깊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에 비례해서 오늘 받은 상처 역시 깊었을 것이고.

어차피 마야는 그녀가 만나던 순간부터 원더스타인을 계속 좋아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때 고백했든 지금 고백했든 차이는 건 똑같았을 것이다. 그동안의 시간은 자신이 여자에게 두근거리는 것이 미지에 대한 단순한 경외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으로 충분했다.

“클라라 선배는 오늘 뭐 하더라?”

그러나 아무리 현실을 받아들였다고 해도 마야에게 계속 관심을 쏟는 일이 괴롭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실연당한 사람이 빈자리를 채울 또 다른 이성을 갈구하듯 카렌 역시 다른 눈 돌릴 사람을 필요로 했다.

그녀는 괴물서커스단의 숙소에 걸려 있던 일정표를 곰곰이 떠올려 봤다. 클라라는 오늘 원더스타인의 역할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다음으로 움직일 곳은…….

***

극장에서의 일정을 마친 원더스타인은 바로 ‘가면’을 수집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스벤은 엘라가 작성한 일정표대로 움직이겠다고 그녀 옆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원더스타인은 그가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것을 보고 단순히 그가 일정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혹시나 자신이 또 약에 손대는 것은 아닌가 걱정해서 감시하는 것이리라. 그녀의 입에 쓴웃음이 걸렸다.

“시선이 따가운데요, 스벤 씨.”

“핫? 핫핫! 너무 노골적이었나요? 뭐 이해해주시면 좋겠군요.”

“네. 알아요. 사실 기분 나쁘진 않아요. 오히려 조금 좋네요. 누군가가 저를 이렇게 걱정해주는 건 정말 오랜만이거든요.”

“……다들 클라라 양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원더스타인은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방금 원더스타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말하고 말았다.

“죄송해요. 요즘 조금 우울해서 말이에요.”

스벤은 처연한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밝고 활기찬 그녀의 가면 뒤에 다른 얼굴이 있는 것은 이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슬픈 얼굴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단 지금은 그 가면 배우들을 찾는 일에만 집중합시다. 집히는 데가 있다고 하셨죠?”

“네. 하지만 찾기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원더스타인은 원작의 지식만 있다면 그들을 찾는 건 일도 아니라고 여겼다. 그러나 막상 도시를 돌아다니기 시작하니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원작의 다른 등장인물들과 달리 60명의 배우는 명확한 형태로 나온 게 아니었다. 때로는 시체로, 때로는 괴물로, 때로는 등장조차 하지 않고 정보와 기록만으로 존재했다. 종종 멀쩡히 살아 있는 형태로 나오는 사람도 있었으나 아쉽게도 이번에 숨바꼭질의 대상이 된 10명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거기다 그녀가 또 하나 고려하지 못한 점이 있었으니 바로 지금 그녀가 클라라의 몸에 갇혀 있다는 것이었다. 평소 원더스타인의 강철같은 몸뚱어리를 굴리는 것처럼 막 뛰어다니다 보니 여기저기 꺾이고 부딪치고 넘어지기 일쑤였고, 몇 시간 가지 않아 그녀는 결국 체력이 바닥나고 말았다.

“으악, 다리 아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평소의 클라라처럼 비명을 내지르며 퍼져버렸다. 스벤은 그가 알던 그녀의 모습이 나오자 그제야 안심한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핫핫, 그렇게 사방팔방을 마구 뛰어다녔으니 당연한 일이죠. 소득은 좀 있습니까?”

“모르겠어요. 여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원더스타인이 알기로 ‘미소녀 마법 전사’의 가면을 쓴 사람은 바로 하숙집 관리인으로 있는 장발 백수 40대 남자였다. 하지만 하숙집 거리를 아무리 뒤져 봐도 그에 대한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아직 이곳에 오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TT2의 배경이 되는 것은 앞으로 3년 뒤였으니까 말이다.

