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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7

47화 새로운 여정 (1)

47화 새로운 여정 (1)

나는 두 달여 만에 페르디나로 돌아왔다.

처음 광산을 탈출했을 때만 해도 공기가 쌀쌀했는데, 이제는 완연한 여름이었다.

“이봐! 여기 양고기 좀 더 가져와!”

“그래서 내가 딱! 적장의 목을 베려는데! 녀석이 살려달라고 어찌나 빌어대는지! 으하하하!”

“이번에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평의회에서 은패를 발급해 주겠다고 했지! 나도 이제 곧 어엿한 은패 용병님이라고! 하하하!”

페르디나는 영지전에서 돌아온 용병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호주머니가 두둑해진 용병들 덕분에 도시의 모든 상점이 호황을 누렸고, 밤마다 술집에서 불이 꺼지지 않았다.

랑베르 잡화점도 마찬가지였다.

“어서 오세요 손님! 뭐 찾으세요? 이번에 새로 들어온 물건이 있답니다. 호호호.”

내가 없는 사이 테오는 ‘리즈’라는 이름의 소녀를 종업원으로 들였다.

그럼에도 일거리는 한가득이었다.

그래서 나와 세실과 족제비는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잡화점 일에 매달려야 했다.

하지만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이 있었다.

“아이고! 우리 예쁜 종업원님이 드디어 오셨구먼! 허허허!”

“내가 매일 잡화점을 들락거리며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이제 안 떠나는 거지? 절대로 안 돼. 안 된다고! 하하하하!”

세실이 종업원으로 복귀하자 손님이 몇 배는 늘어난 것이다.

잡화점 문을 열기 전의 이른 새벽부터 문을 닫아야 하는 늦은 저녁까지, 손님이 끊길 새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영업시간을 늘렸다. 리즈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저는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더 일할 수 있어요! 점주님!”

일전에 테오에게 알려줬던 레시피의 약물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그래서 족제비는 하루 종일 약초를 캐러 다녔다. 원래는 덩치가 그 일을 담당했었는데, 상점의 다른 업무가 바빠져 틈이 나지 않았다.

하루는 심마니 족제비가 내게 귀엣말로, 자기가 세실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며 자랑했다. 그런데 어떻게 들었는지 세실이 달려와 그야말로 복날에 개 패듯 족제비를 두들겨 팼고, 이후 한동안 족제비는 세실을 마주칠 때마다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내심 궁금증이 생긴 나는 족제비에게 ‘그래서 네가 세실보다 잘하는 게 뭐냐’고 물었지만, 족제비는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

.

.

“약속대로 나의 용병단을 만들었다.”

불쑥 잡화점을 찾아온 카인이 내게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약속은 당최 무슨 약속을 했다는 거냐.

그래도 한편으로는 놀라웠다. 페르디나에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용병단을 만들었다니.

“이번 영지전으로 와해한 용병단이 제법 있더군. 소속을 잃은 용병 중 나이가 어리고 소질이 있는 이들을 모아 단을 구성했다.”

또 내게 입단 제의를 할 것이 뻔했기에, 나는 피식 웃으며 거절의 대사를 장전했다.

그런데.

“잡화점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더군. 이쯤 되면 다른 도시와 연계해 더 많은 물품을 운반해야 할 테고, 그러려면 믿을만한 용병단의 호위가 필요하겠지. 어떤가. 우리 ‘푸른 매의 단’의 실력을 확인해 보는 것은.”

빌어먹을 자식.

이제 보니 나를 용병단에 포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업을 뛰러 온 것이었다.

어차피 입단할 생각도 없었지만 이런 식으로 나오니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비즈니스에 사적인 감정을 내세울 수는 없지.

“명함 놓고 가. 시간 날 때 전화할 테니.”

“뭐라고?”

***

카인의 ‘푸른 매의 단’은 랑베르 잡화점과 성공적으로 계약을 마쳤다.

마침 잡화점을 확장할 참이었고, 용병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푸른 매의 단은 신생 용병단이지만 나는 카인의 눈썰미를 의심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나간다는 점도 아주 만족스러웠고.

“앞으로 잘 부탁하지. 테오 점주.”

“잘 부탁하지. 마르셀 부단장.”

