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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71

EP.470 18. 만우절 (12)

클라라는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지듯 침대로 가 잠들었다. 그것을 본 엘라는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사실 그녀는 오늘 오전에 클라라가 극장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만우절 행사의 내용이 궁금해 도저히 다음날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그녀는 ‘단장 대리’의 능력을 사용해 극장에 간 세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모두 엿들었다. 본의는 아니었다고는 하나 결국 그녀는 클라라의 비밀을 훔쳐본 꼴이 됐다.

엘라는 평소에 클라라가 단장 앞에서 과도하게 내숭을 떤다고 생각했었다. 레카체프에서 봤던 이미지는 분명 그렇지 않았는데, 서커스단에 들어온 직후, 정확히 말하자면 학교 안에서 단장과 마주한 이후 태도가 변했다.

언젠가 그 가면을 벗겨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설마 그런 어두운 진실이 가면 뒤에 있을 줄은 몰랐다. 덕분에 엘라는 하루 내내 모래를 씹은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부단장으로서 또는 동료로서 클라라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은데 또 그러자면 엿들은 걸 인정해야 하니 이러기도 저러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엘라는 스벤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오는 클라라를 보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그녀가 보인 모습을 보면 평소에 바보처럼 행동했던 건 확실히 연기가 분명했다. 그녀 나름대로 마음의 그림자를 감추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엘라 양.”

“뭐가 좋다고 자꾸 실실대?”

그러던 중에 원더스타인이 속없이 웃으며 다가오자 그녀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저 인간이 괜한 처자 한 명을 꿰어내 신세를 망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짐짓 화난 듯 지은 표정은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왜 웃냐고요? 당연히 엘라 양을 좋아하니까 그렇지요.”

뭐라고?

엘라는 순간 자신이 뭔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

“엘라 양을 좋아한다고 했는데요?”

그걸 다시 한번 말하는 그의 뻔뻔함에 엘라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찼다.

“이 인간이 진짜 미, 미쳤나!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까지 설마 눈치 못 챈 건가요? 제가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뻔뻔하게 자신이 할 말만 늘어놓는 그의 태도에 엘라는 말문이 턱 막혀서 입술만 뻐금거렸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려서 도저히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확인만 거듭할 뿐이었다.

“지, 지금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는 알아?”

“물론이죠. 문장으로 읽어드려요? 원더스타인은 엘라를 사랑한다. 그녀에게 푹 빠졌다.”

“으아아악!”

엘라는 의자에 앉은 그대로 뒤로 콰당 넘어갔다. 물론 그녀 정도 되는 곡예사가 그 정도로 다칠 리가 없었다. 반사적으로 재주 넘기 동작을 취해 몸을 일으켰다.

“가,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다, 당신이 뭐 어쨌다고?”

“사랑합니다, 엘라 양.”

“그, 그만……해!”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당신에게 반했어요. 당신을 제 것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런 미친! 아니 그건 그럴 것 같긴 했지만…… 이런 뻔뻔스러운…… 악마 같은…….”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엘라는 최대한 그의 말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려고 애썼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사실 그것은 그녀가 처음부터 품고 있던 의문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잔인하게 굴면서 자신이 반항하는 것은 늘 관대하게 봐줬다. 애써 그것을 ‘목적에 필요하니까’라고 스스로 변명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그녀도 모르지 않았다.

그녀를 좋아해서 그랬다는 게 가장 정론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해버린다면 그를 향한 자신의 마음 역시 인정해야만 할 것 같았다. 사랑이 가면 사랑으로 보답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니던가. 하지만 그렇게 되어 버린다면…….

“그, 그래서 지금 와서 뭐 어, 어쩌자는 건데?”

클라라는 그녀가 흥분해서 소리를 버럭 지르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역시 오라버니를 미워하는 그녀는 좋아한다는 한 마디에 소름 끼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엘라가 기겁할 만한 제안을 마무리로 날리기로 했다.