“일단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일행들을 기다리면서 쉬고 있죠. 아, 말하기 무섭게 저기 오는군요.”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카페를 향해 우몬과 가스통이 걸어왔다. 두 사람은 도스빌 남작과 니카를 대신해서 마차 시세를 알아보고 오는 중이었다.

프라빈은 대륙횡단 열차의 종점이 있는 도시였고, 여기서부터는 다시 마차의 힘을 빌려야 했다. 일단 이 도시를 떠날 때는 배를 타야 하지만, 베티의 동물들을 수용할 곳이 필요했기에 마차는 필수였다.

하지만 역할을 바꾸다 보니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우몬과 가스통에게는 도스빌과 니카 수준의 협상 능력이 없었다.

거기다 두 사람이 원래 지금부터 원더스타인, 엘라 두 사람과 함께 움직이기로 한 것은 그가 말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엘라가 말의 훈련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두 사람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가 봤자 제대로 된 물건 고르기는 힘들 것 같아요.”

“……그래도 대강 시세는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거라도 모아서 보고하자. 뒷일은 내일 다른 사람들이 하겠지.”

“그러면 출발할까요?”

“어, 잠시만. 나 걷기 힘든데…… 아, 잠깐, 우몬, 나 네 어깨 위에 타 봐도 돼?”

원더스타인은 우몬을 보자 그동안 못 해 봤던 것을 하나 떠올렸다. 그것은 원작에서 도적이 채찍 기술을 모두 익혔을 때, 우몬을 상대로만 사용할 수 있는 숨겨진 기술이었다.

“자, 이쪽…… 이쪽이었던가?”

“뭐 하는 거예요, 누나?”

우몬의 목에 올라탄 원더스타인은 그의 뿔을 이리저리 만져댔다. 우몬은 그녀가 뿔 마디의 말랑말랑한 지점을 만질 때마다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역시 너, 여기가 민감하구나! 자, 이렇게 하면 왼쪽 팔을 들고, 이렇게 하면 오른쪽 팔을 들고. 그리고 여기를 붙잡고 앞으로 동시에 밀면 앞으로 걷는다.”

원더스타인이 자극하는 대로 양팔을 움찔거리던 우몬은 그녀가 자신을 탈것처럼 부리려 하자 성난 표정을 지으며 씩씩거렸다.

“제가 무슨 말이에요?”

우몬은 당장 그녀를 어깨 위에서 떨어트릴 것처럼 몸을 떨쳤으나, 원더스타인은 그의 뿔을 잡고 버텼다. 그녀는 그가 미인계에 약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은근 누나들을 업을 때마다 피부가 맞닿는 것을 즐긴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해주라? 응? 응?”

클라라는 그의 얼굴을 양다리 사이에 끼우고 비비적댔다. 그녀의 허벅지가 그의 볼을 문지르자 그는 흥분했는지 코에서 뜨거운 콧김이 뿜어냈다.

“아, 알았어요……. 어쩔 수 없죠…….”

“쯧쯧, 못난 놈. 여자에게 그렇게 쉽게 넘어가다니.”

가스통이 우몬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우몬은 얼굴을 붉히더니 떠듬떠듬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니, 누나가 지쳐 보여서…… 어쩔 수 없이…….”

“자, 그럼 출발!”

원더스타인은 그의 뿔을 조종간처럼 붙잡고 그를 움직였다. TT1에는 도적이 채찍으로 그의 뿔을 휘감아 그를 몸을 움직여 적을 28기 이상 처치하는 ‘발진! 우몬 28호!’라는 도전 과제가 있었다. 그동안 원더스타인의 몸으로는 차마 부탁하기 힘든 일이었는데 클라라의 몸에 들어온 덕분에 이렇게 소원 하나를 성취하게 됐다.

‘나쁘지 않네. 이 몸으로 지내는 것도.’

클라라도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와중에 상태창에 갑자기 아나이스의 호감도가 소폭 증가했다는 알림이 떠올랐다. 아마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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