예상대로 부단장은 마르셀이었다. 그리고 녀석이 랑베르 잡화점과 관련된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하긴, 카인은 단장으로서 다른 바쁜 일이 있겠지.

이런저런 급한 일들이 정리될 무렵 쿠가 우리를 찾아왔다. 쿠도 몇 가지 처리할 일이 있다고 했었는데 시기적절하게 마무리가 된 모양이었다.

“모두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

나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쿠와 함께, 한동안 페르디나를 떠나있을 생각이라고.

“뭐라고? 그게 사실이야 데미안?”

당연하게도 테오는 길길이 날뛰었다.

덩치도 우우우! 포효하며 싫은 내색을 했고, 족제비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나와 테오를 번갈아 바라봤다.

세실만이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실은 이미 쿠의 제안을 받아 이 내용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세실은 오늘까지도 확답을 주지 않았다.

“돈 많이 벌어놔. 테오.”

“걱정 마라! 데미······! 아니, 이게 아니잖아!”

테오가 흥분을 억누르며 말했다.

“데미안. 랑베르 잡화점은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네 말대로 우리는 자본이라 부를 만한 것을 손에 넣었지. 그 자본을 활용해 푸른 매의 단도 고용했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자본과 무력의 상승 효과가 시작될 거다. 게다가 영지전도 끝났어. 네가 이곳을 떠나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말이야.”

테오의 말은 조목조목 옳았다.

그러나 테오는 모른다. 지난번에 내가 했던 ‘되는 대로 연설’은 내 목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힘을 키워야 한다. 그렇기에 쿠와 함께해야 한다. 쿠는 내가 이 세계에서 다시는 만나기 어려운 선인(善人)이자, 강자다. 게다가 이유는 모르지만 내게 상당한 호의를 품고 있다.

이런 자에게 검을 배우지 않으면 누구에게 배운다는 말인가. 게다가 쿠훌린을 따라가면 다시 엘리샤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혼돈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내게는 뛰어난 마법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쩌면 이 모든 것보다도 중요한,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

나는 루나를 만나야 한다.

‘소설에서도 루나는 카인에게 큰 영향을 주는 인물이었지.’

아울러 루나는 흑화한 카인과 대척점에 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루나가 지닌 은월의 마력이 내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쿠, 아니 쿠훌린 또한 은월의 마력을 지니고 있지만 소설에서 그는 머지않아 죽는 인물이다.

물론 나는 이 세계에서 쿠훌린이 죽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카인이 흑화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은 대비해야 한다. 오스카는 운명을 거스르지 못했다. 그렇다면 카인도, 그리고 쿠훌린도 소설의 운명에 갇혀버릴지도 모른다.

“다녀올게.”

이튿날, 나는 영지전을 떠나던 날처럼 동료들에게 인사했다. 그때와 달리 테오와 덩치는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고,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족제비는 엉엉 울었다.

“데미안!”

족제비가 갑자기 내게 달려와 말했다. 광산에서는 정말 미안했다고, 그리고 고마웠다고.

나는 2회차의 숲에서 두 팔이 잘린 채 내 등에 업혔던 족제비를 떠올렸다. 그때도 족제비는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었다.

“활쏘기 연습 많이 해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에게는 재능이 있어. 조아킴.”

족제비의 눈이 둥그렇게 커졌다. 이어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로 환히 웃었다.

“돈 많이 벌어놔. 테오. 덩치.”

이번에도 나는 몇 가지의 레시피를 테오에게 전했다. 이제는 굳이 근처에서 공수할 수 있는 약초만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에게는 자본의 힘이 있으니까. 쿠도 지난밤에 몇몇 레시피를 테오 일행에게 알려줬다.

부르르, 입술을 떨던 테오가 크게 외쳤다.

“크흑······! 걱정 마라! 데미안!”

“우우우!”

말 위에 올라탄 나는 천천히 랑베르 잡화점과 멀어졌다.

“조심해서 다녀와! 데미안! 세실!”

족제비가 손을 흔들었다.

테오도, 덩치도, 리즈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얼굴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쉬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이윽고 동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내가 말했다.

“고마워. 세실.”

“······?”

“나를 따라와 줘서.”