“엘라 양이 제 거라고 낙인을 찍고 싶어요.”

“뭐, 뭐? 나, 낙인?”

“이빨 자국이나 입술 마크보다 조금 더 강한, 지워지지 않는 것으로 말이죠.”

클라라는 입에서 혓바닥을 삐죽 내밀어 보였다. 그것의 끝에는 서커스단을 상징하는 문장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 혀에는 피부 아래에 침착하는 약산성의 타액이 흐르고 있지요. 이걸 사람 피부에 꾹 누르면 제 낙인을 영구히 새길 수 있습니다.”

“다, 당신 혓바닥을? 윽, 이 악마! 그, 그런 걸 달고 어떻게 서커스를 해!”

“후훗, 우리 계약을 잊은 거 아니겠죠? 다른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는 대신 당신은 제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할 텐데요? 부단장이 서커스단의 문신을 몸에 새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나요?”

클라라는 원더스타인과 직접 관련된 정보는 수집할 수 없었지만, 엘라와 미키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계약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었다. 과연 그의 추측이 사실이었는지 엘라는 혐오스럽다는 눈길로 그를 노려봤다.

“모, 못 말리겠네! 이 변태 악마! 하, 하여간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그러니까 당신은 역시 내가…… 내가…… 흐, 흥! 지, 진작 이랬으면 차라리……. 아, 아니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겠지만…….”

그렇게 엘라는 클라라를 앞에 둔 채 한참을 구시렁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간신히 마음이 진정된 그녀는 클라라의 얼굴을 한번 슬쩍 흘겨보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 어쩔 수 없지……. 계, 계약은 계약이니까……. 낙인이라고? 발상하고는……. 새, 생각해 볼 테니 저리 가! 그만 히죽대고!”

클라라는 엘라가 자신에게 완전히 정이 떨어졌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낙인이라니. 정말로 호감 가는 대상이라고 해도 받아주기 힘들 정도로 정신 나간 소리였다.

엘라 역시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녀는 클라라가 나간 방문을 노려보며 침대에 엎드려 애꿎은 베개만 이마로 찧어댔다.

“내가 자기 거라고? 체, 쳇, 더러운 변태 악마 자식!”

그의 요구는 분명 지나친 것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엘라는 상대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는지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애증의 미로 속에서 그것은 그녀의 감정적 혼란을 해소하는 하나의 열쇠로 작용했다.

“역시 그런 거였냐고……. 내, 내가 좋아서……? 아, 어떡해, 나…….”

엘라는 베개에 얼굴을 비비며 원더스타인에 대한 욕을 반복적으로 내뱉었다. 자신은 그의 제안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받아줘야 할까? 그 대가로 고향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달라고 할까?

만약…… 만약에…… 그에게도 이해할 만한 사정이 있었던 거라면? 그렇다면 앞으로 자신은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솔직하게 감정을 있는 그대로 행동해야 할까? 그러니까…… 자신은…… 그를…… 그러니까 그를…… 사랑…….

“으아악, 내가 미쳐!”

엘라는 재차 베개에 머리를 처박았다.

[엘라의 호감도가 23 상승했습니다.]

원더스타인이 메시지를 읽은 것은 그것이 떠오른 지 몇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동안 그녀는 잠에 빠져 있었기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확실히 오류가 난 게 맞나 보군.”

엘라의 호감도가 한 번에 20 넘게 상승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그녀의 호감도가 50이 넘은 현재 상황도 믿기 힘들었는데…….

점점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갔다. 하긴 자유 데볼루트를 중화시킬 때도 과부하가 걸리고, 성역에 들어가니 먹통이 되고……. 이번엔 별빛을 너무 자주 먹어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한다.”

그녀는 현재 클라라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옆에서는 루엘로가 시끄럽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6살밖에 안 된 꼬맹이 주제에 소리 한번 우렁찼다. 누가 미노바의 딸 아니랄까 봐.

원더스타인은 자신을 끌어안고 자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떼어 놓은 뒤에 침대에서 나왔다. 현재 시각은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

즉, 클라라와 몸이 바뀐 지 하루가 지났다는 말이 됐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자신은 원래 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클라라와 얘기를 좀 해봐야겠군.’

그녀는 침대를 나와 아래층의 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클라라가 잠도 자지 않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장님, 오셨어요?”

금발의 남자는 셔츠를 풀어 헤치고 아래에는 팬티만 입은 채 나른한 자세로 침대 위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옷을 입으라고 외치려다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맨날 보던 몸인데 자신이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원래 몸으로 돌아가지 않는군요.”

“그러게요. 뭔가 조건이 더 필요하려나? 키르쿠스는 축제의 마신이기도 하니 만우절 축제가 끝나야 돌아갈지도 모르죠.”

원더스타인은 클라라가 어떻게 저렇게 태평하게 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도 웃는 남자의 영향을 받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제 몸은 괜찮습니까? 뭔가 이상한 점은 없고요?”

“네. 아주 좋은걸요? 그 몸뚱어리에 비하면 아주 천국이에요.”

“그렇……습니까?”

원더스타인은 남의 몸을 가지고 기뻐하는 그녀를 감히 나무랄 수 없었다. 정상적인 몸에 대한 갈망은 그녀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거기다 남의 몸 운운하기에는 애초에 자신 역시 원더스타인의 몸을 뺏어 쓰는 처지였다. 그녀를 비난할 자격이 못 됐다.

“일단 기다려 보기로 하지요. 무슨 실마리가 나올지도 모르니까.”

“네. 그동안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죠.”

원더스타인은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그의 방을 나왔다. 생각보다 상대의 반응이 너무 침착해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꺼낼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과연 기다리기만 해서 될 문제일까? 설마 평생 이대로 사는 건 아닐까?

원더스타인은 불안에 뒤척이며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역시 웃는 남자가 없으니까 걱정만 느는 것 같았다. 아니, 웃는 남자가 있을 때가 지나치게 낙천적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만우절 과제에 대해 클라라 양이 설명해주겠어요?”

“네…… 단장님…….”

다음 날 오전, 원더스타인은 단원들 앞에서 어제 들은 과제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녀는 숨바꼭질의 대상이 된 10명의 배우 중 자신이 알고 있는 5명에 대한 실마리를 그들에게 털어놓았다. 사람들은 그녀가 제시한 자료를 보더니 혀를 내둘렀다.

“이걸 모두 하루 만에 알아냈단 말이야?”

“레카체프 수석이란 이름은 허명이 아니군.”

“역시 클라라 양이네요.”

“바쁘겠군요. 단서가 있다고는 해도 프라빈은 대도시니까요.”

클라라는 단원들을 진두지휘해 각자 어느 구역을 맡을지 역할을 분배했다. 평소에 두뇌 역할을 하는 아나이스, 마야, 니카, 엘라가 중심축이 되어 그를 보조했다.

원더스타인은 어쩐지 아나이스도, 마야도, 니카도, 엘라도 모두 자신이 단장이었을 때보다 더 명령을 잘 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클라라와 합을 맞추는 모습을 보면 평소에 비해 훨씬 적극적이었다.

어쩌면 어제 호감도가 오른 것도 시스템의 오류가 아니라 클라라 개인의 능력일지도 몰랐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무려 엘리트 서커스 학교의 전교 회장을 맡았던 사람이었다.

서커스에 대한 상식은 물론 무리를 이끄는 경험도 그녀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녀가 자신보다 단장의 역할에 잘 어울릴 수도 있었다.

그에 비해 자신의 강점은 원작에 대한 지식이었다. 정보를 수집하고 단장의 판단을 보조하는 건 오히려 클라라보다 자신에게 더 어울리는 일이었다.

혹시 키르쿠스는 자신보다 클라라가 더 단장 역할을 맡을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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