세실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세실의 마음을 이해했다. 세실이 줄곧 고민한 이유는 카인 때문이었겠지. 나를 따라가면 카인과는 헤어져야 하니까.

하지만 세실은 결국 카인이 아닌 나를 선택했다. 아니, 이것을 선택이라고 봐도 좋을까. 지금 세실이 나와 함께한다고 해서, 세실의 머릿속에서 카인이 지워질 리 없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나도. 고마워.”

세실이 나를 보며 웃었다.

무엇이 고맙다는 것인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기분은 좋았다.

“가자. 세실!”

우리는 성문을 향해 말을 달렸다. 문득 페르디나에 처음 도착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세상을 향한 불신에 가득 차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있다. 나의 현실 세계에서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그런 믿음직한 어른이.

“왔구나 꼬마들아. 하하하!”

스트라이더에 올라탄 쿠가 성문 앞에서 우리를 반겼다. 나와 세실도 쿠를 보며 웃었다. 그때, 쿠의 뒤에서 말을 탄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인이었다.

***

숲처럼 밀집되어 펼쳐진 검은 안개 너머에는 원래의 모습을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풍화한, 오래된 성이 있었다.

그그그그······.

성에 다다르자 무거운 철문이 서서히 열렸다. 문을 지키는 두 살수가 부복했고, 네몬은 그들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스쳐 지나갔다.

성의 복도는 어둡고 길었다. 복도의 끝으로 커다란 문이 보였다. 저 문 너머에, 네몬이 만나려는 이가 있다.

그르릉······. 그릉······.

문 앞에는 유령 표범 한 마리가 엎드려 천천히 숨을 쉬고 있었다. 네몬이 접근하자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대던 녀석은 문 안에서 넘어온 누군가의 목소리에 이빨을 감추며 비켜섰다.

충직한 녀석이로군. 혼잣말하며 네몬은 문을 밀었다.

끼익······.

방 안에는 수수한 장식의 가구들이 있었다. 이전에 이곳에 기거하던 누군가의 취향이 분명한 그것은 네몬에게 과거의 어느 날을 상기하게 했다.

네몬은 고개 돌려 창가를 바라봤다. 널찍한 아치형 창문과 그 아래 놓인 긴 테이블. 그 사이에, 그림자 성의 성주이자 암영의 수장인 일루산 블레오파드가 서 있었다.

“가울에게 ‘오메가’에 관한 정보를 준 것이 너였다지? 네몬.”

네몬은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사내로군요. 가울.

“하지만 멋지게 실패했더군요.”

“은월과 흑월이 함께 있었다고 들었다.”

“호오. 형제라고 편을 들어주시는 겁니까?”

“독단으로 일을 처리한 이유는?”

많은 의미가 내포된 물음이었다.

네몬은 가울에게 오메가의 위치를 특정해 알려줬다. 그것을 계기로 가울은 제 누이동생인 미스트와 합심해, 소수의 부하를 이끌고 오메가 사냥을 떠났다.

하지만 실패했다.

가울과 미스트는 상처 입었고, 그들이 데려갔던 살수들은 전멸했다.

그리고 지금, 일루산은 묻고 있었다.

굳이 가울에게만 오메가의 위치 정보를 알린 것과, 그들의 예정된 실패를 제 선에서 무마한 저의에 대해.

그랬다.

가울과 미스트의 실패는 예정된 일이었다.

그들이 오메가를 급습할 것이라는 정보를, 네몬은 일부러 흑월의 귀에 흘렸으니까.

“답은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수장.”

네몬은 조소했다.

그 말대로, 일루산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 블레이드를 뽑아 들고 달려오지 못하는 거겠지.

차가운 은하수를 연상케 하는 일루산의 보랏빛 눈동자를 응시하며 네몬은 윗입술을 핥았다. 일루산과 겨루고 싶은 욕구가 미칠 듯이 솟구쳤다. 그러고 보니 언제였더라. 녀석과 마지막으로 블레이드를 맞대었던 것이.

“가울의 지휘권은 박탈했다.”

“현명한 처사로군요.”

“너라면 이미 오메가에게 추적자를 붙여 놓았겠지.”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추적자들을 물러라.”

서늘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직접 움직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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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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